Just do it, 칸트적인 스쿼트 by 잡문가


스쿼트는 엉덩이를 먼저 빼야 한다. 무릎은 먼저 구부려서 안된다. 허리가 폴더폰 접히듯이 접혀야 올바른 자세가 된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려가면 엉덩방아를 찧을 것 같이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운동자세를 지켜보던 트레이너는 발가락에 힘을 줘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양쪽 무릎이 가까워지지 않도록, 다리를 힘껏 벌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올라올 때는 마치 위에서 누가 나를 당기듯 올라가야 한다. 오직 다리의 힘으로만 올라와야 한다. 나도 모르게 허리에 힘이 들어가면 이번에는 가슴을 펴야 한다고 트레이너가 충고한다.


트레이너는 스쿼트를 제대로 하면 절대 허리가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스쿼트는 허리 운동이 아니라 다리 운동이라 올바른 자세로 한다면 허리가 아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쿼트를 하고 돌아가면 어김 없이 허리가 아팠다. 트레이너가 옆에서 봐줄 때도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던 것일까? 며칠 후 트레이너를 만나 스쿼트 자세를 다시 확인 받는다. 벌써 스무 번이나 지도를 받았는데 한 번에 통과한 적이 없다. 늘 엉덩이 보다는 무릎이 먼저 접히고, 앞 발가락에 힘을 줘야 하고, 가슴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엉덩이가 먼저 접혀야 한다는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가슴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가슴을 여는 것에 신경을 쓰면 허리를 쓰지 않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스쿼트는 1단계인데, 아직 그것도 제대로 통과를 못했다.




‘안다는 것’이 뭘까. 개념과 방법을 알고 있다면 아는 것일까? 스쿼트를 개념적으로 아는 것과 스쿼트를 할 줄 아는 것, 이 둘 사이의 앎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미분방정식 개념을 아는 것과 미분방정식 문제를 풀 줄 아는 것 사이의 거리는? 신앙의 교리를 아는 것과 신앙하는 것은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칸트는 앎은 얼마나 아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알고자 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말은 지성은 의지와의 결합에서 완성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허리가 아프지만, 잘 안되지만 1월의 목표는 예쁜 스쿼트 자세를 갖는 것이다. 뉴진스의 민지가 하는 것 같은 예쁜 스쿼트, 누가 봐도 예쁜 스쿼트. 허리 디스크 따위는 개나 줘버린 것 같은 멋진 스쿼트, 내 스쿼트 자세에서 김종국이 보이는 그런 스쿼트. 지성의 스쿼트가 아닌 의지의 스쿼트, 칸트적인 너무나 칸트적인 스쿼트.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 점. 

왜 나는 스쿼트에 이런 의미라도 부여하지 않으면 목표가 생기지 않는 것일까? 


독박육아는 어떻게 죄가 되나 by 잡문가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해 본 부모인 내 죄와 신앙의 개념들
교제, 원죄, 불안, 죄책, 선, 섭리 그리고 믿음


1.1 독박육아는 어떻게 죄가 되나

외로움은 불안함을 낳는다.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은 어떤 일을 더 무겁게 느끼도록 만든다. 일만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도 아무도 나를 도와줄리 없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적, 적이 아니라도 경쟁자라는 식의 생각은 삶을 무겁게 만든다. 일이 무겁고, 삶이 무거우면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과 삶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외로움은 그래서 낭만적이지 않다. 외로움은 삶을 무거운 것에서 결국은 무서운 것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삶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무서움, 그것이 바로 불안이다.

불안함은 분노를 낳는다. 아무도 나를 돕지 않는다는 것을 실존적 차원에서 실감하면 세상에 대해서, 주변에 대해서 분노하게 된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분노는 더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불안함에 지배되는 순간 합리적인 사고는 마비되고, 내 삶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화를 내게 된다. 분노가 폭발되면 주변의 사람들이 사라진다. 내가 도우려고 했던 이들도 나와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고, 결국 나는 다시 혼자만 남게 되었다는 감각으로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나와 함께 해주지 않고, 나를 돕지 않고, 내가 하지 않는다면 버틸 방법은 없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며 불안감을 느끼고, 다시 화를 내게 된다.

이를테면 혼자 하는 육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전업주부는 물론, 워킹맘도 육아휴직을 내면 아이를 돌보는 임무는 오로지 엄마의 것이 된다. 내가 아니면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그 외로움이 내 삶이 아이로 인해 무거워졌다는 감각을 낳고, 그 감각은 내 삶이 이전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을 낳는다. 그러다가 여러 조건이 합해져 고립 육아의 시간의 길어지면 아이는 엄마의 분노가 쏟아지는 대상이 된다. 아이가 학령기가 되면 그런 경향은 더 강해진다. 학교, 학원을 보내고는 있지만 교사와 강사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고 느끼는 부모라면, 내 아이를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그 감각의 외피를 드러내면 외로움이 드러난다. 교육 정보를 주고 받는 학부모 모임의 에너지도 어쩌면 각자도생의 외로움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의 렌즈는 내 아이 주변의 아이들을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내 아이는 경쟁자로 둘러싸여 있고, 학교 교사도 책임 있게 내 아이를 돌봐주지 않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불안이 만들어진다. 불안감이 커지면 교사를 향해 분노하게 하고, 아이 주변 아이를 적대적 감정으로 보게 되고, 내 아이의 천진한 아이다움에 대해서조차, 예를 들어 사소한 거짓말, 거친 장난, 게으름, 딴 짓, 놀고 싶어 하는 마음, 늦잠에 대해서까지도 화를 내게 만든다. 그리고 여러 가지가 겹친 날은 분노가 폭발하고, 엄마든 아빠든 깊은 자책감에 빠져들고 자신에 대해서 화를 내게 된다. 부모의 자책감은 아이의 죄책감이 된다. 자책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잘못된 자아상을 갖는다. 부모가 주지 말아야 할 것 중 가장 나쁜 것, 그게 죄책감이다.

외로움은 불안을, 불안은 분노를, 분노는 자책을, 자책은 죄책을 낳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이의 ‘죄책’을. 인간의 원죄가 있다면, 그건 외로움이다. 스카이캐슬에서 예서 엄마 한서진도 외로움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자기가 나서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고 느꼈고, 예서 친구를 적으로 간주하고 비싼 코디를 고용했다. 기준 서준 아빠 차민혁도 아이 주변의 모든 아이들을 적으로 간주한다. 아이가 잘하지 못하면 불안했고, 분노가 자주 폭발했다. 거듭 말하지만 외로움은 낭만적이지 않다. 혼자 있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한서진과 차민혁은 아담처럼 보인다. 성서에서 아담의 원죄도 혼자 있을 때 일어난 것이다. 아담은 외로워서 불안했고, 분노는 하와에게 향했다. 이것은 우리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세계가, 우리 사회가, 공동체가, 이웃, 친구, 교사, 부모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고 나를 좋아해준다는, 세계를 인식하는 근본 감각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그런 감각은 교만함을 줄여준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감각’, ‘나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아이에게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다’는 식의 생각이 모두 교만함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커갈 수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많아지고, 정도도 달라진다. 부모 말고 다른 영향 요소가 생기고, 부모의 영향 정도는 작아진다. 교사로부터, 친구로부터, 인터넷 어느 사이트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아이의 내적 기질로부터, 온갖 요소로부터 아이에게 미치는 요소들이 혼합작용을 일으키고, 인간을 성장시킨다. 우리가 그 모든 요소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게 교만, 불신앙, 강퍅한 마음이다. 그 모든 요소들이 예측될 수 없는 방식으로 종합되어 결국은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약속에 대한 믿음, 섭리를 고백하는 삶이 된다.

1.2 부모의 통제, 관리는 어떻게 죄가 되는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서의 말은 자주 편의대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나는 좀 힘들고, 어렵고, 곤란함에 처해 있지만 결국 이걸 다 지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식으로 이 말을 이해하며 좋아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선을 복으로 이해하는 공리주의자적 심성과 달리 성서에서 말하는 선은 복이 아니다. 우리 각각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힘, 관계, 그것이 긍정적인 힘이든 중독이나 병과 같은 부정적인 힘이든, 혹은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끝내 신적인 차원의 ‘선’으로 종결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 미치는 힘을 ‘부모’가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그런 점에서 신에 대한 도전이 된다. ‘미래에 대한 개방’이야말로 정의 그 자체라는 데리다가 한 말도 그래서 신학적인 주장이다.

2.1 부모는 언제 교만해지는가.

부모인 내가 잘하면 아이도 잘하겠지, 부모인 내가 모범을 보이면 아이도 잘하겠지, 이런 생각이 도덕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부모를 외롭게 하고, 교만하게 한다. 한 인간은 부모를 포함한 여러 힘, 관계를 이끌어 가는 ‘섭리’가 성장시키는 것이다. 책 읽는 부모 밑에서 아이도 책을 읽는다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부모가 공부하면 아이도 공부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럴 가능성이야 조금 증가할 수 있겠지만 모든 아이들은 부모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열매들(far from tree)이다. 부모인 나-학교-사회-친구-이웃-가족-교회 등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우리의 적,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친절하고, 나는 이들과 협력하고 연대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멀리 떨어진 열매들’을 두고도 안심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열매를 기다렸다가 훔쳐가는 도둑이 아니라는 믿음, 나도 그들을, 그들도 나를 돕는다는 믿음이 나를 좀 덜 외롭게, 덜 불안하게, 덜 분노하게 만다는 것이다. 코이노니아적 교제는 나와 우리가 세계를 좀 덜 적대적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명령이 된다.

2.2 부모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본다는 것도 철학적으로는 암묵적으로 믿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암묵적이 아닌 의식적으로 믿고자 하는 것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혼자 방에 있는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불안하다면, 아이가 인터넷 게임에서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이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 아이의 시간을 좀 먹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세계를 적대적으로 볼 뿐 아니라, 설령 아이가 혼자 방에서 몰래 게임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아이가 견디고, 여러 힘과 관계의 종합으로 더 나은 ‘선’으로 인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아이가 바람직한 일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용인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부모가 ‘통제’하지 않고 아이가 그 안에서 ‘섭리’를 보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남편에게든, 부인에게든, 동료에게든, 연인에게든 우리에게 ‘믿음’은 남편, 부인, 동료, 연인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창조자가 우리 모두를 더 나은 쪽으로 이끌 것임을 믿는 것이다. 내 아이의 실수, 나쁜 습관, 유치함이 가져온 어둠은 여태 아이가 자라온 성장의 빛에 비하자면 아무 것도 잠식하지 못했다. 우리가 통제하려고, 관리하려고 노력해왔지만 결국 아이는 부모의 빛이 향하는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라고, 열매는 나무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까지 굴러간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아니라도 내 아이는 자란다.
세상은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내가 삶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 도울 것이다. 아이는 결국 그 힘들의 종합으로 자랄 것이다. 믿음의 대상은 ‘아이가 오직 건강한 것만 선택할 것’임이 아니다. 그건 부모인 나 자신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아이를 믿겠다는 것이다. 우리 믿음은 ‘아이가 오직 건강한 것만 선택하지 않을 것임에도 결국은 빛이 있다면 빛을 향해 자랄 것임’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이 믿음을 보이지 않는 소망에 대한 증거로 정당화해준다.


야곱의 씨름, 광기의 결단 by 잡문가

  • 나는 어떤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어떤 선택을 두고 계속된 고민이 이어진다. 내 생애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겨질수록 고민은 깊어진다.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끊임 없이 대화를 이어간다. 의논은 토의로, 토의는 토론으로, 토론은 논쟁에서, 논쟁은 감정적 싸움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정보를 모은다. 가능한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위해 정보를 읽고, 분석하고, 종합한다. 하지만 정보는 미래를 판단하는 답을 주지 못한다. 정보를 통한 선택은 정보에 기대고픈 나약의 결과이지, 성찰의 결과가 아니다. 정보를 명령으로 여길 때, 정보는 타락한 것이 된다. 정보에서 답을 찾기를 포기하고 나면, 여기에 나 자신의 어두운 욕망이 개입되어 사고를 왜곡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하게 된다. 어제까지는 A를 선택해야겠다는 결론으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A의 위험성이 다시 나를 엄습해온다. 다시 B를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기울었다가, A를 선택해야 한다는 가까운 이의 말에 마음은 다시 흔들린다. 나는 어떤 혼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혼돈은 어떤 선택을 해도 최선일 수 없다는 절망의 혼돈이다.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명확해 보였던 것조차 명확하지 않다. 삶을 ‘모순'과 ‘분열'로 부르는 문장이 떠오른다. 혼돈 속에서 기도할 때조차,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이 어둠, 영혼의 심연이야말로 신비임을 조용히 고백하게 된다. 어떤 결정일지라도, 신은 내 결정을 당신의 섭리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고백, 신비의 고백으로. 겸손의 고백으로, 찬미의 고백으로. 

  • 너무나 고통스러운 고민은 어떤 선택이 갖는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어떤 선택일지라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때, 우리는 비로소 ‘판단'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 때의 결정은 때로는 비상식적이고, 강한 반직관적 선택이라 누군가에게는 광적인 것, 미친 선택처럼 보인다. 납득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다. 조롱당한다. 비웃음당한다. 하지만 이 광기의 결단이 믿음의 증거가 된다. 어떤 결정을 해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우리는 광기의 결단, 오랜 죄를 그만두기로 하는 결단, 이익을 버리는 결단, 내 아이를 맡기는 결단, 신에게 내 몸을 드리는 결단, 실존을 뒤흔드는 결단에도 불안 대신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 천사와 씨름한 야곱. 실존과 생을 내건 온전한 고민. 에서에게로 나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 신은 야곱에게 에서에게 가라고 말했는가. 그것은 야곱에게 주어진 답이었는가. 만약 야곱이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러 가지 않았다면 신은 섭리하지 않으셨을 것인가. 뼈가 부서질 정도의 고통스러운 고민, 대화, 기도는 야곱이 혼돈으로 들어가, 신비를 경험하고, 목숨을 건 결정을, 광적인 저지먼트를 하도록 했고, 신의 섭리를 구하게 만든다.


  • 혁명가의 혁명을 위한 결단. 여기에도 ‘광적인 선택', 광기의 결단이 있다. 혁명은 불꽃 같지만 성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혁명가는 어떻게 혁명을 선택하는가. 그 선택에는 야곱의 씨름이 있다. 혁명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지독할 정도로 계속되는 불면의 고민. 동료와의 토의와 토론, 오래 계속되는 갈등은, 혁명가에게 무언가를 선택하도록 촉구한다. 그 때의 결단이 야곱이 에서에게 나아가도록 하듯이, 혁명가가 혁명을 시도하게 만든다. 야곱의 씨름이 없을 때, 혁명은 타락한다. 실존을 내건 고민이 부재할 때, 혁명가는 혁명을 명분으로 광장을 피로 물들인다.


  • 민주주의는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의 각축과 갈등을 촉진하고, 종국에는 선거라는 결단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것은 집단적 선택, 집단적 광기의 결단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수 의견에 대한 묵살이나 폭력적 침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든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줄 것이라는, 민주주의적 섭리에 대한 믿음이 작동한 결과이다. 저지먼트가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닐수록, 저지먼트는 소수에 대한 폭력의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민주주의의 타락은 야곱의 씨름이 없을 때 발생한다. 결단이 제비뽑기가 될 때, 민주주의는 섭리를 버리게 된다.


  • 정신분열증을 가진 딸을 돌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인가에 대한 여기 한 교수의 고민이 있다. 분열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두터울수록,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어떤 선택도 광기의 결단이 될 수밖에 없을 때, 선택은 배제된 선택을 배제하지 않는다. 대화는 혼돈은, 혼돈은 신비를, 신비는 광기를, 광기는 결단을! 광기의 결단, 저지먼트는 상대화되지도, 해체되지도 않는다.


  •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신비에 다가서는 혼돈을 두고 계속되는 진통을 가져오는 고민이 있다. 고민이야말로 광적인 선택을 낳고, 그 선택이 결코 실패가 되지 않도록 만든다. 온전한 고민은 결단코 실패하지 않는다.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by 잡문가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스티브 맥퀸 감독

1. 주인은 노예를 죽이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 같은 것이다. 노예는 재산이기 때문에 자의대로 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의' 안에 노예를 죽이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플랫의 주인이었던 포드나 옙스 모두 노예를 자기 손으로 죽이지 못한다. 죽어가는 노예를 방기하는 것과 노예를 죽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죽어가는 노예가 있다면 노예를 살리는 비용과 그 노예의 활용 가치를 비교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주인은 노예를 죽이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노예는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건 비교적 인간적인 주인인 포드에게나, 비인간적인 주인인 옙스에게나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목화를 많이 따는 여자 노예라면 아내가 팔아라고 종용해도 팔지 않는다. 노예의 자식과 노예가 생이별하는게 마음이 아프더라도 노예의 자식이 너무 비싸면 생이별도 가능하다. 그러나 죽이지는 못한다. 주인은 노예의 생명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노예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노예에게 매질하더라도 노예가 죽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적당하게 밥을 주고, 공포심을 주고, 정신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노예의 생명을 관리한다. 

영화에서 팻시는 플랫에게 다가가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플랫은 간곡한 팻시의 청에도 뒤돌아 눕는다. 노예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노예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예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못한다. 노예는 죽어가지만 죽을 수는 없다.

