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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형이상학 Metaphysik in der Nacht 철학본색 시즌 3의 소중한 분들에게 권 영 민 부엉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 哲學本色의 노래 겨울이 시작되기 전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불러본다면 어떨까? 하지만 이 노래를 철학본색의 노래로 불러도 좋다. 이 노래가 철학본색과 관련된 의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선물은 바로 이 동요이다. 우리가 여기 이 시간에 함께 둘러 앉아 있는 것. 이미 그 자체로 이 노래는 오늘 철학본색의 이 자리를, 또 철학본색의 오늘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니체가 이제 노래는 집어치우고 적극적 망각의 춤을 추자고 독려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너무 더딘 것이 아닌가? 어쩌면 철학본색은 적극적 망각의 춤을 배우기 전에, 아니 어쩌면 춤보다 더 절실한 노래, 바로 이 단순한 노래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이 글을 ‘하나의 노래’로, ‘지금 이 밤’과 관련해서, ‘철학본색의 운명’과 관련해서, ‘각자의 삶이 지닌 의미’와 관련해서,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또 철학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기획하는 연습’으로 들어주시길 부탁한다. 두 계열 최소한 이 노래에는 여섯 가지의 이항대립이 나타난다. 낮과 밤/ 안과 밖/ 짐승과 인간/ 따뜻함과 차가움/ 사회와 고독/ 이야기와 울음(-혹은 노래). 대단히 간단한 구조주의적 틀을 활용한 분석일지는 모르지만, 이 노래가 가진 어떤 원초적이며 우주론적인 힘을 보여주는 대립이 드러나는 것 같지 않은가. 두가지 질문. 1) 낮-안-인간-사회-따뜻함-이야기로 연결되는 계열과 밤-밖-짐승-고독-차가움-노래로 이어지는 계열의 자명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어째서 각 계열의 단어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엮일 수 있단 말인가? 2) 의미론적인 차원에서 이 두 계열의 대립이 밤과 낮의 위상학적 충돌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제 우리(-철학본색)는 어느 계열에 속하게 되길 바라는 것인가? 낮의 계열 낮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인가, 이야기가 대낮의 밝음을 창조하는 것인가? 아니, 다시 묻자. 인간이 이야기하는가, 이야기가 인간을 이야기하는가? 마지막으로 묻자. 인간이 따뜻한 것인가, 따뜻하기 때문에 인간인 것인가? 낮의 계열이 가진 연쇄적 연결고리의 자명성을 되묻지 않은 채 그 자체로 ‘승인’한다고 하더라도, 이 계열 내부의 질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선물을 주고 받는 바로 이 순간, 선물이 오고 가는 우리의 지금이 어떤 온기를 만들어내고 공간을 창조해내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가 지금 비록 ‘밤’에 있더라도, ‘낮의 사회’의 ‘시민’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소 성급한 결론이지만 더 분명하게 말하자. 언어(-이야기, 네러티브)는 낮의 밝음을 그 자신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낮의 밝음과 온기, 공속감의 조건은 할머니의 이야기 그 자체이다. 낮-안-인간-사회가 이야기를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제 낮의 계열을 정식화 하자. 낮의 계열, 이야기가 창조해낸 공간은 곧 ‘의미의 세계’이다. 왜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둘러 앉았는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열어 보여주는 ‘의미의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다. <그림1 참조> 이제 아이들은 ‘의미 공화국’의 시민이 되었다. 외로움에서 ‘탈출’을 감행한 ‘우리들’은 ‘의미의 가족’ 어쩌면, 의미의 ‘노예’가 되었다. 