포드의 노예 관리자를 폭행한 플랫은 진흙 속에 까치발을 딛고서 목이 매달린 채 '꺼어 꺼어' 소리를 내고 있다. 진흙 위에서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플랫은 간신히 살아있다. 진흙 속에 발을 딛고, 목은 나무에 걸린 채 겨우 겨우 힘겨운 소리만 내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노예들은 그를 뒤로하고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일하러 나갔다. 포드의 자녀들은 집 앞 정원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2. 솔로몬 노섭이 플랫이 되었다. 플랫은 노예가 된 솔로몬 노섭의 이름이다. 주인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주인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자살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노예가 자살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플랫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뉴욕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 때문이다. 그는 자유민이었기에 자유민으로서의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플랫은 주인 때문에, 혹은 자신 때문에 죽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로지 가족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3. 팻시의 엄마인 쇼는 주인에게 잘 보여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난다. 즉 주인의 첩이 되었기에 더 이상 목화를 따지 않아도 된다. 쇼는 딸 팻시에게 주인인 옙스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려면 주저하지 말고 몸을 내주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옙스의 아내가 이를 용인할리 없다. 그녀는 팻시를 폭행하고, 그녀로 하여금 씻지도 못하게 한다. 팻시는 단지 비누 하나 때문에 등이 다 패일 정도의 채찍질을 당한다. 그리고 팻시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사람은 팻시를 아꼈던 옙스도, 그의 아내도 아니다. 팻시가 죽여달라고 간청했던, 믿을만한 사람, 바로 플랫이었다. 플랫은 옙스의 명령에 따라 팻시에게 고통스럽게 매질을 한다. 팻시가 옙스에게 자신의 생명을 지켜 달라고 간청하면서 '자신이 하루에 목화를 가장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다. 쇼는 팻시에게 몸을 내주라고 하고, 플랫은 팹시의 등에 매질을 가한다. 팻시는 옙스에게 몸을 주고, 매질을 당한다. 주인은 노예를 적대시하고, 노예는 노예의 등에 매질을 한다. 어디서 많이 본듯 한 그림 아닌가.

4. 주인은 노예들에게 주일마다 설교를 한다. 여기서 설교, 성서의 기능은 노예에게 두려움을 주고, 주인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신은 백인을 위한 것이다. 주인은 노예를 가졌고, 돈을 가졌고, 땅을 가졌고, 성서를 가졌다. 흉작이 오는 까닭은 옙스의 신앙에 따르면 노예들의 불신앙 때문이다

5. 플랫은 노예 생활을 12년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베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베스는 캐나다 출신으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건물을 지어왔다. 그는 노예제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는 영화의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베스를 보면 사고가 경직화되는 것에는 양심이나 신앙의 선량함 따위와는 상관 없이 장소나 공간의 '이동성'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을 끊임 없이 이동하는 것, 장소를 옮겨 다니는 삶이 어떤 삶이든 상대화 시키는 것이리라. 그래서 반성이니 성찰이니 하는 것이 앉아서 책본다고 생기는게 아니다. 기도한다고 생기는게 아니다. 생활 정치나 생활에서의 철학, 반성은 '옮겨 다니는 것'에 근원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데카르트, 아도르노, 리쾨르 등등 교조가 아닌 사람은 언제나 이동하는 사람들이었다. 
 
6. 자유를 되찾은 플랫이 가족을 만난 후 첫 마디는 '미안해요' 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미안해 할 것 없어요'라고 한다. 오래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수많은 질문과 가난 속에서 살도록 한 것에 대해 그는 미안했다. 어떤 체제가 잘못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미안함의 조건을 따져보면 판단할 수 있다. 노예 플랫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노예들에게, 자신의 가족들에게 끊임 없이 미안해 해야했다. 만일 우리 사회가 가족들에게, 동료들에게, 이웃들에게 이런 형식의 미안함을 계속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면 본질상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노예제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장애인 아들이 자신의 존재 때문에 수급 대상자가 안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서울 한복판에서 목을 매단 50대 아버지의 마지막 말도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지난 2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겨두고 목숨을 끊은 세 모녀의 마지막 말도 '주인 아주머니 죄송해요' 였다. 이들을 돕지 못해 '미안하다'.

플랫이 뉴욕으로 마침내 돌아간 후 솔로몬 노섭이라는 이름을 찾고 이후 책을 내고 강연을 하며 노예제의 폐단을 알리며 삶을 보낸다. 솔로몬 노섭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이든 그의 삶이든 그것이 이웃, 남부의 고통 받는 다른 흑인들, 인신 매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흑인 동료들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by 잡문가

부모들은 단순하지 않다.


일단 오찬호 선생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읽지 않고 하는 이야기임을 먼저 밝힌다. 이 기사만 읽고 이야기하는 것은 좀 성급한 것은 맞는데, 언제나 믿고 보는 양선아 기자의 기사인만큼 오찬호 선생의 생각에 대강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글이라고 믿고, 생각이 다른 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해당기사 클릭하면 새창이 열림)


1) 


“엄마표 수학, 영어…이런 책이 여전히 성행합니다. 이런 것을 솔루션(해법)으로 받아들이면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죠.”


오찬호 선생의 말인데, 아빠로서 '엄마표'를 붙힌 책들을 읽어본 나로선 '엄마표' 학습이 과잉육아, 강박육아라고 일반화하는 것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로서 나온 주장이라 그 인터뷰 내용을 모르는 한 제대로 된 비판이 어렵겠지만, 이 주장을 일반화할 수 있다면 내 주변의 경우는 특수 상황이 될 것이다. 엄마표로 뭘 해결할 수 있거나, 엄마표로 해서 애들을 경쟁에서 이기도록 만들어주고 싶었서 엄마들이 엄마표 수학이니 엄마표 영어이니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부모 자신이 못하는 한 가르쳐주기 힘든 피아노와 수영, 발레를 비롯한 여러 비교과활동 등에는 어쩔 수 없이 지출하더라도,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와 수학 정도는 부모가 가르칠 수 있다고 믿고, 그래서 돈을 좀 아끼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물론 그렇게 해서 부모가 바라는 것이 '아이가 경쟁에서 이겼으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유치한 이기심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좁은 내 주변 세계의 사람들은 그것보다 아이가 뒤처져서 자신감을 잃거나, 쉽게 포기하게 될까봐 돈이 들어 학원은 못보내지만, 부모가 직접 가르쳐서 돈이라도 좀 아껴보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의 경우라 해도, 돈이 어디서 샘 솟지 않는 이상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한 내가 가르쳐보자는 마음이 더 강하다.


물론 엄마표 이름을 붙힌 책이 세상에 있다는 것과 이런 제목을 붙힌 책들이 큰 유행을 얻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엄마표-책을 읽어본 내 경험상 이 책들 중 다수는 부모가 이기는 것에, 경쟁에 너무 중독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엄마표인 것은 초등 이하 연령의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부모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것이지 부모가 경쟁에서 이기도록 하려고 아이를 학원 대신 부모가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엄마표 책들의 유행은 부모가 과잉에, 강박에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책의 이런 철학에 공감하는 면이 있어서일 것이다.


오찬호 선생은 엄마표 영어, 수학의 유행은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고, 여성이 전투처럼 육아에 뛰어들게 만드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엄마표 영어와 수학이 유행하면,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들리는가? 선생은 곧 이어 그것의 근본적 원인으로 공고한 가부장제와 성역할 분업구조를 지적하곤 있지만, 엄마표 영어, 수학이 모성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 임금격차가 엄마가 아빠보다 직장을 놓고 육아를 강요하고 모성을 강제하는 더 큰 요인임은 제대로 부각하지 않는다.


2)

게다가 기사를 읽으며 오찬호 선생의 생각에 더 큰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강박이라는 거죠. 결국 그런 모습조차도 경쟁을 내면화해 ‘나는 특별해’, ‘내 아이는 특별해’라는 것을 과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좋은 먹거리 먹이지 말고, 대안 교육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녜요. 개인이 그런 걸 추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나치게 그런 것을 강조하면 사회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저 엄마는 저렇게 하는데 너는?’하는 식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공격할 단서를 찾아내거든요. 누군가는 또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데, 나는 게으른 엄마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이 내용은 선생이 사회가 해결해야 할 몫을 개인에게 돌렸기에 생겨나는 문제를 설명하기 전에 나오는 말이다. 선생의 표현에서 엄마들이 경쟁에서 이기길 바라는 이기적인 존재, 다른 일이 없으면 자식에게만 몰두하는 반지성적인 존재, 남편은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 뿌뜻함을 느끼는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 육아에 과잉 몰입하는 강박적인 존재, 옆집과 우리 집 값을 비교하고 집값이 떨어질까봐 안절부절하는 소심한 존재, 시민이 아니라 잔기술(테크닉)만 가진 인간을 키우는 존재, 자신의 육아와 교육에 사회적 의미를 통찰하지 못하는 비-정치적 존재로 재현된다.

물론 그런 면이 내게도, 또 다수의 엄마들에게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이기적이고 반지성적이고 열등감을 느끼고 강박적이고 소심하고 비정치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이타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존을 가지고, 가능한 아이를 자유롭고 당당한 시민적 존재로 키우고 싶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엄마표-' 육아법들, 교육법들을 읽는 부모들은 그런 점에서 경쟁을 학교밖에서까지 너무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들이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존재,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부담은 피하려는 노력을 하는 합리적 존재, 아이가 부모의 지지와 요구 속에서 도전적인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게 만들어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다는-조부, 조모의 사랑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 관심을 가진 존재, 테크닉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기술을 잘 배워보는 경험으로 다른 배움으로 확장을 해나갈 수 있는 '배울 수 있는 인간'으로 키우고자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강서구에서 장애인학교에 반대했던 사람은 왜 꼭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삐딱한 눈으로 고의적 오독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지만,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우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차별과 혐오에 맞서오신 오찬호 선생이 지금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에 대해, 혐오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계신 것은 아닌가, 속이 상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3)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고, 정치적 효능감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에는 크게 동의한다. 하지만 엄마들의 정치적 효능을 키우는데 왜 엄마들을 향한 이토록 부당한 비판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기사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부분을 인용한다.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답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부모도 아이가 불평불만을 있을 때 잘 들어주고, 아이가 정교한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거 참 말 많네”라고 하거나 “그런다고 바뀌겠어?”라는 식으로 변화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을 부모가 먼저 나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떤 부모들과 인터뷰를 했는지,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대개의 부모들, 상식적인 부모라면, 아이의 불평불만에 대해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깡패처럼 말하지 않는다. "거 참 말 많네"처럼 대꾸하지 않는다. 그것도 맥락이 중요하다. 부모가 이기심을 전제하지 않은 채로, 내 아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아이가 자신이 선택한 어떤 일에 도전적으로 임하고 있을 때. 하지만 아이가 그 도전을 중도에 포기하고 쉽다고 투덜될 때라면, '그래서 어쩌라고?'는 그 도전을 끝까지 고수해보라는 부모만 해줄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학원을 보낼지 말지, 어느 학원이면 좋을지, 아이의 도전을 그만두게 할지 말지, 어떻게 말해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결정하고 고민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중적인 것을 넘어 삼중적, 사중적일 때도 많다. 너무 단선적으로, 우리 부모들을 '나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인간도 그렇지만 부모란 존재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표현, 행위 뒤에 무수한 고민이 스쳐갔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불만을 느끼고, 해보지 못했던 불평을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4)덧붙여.

사회학자인 오찬호 선생이 '엄마표-'의 부정성을 들춰내려고 한 것이 뭐가 문제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인 선생의 말대로 내 자식만은 나처럼 무시당하지 않을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엄마표-육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적 원인을 해명해야 할 사회학자가 왜 부모들의 정체모를 '열등감'을 원인으로 내세우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만큼이나 자기 영역, 즉 소설에 대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다 들어와서 작품을 써도 되는 허용적인 곳이 없다고 쓴 적이 있다. 소설가가 가수가 된다면 비웃는 사람이 있어도, 가수가 소설가가 된다고 해서 비웃는 사람은 없다는 예와 함께. 

나는 하루키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육아전문가들은 소설가보다 더 관대하다. 나처럼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아이 하나 키워본 경험으로 과학이 아닌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으니까. 육아전문가분들은 이상한 점이 있어도, 아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보이는 겸손한 태도 때문인지, 나같은 비전문가도 부모들인지라 부모들에 대한 존중 때문인지 누가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비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격려해주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찬호 선생이 결혼과 육아에 대한 말씀을 '사회학'에 국한해서만 한 것이라 생각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다.


나는 엄마표- 수학 관련 책을 읽고 아빠표- 수학으로 아이를 가르친다. 아이를 더 잘하도록, 학교에서 이기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가지로 느린 아이가 매일 매일의 성취감과 작은 승리감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겼으면 하는 내 이기심이 내 아이가 친구들과 만들어가는 협력을 깨지 않도록 늘상 경계해야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모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이기적이면서도,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을 해나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존재도 다른 사람을 최고로 만들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지 않듯이, 어떤 부모도 내 아이를 최고로 만들어 나를 증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이가 이겼으면 해도, 내게는 소중한 내 아이를 나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을 테니 말이다.


결정의 냄새, 자유의 맛, 자율성의 윤리 by 잡문가

"매번 결정과 결단을 내려야 했다.이런 성숙하고 책임있는 행동은 파시즘이 우리에게 훈련시키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담백하고 깨끗한 좋은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중에서

지난 일요일 대구의 팀본색에서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반비)의 출간과 관련해 서경식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많은 화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에 오래 남았던 질문이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혁명부터 반-프랑스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치즘이 대두하기 전까지 보편적 가치가 승리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패전 이후 20년 간의 전후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 서경식 선생은 자신이 전후 민주주의의 유산이 없다면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은 "그런데 이런 시기는, 인간의 단편화에 저항하며 인간성의 위대한 가치가 승리하던 시기는 인류 역사에서 어쩌면 예외적이었던 것일까" 하고 청중에게 물으셨다.




답하기 역시 어려운 물음이지만, 우리가 결정과 결단을 내리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면, 우리의 결정과 결단보다 더 나은 결정과 결단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우리가 늘-언제나 굴복하고 있다면 이 시기는 예외적이었던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의 대리가 아니라 '결정'의 대리가 된 민주주의는 이런 예외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주범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주기율표'에서 나 개인적으로는 잘 와닿지 않았던 장이 '수소' 였다. 물의 전기분해와 그것으로 분리된 수소와 산소, 수소의 작은 폭발, 엔리코, 프리모 레비의 첫번째 실험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몇 년 전에 읽었다가 해결되지 않았던 궁금함을 다시 생각해보려 책을 읽었다가 약간의 실마리를 찾았고, 그렇게 '철'까지 다시 읽어나가다 발견해낸 것이 위의 문구다. 결정의 향기. 결정에서 나는 향기는 자유의 향취라는 말... 파시즘은 우리에게 자유를 훈련시키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내 아이와 학생들에 대해서도 결정을 미루거나 결정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 더 편하다면 우리는 조금씩은 파시즘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결정엔 담백하고 깨끗한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런 결정이, 결단이 예외를 예외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 결정에는 좋은 냄새가 난다.


차로 다시 선생님을 모시고 부산으로 가는 길에 선생님께서 내게 조용히 물으셨다. 이념과 종교의 규제 없이, 소위 배운 것이 많지 않아도, 누군가의 일체의 강요 없이도 올바른 것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덕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갖는 '자율적인 윤리'는 어떻게 가능할 것일까? 장애를 가진 유태인 아이를 돌보던 이탈리아인 여성이 그 아이와 함께 아우슈비츠행 열차를 함께 탄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일까? 말 수가 적고, 주변과 관계 맺기 어려워했던 로렌초가 목숨을 걸고 수용소의 유대인들에게 배푼 호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피델리티'(fidelity), 인간이 인간에 대한 충실성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조심을 다해, 선생님께 그것이 철학자들이 설명하기 어려워 하는 '잔여'고, 현대철학이 잔여의 철학, 반-철학이 되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도대체 이런 '잔여'로부터 어떻게 자율적인 윤리가 가능한 것인지는 조금도 설명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레비나스에게도, 데리다에게도 그건 '도약'으로밖에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오늘 프리모 레비를 읽으며, 어쩌면 이 문제도 향기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의 향기, 결단의 냄새, 그것을 맡아본 사람만이 목숨을 건 결정을 한다. 파시즘은, 관료주의는 결코 우리가 자율적으로 옳음을 결정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다. 결정은 힘들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결단은 고되지만 좋은 냄새가 난다. 좋은 냄새가..


그 고기 맛이란 강인함과 자유의 맛, 실수도 할 수 있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자유의 맛이다".


다시 프리모 레비의 말이다.

인간의 자율성은 냄새도, 맛도 오직 자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냄새도, 맛도, 기쁨도, 그리고 고통까지도 말이다.








사진은 모두 젊은 포토그램퍼 김도균(moolrin) 작가의 허락을 받아 사용한 것입




달리북카페의 언니 '좀' 말려줘 by 잡문가

언니 '좀' 말려줘


얼마 전 북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카페에 들어서자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호두나무로 만든 두꺼운 탁자 위에는 터키식 램프가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쿨렐레 연주도 하시나 봐요?” 헤링본 마룻바닥 위에 놓인 걸 보고 묻자 주인이 말했다. “제가 예전에 언니 ‘좀’ 말려줘라는 우쿨렐레 밴드까지 했어요.” 재밌는 이름이었다. 이후 언제나처럼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터키식 램프가 놓인 탁자에서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램프 옆으로 오르한 파묵이 쓴 ‘소설과 소설가’가 보였다. “아, 파묵이 터키 작가라 여기에 둔 거구나.” 책을 펼쳐 읽었다. 이곳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에도 주인이 그어놓은 밑줄과 그녀의 영혼을 스쳐간 편린들이 한가득 적혀 있었다. 나는 이 카페의 분위기, 책의 선별 등 거의 모든 점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책에 적힌 주인의 깊이 있는 메모를 읽는 것이 좋았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피로가 몰려와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섰다. 잠시 후 뒤에서 주인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지만 읽던 책을 어디 꽂아두셨어요?” 그 질문을 받고서야 나도 모르게 내가 그 책을 내 가방에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이 캄캄했다. 내가 좋아하는 북카페에서 좋아하는 책을 훔친 책 도둑이 되다니. 내가 도둑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나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북카페로 향했다. 그 덕에 주인과 처음 대화를 나눴다. 그제야 이곳은 언론인, 문화기획자 등으로 활약했던 세 명의 비혼 여성들이 세상을 ‘달리’ 보고 싶어 만든 ‘달리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카페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도 ‘달리북카페’였다. “책 구성이 너무 좋은 서가예요.”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심정으로 한 말이지만 과장이 아니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마음 아프지만 이제 여기 책을 팔까 생각 중이에요.” 

(달리도서관 인터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8684)


어떤 이유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걸까. 그 사정을 다 헤아리기 어렵지만 북카페는 카페 중에서도 회전율이 낮고, 단체 손님이 많지 않아 운영이 쉽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세 여성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기세로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책을 기증해 여성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었고, 지역과 이웃을 위해 별로 돈은 되지 않는 북카페를 열었다. 비즈니스만 생각한다면 가능한 발상이 아니다. 제주뿐 아니라 우리 동네 구석구석에도 이런 언니들의 비경제적 발상으로 만들어진 공공적인 공간들이 있다.

나는 간곡한 심정으로 책은 ‘좀’ 팔지 말라고 말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언니’를 말릴 수 있을까? 나 같은 책 도둑은 할 말 없게 됐지만, 이런 공간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싸우는 노력을 더 많은 이들이 ‘달리’ 알아보고 지지해주는 것 외 다른 어떤 방법은 있을까? 그렇다. 언니를 말리고, 영혼과 사회를 끝없는 사유화로부터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관심과 연대뿐인 것이다.



S가 짜낸 참기름 by 잡문가


S가 짜낸 참기름


S는 K대학의 전기전자공학부 학생이었다. S는 명문대에 진학할 만큼 명석했고, 해병대에 자원할 정도로 건강했다. 전역 후 S는 택배물류센터에서 일했다.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다는 곳에서 S는 반장이 인정할 정도로 버티고 또 버텨서 학자금까지 마련했다. 스물두 살 S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높았던 자신감이 깊은 좌절이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는 복학 후 해병대 정신으로 밤을 새우며 엉덩이에 진물이 날 때까지 공부했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좌절과 누적된 피로 탓에 ‘수업 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오늘 하루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학교에 가는 날보다 가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자주 쉬었지만 S는 피로를 회복하지 못했고, 두 번의 학사경고를 받아 제적되고 말았다. S가 우울증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제적된 후 한동안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하던 S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정상궤도로 복귀하려면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년 동안 공부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우울증 탓이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에게 뇌졸중이, 어머니에게 암이 동시에 찾아왔다. S는 이때부터 부모님을 대신해 참기름을 만들어 거래하는 식당으로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S도 30대 중반이 되었다.


두 해 전 미술관에서 ‘마이너리그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던 적이 있다. 강연목표는 서양미술사에서 빛나는 장면을 연출한 거장들도 알고 보면 중심으로부터 먼 가난하고 지질한 비주류였음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S는 이 강연에 와준 청중의 한 사람이었다. 며칠 전 우연히 S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그림 몇 장을 내게 보였다. 세밀한 필치로 정교하게 그려진 초상화였다. 놀랍게도 모두 S 자신의 그림이라고 했다.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그린 것이라곤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S는 내 강연을 들은 후 비주류인 자신도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S가 말했다. “늘 주변인이었기에 그저 남들처럼 사는 것이 꿈이었고 그 꿈이 무너진 것이 많이 아팠어요.”


고흐도, 프리다 칼로도 남들처럼 살지 못했다. 고흐는 지독할 정도로 가난해 결혼도 못했다. 프리다 칼로는 큰 사고로 원하던 아이를 갖지 못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었다. 나는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인간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묻게 된다. 꿈이 무너진 삶에서 희망이란 자기 고통을 말하고, 쓰고, 그리는 것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말해지고, 쓰이고, 그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란 남들처럼 사는 삶이 아닌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깨를 짜서 기름을 내고, 무너진 꿈을 살펴 그림을 그리는 것, 거기에 인간의 구원이 있다.


(2017.11.7 매일신문에 실은 글)



조직논리라는 악마 by 잡문가

매일신문에 오늘 나간 글.
조직논리, 관료주의, 서열주의의 악마성을 간파했기에 예수는 말구유에 태어나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서게해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리새인도, 본디오 빌라도도 모두 '관료주의적 조직논리' 속에 갇혀 있던 자들이 아니었던가. 예수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 불렀던 것도 그가 예수에게 세상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때가 아니던가. 이런 이야기를 K와 나눴지만 여기에 다 쓰진 못했다. K의 '영적 싸움'은 지금부터다.
















조직논리라는 악마 (매일신문 2017년 10월 10일)


대학에 갓 입학한 K는 교회에서 파키스탄 선교사의 선교 보고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남자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고, 한 십 대 소녀가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성폭력 위험에까지 노출되었다는 이야기에 K는 눈물을 흘렸다. 복음의 힘으로 폭력적인 남존여비 문화로 상처받은 이슬람 여성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선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가기 어려운 곳이 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카불, 파키스탄 라호르, 페샤와르 등 또래가 유럽 여행을 갈 때 그녀는 전운이 감돌던 지역으로 향했다. 


누구도 선교사가 되겠다는 K의 열정을 꺾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생활의 벽은 쉽게 넘을 수 없었다. 선교사로 파송받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자격이 필요했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예상보다 많은 돈이 들었다. 하는 수 없었던 K는 학위 후 필요한 돈을 마련코자 취업을 준비했다. 임용 고시에 합격해 학교 상담교사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K는 교사로 부임하고 얼마 있지 않아 신이 자신을 왜 이슬람 세계가 아니라 학교로 인도했는지 알게 되었다. 스무 살 때 선교사에게 들은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일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며 학교야말로 선교지라고 생각했다. 가정폭력과 우울증, 성추행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하지만 K의 열정이 냉정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서류를 꾸미는 일에, 문제아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잘 관찰하라는 교장의 말에, 큰일 만들지 말고 적당히 졸업만 시키라는 행정실의 엄포에 불안감이 커져갔다. 소위 ‘사건’이 터져 카프카가 소설 ‘성’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오가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전혀 계산에 넣지 않는 것이 관청 사무의 원칙”을 어길까 봐 두려웠다. 진급에 노심초사하는 교감은 매일 K를 불러 주의를 줬다. 


며칠 전 K와 만났다. 그녀는 내게 학교 행정 시스템이 ‘악마’인 것을, 복음의 적은 이슬람이 아니라 조직논리인 것을 아느냐고 했다. 그녀다운 물음이었다. K는 작은 행정 실수로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윗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아이들을 내담자가 아니라 민원인으로 대했고, 상담가가 아니라 관료로서 만났다고 했다. 정의를 위해 검사가 되었고, 나라를 위해 정치인이 되었고, 사람을 구하고자 의사가 되었고, 영혼을 위해 종교인이 되었지만 우리의 초심은 ‘조직논리’ 앞에선 왜 이리 초라할 정도로 무력한 것일까. 생계 때문일까? 욕망 때문일까? 조직논리에 지배당하지 않고 심지어 변혁시키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러한 K의 깊은 고뇌에 답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니체의 말대로 자명한 사람들과 고독한 사람들 사이에는 싸우는 투사들이 있다. 고뇌하며 싸우는 것, 거기에 인간의 구원이 있는 것이다.





사고의 유연함은 지식인의 미덕이 아니다. by 잡문가

1. 유연함, 유연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애매함은 정치인의 미덕일 수는 있어도 '지식인'의 미덕이 될 순 없다. 정치인이 현실적 상황에 맞춰 적당한 정도의 유연성을 발휘해,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에서는 그 반대로 말하면서 생기는 모순과 애매함은 정치인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란 타협의 기술이니까. 그렇게 보자면 정치인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내 의견을 다른 의견과 ‘타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여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애매함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인에게 애매함이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가 지식인이라면 일상에서의 다른 경우에서라면 몰라도, 대문자 '비판'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 지식인이 비판을 해야 하는 대상에 대해서 유연한, 혹은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없다. 니체에게 붙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은 그가 비판의 명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니체에게 도대체 어떤 애매함이 있는가. 알만한 사람은 다 알테지만, 데리다의 해체 일반 전략도 비판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번역상 야기되는 문제가 있을지언정) 데리다의 비판은 결코 난해하지 않고, 애매함과도 거리가 멀다. 데리다의 해체전략은 명료하다. 어쩌면 지식인들에게서 가끔 보이는 ‘전회’를 들어 발전하는 지식인이라면 유연성을 가졌다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사유 자체가 유도하는 자기 전개로 인해 발생하는 사유의 전회는 있을지언정 '현실적' 이유로, '정략적' 이유로, 정치인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유연성을 갖게 되는 경우는 없다. 후기 하이데거의 전회는 사유의 도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발생적 현상학으로의 전회는 후설 자신에게는 발전이었고 사유 자체의 전회가 아니었다.


2. 지식인은 현실을 옹호하거나, 현실 자체의 불가피한 한계 때문에, 부당한 현실 자체를 당위로 삼는 사람이 아니다. 이청준은 어느 작품에서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조금 긴 인용이다.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소설로써 고발하는 것, 의롭지 못한 일을 증언하는 것, 우리의 삶을 부당하게 간섭해 오거나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비인간적인 제도와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고 그것들을 이겨나갈 용기를 모색하는 것,소위 새로운 영혼의 영토를 획득해 나가고 획득된 영토를 수호해 나가려는 데 기여하는 모든 문학적 노력이 종국에는 다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스럽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삶의 진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깊고 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을 가장 삶다운 삶으로 돌아가 살게 하는 옳은 질서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어떤 평론가 한 사람은 우리의 삶을 삶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풍습과제도와 문물과 사고를 통틀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 삶이 그 억누름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한 삶, 본래의 자유롭고 화창한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질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의 질서입니다. 이 자유의 질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고 깊은 삶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의롭지 못한 현실을 불가피한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정치인의 역할이다. 지식인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정치인만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인의 역할은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진리와 현실적 부당성을 적절히 타협해내는 정치인의 유연함과 애매함을 버리고 진리를 거울삼아 현실이라는 무게가 만들어내는 거짓된 당위를 철저히 비판하기로 한 자다. 그러니까, “당신이 현실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라는 말 다음에 “그건 결론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자는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 듣기 좋은 말, 힐링을 위한 말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말일 수는 있어도 지식인의 말이 아니다. 지식인은 그보다 더 어려운 말을 꺼내는 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이 전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옳은 일은 아니지요”라고 말이다. 이처럼 옳고 그름, 오래된 진리에 매달리는 사람은 보통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인기가 없고 외롭지만 지식인이 옳음, 진리, 진실, 자유의 자리에 서서, 손해를 보고 고립을 자초한다고 해도 권력에 대해 해야 할 말을 할 수 없다면 그는 좁은 전공분야에 자리한 전문가일 뿐이다.


3. 위안부 합의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이런 긴 이야기를 썼다. 현실적으로 일본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지게 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이번 합의를 뒤집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일본 국민들의 정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정치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늘 그런 ‘현실적으로’라는 식의 클리셰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지식인이 아니다. 운동을 해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또 현실적인 이유로 이 문제가 안고 있는 물러설 수 없는 ‘진실’까지 양보했다면 그건 정치일 수는 있어도 결코 ‘비판’이 될 수는 없다. 옳지 않은 일을 두고 옳지 않은 일이라고 시종일관 말하는 것을 두고 사고의 경직이라고, 운동 논리라고 폄훼하는 식의 이야기는 정치인이라면 지식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지식인이 지식인에게 할 수 있는 비판으로서는 성립될 수 없다. 지식인이 지식인에게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 지식인이 받아들이는 옳음, 진리의 결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어야지 그 사고의 '시종일관'을 향한 것이어선 안된다. 지식인은 완고하다.


4.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P는 이렇게 쓴다. “냉전붕괴이후 일본의 진보좌파들은, 곧바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40년전 학생운동시절의 급진/온건파의 싸움이 있다. 90년대 이후에도, 급진파는 오래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에만 집착해 왔고, 온건파는 눈앞에 놓인 새로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필요하면 그때까지의 생각을 수정했다. 와다 선생이나 우에노 선생과 서경식 교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고, 그런 식의 태도의 차이를 만든 건 내가 보기엔 사고의 유연성이다.” 덧붙여 이런 말도 썼다. “와다 교수의 선택이 가장 옳았는지 여부는 얼마든지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와다 교수는 늘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위안부할머니와 모두를 위한 최선이 뭔지 늘 고민해 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와다 교수를 비난했던 이들은 이질적인 의견에는 귀를 닫았고,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지금의 북한처럼. ”


학생운동에서라면 온건파와 급진파로 얼마든지 나뉘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급진파 운동권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그리고 그런 식의 태도 때문에 언제나 온건파가 현실정치에 더 잘 적응했고, 더 쉽게 뿌리내렸다. 나는 와다 하루키나 우에노 치즈코를 지식인이 아니라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만 분류할 수 있다면 새로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정치인’과 같은 전략을 갖는 것을 얼마든지 칭찬할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런데 와다 하루키는 '지식인' 아닌가? 지식인 와다는 비판해야 할 것을 현실을 버리고 진리를 취해 비판하고 있는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는 도대체 와다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에 있는 리버럴 지식인들이 모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왜 고민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들이 여기서 말하는 '모두'는 누구인가? 거기에는 일본정부도 포함된 것인가? 와다는 위안부할머니와 일본정부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왔던 것인가? 와다와 P는 이 문제 해결의 최선은 위안부할머니들의 시종일관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인가? 그것이 피해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불가역적 합의 혹은 그저 돈이었던 것인가?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준 자가 자신의 소송이 서경식, 정영환과 같은 이들이 구조적 폭력을 용인하는 사실 때문이라고 믿는 것을 ‘지적 퇴락’이라는 말 외에 다른 무엇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제거욕망”으로 P는 생각한다고 썼는데, 왜 나는 여기에서 5공 시절 안기부가 즐겨 쓰던 방식의 지식인 죽이기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기묘한 도치, 해괴한 이어붙이기의 방식은 정치인의 것이라기보다 공안의 방식이 아니던가. 인용구의 마지막 문구, '지금의 북한처럼'이라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의미론적 배치. 재일조선인이라는 말과 북한을 연결시키려는 악마적인 방식의 이어붙이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5.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일본인을 ‘애매한’ 고립된 존재로 만들었고, 그러한 고립상황에서 아시아에 대한 침략이 행해졌다”고 썼다. 이런 말을 오에가 쓴 것을 보니 P는 오에에게도 퍽 사고가 유연하지 않다고 할 것 같다. 오에에게도 '지적퇴락'이라고 P는 쓸 것인가? 자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자신의 소송 외에는 어떤 폭력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사고가 '유연하신' 존재인지라 '당신은 애매한 존재'라고 밖에 돌려줄 말이 없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P학자의 언설과 달리 서경식은 공개서한에서 와다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그건 P가 재일조선인 지식인의 습관이라고 했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며 확인 없이 옮겨 쓰는 P 본인의 오래된 습관'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왜 비판은 사랑과 존경으로 하는 것임을 그는 모르는 것일까?. 지식인이 공화국에 대한 존경이 없었다면 목숨을 걸고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겠는가? 와다에 대한 존경이 없다면 비판이 있겠는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꾸할 가치가 없는 법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P에 대해서 대꾸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P에 대한 일말의 존경은 있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지식인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두고 비판을 결의하기까지의 고뇌의 무게와 용기를 생각하기 전에 그 누군가를 ‘가볍게 대한다’고 생각했다면 비판이라는 것이 뭔지를 모르거나, 정치인이 경박스럽게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 외에는 본 적이 없다는 증거다. 참으로 공안적 지식인다운 경박한 왜곡이라고 할밖에.