만일 우리가 ‘의미의 노예’라면 우리는 낮의 지배력을 결코 의심할 수 없을 것이며, 이 공화국의 철학자들이 가르치는 이데아의 세계, 명석판명clear and distinct이라는 이념을 붙들고 수학자와 과학자가 성직자가 된 교회에서 검증가능한verifiability 혹은 반증가능한falsibility 성구(-명제, proposition)만이 유의미한 문장이라고 믿도록 강요될 것이다. 철학본색은 이제 드러난 ‘낮의 정체’, 곧 ‘의미공화국’의 아방가르드(-선봉대)인가? 자신이 누구의 이야기 속에 거주dwell하는지 점검할 것. 자신이 고향 삼은 이야기를 의심할 것. 그리고 자신이 이야기할 것. 철학본색은 의미공화국의 탈주선이자 경계선이어야 한다. 의미공화국으로의 해방이 또 다른 의미공화국의 재창조 혹은 의미의 무정부 상태로의 귀환으로 정향되는 것은 어느 길이든 잘못든 것이다. 의미로부터의 탈주, 역설적이지만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밤의 계열 의미 밖의 세계는 밤-밖-차가움-고독-짐승-노래가 계열을 이루고 있다. 다시 동요로 돌아가서 이 노래가 ‘부엉새가 우는 밤’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주지하자. 노래(-울음)가 전경화된 채로, 이후에 이야기가 있다. 차가운 밤이 있기에 따뜻한 방이 있다. 위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낮/따뜻함/온기/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면, 이제 ‘이야기’는 ‘밤’을 조건으로 해서만, 혹은 ‘노래’를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해진다. 여기서 밤이 노래의 조건인지, 노래가 밤의 조건인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밤의 계열은 ‘이야기가 무화되는 세계’, ‘논리가 그 힘을 잃어버리는 세계’, ‘의미가 무의미가 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계열 내부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낮의 계열이 지젝 식으로 말해 ‘신체 없는 기관’이라면, 밤의 계열은 아르또-들뢰즈 식으로 말해 ‘기관 없는 신체’body without organ이다. 신체로부터 분절된 기관이 질서정연해야 한다면, 기관으로 분화되기 전 신체는 하나의 ‘알’이기 때문이다. 다시 들뢰즈의 말을 빌리자면 밤의 세계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wonderland이다. 이 곳에는 텅빈 말이 오고 가고, ‘목을 쳐라’가 반복된다. 스나크Snark가 살고 (배와 가슴이 하나로 된)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가 나무에 올라 앉았으며, 트럼프 병사들이 칠면조를 들고 뛰어 다닌다. <그림 2 참조> “의미 공화국”에서 이주해온 앨리스는 “Wonderland"에서 -집이 터질만큼-너무 크거나, -눈물이 바다가 될만큼-너무 작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곳은 ‘의미 공화국’의 지반을 뚫고 깊숙이 들어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며, 쥐와 고양이, 토끼가 말을 하는 곳이고,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모든 것을 말하는 세계이다. 앨리스는 눈물에 빠져 극도로 춥고, 도와주는 이가 하나도 없어 대단히 외롭고, 이 세계는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세계로 현상되지만 한편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공간이며, 앨리스가 ‘노래’를 하면 다시 부르기를 요청한 공간이었음을 기억하자. 밤이 만드는 이 리듬이, 혹은 리듬이 있는 이 밤이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가 ‘의미 공화국’의 조건이라면 밤의 계열은 낮의 계열의 ‘형이상학’이 될 것이며, 선험적인 가능 조건이 된다. 이것을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밤의 계열은 존재론적인ontologische 것이며 낮의 계열은 단지 존재적인ontische 것에 불과하다. 낮의 계열의 이야기가 밤의 계열의 리듬을 모태로 한다면, 의미는 존재론적 운동과 리듬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의미공화국의 시원은 밤의 리토르넬로Ritornello, 태극도설의 표현대로 하자면 음과 양의 운동, 신학적으로는 '인간의 말‘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가. 