(경고. P가 누구인지 쉽게 단정하지 마시오)


민폐라는 원죄 by 잡문가

















프리모 레비가 쓴 <릴리트>에는 "로렌초의 귀환", "체사레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는 신문에 어떤 이야기를 쓸까 하다 로렌초와 체사레의 일화가 떠올랐다. 아우슈비츠 생환자였던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군에서 만났던 두 친구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로렌초는 고향으로 귀환 후 '성자'가 되었고, 체사레는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견딜 수 없어서 열차에서 내려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은 내게 각각 B와 K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민폐를 끼치고 민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자체가 민폐인 인간의 삶에 대해서 써 내려갔다.  아래의 글이다.


민폐라는 원죄 


K는 나보다 한 기수 아래의 헌병이었다. 신병 시절부터 말이 많았던 K는 선임들로부터 얼차려를 많이 받은 편이었다. K는 소속 부대에서 겪은 일을 말할 때면 말끝마다 “미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미국을 기준으로 볼 때 군생활의 부자유가 견딜 수 없었던 K는 좀처럼 부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관심병사로 지정됐고 이후 군교회의 배려로 군종병이 되었다. 군종병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다른 군종병과 자주 부딪혔고, 결국 병장도 되기 전에 열외 상태가 되었다. 이후 K는 내무실에서 영어를 공부했다. 가끔 K가 피아노를 치며 가스펠을 부를 때면 그 모습이 마치 고난받는 예수처럼 보였다.


B는 나보다 한 기수 위의 보급병이었다. 충청도 출신이던 B는 말수가 적었다. B와는 훈련소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가끔 B를 만나면 내무반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약한 것이 문제였다. B는 후임이 동갑이라면 말을 놔라 했고, 후임에게 일을 시키는 경우도, 신병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도 없었다. 그 때문에 선임들에게 자주 얼차려를 당했고 동기들도 B를 좋아하지 않았다. 제대하는 날, 이제 자유라며 수줍게 웃던 B의 얼굴이 선하다.


한참을 잊고 살다 몇 달 전 K의 연락을 받았다. 은행에서 일한다며 내게 신용카드 발급을 부탁했다.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소식이 궁금해 시내 카페에서 만났다. 카드 발급을 위한 서류에 서명을 마치자 고맙다며 상품권 한 장을 건넸다. K는 군생활 중에 했던 영어공부 덕에 일찍 취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K가 군생활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군교회당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K에 대해 생각했다. 관심병사 K는 결코 군생활 부적응자가 아니었다. K에게 부대는 자유롭게 지내며 마음껏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미국이었다. K를 만나고 돌아오니 B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전화를 하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B가 두 달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군생활 중 생긴 우울증이 올해 1학년 담임을 맡으며 악화됐다고 했다. 초등교사로 임용된 지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며 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숙명 같은 원죄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숙명을 피할 도리는 없다며 더 적극적으로 민폐를 끼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사소한 민폐조차 끼치는 것도 견딜 수 없어 자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하며 살아간다. B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뇌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무엇이 인간의 삶인 것일까. 작은 민폐 정도는 서로 견뎌주는 사회라면 B도 살아남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진짜 죄는 민폐가 아니라 민폐를 견뎌주지 못함에 있을 것이다. 오늘, B의 죽음으로 K를 견뎌내기로 결심한다.

(매일신문에 쓴 글. 2017.9.18)




사과열매도 나무 멀리 떨어진다 by 잡문가

사과열매도 나무 멀리 떨어진다 


자폐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엄마에게 메일을 받았다. ‘신이 제게 준 자식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는 부분이 유독 눈에 밟혔다. 사람들은 때론 자폐아에 대해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천사 같은 아이를 떠올리지만 자폐증은 다른 어떤 장애보다 많은 자식 살해를 유발할 정도로 부모를 미치게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고민하다 앤드루 솔로몬이 쓴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꺼내 읽었다.


이 책은 자폐증, 신동, 트랜스젠더, 소인증 등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예외적 자녀를 키워낸 가족들의 이야기다. 앤드루는 10년 동안 300가정이 넘는 예외적 자녀를 둔 가족을 만나 기록한 인터뷰를 정리해 총 1천5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의 책을 만들었다. 앤드루는 유명 작가지만 사실 그도 부모와 다른 존재였다. 심각한 난독증을 앓고 있고, 성적 소수자였던 탓에 아버지와의 불화가 극심했다.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부모들도 처음에는 자식들과의 차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수화 대신 발화 교육을 시킨 부모, 왜소인인 아이의 키를 늘리는 시술을 감행한 부모까지. 처음에는 아이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부모들조차 결국 이렇게 예외적인 아이지만 이 아이는 바로 ‘나의 아이’라는 사실을, 또 우리가 열등한 차이로 구분하는 특질조차도 그저 또 다른 정체성의 차이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앤드루는 이런 차이에 대한 인정이 다양성을 만들고, 이런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부모 역시 미성숙의 껍질을 벗고 ‘인간’이 된다고 선언한다.


영어 속담에 ‘사과 열매는 나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기 마련이라는 뜻인데, ‘부모와 다른 아이들’의 원제인 ‘Far from tree’는 이 속담의 의미를 뒤집은 것이다.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말은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부모와 조금 혹은 때때로는 아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사과라 해서 사과 아닌 것일 수 없고, 심지어 떨어진 열매가 사과가 아니었다고 해도 열매 아닌 것일 수 없다. 부모와 다른 아이라 해서, 자폐아라 해서 내 아이가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믿음이 다르다 해도, 지역도, 성별도, 성적 지향도, 계급이 다르다 해도, 이처럼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라 해도, 모든 열매는 나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저마다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에 대한 인정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양육은 이들 가족에게 지난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자녀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태도에서 힘든 사랑이 손쉬운 사랑에 못지않다는 확신을 가졌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 아픔을 가진 이웃은 나무가 지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의 힘든 사랑이 지키는 것이다. (매일신문에 쓴 글, 2017.9.4)



어륀지보다 오렌지. 엄명환씨의 삶을 생각하며 by 잡문가


몇 해 전 우연히 대학로 이음책방에 들렀다가 거기서 '오렌지가좋아', 엄명환씨를 만났다. 


이유를 알기 어렵지만, 꽤나 자주 오렌지가 생각난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오해로도 가득한 만남이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1년 후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이후였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한 사람의 시민적 용기의 근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까지 종합해보면, 오렌지가 보여준 용기는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교사가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렌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인권상도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제도, 엘리트, 서열주의의 표상 같은 '어륀지' 대신 자기 자신의 삶과 선호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오렌지'를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렌지인권상에서 격려 받게 되었으면 한다. 


사실은 오렌지이며, 오렌지가 좋지만, 어륀지가 되고 싶고, 어륀지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는 나를 생각하며 썼다. 지금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이런 거다. 어륀지보다는 오렌지가 좋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 그거 하나다.



오렌지가 좋아.(2017.7.25. 매일신문 에세이산책)


2014년 여름, 대학로 이음책방에 들렀다가 사진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이름 대신 ‘오렌지가 좋아’라는 별명으로 소개했다. 그냥 ‘오렌지’라 불러도 좋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을 준비하던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공청회에서 “미국에서 ‘오렌지’(orange)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다가 ‘어륀지’라고 하니 알아듣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륀지보다 오렌지가 더 좋다고 생각했던 그는 그때부터 자신을 ‘오렌지가 좋아’로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렌지는 책방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내게 건넸다. 그는 2009년부터는 반올림(삼성 반도체공장 노동자 인권지킴이) 활동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반올림 집회나 삼성에서 백혈병을 얻어 세상을 뜬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1인 시위 현장에 그는 늘 함께했고, 그의 사진들은 영화 ‘또 하나 약속’(2014)에서 엔딩 화면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대개 그렇지만 경제적 대가는 거의 없기 마련이다. 생활은 어떻게 해나가느냐는 비루한 내 물음에 오렌지는 검도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유독 두꺼운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살아갈 방편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꼰대 같은 내 물음엔 사진가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그때 나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오렌지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그날의 질문과 걱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것이었는지는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나 알게 되었다. 2015년 5월 26일, 오렌지가 심정지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알고 보니 그는 만성신부전증 환자로 1급 장애인이었다. 열두 살 때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다. 유달리 두꺼웠던 팔목은 투석을 위해 찔러댄 주삿바늘이 남긴 흔적이었다. 그 때문에 중`고등학교도 모두 검정고시로 마쳐야 했다. 장애인 인권과 의료민영화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에 뜻을 품었고, 어륀지보다 오렌지를 좋아했던 그는 결국 6월 10일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날,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름에 그를 만났던 탓일까, 두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이맘때가 되면 명랑했던 오렌지가 생각난다. 황상기 씨는 “그의 사진기는 삼성 경비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방패였다”고 했다. 그 자신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버티기 어려웠을 처지로 어떻게 다른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 무엇이 이런 시민적 용기를 갖게 만들었을까. 아픔으로 두꺼워진 팔뚝으로 그는 타인의 아픔을 안았다. 자기 아픔으로 세상 아픔을 품었다. 세상 모든 일에 무덤덤한 내가, 내 아이가 어륀지를 행여나 오렌지로 발음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사는 자신이 부끄럽다. ‘오렌지가 좋아.’ 그의 이름은 바로 엄명환이다.



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 by 잡문가

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를 ‘베둘레햄’이라 불렀다. 배가 많이 나온 나를 본 선생님이 붙여주신 별명이었다. 베둘레햄은 그래도 견딜만했는데 ‘드럼통’이란 별명은 정말로 모욕적으로 들렸다. 대학에 들어가자 선배들은 나를 보고 ‘슈렉’을 닮았다며 볼 때마다 놀려댔다. 윌리엄 스타이그가 쓴 동화에 나온 슈렉을 보면 영화 속 슈렉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생겼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이니까. 나는 내가 모든 못생긴 괴물 중에 가장 못생긴 그 괴물을 닮았다는 사실이 늘 납득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오히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외모라 생각하는 쪽이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어느 신문에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느끼는 뻘쭘함에 대해서 썼다. 엄마들이 아빠인 내게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고 나 역시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 끼어들기 어려운 탓이었다. 그래서 나처럼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하는 할머니 한 분과 함께 뻘쭘함을 이겨보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며칠 후 칼럼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사진을 보니 왜 아무도 말을 안 걸었는지 알겠네요.” “할머니가 무서웠을 것 같아요.” 웃기면서 슬펐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 아내는 대답했다. “못 생긴 게 매력이야.” 물론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외모패권주의와는 거리가 먼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 청와대로 들어간 분들의 면면을 보며 외모패권주의라 했다. 대통령과 신임 수석 비서관들이 하나같이 순백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커피 산책을 하고 있는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었다. 물론 새 정부가 외모로 인사를 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성공한 누군가를 향해 외모패권주의라 부르며 보잘것없는 내 처지를 못생긴 외모 탓인 양 돌리려 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외모패권주의란 말은 하나의 농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농담 속에 진실 한 자락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건, 지역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을 마치 전부인 양 대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점일 것이다. 외모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였다면, 즉 세상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외모패권주의 같은 농담이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가난 때문에, 학력 때문에, 지역 때문에, 외모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주고, 또 상처를 받는가. 그래서 외모패권주의, 영남패권주의, 친박패권주의, 강남패권주의 등 온갖 종류의 패권주의에 실체가 있는가를 따지기보다 그런 말에 담겨 있을 어떤 진실을 살피는 노력이 보다 값진 것이다. 외모패권주의는 농담이지만, 외모로 받은 상처는 농담일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17.6.13)


얼마 전 동아일보에서 박정자 선생이 '외모패권주의'에 대해서 쓴 글을 읽었다.

(http://news.donga.com/3/all/20170519/84435070/1) 

텔렘수도원 잔상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대통령 취임 첫 날 하얀와이셔츠를 입고 양복 재킷을 한 팔에 걸친 후 커피 한 잔을 들고 대통령과 선임 비서관들이 청와대 산책을 하는 것이 연출된 것인데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자유를 강요하는 일종의 전체주의라는 것이었다. 외모패권주의 하나에서 사회주의적 획일성을 끄집어내는 글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한 마디만 가져오면, 박정자 선생은 "사회주의는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배려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지만 실은 건강하고 잘생긴 좋은 집안 출신만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냉혹한 체제로 타락했다. 북한 체제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양에는 장애인이 들어올 수 없고, 모든 지배층은 당성이 좋은 집안 출신이어야 하며, 최고지도자는 백두혈통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모패권에서 이런 걸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문해력인 것인지, 관심법인 것인지 알기 어렵다. 지혜자이자, 나의 유일한 구루라고 할 수 있는 나와 같이 사는 여자가 내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고, 농담에 욱하는 사람과는 상종하는게 아니다"라고. 나도 상종하고 싶지 않았는데, 청와대 인사를 보며 외모패권주의라 생각했던 나도 한 마디 안 할 수 없어서 쓴 글이다. 그런데 쓰다보니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동안 내 별명의 역사가 궁금한 분이 만의 하나라도 계시다면 읽어보신다면 꽤나 즐거우실 것 같다. 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에 대해 마치 농담하듯이 쓰고 싶었을 뿐이다.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는 글, 노래, 철학, 책 by 잡문가

"Viva la zarzuela"는 내가 가장 즐겨듣는 음반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음반이다.

1996년 콘서트 실황을 담았다. 2014년부터는 연주 실황이 유튜브에 공개되어 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 아이가 등교하고 오전에 모처럼 파트너와 같이 집에 있는 날이면 유튜브로 Maria Bayo, Placido Domingo 등 거장들의 노래를 들으며 온갖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아주 큰 기쁨 중 하나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Carlos Alvarez가 무대 위에서 무표정하지만 고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며 나는 "짐승의 눈빛"이라고 했다. 공허한 듯 순수하게 보였고, 그래서 "짐승처럼 노래한다"고 했다. 파트너도 덧붙였다. "짐승처럼 부르는게 아름다운 거지. 나도 노래를 하지만 그게 아름다운 것인지 나는 몰랐던 거 같아. 어쩌면 그래서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았은 것이고".



짐승처럼 부른다는 것의 의미는 가수의 목소리가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아름답다고, 최종적으로 아름답다고 승인하는 것은 자연 아니면 자연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Maria Bayo는 새처럼 노래하고, Placido Domingo의 목소리는 강이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여전히 유효한 관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회화의 오랜 이상도 자연이지 않았던가.(물론 자연의 이상이 왜 여체로 표상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하여간 벨칸토 창법이 말그대로 아름다운 까닭은 그 목소리가 듣기에는 꾸밈이 없고 순수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은 거칠지만 자연스럽고, 우연적이지만 모든 것이 조화롭고, 위협적이지만 생명을 품고 있다.

정교하게 다듬은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Viva la zarzuela 연주에 감응된 탓인지 '자연'의 관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품들을 떠올려 보았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지닌 문학적 높이는 오르한 파묵이 말하는 것처럼 그 작품이 어떤 교훈도, 어떤 종류의 필연성도 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과 몹시도 닮았다. 자연은 교훈적이지도, 서사적이지도, 예시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으로 보일 뿐 우연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어떤 시점부터 데리다와 들뢰즈에 매혹된 이유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들뢰즈가 베이컨을 두고 자연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감각의 논리>에서 말하는 표상되지 않는 감각이라는 것도, 아플라니 윤곽이니 하는 것도 자연을 염두에 두는 것이 분명하다. 들뢰즈가 철학은 자본주의 나라에서, 도시에서 성립한다고 했던 말의 의미도 분명해진 것 같다. 그런 곳이야말로 '자연'의 결여가 크기 때문인 것이다.

















자연을 닮은 글쓰기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글일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데리다의 글이었다. 
마치 산을 올라가며 만나는 돌과 나무, 바위, 풀들이 조각 조각 흩어져 있어 그 자체로 유기성은 없지만 거기에 조화가 없지 않은 것처럼, 데리다 글을 읽는 것도 그렇게 느껴진다. 각 문장, 단어 하나하나의 유기적 연결을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책을 덮었을 때 산을 내려왔을 때 비로소 느끼고야 마는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의 의미 같은 것이 거기에 있다. 그 철학이나 문학이 정당한가를 떠나서 최소한 미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데리다나 들뢰즈의 글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자연에 대한 묘사가 가득해야 꼭 자연을 닮은 문학, 그림, 음악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을 담고 닮는 것은 자연적으로 되지 않고, 무엇이 자연인지에 대한 자연적 규정과 그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거부를 끝없이 해나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다시 플로베르를 생각해보면, 소설에 어떤 교훈도 담지 않는 것이 담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교훈조로 마치는 글이 되지 않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짐승의 눈을 하며 소리를 내는 벨칸토 창법은 마치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가능한 한 노력을 다해야만 제대로 소리가 난다.



















잘못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보건대, 하이데거가 대지와 세계의 투쟁을 담는 것이 예술작품의 본질이라고 한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대지를 자연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예술작품은 자연을, 즉 사물을 세계 내 존재로서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사물이 지닌 존재론적 깊이인 자연을 담으면서 동시에 농부가 대지를 개간하듯 대지와의 투쟁을 담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지와 세계의 길항은 예술이라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을 담고자 하는 인위적 노력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담고 있는 은유일 것이다.

<아주, 기묘한 날씨>(푸른지식, 로런 레드니스)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이제 시작인데, 이 책이 한 평자의 말대로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까닭은 이 책이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은 방식의 글과 그림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북극의 빛맹 현상, 북극곰의 위협과 홍수로 파헤쳐진 공동묘지를 묘사하는 글이 이토록 아름다울지 몰랐다. '자연'이라는 말에 각자가 떠올리는 상이 다르기에 자연을 닮는다는 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하간 모든 아름다운 것이 자연의 한 조각을 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자연을 닮지 않은 글을 썼지만, 자연을 닮았다고 할만큼 아름다운 글을. 쥐를 무서워해서 가까이 있는 숲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운 내게는 요원한 일이지만 말이다.








책에 대한 존경 by 잡문가

책에 대한 존경
-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모님은 생일선물로 오직 책을 사주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책 선물이라고 해서 낱권으로 된 그림책이 아니다. 1학년 생일에 받은 책은 한국편 32권, 외국편 32권으로 구성된 금성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위인전기]였다. 나는 한국편보다는 외국편을 더 즐겨보는 편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32명 중에 아문센이 포함된 것을 의아하게 여기곤 했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냥 옷만 따뜻하게 입고 걸어가면 되는 일 아닌가 하고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학년 생일에는 계몽사에서 나온 7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았다. 선물이라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이걸 다 언제 읽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소년소녀들이 읽는 문학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같은 고전들도 있었고, 동양 작품으로는 드물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초등 2학년의 지적 수준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계몽사판 그림동화에서 봤던 책들 중 겹치는 책들에 주로 손이 갔다. <피터팬>이나 <빌헬름텔>, <피노키오> 같은 책들. 그 중에서도 <소공녀>는 결말의 속시원한 반전 때문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였다.

부모님은 이후에도 생일 때마다 전집을 집에 들이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 내지 못했다. 그 중에선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아니 읽을 수 없었던 전집 시리즈도 있었는데, 바로 4학년 때 받은 선물이었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총 28권짜리 전집이었다. 이 책과 관련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 한 주 전에 전집류를 주로 취급하는 외판원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보다 몇 살 많아보였던 외판원 아저씨는 여러 상품 중에서도 유독 이 전집을 권했다. 아이가 평생 보게 될 책이라며 좀 비싸더라도 이번 기회에 장만하라 했다. 그 외에도 영국과 미국의 무슨 책들에 대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아메리카나백과사전]이었던 것 같다. 일찍 학업을 중단하신 아버지께서 그게 무슨 책인지 아실 리 없었지만, 매년 거래해 오던 외판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한 주 후 책이 배달되었다. 책은 이전에 나로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크기, 두께였고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내가 들기도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아버지는 내 방 책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디즈니 그림책을 박스에 넣으시고는, 집에 막 도착한 책을 꺼내 한 권씩 책장 한쪽에 꽂아 넣으셨다. 동화책들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빛깔 대신, 1권, 2권, 3권.. 한 권씩 백과사전을 꽂아 넣었다. 점점 책장은 무겁고 짙은 고동색으로 채워졌다.

책에 대한 ‘원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게는 아마 바로 이 책들을 아버지와 함께 책장에 꽂아넣은 그날의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도 집에는 책이 있었고, 자주 책을 샀고, 매일 같이 책을 읽었지만 이 백과사전이 들어온 그 날부터 그 책들은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백과사전으로 알게 된 것은 기껏해야 이렇게나 두꺼운 책은 색인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라는 것과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의 역사, 내가 살던 대구에 대한 지리 정보가 전부였지만, 책장에 꽂혀 한 달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던 ‘권위적인’ 책을 바라보며 “지금 나는 어려서 저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지, 저 책은 아마 어마어마한 내용일거야”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하면서 어머니는 그 전집을 중고책방에 갖다 주셨다. 거의 새 책이었지만, 중고책방에는 같은 종류의 전집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형편 없는 가격을 받았다. 얼마 가지 않아 백과사전이 시디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아마도 구립 도서관 정도에는 가야 있을만한 이런 종류의 책을 집에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아이 엄마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전집 전문 서점에 들렀다. 사장님은 이젠 그런 백과사전류는 나오지 않는다며 다른 책을 소개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 스타일에 주제도 다양하고, 온갖 색으로 치장된 표지의 전집이었다. 세계문학전집류와 위인전집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만 내가 읽었던 것과는 달라보였다.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의 ‘세계’가 말만 세계일 뿐 서구 중심의 전집 편찬이었다는 비판을 충분히 의식했기 때문인지 어떤 전집에도 인도인 하인을 둔 런던 아가씨 이야기인 [소공녀]는 없었다. 위인전집에 실릴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의 기준도 예전과 많이 달랐다. 프라다를 입고 다니는 보그의 악마 ‘앤디 윈터’, 샤넬을 만든 ‘코코 샤넬’ 전기를 보면서, 어릴 때 위인전을 읽으며 느꼈던 위화감, 그러니까 나는 천재도 아니고 모험을 할 만큼 용기도 없으니 위인은 못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점을 나오면서 아이 엄마는 내게 물었다. “요즘도 전집을 사는 사람이 있나봐?”. 그동안 우리는 언제나 칼데콧이나 뉴베리와 같은 큰 상을 받은 책이나 유명 작가들의 책을 가능한한 섬세히 선별해 낱권으로 책을 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내 아버지가 내게 준 책에 대한 경험까지 내 아이에게 주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책을 사다주며, 책에 대한 경험까지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 비싼 전집을 사겠다고 생각한 것은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책에는 그 돈을 들일만큼 가치가 있다는 믿음, ‘고전’에 대한 경외와 존경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아마도 내 아버지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믿음을 가진 세대였을 것이다.

백과사전을 포함해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단지 존재만으로도 내가 인간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키우도록, 때로는 내게 책을 더 읽도록 해주는 압력도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계몽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이 있었기에 촉발되었다고는 하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사람들도 백과사전을 다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신 책, 그러니까 ‘책에 대한 존경’이 ‘왕에 대한 존경’을 이길 때 변화가 일어났다.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었겠지만 나는 아버지만큼 책을 존경하고 있을까? 내 아이에게는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책을 읽는 대신 책을 구입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도서관은 무한하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우주이지 않은가? 공공도서관이 드물던 내 유년기에 비하자면 이제 책에 대한 존경은 집보다 몇 배는 더 큰 무한한 우주인 도서관에서 더 배우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 책에 대한 존경은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구입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 우주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그 순간 생겨난다.
짙은 고동색 백과사전 전집이 어린 내겐 그 우주였던 것이다.


백화점이라는 무대 by 잡문가

신세계 백화점에 갔다가.


얼마전에 대구에 신세계 백화점이 생겨서 거기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의 글이 되었다. 조경란의 <백화점>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는데 내가 백화점에서 자주 느꼈던 부분과는 다른 결의 글이었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도움이 될까 해서 봤는데, 벤야민이 살던 때의 아케이드와 지금 백화점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간 이번 글은 몇 시간을 고민했지만 제대로 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백화점에서 나란 인간이 얼마나 찌질한 인간인지만 보여주는 자기고백이 된 것 같다^^. (원래 인간이란 찌질하니까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빙 고프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자기 자아를 찾아라는 식의 결론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화점에서 내가 나 자신을 연출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거기에는 나의 욕망도 있고, 백화점이 내가 연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무대 장치를 잘 세팅해 놓기 때문일 것 같았다. 점원도, 매장 구성도, 조명과 동선까지도 아주 영리하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새로 생긴 백화점도 그런 점에서 나를 다른 나로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백화점에 있는 시계 매장에 난생 처음 들어가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 글에서 백화점 시계매장에 처음 들어갔다고 쓴 건 진실은 아니다. 외국에 있는 매장은 아무렇지 않게나 들어가서 이것 저것 물어본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봤다.

일단 나는 백화점 매장에 들어가서 관심 있는 물건의 가격은 바로 물어보지 않는다. 택을 바로 들추기 전에 그것이 옷이든, 전자제품이든 일단 이리 저리 살펴보고 물건의 특징부터 살펴본다. 이건 내가 그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가격보다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를 더 궁금해 해서가 아니다. 일단 택을 들추기 전에 내가 그 물건이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인지 확인부터 하는 심미적 취향이 있는 손님이라는 것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는 연기를 매장에서 하는 것이다. 일단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가격부터 물어보는 솔직함이 없어서 백화점에서 물건 사기는 내게는 늘 연출의 부담이 있는 공간이다. 
아울렛이나 외국 특히 미국 쇼핑몰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런 연출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아울렛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라는 신호인데다 아울렛 매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대 자아의 부각이 잘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연출의 부담도 잘 생기지 않는다. 마음대로 택 가격을 살펴보고, 가격이 비싸면, "아울렛 물건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점원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있다. 미국에 있는 백화점들은 매장마다 점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점원에게 응대를 받을 가능성이 없고, 명품 시계 같은 럭셔리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는 직원이 있지만 이들은 내가 살 능력이 없어도 아시안들은 헤비쇼퍼라는 인상이 있어서 가격부터 물어도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외국인이지 않은가? 자아가 좀 부각되더라도 그 때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 백화점에서 물건, 특히 명품을 사는 일은 외국에서 사는 것보다 틀림 없이 더 큰 기쁨을 느끼게 할 것 같다. 비싼 물건을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면서 카드를 척 낼 때 느끼는 기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이쪽이 더 드라마틱하고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그것이 비록 저급한 방식이라 하더라도, 고양시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명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프랑스산 물이나 이태리산 음료를 주고, 고객 카드에 이름을 적으면서 백화점 명품 매장이라는 무대의 주인공 중 하나로, 아니 자신을 주인공 중 하나라 믿게 되는 것이다. 명품 매장 직원이 착용한 흰 장갑은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하간 백화점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신문에 쓴 글도 결론을 내기 어려웠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무리하기 어렵구나.



백화점이라는 무대 (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산책에 쓴 글)
새로 생긴 백화점에 들렀다가 시계 매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시계는 내가 쇼핑 욕구를 느끼는 거의 유일한 물건이다. 시계는 단지 시간만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다. 크로노그래프와 GMT 기능이 있는 시계는 시계를 착용한 남자를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성공한 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내가 그런 남자라서 명품시계를 동경해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시계 하나로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명품시계 구매는커녕 시계 매장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가격도 물론 큰 이유였지만 매장 내 손님이 별로 없는 시계 매장은 뭔가 모르게 들어가기 부담스러웠다. 그 날도 발걸음을 돌리려다 문득 내가 시계매장에 들어갈 정도의 모험 정신도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져 매장에 들어가 봤다. 직원은 내게 B사의 시계를 추천해줬다. 시계를 살펴보며 직원이 눈치 채지 않게 가격표를 힐끗 보고, 가격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직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나는 살 마음이, 아니 살 능력이 없었지만 다른 시계들도 보여 달라 했다. 가격을 듣고, 그 가격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나는 직원에게 “가격은 좋은데, 다이얼장식이 마음 들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다른 매장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직원은 둘러보고 다시 오라고 했다. 물론 나는 다시 가지 않았다.
시계매장을 나오며 어빙 고프만이 <자아연출의 사회학>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공연된 자아는 그럴 듯하게 연출하여 남들로 하여금 그를 그가 연기한 인물로 보게 만드는 일종의 이미지다”. 나는 시계매장에서 내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구매능력은 없지만 구매자처럼 행동했고, 직원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직원은 내가 구매 능력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도 적당히 맞장구쳐줬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백화점, 그 중 명품매장은 무대가 되어 나 자신을 내가 ‘공연한 자아’로 점차 믿게 만드는 곳임을 깨달았다. B사의 시계가 내게 특히 잘 어울린다는 직원의 말이 오래 남았다.
명품이 즐비한 새로 생긴 백화점을 무대로 나는 ‘공연된 자아’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시계가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듯 백화점도 단지 물건을 파는 곳만은 아니다. 무대 위의 우리 배역이 오직 ‘고객님’이 되도록 모든 것을 사전에 셋팅해 두고, 우리를 구매능력이 있고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고객님으로 대우한다. 그렇게 우리는 백화점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출된 나 자신을 자기 자신의 자아로 믿으며 조금씩 쇼핑의 즐거움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연기에 너무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백화점은 영리하다.


오늘 나를 짜증나게 했던 일 by 잡문가

오늘 나를 짜증나게 했던 일


새로 생긴 동네 중고책방이 요즘 내 아지트다.나 이번이 처음이에요 라는 티를 팍팍내는 내 또래의 여자 사장님은 아메리카노 한잔을 3000원에 주고, 무한리필을 해준다고 크게 써붙여 뒀다. 살만한 책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중고책 가격은 싼 편이고, 사장님은 이 책이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얼마 전에는 사겠다고 벼르고 있던 <작가의 책>을 2000원에 샀고, 2만원하는 책을 40%에서 판다길래 사겠다고 하니 4000원을 달라고 했다. 물론 계산착오지만. 아무튼 그렇게 서투르고, 또 온정있고, 소박한 그런 가게다. 오늘도 보낼 원고를 쓰고, 가게 앞에서 두 박스나 어린이책을 가게 앞에서 <free>라고 크게 사인을 붙여놓고 나눠주고 있어 선재 줄 책을 하나 얻으러 두어시간 거기 앉아 있었다. 좁은 공간이라 오래 앉아 있기는 눈치 보였지만 사장님은 눈치 같은 거 주는 사람이 아니다. 앉은 지 얼마 있지 않아 하얀 승합차 한대가 섰다. 어느 교회 승합차였고, 내린 사람은 50대 정도의 목사로 보였다. 그 분과 그 분의 아내는 아마 책방 옆의 동네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유기농 식재료를 사러 오셨던 것 같다. 아내가 식재료를 사러 들어간 사이 남자 분은 프리로 나눠주는 책을 잠깐 훑어보고 가게로 성큼성큼 들어와 사장님에게 다가가 교회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주고 싶은데,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두 박스의 책을 자신이 다 가져가도 되냐고 사장님에게 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심 나는 사장님이 거절하기를 바랬다. 그 순간 사장님 눈을 봤다. 약간 주저하는 듯 보였다. 목사로 보이는 남성분은 교회학교에 아이들 보여줄 만한 책이 없다는 이야기를 다시 강조했다. 사장님은 승락했고, 남성분은 박스에 있는 50권은 족히 되어 보이는 책을 빠짐 없이 승합차에 실었다. 오늘 내가 가져갈 책은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분에게 그동안 책 한권 없이 어떻게 교회 '학교'를 운영했냐고 묻고 싶었다. 이 중고책방에 아이들 책도 엄청 저렴하게 파는데 몇 권이라도 사주고 얻어가지..게다가 '프리'로 나눠주는 책들은 책방으로서는 여러가지 복안의 결과였을 것이다. 가게 문 연지 한달도 되지 않아 그런 방법으로 홍보도 하고 싶었을 것이고, 작은 책방이지만 책방답게 주민들과 만나고 동네 사람들의 공적인 공간이 되고 싶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들이 모두 교회로 들어가면 오직 그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지 않길 빌뿐이지만, 아마 그 교회의 한 쪽 책장을 채우는 소품으로 돌다가 말 것이다. 오늘은 그게 짜증이 났다. 교회가, 공공적인 공간이라고 하지만 거진 사유화된 공간이나 마찬가지인 교회가 동네 중고책방의 작은 온정까지도 욕심을 부려야 하는가.

그 분이 나가자마자 사장님은 20% 가격에 팔겠다고 적어둔 책장에서 책 몇 권을 골라 다시 프리사인 아래에 가져다 뒀다. 그리고 나는 괜시리 기분이 게름칙해져 오늘은 공짜로 나눠주는 책을 집에 가져오지 않았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초짜 중고 책방이 하고 있다. 그리고 책방을 나서면서 나는 책방 사장님이 꽤 잘 나갔던 전직 주식 애널리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교훈은 이런거다. 사람들은 명함 따라 다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것,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 당연한데 많은 사람들은 잘 믿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내가 오늘 본 것도 그 자체로는 다는 아니겠지. 그래도 그 남성분이 내 예상대로 목사님이라면, (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내일 새벽 기도에서 오후의 일을 진심으로 회개하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아빠의 자책 육아 - 뻘쭘함을 이기는 방법 by 잡문가

뻘쭘함을 이기는 방법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엄마들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나를 포함해 몇 안 되는 아빠들은 멀찍이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혼자서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다.

그건 그 시간 그 곳에서 스마트폰에 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 말고 ‘뻘쭘함’을 견딜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들 그러고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런 이유로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척’했다. 다른 아이 엄마들이 ‘절대로’ 내게 말도 붙이지 못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연기를 해왔다. 물론,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가 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아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면 뻘쭘함을 견디기 훨씬 더 쉬웠겠지만 그 아빠 역시 뭔가에 집중하고, 아니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서 다가가기 힘들었다. 분명 그 아빠도 연기 중이었겠지만 말이다.