눈으로 보이기 전의 리듬 차원, 보이지 않고 느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밤이야말로 형이상학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성서가 기록하듯-태초에 ‘밤’이 깊고 ‘혼돈’이 드리워져있었다면 밤의 계열이 현상한 형이상학은 질서정연한 ‘코스모스’가 아닌 ‘카오스’일 것이다. 자, 다시 묻자. 철학본색은 이러한 카오스적인 무질서 상태인 ‘Wonderland'의 아방가르드가 되고자 하는가? 자신의 무질서를 즐기지 말 것. 자신의 무질서를 그 자체로 긍정하지 말 것. 그리고 자신의 무의미를 유일한 의미로 승인하지 말 것. 밤의 계열의 진면목을 제대로 관통하여 보지 못한다면 Wonderland는 왕비가 멋대로 목을 치고, 이 세계의 철학자가 주장하는 적극적 망각의 춤을 추는 것에서만 긍정과 낙관을 배울 수 있는 무의미의 종교에 불과하지 않은가? 의미로 드러나진 무의미의 효과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철학본색은 Wonderland를 One-the-Land로 삼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카오스에서 환경과 대지를 창조하는 의미logos를 지키는 가브리엘이어야 한다. Wonderland는 land(육지)일수 없다는 점에서 wonder 한 것이기에 우리가 정박할 적당한 곳이 아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부엉’이 아닐까. ‘부엉’이라는 소리는 어떻게 단지 ‘소리’noise에서 노래의 지위를 ‘획득’했는가? 자, 이제 모든 방이 밖과의 길항작용 속에서 건축되어짐을 기억하자. 밖과의 길항작용 속에 방은 끊임없이 놓여 있다. 방은 밖의 재료를 활용하여 만들어졌지만 방은 밖이 아니다. 밖은 수없는 방을 공속하고 있어도 밖은 방이 아니다. 길항작용한다는 것은 방이 그 기능의 작동여부에 따라 탈-구축되거나 재-구축된다는 것이다. 방은 밖을 통해서 지어지지만, 또 밖을 통해서 침식되고, 밖으로 갔다가 다시 밖을 통해서만 방이 된다. 이 노래가 두 계열이 있기 때문에 의미론적인 차원에서 노래로 창조된 것처럼, 이야기 역시 노래, 리듬에 의존한다. (모든 이야기가 어떤 이항대립을 반드시 상정하고 있음을 주지하자.) 부엉이 소음이 아니라 ‘노래’가 되는 임계점은 ‘부엉’이라는 노래(-울음)가 반복될 때부터가 아닌가. 그러면 방과 밖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의미는 무의미를 식량으로 할 때에만 가능해진다. 이런 글을 왜 이 시간에 꼭 읽어야만 하는가? 이것이 철학본색의 존재 가능 조건을 탐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본색은 누군가의 내러티브, 어떤 책의 내러티브와 의미가 주도하는 공간이기를 반대한다. 또 한편 적극적 무의미, 이상한 나라가 되는 것도 반대한다. 다만 철학본색은 우리가 거주하는 ‘의미공화국’의 자명성을 묻는 한에서만, 또한 밤의 세계에 거주하는 자들을 향한 상상력과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본래적인 고향임을 인정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의미의 세계’는 ‘무의미의 세계’로 인해 끊임없이 교란당하고 혼란스러워진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야기하기’의 목표는 할머니의 고집으로 대표되는 ‘내 이야기 고수’가 아니라 ‘이야기의 우주론적 개방’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주론적 개방의 사태를 열어주는 이야기는 우리 안에 작동하는 ‘하느님의 말씀’ 혹은 ‘리토르넬로의 운동’, ‘존재론적 생기와 힘’, ‘태극’, ‘끈운동’, 내 식으로 말해 ‘부엉 부엉’ 노래하는 리듬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 의미의 노예를 우주론적 해방으로 이끄는 바로 그 이야기는 그야말로 우리로서는 스스로 가질 수도, 희망할 수도 없는 진정한 선물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낮의 세계가, 의미로, 혹은 방과 사회로 ‘분절’을 통한 ‘밤’의 배제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밤’은 무의미로, 무배제의 리듬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한다. 의미의 기초가 무의미에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 세계가 가진 배제의 구조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알게 된다. 전혀 다른 리듬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 타자의 노래가 있음을 아는 것. 그래야 다른 리듬, 전적 타자,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리라. 새로운 ‘이야기’가 이 ‘밤’에 우리에게 ‘도래’하길 바라며, 이 노래를 함께 불러보면 어떨까?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그림 1 <빛의 제국, 르네 마그리트> 그림 2 <이상한 나라와 험프티 덤프티> 안녕하세요. 미란입니다.
비를 피하느라 기다리던 골목에서 좋은 레스토랑을 발견해서
드디어 내일 모레 인도로 떠납니다. 11월 6일 7일은 MT가 있습니다. MT 장소는 '서병우님'의 시골집 (청도라고 하네요.)으로 정해졌으며, 개인적으로 오기 힘들기 때문에 자가용이 있으신분 중심으로 시간대별 조를 짜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MT에서는 독서토론과 선물, 그외 뒷풀이 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독서토론은 서경식 선생님의 미술책으로 선정했습니다. 고뇌의 원근법, 청춘의 사신, 나의서양미술순례기 세 권의 책입니다. 세 권중 한권을 선택해서 읽으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시고 그 그림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등을 A4용지 한장 정도로 정리해 오시면 됩니다. ![]() ![]() ![]() 선물에 대한 소개는 다음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 MT 사진 http://spermata.egloos.com/442273 MT 후기 http://spermata.egloos.com/442788 http://spermata.egloos.com/442807 (후기는 1기 멤버 박미란 님의 후기입니다.) MT의 선물 http://spermata.egloos.com/439545 본색의 선물 이념이 형성된 권영민님의 선물로 선물에 관한 글입니다. http://spermata.egloos.com/432180 배종열의 선물입니다. 2000원 이내로 철본에게 선물을 주세요 ^^ (아래는 MT 장소의 앞 마당입니다) ![]()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글쓰기가 힘드네요. 학부 때 썼던 글 요약해서 올려봅니다. 참고로 지역별 사용빈도는 크게 믿을 만한 게 못 됩니다. 시간에 쫓겨서 통계 냈던 거라... 그래도 전체적인 건 얼추 맞으니 '하-'와 그 교체형들의 지역별 사용빈도를 아는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언어는 지리적 요인에 의해 분화한다. 같은 문법 기능을 하는 하나의 어형이 지역별로 다른 형태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동사 ‘하-’도 마찬가지로 각 방언권별로 여러 가지 교체형을 지닌다. 동사 ‘하-’의 방언 분포를 다루기 위해 선택한 분석 자료는 "韓國口碑文學大系"(이하 "口碑"로 지칭함)이다. "口碑"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문연구실에서 진행한 전국 구비문학 조사 보고서로, 각 지역의 설화, 민요, 무가 등을 수록하였다. 여기에 채록된 구비문학 모두, 지역 토박이들의 입말을 그대로 기술하여 국어학적으로도 가치가 큰 자료집이다.
2. 앞선 연구 동사 ‘하-/ 허-/ 해-’에 관한 논의는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909),이기갑(2003), 이익섭 외(2003) 등이 있다. 그러나 최전승(2005)에 따르면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909)의 경우 ‘하-’[ha-]형이 구어로는 ‘허-’로도 쓰인다고만 기술되어 있어 ‘허-’의 존재만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이기갑(2003)에서는 동사 ‘허-’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여격조사의 형태를 지역별로 제시하며, 주로 서부 지역에서 ‘ㅓ’ 모음을 갖는 형태가 많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의 경우 중부 방언에서는 교체형 ‘해-’, ‘혀-’, ‘햐-’가 쓰인다고 하였다. ‘하-’와 그 교체형을 분포도로 나타내고 지역별 사용 형태를 기술한 논의에는 이익섭 외(2008)가 있다. 