놀이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놀이터에 들어서면 언제나 아이와 같은 반인 아이들의 엄마들이 벤치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가 미끄럼틀로 달려가면, 나는 엄마들이 모여 있는 벤치의 반대 편, 그늘 하나 없는 벤치에 앉아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요즘엔 아예 책을 들고 가서 밀린 독서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여 있는 엄마들 사이에 끼거나 다른 아빠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기 힘들다. 그건 분명 서슴없이 누군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이겠지만, 그보다 그런 자리에서 당연하게 따라오는 예상 질문들을 피하고 싶었던 탓이 더 컸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늘 아이를 데리러 오세요?” “엄마는 많이 바쁘신가 봐요?” 있는 그대로 대답하면 그 뿐이겠지만 그런 질문에 이런저런 대답까지 하면서 엄마들 모임에 끼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모르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부끄러움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부각된 현실의 자아가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와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긴다고 한다. 현실의 나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 사이에 있는 간극을 누군가가 바라보게 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느낀 뻘쭘함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현실의 나는 ‘육아하는 아빠’이지만 엄마들과 아이를 기다리며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는 ‘직장에서 일하는 아빠’였던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있는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일하러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아빠’로 나 자신이 부각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동네 카페에 앉아 일을 하다가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내 앞 테이블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자들은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야구 유니폼 제작에 대해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사회인 야구단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아저씨들이 모두 옆 동네 유치원의 학부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 인연으로 야구단을 만들어 매주 함께 야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형 아우로 불렀고 맥주 한 병 없이 직장과 아이들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옆 동네 유치원 아빠들을 보면서,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 아빠들은 아이를 픽업하러 가서 애먼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분명 아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김금희가 쓴 소설 ‘체스의 모든 것’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소설가는 이기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상태로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이라고 썼는데, 나는 아빠 야구단을 보며 부끄러움은 ‘함께 해야’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제였다. 유치원 마치고 들르는 놀이터에서 내 옆 벤치에 할머니 한 분이 앉으셨다. 아이와 같은 반에 있는 손자를 매일 픽업하러 오시는 할머니셨다. 힐끗 보고 눈인사를 드리고, 다시 책을 보는 척하다가 처음으로 할머니가 계신 벤치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을 함께 기다렸다. 함께 부끄러움을 이겨보려고 말이다.


갈려면, 갈아주세요. by 잡문가

갈려면, "갈아주세요"


 지난해였던 것 같다. 대구 동성로와 삼덕동의 공사장 펜스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낙서를 그린 ‘범인’을 경찰이 쫓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공사장 펜스에 A4 용지로 인쇄된 그림을 붙였다고 경찰이 쫓기 시작한 것일까? 

 

 나는 실제로 이 ‘낙서’를 보지 못했지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찾았다. ‘범인’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에다 눈에는 ‘please’, 입에는 ‘grind’라는 문구를 붙여두었다. “Please grind”, 직역하면 “갈아주세요”라는 말일 텐데 ‘범인’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갈아달라”는 말을 맥락에 따라서 땅을 파서 뒤집는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고, 직책이나 위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Please grind”라는 말은 대통령 자신이 “뒤집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고, 이 ‘낙서’ 작가가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대통령을 “바꿔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범인’은 강력 접착제로 이 그림을 공공 시설물에 붙이고 뿌렸다는 이유로 재물손괴죄라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낙서’를 강력 본드로 붙인 ‘범인’은 이 작품의 완성을 경찰이나 구청 직원이 본드로 단단히 붙은 이 ‘낙서’를 벽에서 떼어 내기 위해 스크래퍼로 ‘갈아내서’ 대통령의 얼굴이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복권을 긁어내듯 “갈아주세요”라고 적힌 파피에 콜레를 열심히 ‘긁고’, ‘뒤집으면’ 과연 그 얼굴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대통령의 탄력 있는 얼굴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자, 그러면 대통령의 얼굴을 모독하고, 감히 ‘용안’을 무엄하게 훼손한 자는 누구라고 해야 할까. 이 ‘낙서’를 그리고 붙인 ‘범인’일까? 아니면 이 ‘낙서’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의 얼굴’을 갈아내고 스프레이를 뿌린 ‘공무원’일까?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결의하는 광경을 보면서 새삼 이 ‘낙서’가 생각났다. 국회의장이 탄핵 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순간 “갈아주세요”라는 말의 이중적 의미가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갈려면 먼저 갈아내야 한다. 즉, 바꾸려면 뒤집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그 순간 ‘뒤집어주세요’와 ‘바꿔주세요’, 두 가지 의미의 “갈아주세요”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하면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말하자면 예술이야말로 끊임없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현실을 비판하여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준다. 그렇다면 이 ‘낙서’도 단지 낙서일 뿐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예술의 힘으로 동성로에 임한 작은 ‘예언’이었던 것이 아닐까? (20161213 매일신문에 쓴 글)


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는 아니다 by 잡문가

<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는 아니다>

- 폭력시위/평화시위라는 이분법에 대해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연일 보도로 나오고 있다. 이 정부가 이런 일까지 했단 말인가.. 기가 막힌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며칠 전에도 놀라운 보도를 접했다. 청와대 유력 인사가 최순실이 자주 가는 성형외과의 중동진출을 타진해달라는 요청을 한 컨설팅 업체에 했었는데, 이 업체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 요청을 반려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컨설팅 업체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를 포함해 일가족,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 모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서른 명도 되지 않은 회사였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은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공사로 해외 근무 중이던 동생은 국내로 들어와야 했다. 이 업체 사장이 일을 반려한 이후 이 일을 관할했던 조원동 수석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청와대가 이렇게 세심하게 한 개인의 사익을 챙겨주려 노력했고, 찌질하게 권력을 이용해 시민 한 사람을 괴롭혔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나는 이 업체 사장과 일가족들이 느꼈을 분노에 대해 생각했다. 이들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한 가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온다고 느낄 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아마 국가 조직의 위세에 공포심을 느꼈겠지만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든 무게의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억울함은 분노를 낳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폐쇄가 비선에 의한 즉흥적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개성공단 사업주들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군사적 이유도, 아니 그보다 더 졸렬한 정치적 이유도 아닌 비전문가 집단이 하룻밤 사이에 두고 내린 결정 때문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은 뉴스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업을 팽개치고 삭발까지 하게 만든, 조용한 마을을 분열시킨 주범인 사드도 비선의 결정이었고 거기에 무기상까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의 기분은 또 어떨까?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당원과 당직자들의 기분은? 헌법재판소에서의 옥신각신은 ‘연극’에 불과했고, 비선에 의해 짜여진 각본에 의해 해산되었다는 것을 듣고 그들이 느꼈을 감정은 나와 같은 것이었을까? 무엇보다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 비선에 의해 국정이 마비되어 버린 탓에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유족들은 어떤 기분일까.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이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폭력시위/평화시위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시위에 나온 대중들의 분노의 질과 수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JTBC와 한겨레에 보도된 믿을 수 없는 뉴스에 느낀 허탈감과 상실감에 기초한 분노와 세월호 유족들과 개성공단 사업주들이 느끼는 억울함에 기초한 분노는 질적으로 다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분노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의한 피해는 간접적인 경우에서부터 직접적인 경우까지 광범위한 만큼 분노의 질과 폭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가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평! 화! 시! 위!’라는 외침, ‘평화시위가 아니라면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는 믿음, ‘시위에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판단, 그런 외침, 믿음, 판단은 그저 그것이 체제 내화의 결과여서거나 폭력시위에 대한 강박증적 거부의 증상이여서가 아니라 ‘평화시위라는 미명으로’ 다양한 분노의 수준을 단선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억울한 사람들에게 그 억울함을 견디도록, 분노한 사람에게 그 분노를 억누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적’이다. 따라서 ‘비폭력’이 이데올로기화되면 비폭력은 전도된 폭력으로 그 사회의 가장 억울한 자를 억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폭력시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시위에는 여러 종류의 분노를 가진 사람의 다양한 전선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시위를 위해 광장에 모인 대중들이 그 과정에서 서로의 분노에 대해 공감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믿는다.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만을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각자의 분노가 자유롭게 시위에서 표출되고,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할 실마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광장에서의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각자의 분노, 억울함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폭력 평화 시위가 어쩌면 JTBC뉴스를 시청하고 분노한 사람들의 이해와 감정표출 방법만을 대변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비폭력도 전략이고 역사적으로 ‘맥락’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폭력도 전략일 수 있다. 단순한 치기와는 구분해야겠지만, 만약 세월호 유족과 성주군민들이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기로 한다면 나는 말릴 마음이 전혀 없거니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동참할 것이다. 꼭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도 레비나스 말을 빌리자면,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일은 목숨을 건 도약이다. 지금 폭력 시위/평화 시위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은 우리가 타자에 대해 어디까지 응답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폭력이야말로 신화적 폭력을 중지시키는 신적 폭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어느 누구도 단순한 치기로 폭력을 일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철두철미 강박적 자기 검열로 “평! 화! 시! 위!”라고만 외치지 않을 것이다. 외신과 언론으로부터 칭찬받고 스스로도 자부할만한 일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이 시위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시위란 그 자체로 이미 폭력적인 것이다. 시위는 사회를 중지시키고, 에너지가 분출되고, 단지 모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시위를 통해 공유지식이 형성되면 모인 사람들의 뇌 속에서 집단적 연대가 생겨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면 그것만으로 폭력이 된다. 하지만 뇌의 전기 신호 조차도 똑같은 강도로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었고, 꿈을 상실했고, 가족이 다쳤고, 아이가 죽었다. 국정이 농단되었다는 기막힌 사태에 대한 분노 수준으로는 결단코 치환될 수 없는 일들. 우리는 이런 일에도 비폭력을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억울함에 빗대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억울함을 겪고 있을 이들에 대한 상상력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햄릿에게 참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삼촌의 만행이 드러난 이상 햄릿만이 대문자 질문 -'To be or not to be?'-에 답할 수 있다. 아버지 유령의 명령을 상속할지, 삼촌에게 복수를 할지, 아니면 죽은 듯 없는 사람처럼 살아갈지..햄릿 외에 그 결정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폭력인가 평화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억울하게 죽고, 일자리를 뺏기고, 삶을 빼앗겨버린 이들에게 응답할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내 안의 '최순실' by 잡문가

내 안의 '최순실'

순실한 마음으로 받은 은택

 고전적인 정의 관념은 공허하긴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를 사유할 때 늘 전제가 된다.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정의(dike)가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특권이란 각자가 얻어야 할 몫 이상의 몫을 자신의 지위와 권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용해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위, 권한,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 '의식적인 경우'에만 특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부지불식 간에, 아무런 의식 없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라며 '자기 몫 이상의 몫을 자기의 몫'으로 생각하는 모든 행위와 태도가 '특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몫 이상의 몫이 공공의 것일 경우에 '특권'은 공공에 대한 위협으로, 공화국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동향 사람이라고 박근혜를 뽑았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후배를 승진시키는 것, 친분이 있는 관계라면 비판/비평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나 병원에서 내 아이를 받아준 의사라고 좋은 자리에 임명하고, 아버지 어머니 잃고 힘들 때 함께 있어준 사람이라 국정까지 관할하게 하는 것은 양적인 차이라면 몰라도 질적인 차이는 조금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특권을 욕망하는 태도다. 과연 나라면, 만약 내가 정치인이라면, 내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자동차 할부 이자를 0.3%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 것인가? 나는 나와 친분이 있는 작가, 선생님들을 향해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가? 내게 그럴 용기가 없었다는 것은 나 역시 '부지불식' 간에 박근혜와 아는 사이였고, 차은택 혹은 정유라와 아는 사이였다면 내 몫보다 더 많은 몫을 주겠다는 제안을 내 몫으로 생각하고 수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박근혜와 아는 사이라니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학벌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친분주의처럼 무슨 '주의'라는 말을 붙이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는 사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은 하나의 마음의 습속 같은 것이라서 우리는 모두 조금은 '최순실적'이고 '박근혜적'이다. 특히 대구 경북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불쌍한 공주에 대한 동정'으로 포장된 사이비 윤리 속에 '우리가 남이가' 식의 특권적 이해관계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내가 우리 모두가 최순실이고 특권을 욕망하는 자들이니까 최순실, 박근혜, 차은택에게 면죄부를 줘야 한다는 값싼 대속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유야무야 특권을 향유하고, 특권을 향유하길 바라는 사실상 '공화국의 적대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왕처럼 지위와 권한, 관계를 이용해 내 몫을 넘어서는 몫까지 자신의 몫으로 취하려는 태도와 의식이 공공의 것을 사유화시키고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침식시킨다.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수용소의 포로들 중 작은 특권을 누리던 자들을 '회색지대'에 있던 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죽 0.5리터를 더 얻기 위해 같은 포로들을 배신하고, 조금 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나치에 협력했다. 그것은 포로들 사이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고, 적대의 선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수용소에서까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 자명했던 수용소에서조차 특권을 쫓는 자가 있었다는 것은 작은 특권에 도취되는 것이 인간성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작은 특권에 대해서조차도 두려워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단두대는 공화국을 세우는 효과적인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로틴 떨어지는 소리가 '부지불식' 간에 내 몫을 넘어서는 몫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상기시켰을 것 아닌가.






 철학자 김영민 선생이 <동무론>에서 서늘한 관계를 우정으로 형상화했던 것이 떠오른다. 차갑지도,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기분 좋은 서늘한 관계를 만드는 데 미숙한 우리의 태도가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공동체, 공화국을 사유하는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가 없다면, 아니 의식의 변화를 불러올 대전환이 없다면 제2의 차은택, 제2의 최순실, 제2의 박근혜, 제2의 그 성형외과, 제2의 산부인과는 얼마든지 있다. '순실한 마음으로 권력자와 사귀어 은택을 입은 것'이라 우겼다고 하더라도, 그 순실한 마음, 순실하게 베풀어준 은택 속에서 조용히 사회는 침식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적 일이 하나 떠오른다. 학생회장으로 일할 때다. 성탄절을 기념해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모금을 해달라는 학생과장 선생의 요청에 따라 캠페인을 했고, IMF 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저마다 십시일반 500원, 1000원을 꺼내 놓았다. 그렇게 전교생을 통해 거둔 돈이 50만원 정도가 되었고 예년보다 많은 금액에 학생회 간부들은 성공적이라 환호했다. 그 돈을 학생과장과 2학년이던 후배 부학생회장을 데리고 교장선생님께 전달하러 갔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아버지셨고, 아버지 사업 부도로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돈을 들고 들어가자 교장은 내게 "네가 가져라"고 했다. 당황했지만 그 때 나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돈을 들고 나왔다. 절대 나는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처럼 내가 그 돈을 먹으려고 한 사업이 아니었다. 순실한 마음으로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조금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학생회장이고, 교장과 내가 아는 사람이기에 이 돈을 내가 받게 된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다. 나는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 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심지어 내가 받을 권리까지 있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내가 그 돈을 받았다는 것을 그 자리에 있었던 몇 사람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불우이웃돕기로 학생회가 모금한 돈은 학생회장이 가졌다는 것, 어쩌면 그 일이 내가 특권에 길들여지게 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 오래 지나 용서받을 수 있다는 교묘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나 역시 내가 그동안 누리고 있었던 많은 것이 권한을 가진 자의 은택을 순실한 마음으로 받은 것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있고 나서야 뒤늦게 솔직하게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특권에 길들여지게 된 개인적 역사를 마음 속에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역, 학교, 친분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뤄지지 일들이 이뤄지지 않고, 그런 관계를 넘어서 혼자 뭔가를 이룩해내겠다는 것은 무모한 것으로만 취급되기 때문이다. 유행이던 해외 학부 유학이 인기가 없어진 이유가 해외대학의 수준이 낮아져서인가? 대학 수준보다 더 중요한 학벌 때문이지 않은가?


 부디 바라건대 이 사태가 순실한 마음으로 은택을 받는 행위, 그런 은택을 바라는 모든 태도가 공동체에 대한 부인할 수 없이 중대한 범죄이며, 더 나아가 김영란법의 경제적 손실 운운하기 전에, 특권을 욕망하고, 향유하고, 확장시키는 것에 무디고 무딘 마음을 예민하게 만드는 마음의 혁신으로 이어져 김영란 법의 내실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면 한다. 박근혜 하나 하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특권을 가진 자들의 착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줄 기회가 되어야 한다. 라거의 회색지대에 있었던 자들의 종말은 결국 '죽음'이었다. 단두대는 한번으로 충분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명예로운 혁명이 되길, 아둔한 자가 많지 않길 빌 뿐이다.


- 이 글은 본색 소사이어티 영화제 '씨네 노마드 2016' 뒷풀이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으로 이정기씨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수태고지와 방사능의 공통점은? by 잡문가

철학자의 서재 (3) 수태고지와 방사능의 공통점은?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원근법을 뜻하던 ‘코멘수라티오’(commensuratio)라는 말은 ‘측정할 수 있는’,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화에서 원근법이란 거리감을 바탕으로 대상을 조화로운 비례에 따라 표현하는 기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기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5세기에 왜 ‘코멘수라티오’라는 말이 원근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원근법은 인간이 세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등장했다. 15세기, 유럽인들은 더 이상 세계를 측정불가능할 정도로 큰 무한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측정가능한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도제작을 하면서 공간을 재고, 시계를 가지고 시간을 측정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 설계자이자 원근법 발명자인 브루넬레스키가 뛰어난 시계공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과 시계로 공간과 시간을 측정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은 서양미술사를 다룬 여러 책 중에서 내가 특히나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천재 미술사학자였던 다니엘 아라스가 프랑스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했던 강의를 녹취한 내용인데, 그림을 단 한 장도 직접 보여줄 수 없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강연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 놀라운 일도 있다. 그림 한 점 보여주지 못하는 라디오 미술 방송이 프랑스에서는 큰 인기까지 얻은 것이다.