여기에서동사 ‘하-’와 ‘허-’는 역사적으로 고형인 ‘ <대표형 ‘하-’와 그 교체형의 분포도> 최전승(2004)에서도 교체형들의 정확한 생성 시기를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19세기 후기의 전라방언 자료인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84장본)에서 ‘허-’가 등장한다고 하였다. "열녀춘향수절가"는 당시의 입말을 반영한 자료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허-’의 사용 역사는 최소한 1세기 이상이다. 이 글의 연구 지역은 아니지만 평안북도에서도 ‘허-’형이 사용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平北方言辭典"(1981)을 보면 기본형 ‘허다’, 활용형 ‘허구’ㆍ‘허니’ 등 ‘허-’의 형태를 표제어로 제시하고 ‘허구 싶어요, 그러허니, 꽃이 곱기두(곱기도) 허다.’ 등을 용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같은 북한지역어 사전인 "함북방언사전"에는 '허-'가 나타나지 않는다. 경북ㆍ경남 지역에서 사용되는 ‘카-’에 대한 연구로는 서재극(1959), 김영태(1989), 이기갑(2003) 등이 있다. 서재극(1959)은 ‘할락 한다’와 ‘할라 칸다’를 비교하며 ‘카-’는 언동의 기능을 한다고 하였고, 김영태(1989)에서는 (1)처럼 언동과 행동의 기능을 한다고 기술하였다. 즉 (1)의 예문은 ‘언동’과 ‘행동’ 모두로 해석이 가능하다. (1) ㄱ. 다시는 안 [이․그․저] 카께. ㄴ. 자꾸 [이․ 그․ 저] 카마 되나. 인제 고마 캐라. / 인제 안 카겠다. 정철(1980), 이기갑(2003)에서는 ‘카-’의 생성 과정을 논의하였는데 ‘고(인용조사) # 하-(화법동사)’의 축약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 하였다. 3. ‘하-’의 교체형 이 글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는 ‘하-’의 교체형은 ‘허-/해-/혀-/햐-/카-’이다. 이 가운데 ‘카-’는 ‘하-’의 교체형으로 보기 어려울 듯하나, 어간으로 굳어진 형태로 ‘하-’와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여 일단 교체형에 포함시켜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口碑"에서 이들이 쓰이는 예는 다음과 같다. (2) ㄱ. 들어와 가지구 저녁 식사를 대강 진설을 해구선, “우리집이 오셨으니 기왕 이건 잡수셔야 합니다.” 그러더니, 국물을 내주는 거야.(1-9:42)[경기] ㄴ. 올라가서 한밤중에 신세자탄 허다가 노래 한 자릴 불렀어.(5-4:263)[전북] ㄷ. “요니르것들을 어떻게 혀야 연금, 벌을 주고, 요것들을 내가 벌을 줄꼬.”(6-8:349)[전남] ㄹ. “떠난다.”구 그랬어. 떠난다구 그랬는데 못 가게 햐. “미칠을 기시다 가시라.”구(3-2:727)[충북] ㅁ. 종놈이 카거든. “도령님하고 쇈네하고 한 날 한 시 났는데, 도령님은 저래 과게(과거)하고 이놈은 왜 이렇십니꺼?” (7-5:190)[경북] (2ㄱ, ㄴ, ㄷ)의 용례는 교체형들이 앞뒤 요소를 이어주는 연결형 어미와 결합하였고, (2ㄹ, ㅁ)은 교체형이 종결형 어미와 결합된예이다. 예문 모두 ‘하고서는’, ‘하다가’, ‘하여야’, ‘해’, ‘하거든’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는, 이기갑(2003)에서 제시된 ‘햐-’가 ‘하-’의 교체형으로 설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口碑"에서 ‘햐고’, ‘햐지’ 등과 같은 어간형으로 볼 수 있는 용례가 없고, 예문 (3)처럼 문법적으로도 종결의 위치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3) ㄱ. 생각을 안 햐, 훌륭햐.[이기갑 2003에서 재인용] ㄴ. 긍게 그 홍판서가 그걸 얘길 햐. 이 사람이 냅다 캐물으니깬, “내가 그대더러 이런 소리해야 무슨 이미 소용이 있겠냐 말이야. 난 이미 억울해 죽는데, 죽는 것이 원통치 않고, 그 드러운 누명을 쓰고 메누리 찔러 죽였대는.”(1-7:949~950)[경기] ㄷ. 그래 손님이 있으닝께 방엔 못 들어오구 정지(부엌)서 잘 채빌 햐. 그래 그젠 날이 샛는데. 쪼르륵― 쪼르륵― 소리가 나싸.(3-4:439)[충북] ㄹ. 그래 따러 들어가닝개, 안으루 영접을 햐. 그래 따러 들어가닝개, 안으루 영접을 햐. 하녀가 있어. 하녀보구서, “손님 오셨다. 어서 석반진지 잘 차려 오게 해라.” 이러구거던.