이 책은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두 시점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는데 그 중 하나가 18세기 인상주의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원근법의 등장이다.  다니엘 아라스는 우리가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5세기에 수태고지를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원근법을 사용했던 초기 작품들은 거의 다 수태고지, 즉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성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두스가 말한 것처럼 수태고지는“신이 인간으로, 무한이 유한으로, 비척도가 척도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남자를 알지 전혀 알지 못하는 동정녀가 신의 아들을 잉태하는 신비를 표현하는데는 원근법이 적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할 수 있는 유한한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여러 점의 수태고지에서도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다. 코르토나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433년 경에 그려진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 보면, 천사 뒷 편으로 보이는 방의 커튼과 침대가 지나치게 가깝게 그려져 잘못 그려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1450년 경에 그려진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수태고지의 경우에도 뭔가 모르게 어색하다. 천사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리아가 아주 크게 그려져 있는데다 마리아 뒷 편으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어, 마리아가 이 문을 통과해 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을 사용하는데 기술적으로 미숙했던 것일까? 다니엘 아라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하는 것인데 동정녀의 몸의 신비는 이 모든 측정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프라 안젤라코가 ‘의도적으로’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신비는 원근법으로도, 시계로도 측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프라 안젤리코가 수태고지에서 원근법의 규칙을 따르는 동시에,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한 이유였다.


원근법에 대해 다니엘 아라스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흡사 셜록 홈즈가 현장의 몇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범죄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이 연상된다. 프라 안젤리코는 다니엘 아라스의 추리대로 수태고지를 표현하는데 원근법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는 정말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위반했던 것일까? 알고 지내는 한 저명한 미술사학자에게 견해를 물어보니 그는 프라 안젤리코가 단지 원근법을 표현하는데 미숙했던 것으로 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어느 쪽 의견이 맞는지 천국에 가서 프라 안젤리코에게 물어보기 전까지는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내 생각에는 다니엘 아라스의 접근 방식이 작품의 의미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에서 다니엘 아라스가 보여주는 집요할 정도의 추리 과정을 힘겹게 쫓아가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작품의 구석 구석을 살펴보며 표현방식을 살펴본다. 그리고 제목이나 작품 옆의 간략한 설명을 참조하여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확인하고, 내용과 표현 방식이 어떤 논리로 결합되어 있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한다. 언제나 좋은 작품은 작품의 주제를 표현 방식이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 방식이 작품의 주제가 지니는 의미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그의 표현 방식 때문에 단지 해바라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태양과 같은 강렬한 열정까지 그린 것으로 평가 받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사진작가 정주하와 여럿이 함께 쓴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을 읽었다. 정주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으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고 후쿠시마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의 사진에 재현된 후쿠시마는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장소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들도, 산도, 강과 바다도 제목을 보지 않고 사진만 봐서는 방사능에 오염되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정주하의 사진을 보면서 다니엘 아라스의 이 책이 떠올랐다. 





 이제 원근법으로 측정불가능하고 표현불가능한 것은 ‘수태고지’의 신비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신비 대신 또 다른 측정불가능한 것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인간의 삶이 80년 정도 지속된다 할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측정가능한 것일까?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수백년, 수만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넘어서 있다. 방사능의 영향은 후쿠시마라는 지역적 범위를 완전히 초과해 어디까지 피해를 주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측정불가능하고 설명불가능한 것을 ‘신비’라고 한다면 우리는 ‘수태고지의 신비’를 ‘방사능의 신비’로 대체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도 역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정주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넘어서는 방사능의 파괴력을 보여주고자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 장면을 찍는 대신 방사능 유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후쿠시마의 모습만 찾아서 촬영했던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거나 구태의연한 예술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거장인 까닭은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신비를 보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척도 자체가 없는 방사능의 신비를 보이게 만든 정주하의 작품도 분명 예술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와 같은 신비가 도처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 아닐까? 미세먼지가 불러오는 피해는 측정 가능한 것일까? 미세먼지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매일 같이 나와도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를 열고, 아이들은 미세먼지를 힘껏 들이마시며 축구를 하고, 공사장 인부는 마스크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미세먼지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 피해는 언제 나타나게 될까? 월성과 고리 원전이 가까운 경주에 지진이 일어 났다고 하는데 방사능의 신비가 우리와 상관 없는 이웃 나라의 이야기이기만 한 것일까? 수태고지도, 방사능도, 미세먼지도 원근법적 질서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원근법적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표현불가능한 것은 이제 “구원의 신비”가 아니라 “파멸의 신비”다. 영혼의 구원 대신 안락만을 구원으로 믿었던 우리에게 방사능은 생명 대신 죽음을 고지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을 수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뤄어지도록 하소서”라고 답했다. 방사능이 우리에게 ‘죽음’을 잉태할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원근법을 넘어서는 신비’, 즉 모든 척도를 넘어서는 위험 앞에서 이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해기사 협회 잡지, 해바라기 10월호에 쓴 글


아빠의 자책육아 - 살림살이의 지루함 by bonsec

살림살이의 지루함 (2016.10.21 한국일보에 쓴 글)

아이 엄마의 출산 휴가가 끝이 났다. 이제 낮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책을 읽어 주거나, 잠시 산책을 하고,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자는 동안은 젖병을 씻어 소독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기 전 널었던 빨래를 가져와 개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쌓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밥을 짓고 요리를 한다.

글로 쓰면 이렇게 매끄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매끄럽지 않다.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조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머그컵이 집안 곳곳에 있다. 다시 설거지한다. 뒤늦게 아이 유치원 가방에서 간식통을 발견하면 다시 설거지한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해야 겨우 설거지가 끝난다. 세탁실도 하루 평균 10번은 넘게 드나들어야 한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녀온 후 벗어둔 옷을 세탁실에 가져다 둔다. 욕실 수건에 냄새가 나서 세탁실로 다시 갔다. 백일이 지난 아이가 입은 옷은 따로 세탁하기 위해 세탁실로 다시 간다.

살림살이가 이토록 지루한 반복이었을까. 나는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컵 없어?” “빨아야 할 것 없어?”라고 물었던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이 엄마처럼 설거지하기 전에 먼저 각 방과 거실을 살피고 빈 그릇과 컵을 먼저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는다면 이렇게 몇 차례나 설거지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빨랫감도 미리 챙겨 둔다면 몇 번만 세탁실에 들어가도 충분할 것이다. 말하자면 내게 그런 요령이 없었던 것인데, 요령이 없기 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쓴 컵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만으로도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방마다 들어가 빈 컵을 챙겨올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집안 살림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나 자신만 생각할 뿐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했던 것이다. 살림하기 전에는 살림은 그냥 되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나 많은 디테일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처럼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 엄마와 크게 다퉜다. 내가 외출한 사이 집에 들어온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 대뜸 화부터 냈다. 내가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채 나갔고, 끓여둔 국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 모두 상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고의로 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혼이 나야 하는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같이 성을 냈다. ‘신경 좀 써 달라’는 아이 엄마의 말에 화를 내다 얼마 전에 한 잡지와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기자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 내게 “그러면 집안 살림에는 얼마나 동참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육아에 동참하는 것으로 살림에 동참하고 있고, 설거지나 청소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집안 살림은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돈을 벌어다 주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살림은 노동인 반면에 살림을 빼고 아이와 놀기만 하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취미 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은 최근에나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조지 소로우는 ‘월든’에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은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 잘하는 살림만이 아니라 죽은 것을 되살아나게 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기르고 만들고 나누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지켜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어주는 것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은 오직 지루한 살림살이뿐이라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다. 오늘은 설거지하기 전에 집안부터 둘러봐야지. 내 빨래를 넣기 전에 아이 빨랫감은 없는지도 봐야겠다. 시장에 가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아이 엄마에게 물어봐야지. “마트 갈 건데 필요한 것은 없어?”.


정보를 버리기, 책을 읽어버리기 by bonsec

철학자의 서재 (2) 정보를 버리기,  책을 읽어버리기

-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한 주에 한 번 지역 라디오 방송에 나가 책을 소개하고 있다. 책 한 권을 정해 진행자와 15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아마도 이 방송의 주청취자는 운전 중인 이들일텐데, 이들이 복잡한 교통상황을 읽어가며 도로를 누비면서 동시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책 소개에도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가는 프로그램의 작가는 항상 내게 ‘좀 더 쉬운 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 책 소개도 쉬워야 하고, 소개하는 책도 쉬워야 한다. 물론 나 역시 쉽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 방송에 나가 소개했던 책은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 고전>이라는 책이었다. 작가와 PD는 책이 어려운 편이기는 했지만 소개는 쉽게 해서 다행이라고 피드백을 해줬지만, 다음 방송부터 소개해 줬으면 하고 예로 든 책은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 받을 용기>와 같은 책이었다.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베스트셀러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에세이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라디오의 청취자들이 쉬운 책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누군가 소개까지 하며 알려주지 않더라도 이미 다 아는 유명한 책이나 예비적인 준비가 없어도 읽을 수 있는 쉬운 책들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방송에서 소개하고 싶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취자들이 항상 쉬운 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 쪽이다. 조심성이 없는 비교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기 있는 최신가요보다 바흐의 음악을 어렵게 느낀다. 하지만 바흐의 음악을 듣는 것은 최신가요를 듣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지 않는가. 쉬운 책도 당연히 좋은 책일 수 있지만, 쉬운 만큼 사실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신문에 쓰는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칼럼이 신문에 실리고 나면 '지나치게 철학적이다'라는 평을 한번은 듣게 된다. 여기서 ‘철학적’이라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 담당 기자가 ‘어렵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일 뿐이다. 얼마 전, 한 신문사에 원고를 보내자 이번에도 기자는 '너무 철학적'이라고 했다. 사실 내가 보낸 원고의 글감이었던 황현산 선생의 <우물에서 하늘보기>는 내가 쓴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결코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 시화(詩話)들은 일간지에 선생이 4000자 분량으로 두 주에 한 번씩 1년여간 연재했던 글이다. 


그러니까 소위 ‘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 이미 탄탄한 독자층이 확보되어 있는 논객이나 작가, 직업적으로 어려운 말을 해도 좋다고 암묵적인 허락을 받은 경우라 할 수 있는 교수나 변호사, 평론가들이라면 굳이 글을 쉽게 쓰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쓰는 글에 앞서 있는 그들 존재가 이미 독자들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 내가 글을 쉽게 써야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나는 그런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현학적으로 쓰지 않는다. 단지 30대 남성, 지방 거주자이자, 독립연구자라는 내 위치에서 보이는 세계를 드러내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며 겪게 되는 어려움을 글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이다. 나는 가능한 한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문장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의 부족 탓이 크겠지만, 어렵다는 반응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내 글의 주제가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 변명해왔다. 왜냐하면 읽는 사람이 가진 생각이나 관점과 일치하는 글이라면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읽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훈처럼 쉬운 표현으로 빼어난 문장을 직조해 사람들의 통념을 깨트리는 글쓰기는 나 같은 범부가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내가 독백의 방에 갇힌 이유는 어려운 글을 쓸 ‘자격’도 없는 주제에 어려운 글을 썼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 길고 어려운 글을 마음과 시간을 내어 읽으려는 독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쓴 사사키 아타루에 따르면,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을 단지 정보를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 어려운 글은 금방 손에서 놓아 버리고 만다. 그러나 사사키에 따르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기 위해서 온갖 ‘정보’를 주는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다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관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영화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듣는 것을 그만두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만, 음악활동도 그만두었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잡지 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스포츠 관람도 그만두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담배도 끊었습니다. ...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하는 말밖에 듣지 않고, 친구가 권하는 것밖에 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정보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정보를 모으는 이유는 정보를 따라 살기 위해서다. 어느 사이트에 가면 최신 스마트폰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어느 지역에 부동산 투자를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 어느 회사의 주식을 사면 재미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정보를 알게 되면 우리는 정보의 명령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 결혼을 위해 중요한 것은 어느 새 사랑이 아니라 결혼정보가 되었고, 교육에서도 중요한 것은 배움이 아니라 입시정보가 되었다.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려면, 어떤 정보도 어려워서는 안되고, 어떤 명령도 복잡해서는 안된다. 정보로 쓰여진 글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광고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사키 아타루에 따르면 책 읽기란 정보를 끌어모으는 것을 그만두고, ‘책을 읽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냥 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와 같은 느낌으로 읽는 것이야말로 책 읽기라는 것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불러온 혁명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루터가 철저히 성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마호메트가 이슬람 세계의 문을 연 것도 책 읽기와 무관하지 않다. 마호메트가 천사로부터 받은 첫 계시는 바로 “읽어라”였다. 문맹이었던 마호메트에게 책은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책을 읽어버리면 자신이 미치던지, 세상이 미치던지 둘 중 하나가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철저히 책을 읽고 또 읽어서 책이 그려 보이는 세계상이 세계에 대한 ‘잣대’로 서면 그때 바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삶도 단순하지 않고, 폭력적인 단순화를 하지 않는 한 진실한 책이 쉬운 글로 쓰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글이 어렵고 복잡하게 된 것은 글재주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깊이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세계는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의 윤리는 쉬운 주제를 쉬운 글로 쓰는 것에 있지 않다. 어렵고 복잡한 글을 견뎌줄 수 있는 독자의 존재가 글쓰기를 윤리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려운 책이라 포기하지 말고, 책을 읽어버리자. 반복해서, 읽고 또 읽자. 루터는 성서를 읽었고, 번역했고, 많은 책을 썼고, 수없이 반복했다. 결국 혁명은 책을 읽어버리면서 시작되었다.  


김덕희, 낫이 짖을 때,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by bonsec

오늘은 김덕희의 '낫이 짖을 때'를 읽었다. 
김덕희 작가는 이 소설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근래 읽은 작품 장 가장 좋았다.
고백하자면, 이 작품을 손에 집어들었을 때 작품 제목을 '낫이 짖을 때'가 아니라 '낮이 짖을 때'로 잘못 읽고서, 대낮의 대지의 부르짖음을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최근에 친구의 소개로 Julien Mauve (http://www.julienmauve.com)라는 작가의 밤과 빛에 대한 사진을 보고 난 직후였던 탓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낮'이 아니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할 때의 그 낫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작품의 문제 의식은 다양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내게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에 대한 것이었다. 기역자를 낫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 대한, 그래서 글을 읽는 것과 글쓰기에 대한, 글자를 의미로부터 끝없이 분리시키는 것에 대한, 무엇보다 오독에 대한 이야기. 마치 낫을 낮으로 읽는 것처럼 말이다.


1. 소설에서 수복의 주인은 자신의 노비인 수복의 이름을 물은 후 한자로 명이 길다는 뜻으로 한번, 명이 짧다는 뜻으로 또 한번, 두번을 써서 의미를 두 개로 갈라 놓는다. 이건 데리다가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분석할 때 ‘he war’가 지닌 의미론적 풍요로움을 언급하는 대목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war'는 영어에서는 전쟁을 뜻하지만 독일어에서는 존재했다는 의미로 데리다는 의미의 복수성에 대한 예로 가져온다. 이 작품에서 ‘수복’이라는 '말'은 그저 노비인 수복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주인은 그것을 바닥에 씀으로 목숨이 짧다는 것으로도, 정반대로 목숨이 길다는 뜻으로 만든다. 수복이라고 부르는 말은 이런 의미상의 차이를 소거시키는데, 음성중심주의는 차이를 소거시킨다는 데리다의 견해, 요컨대 파롤은 발화주체의 동일성을 유지하지만 에크리튀르는 그것을 바로 찢어서 이중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든 기호는 원리적으로 항상 동시에 복수의 언어, 복수의 컨텍스트, 복수의 독해레벨에 속한다. 실제로도 수복의 목숨은 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 주인이 원한다면 목숨을 짧게도, 길게도 만들 수 있는 '노비'의 상태에 있다. 그런 점에서 주인은 수복의 이름을 잘못 쓴 것이 이렇게 한번, 저렇게 한번 정말 정확히 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이 작품에서 수복의 직업은 책을 베껴 쓰는 일, 즉 '필경사'다. 바틀비처럼 ‘I would prefer not to’를 밤낮없이 하다간 수복은 목숨이 붙어 있을 수 없을 것이기에, 수복은 바틀비와는 반대로 주어진 일을 철저하고 성실하게 빈틈 없으리만큼 정확히 수행한다. 그런데, 이 필경이라는 일, 책을 모사하고, 따라쓰고, 베껴쓰는 일의 끝은 이상하리만큼 파국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만큼은 바틀비와 공통적이다. 바틀비는 무수한 반복적 작업과 모방으로 모든 것을 거부하기에 이르고, 수복은 무수한 반복적 작업과 모방으로 글을 완전히 의미로부터, 또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리는데까지 이른다. 즉 반복은 이상하게도 원심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어떤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내몬다. 이 작품에서 반복의 끝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이 반복되는 것이다.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말은 수복의 말인지, 주인의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 되풀이(불)가능성에 대한 장면처럼 읽힌다.















3. '낫이 짖을 때' 라는 제목은 수복의 말에서 온 것이다. 흙에 그린 낫으로는 지푸라기 하나 벨 수 없고, 흙에 그린 개가 도둑을 쫓아내기 위해 짖을 수는 없다는 수복의 말은 글의 무력함을 항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낮으로 그린 개, 그러니까 글자는 짖을 수는 없을 지언정 개보다 훨씬 더 강하다. 작품 곳곳에서 글의 힘을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수복의 아비는 글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라 배워서는 안된다고 몇번을 거듭해 말한다. 본래 양반 가문이었던 수복의 집안을 노비가 된 것도 글 때문이고, 붉은 도포를 입은 문하생이 매질을 당한 것도 글 때문이다. 글은 소 한 필, 쌀 열가마니 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수복은 글쓰기가 아닌 글을 그리지만, 만약 수복이 글쓰기가 시작된다면 글쓰기는 많은 것을 바꿔 놓게 될 것이다. 에크리튀르, In-scription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본은 정본을 파괴시키지만, 정본보다 이본들이 더 큰 진실을 담게 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정본은 오직 현전적인 주체, 지금 이곳에 있는 주체와 결부되어 있지만, 베껴써진 이본은 ‘자기컨텍스트와의 단절력’이 자리잡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이를 두고 ‘씌어진 문자는 이야기된 소리와 다르고, 그것을 발화한 주체의 부재, 극단적인 경우 죽은 후에도 계속 남는다’, ‘에크리튀르는 항상 주체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기에 자유롭게 인용되고 해석될 수 있다’고 한 문장도 함께 떠오른다.


4. 작품을 읽으며, 정확히 수복과 수복의 주인을 보며,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내게 그런 걸 묻고 있다. 나는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원심력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한 반복적 회전 운동이 내게 있는 것일까? 아마도 아직은, 어쩌면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낫을 들고 쓴 글쓰기를 상상하게 된다. 낫은 쓰거나 말할 수 없고, 짖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낫으로 그려진 글이야말로 붓으로 쓰여진 글보다 훨씬 더 크게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글이 될 수도 있다. 


 "양반들은 그 낫으로 도둑의 목을 베고 그 개를 앞세워 사냥을 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일 줄 아느냐. 그 낫이 짖기 시작하고 그 개가 논두렁에 뛰어들어 추수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오래전 네 증조부 때처럼 말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단서를 삼아 이 작품에 나온 수복의 주인을 수복의 다른 자아라 생각해본다면 정사에서 누락된 사사를 기록해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주인의 뜻, 수복의 증조부의 의지는 날카로운 낫이 짖을 때의 모습, 혁명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라는 문장은 'I would prefer not to'에 비견할만한 문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는 말의 조건인 힘을 가진 자가 그려내는 글의 세계를 거부하는 말, 그 말이 바로 이 말이지 않을까.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수복은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그린다’.


5. 지금 쓰는 이 글은 이 작품을 제대로 베낀 것일까? 나는 문맹인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데리다로 이 작품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이 작품에 대한 배반이 아닐까? 이 소설을 제대로 그리지 않고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 타는 사람이 쓴 시집, 시인이 쓴 철학책이 가능하다면? by bonsec

배 타는 사람이 쓴 시집, 시인이 쓴 철학책이 가능하다면?
_이광수, 최희철의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됐다. 어떤 내용이라도 좋으니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읽었거나 갖고 있는 책들 중에서 감명 깊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 담당자의 주문이다.
‘철학자’라니?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쓴 책 중에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이 있지만 나 자신을 ‘철학자’로 누군가에게 소개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내 책의 제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제목은 『인문 육아』 내지 『오이디푸스의 일기』였다. 하지만 출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출판사는 마크 롤렌즈라는 미국의 분석철학자가 늑대를 키우며 쓴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크 롤렌즈는 어린 늑대를 분양 받아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했고 그 과정을 솜씨 좋게 철학적으로 해명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책을 쓰면서 『철학자와 늑대』를 의식하고 있었다. 마침 어린 아이를 홀로 맡아 키우며 육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무모하게도 『철학자와 늑대』에서 마크 롤렌즈가 제시한 시간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욕망이나 자유에 대한 입장과 대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원고가 완성되자 『철학자와 늑대』를 소개한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고 결국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 책에 ‘철학자'라는 호칭이 붙은 것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철학자’로 불러주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마크 롤렌즈처럼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은 책을 쓴 적도 없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철학자’라는 호칭을 붙여둔 제목을 제안해주자 한편으로 그간 어줍잖게라도 해왔던 사유를 인정 받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목에 ‘철학자’가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철학자’라 불리울 수 있는 자격은 자신만의 독자적 사유를 해오고 있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철학자’는 철학교수를 의미한다. 만약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면 아직 ‘철학연구자’에 불과한 자가 ‘철학자’를 참칭하는 것이 된다.
‘철학자’가 철학교수와 동의어가 된 것은 사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오래된 일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철학자’와 철학교수가 동의어가 된 것은 칸트 이후에 성립한 것이다. 기껏해야 독일에서 근대 대학이 성립한 이후이기 때문에 300년도 채 되지 않은 등식인 것이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 등을 남긴 근대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이지만 철학교수는 아니었다. 『에티카』와 『신학정치론』과 같은 철학사의 빛나는 책을 남긴 스피노자는 생업은 안경공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역시 철학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연구자로 불렸을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이 이들과 같은 위대한 철학적 성취를 해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철학자가 아니면서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이 연재를 하게 된 것에 대한 변명이라 해두자.




‘서재’라는 말에도 ‘철학자’라는 말만큼이나 거부감이 있다. 서경식은 『내 서재 속 고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서재’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부득이할 경우에도 기껏 ‘공부방’ 정도의 말로 대신한다. “서재가 좁아 책 둘 곳이 없어서 난처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날 경우, 예전의 나는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요즘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는 아차, 싶은 때가 있다. 그것은 ‘서재’라는 말 자체에 수치에 가까운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서경식이 ‘서재’라는 말에 수치심을 느낀 이유는 ‘서재’라는 말을 ‘부르주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솟는 주거비용으로 몸을 누일 방 한 칸조차 구하는 것도 힘겨운 많은 청년들에게 따로 책을 보관하는 방인 ‘서재’를 갖는다는 것은 아마 그저 사치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대학 시절 서재는커녕 좁은 하숙방에는 가진 책을 꽂아둘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책이 많으면 하숙방을 옮길 때 이사비용이 곱절로 들었다. 그 때문에 하숙집에서 누군가 이사 나가는 날은 책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이사비용을 아끼려 누군가 책을 버리고 가면 다른 학생들은 가만히 기다렸다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골라 왔다. 내 좁은 하숙방에도 그렇게 모은 책과 사다 모은 책이 켜켜이 쌓였다. 만약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책들도 아마도 버려졌을 것이다. 그나마 방이 두 칸이라도 있는 신혼집을 지방에 구한 덕분에 그 때 하숙방에 쌓여 있던 책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책들도 지금껏 내 서재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그럴싸한 ‘서재’를 갖췄다고 하기 힘들지만 부끄러운 기분을 누르고 이 연재를 수락한 데에는 나 나름의 읽는 방법을 통해 읽어온 책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자의 서재’라는 이 부담스러운 제목에 대해서는 뭐라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 정작 중요한 책 이야기를 여태 미뤄두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의 가장 가까운 오른 편 책장에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의 책이 꽂혀 있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이를테면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라마톨로지』,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 『차이와 반복』 같은 책들이다. 보통 이 책장에는 가장 자주 보는 저자의 책이나 최근에 가장 관심이 있는 주제를 꽂아두는 편이다. 최근에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케네스 클락의 『그림을 본다는 것』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그 왼편 책장에는 철학사의 고전에 해당하는 책들이 꽂혀 있다.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같은 고대철학서에서부터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과 같은 칸트의 책까지 주로 대학과 대학원 시절 읽었던 책들이 주를 이룬다. 그 맞은 편으로는 내 전공분야인 현상학 관련 책들, 하이데거와 후설이 쓴 독일어 원서들이 꽂혀 있다. 철학 외의 분야 중 내 서재에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은 신학서적, 다음으로는 문학책이다. 근래에는 아즈마 히로키, 사사키 아타루와 같은 젊은 일본 사상가들이 쓴 책들을 많이 읽는다.

최근 내가 가장 즐겨 읽은 책을 한권 꼽자면 이광수와 최희철이 쓴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이다. 이광수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두고 이광수와 최희철이 글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광수가 인도 여행 후 찍은 본인의 사진에 대해 “내가 보는 세계 안에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나온다”고 쓰면, 최희철은 “그걸 ‘푸른 인연’이라 말하고 싶다. 삶이 끝없이 중첩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바람고 파도를 만드는 것, 그 파도가 우리 삶의 귀퉁이를 적시는 것”이라 화답한다. 두 중년의 대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사진 한 장을 두고 길러내는 두 사람의 깊은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책에서 사진으로 묻는 이광수는 본래 ‘사진가’가 아니고, 철학으로 답하는 최희철은 본래 ‘철학자’가 아니다. 이광수는 인도 역사를 전공한 대학 교수이며, 최희철은 이광수의 소개를 빌자면, 부산수산대학 어업과를 졸업하여 “배타는 일과 닭 잡아 파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몇 권의 시집을 쓴 ‘철학하는 시인’이다. 최희철은 최근에도 배를 타고 저 멀리 멕시코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도 ‘푸른 인연’이라는 말도 배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만들어낸 생각해냈을 것이다.

시인이 쓴 철학책, 역사가가 만든 사진집, 배 타고 닭 잡아 파는 사람이 쓴 시집이 가능하다면, 철학교수가 아닌 철학자가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태여 나는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를 운운하며 ‘탈주’나 ‘-되기’와 같은 개념들은 여기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곧 다시 쓰게 될 것이다.

- 한국해기사협회 매거진 <해바라기> 8월호에 실었습니다.




공부의 지배 by 철학본색

공부의 지배 (2016.8.9 매일신문에 쓴 글)


직업의 영향은 매우 강한 것이라서 직업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알프레드 가드너가 쓴 <모자 철학>에는 세상과 사람들을 오직 머리의 크기로만 판단하는 모자 장수가 등장한다. 모자 장수의 직업적 경험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머리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머리가 더 크고, 그래서 더 큰 모자를 쓴다. 모자 장수는 존스가 7인치 반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하고, 스미스가 6과 4분의 3인치를 쓴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한다. 제한된 직업적 경험이 제한된 시각을 낳은 것이다.


나 역시도 제한된 시각 탓에 작은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이 있다. 이제 막 제대한 사촌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모두 저축해서 기회가 되면 유학을 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아들이 얼른 생활 전선에 나서 자립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지금 자립하면 더 멀리 나가기 힘드니 공부에 집중하게 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작은아버지는 내게 다그쳐 물으셨다. “네가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네가 생각하는 공부만 공부로 아느냐?” “생활 전선에서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냐?”


작은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내가 보고 겪은 경험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치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큰 모자를 쓴다고 믿었던 모자 장수처럼 말이다. 존스가 7인치 반 크기의 모자를 쓴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공부를 많이 하면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와 유학을 다녀오고, 학위를 받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서사는 좋은 일자리가 대졸자보다 많았던 1980년대라면 몰라도 박사 실업자와 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공부 외의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직업의 지배를 받고 있던 모자 장수만큼이나 철저히 공부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대학을 만들어 뷰티학과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온 사회가 ‘공부의 지배’ 속에 있지 않으면 가능한 발상이 아니다. 뷰티학과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생활 전선과 직업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가능할 수 있는 ‘배움’을 ‘공부 산업’의 선봉인 대학이 학과라는 ‘공부 제도’ 속에서 획일화하는 것이 바로 공부의 지배가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 바깥에 학교가 있고, 배움 바깥에 배움이 있고, 삶 바깥에 삶이 있다. 공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공부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공부 바깥에 있는 공부로 나가는 것이다.


아빠의 자책육아 - 가해자의 엄마, 가해자의 아들 by 철학본색

육아분투기, 가해자의 엄마, 가해자의 아들 (2016.8.12 한국일보에 쓴 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를 쓴 수 클리볼드는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졸업반 학생이던 딜런은 다른 친구 하나와 함께 별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고, 이후 이 사건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을 포함해 미국 내의 총기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수는 사건이 일어난 후 딜런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를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딜런은 언제나 수에게 “우리 햇살, 착한 아이, 늘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끼게 해주던 아이”였다. 실제로 그랬다. 딜런은 졸업 후 애리조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평소 행실도 발라 그런 낌새가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수 클리볼드도 보통의 엄마들보다 더 잘 준비된 엄마였다. 수는 타고나기를 걱정이 많은 편이라 늘 아이들의 건강을 챙겼고, 좋은 버릇을 가르치려 유난을 떠는 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석사 학위를 취득할 때는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공부했고, 취직한 뒤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딜런은 왜 그런 비참한 사건을 일으킨 것일까. 아들을 잃고 가해자의 엄마가 된 후 17년 동안 수는 어떻게 이 비극의 어둠 속에서 살아왔을까.

이 책을 읽으며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또 다른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는 반대로, 가해자 아빠를 둔 아들이 쓴 책이다. 저자인 잭 이브라힘은 1990년 11월 뉴욕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어난 메이르 카하네 암살 사건의 범인이자 세계무역센터 폭발 테러를 공모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엘사이드 노사이르의 아들이다. 잭은 사건이 있고 난 후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 수차례 전학을 거듭했고, 학교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땅딸막하고,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얻어맞고 다녔다. 아버지가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내내 차별을 당해야 했던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이브라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후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비극의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는 편견 속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증오를 세뇌받으며 살아온 삶과 단절하고 이제는 공감이 증오보다는 힘이 세다고, 공감을 퍼뜨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런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이브라힘 가족이 겪었던 일에 비해 클리볼드 가족의 사정이 나은 점이 있다면 사려 깊은 이웃들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잭은 아버지가 체포된 이후로 살고 있던 집을 떠나야 했지만, 클리볼드의 가족은 지금도 딜런이 살던 그 집에 살고 있다. 많은 위협과 협박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심지어 몇몇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말, 특히 범죄자 살인자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하느님이 축복하시길”.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유치원에 자주 오세요, 아이 엄마는 무슨 일 하세요, 집은 어디세요?”. 나는 왜 이런 질문들이 두려웠던 것일까. 부족한 내 사교성 탓일 수도 있지만, 공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잭은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고, 수는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내 아들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고 썼다. 공감은 다른 이들은 물론 심지어는 내 아이까지도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엄마들을 “맘충”으로 부르고, 장애인 교육 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사회였다면 클리볼드 가족은 동네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내 아버지도, 내 아이도 아니다.


누구를 위한 오독인가 by 철학본색

누구를 위한 오독인가


지금 보니 박유하 교수 본인이 자기 책을 오독하고 있는 것 같다. 업자만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제국의 위안부>에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박유하 교수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업자도 책임이 있다고 썼다고 한다. 자신의 책을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센다 가코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주장이라고 써놓고선 이제와 자신의 해석이었다고 한다. 센다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오독이라고 일갈해놓고선 그건 자신의 해석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오독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역시나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길윤형 기자가 쓴 글처럼 나도 누구보다 한일화해를 바라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위안부에게는 소녀상민으로 표현되지 않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모두 제국의 위안부의 논점에 대한 부분이고 공감하는 편이다. 심지어 법적 책임 묻기 곤란하다는 주장도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이해한다. 아마 박교수 책을 지지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그런 취지에 공감하는 쪽일 것이다. 이들은 박교수 비판자들이 1) 책도 읽지 않고 선입견에 근거하고 있거나 2) 읽었더라도 '동지적 관계'와 같은 오해가 많을 수 있는 말들을 오해 내지 오독했거나 3) 박교수가 재판 중인데도 비판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박교수의 책을 옹호한다. 문제는 이들이 2)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을 1)이라고 비판하고, 설령 2)에 해당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도 자기와 다르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2)라고 비판하는 것에 있다. 나는 책도 읽었고, 고진을 번역한 박유하 교수에게 오히려 호감이 있었던 편이었고, 동지적 관계도 맥락상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박교수의 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런 종류의 비판 대신 박교수의 책과 박교수의 독해를 문제삼는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응답해야 한다. 정영환 선생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같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불확실한 논거와 다양한 오류가 해명되지 않으면, 특히나 '동족으로서의 군인'과 같은 표현에 대해서와 같은 부분들, 어쩌면 의도적인 곡해로 읽히는, 만약 무의식적인 오독이라면 더 무서운 부분들에 대한 해명이 없다면 주장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정영환 선생이 제기하는 질문,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업자만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썼다가 이제와서 '업자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을 바ㅂ꾸면, 제국의 위안부가 누구를 위한 화해를 말하는 책인지 분명하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아래의 포스팅 참고) 잘못된 근거로 화해를 하면 피해자는 2차 가해를 입게 된다. 할머니들은 바로 그 점을 문제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박유하교수의 기자간담회(7월11일)에서의 반박에 대하여 (정영환 교수의 응답)

https://www.facebook.com/notes/%EC%A0%95%EC%98%81%ED%99%98/%EB%B0%95%EC%9C%A0%ED%95%98%EA%B5%90%EC%88%98%EC%9D%98-%EA%B8%B0%EC%9E%90%EA%B0%84%EB%8B%B4%ED%9A%8C7%EC%9B%9411%EC%9D%BC%EC%97%90%EC%84%9C%EC%9D%98-%EB%B0%98%EB%B0%95%EC%97%90-%EB%8C%80%ED%95%98%EC%97%AC/173193396374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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