(4-6:270)[충남] 예문 (3)에 나타나는 ‘햐’는 모두 종결형이어서 ‘하- + -아’, 즉 ‘어간+어미’로 분석될 여지가 있다. 어간이 어미 없이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햐-’를 ‘하-’의 교체형으로 보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반면, ‘혀-/해-’는 ‘하-’의 교체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아래 (4)와 같이 어간형으로 쓰인 확실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4) ㄱ. 과거만 혀고 오라고 허지.(5-6:59)[전북] ㄴ. 아주 박대를 혀지.(6-8:473)[전남] ㄷ. 옛날에는 행차라는 것이 뭐 가마도 타고 온통 여러 부하를 다리고 아주 혼란스럽게 해가 지고 뭔 음악을 갖춰가주구 길라잽이를 세워가주구 쿵작쿵 해면서 갔다더군요. 옛날에는(-2:216)[경기] ㄹ. 아, 그래가지군 또 빨래를 다 해니 그만 이고 가니께는 또 인저 “들어 가자.”구. 그래 들어 왔지.(2-8:379)[강원] 한편, ‘하-’와 ‘허-’는 지역별로 분포 양상이 다르다. 이익섭 외(2008)에서는 ‘허-’가 서부 해안에 넓게 분포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口碑"에 나타난 사용 빈도상으로도 그러하다. 방언권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동부 지역은 ‘하-’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서부 지역은 ‘하-’와 ‘허-’가 비슷한 비율로 사용된다. 또 행정 구역별로 ‘허-’는 전북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이고 경북ㆍ경남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경기ㆍ강원ㆍ충북은 ‘해-’, 경북ㆍ경남 지역은 ‘카-’가 나타난다. 아래 지도는 각 지역별로 동사 ‘하-’와 그 교체형의 사용 빈도를 표시한 것이다. 위에서 아래 순서로 ‘하-/허-/해-/혀-/햐-/카-’형의 비율을 표시했고, 괄호 안의 숫자는 "口碑"에서 나타난 사용 빈도수이다. 남한 지역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경기ㆍ강원 이남만 지도로 구현하였으며 분석 대상에 없는 제주도는 제외시켰다. <동사 ‘하-’와 그 교체형의 지역별 사용 빈도> 사용 비율로 보았을 때 전북 지역은 ‘허-’가 대표형의 기능을 하고 있고, 전남과 충북 지역은 두 어형이 경쟁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 지역은 ‘허-’보다 ‘하-’의 빈도가 더 높은데, 특이한 것은 예문 (5ㄱ, ㄴ)에서처럼 ‘하-’가 ‘해-’의 형태로도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기갑(2003)에서는 중부 방언의 경우 ‘하-’가 ‘해-’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였지만, 사용 빈도상으로 볼 때, ‘하-’, ‘허-’, ‘해-’의 순서로 사용되고 있어 ‘해-’의 쓰임이 보편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5) ㄱ. 싸움 해면은 사람이 나와 갖구서 그 흑룡을 죽이는 거예요.(1-8:368)[경기] ㄴ. 이래믄 오히려 밥두 못 먹구 죽도 못 먹구 죽을 테니까 그렇게 핼 수밖에 없다. (2-6:93)[강원] ㄷ. 사우 노릇 해기 위해서 가 그짓말을 핸 거지.(3-2:680)[충북] 강원ㆍ충북은 나머지 교체형이 4%도 안 되는 비율을 보인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하-’가 실질적 기능을 부담한다. 경상도의 경우에도 ‘하-’의 사용 빈도가 90%를 넘어 ‘하-’가 모든 기능을 떠맡았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카-’가 예문 (6ㄱ, ㄴ)과 같이 교체형으로 쓰이고 있다. (6) ㄱ. 벽진 이씨네들 선조가 이여송이라 안 카던가?(7-5:459)[경북] ㄴ. 나 혼자 있는데, 며느리가 카는 기 딴 생각 가지마, 이런 집구석이 막 무너지는 기라. (8-5:278)[경남] 사용 비율이 가장 낮은 ‘혀- / 햐-’는 충청도ㆍ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사용된다. 이 중 ‘혀-’는 전라도에서, ‘햐-’는 충청도에서 사용 빈도가 높다. 동사 ‘하-’와 그 교체형들의 전체적 사용 빈도를 따져보면 방언권은 크게 동서로 구분된다. 동부 지역은 사실상 ‘허-’형이 쓰이지 않고 서부 지역은 ‘하-’와 경쟁 구도를 형성할 정도로 활발히 사용된다. 이는 이기갑(2003)에서 밝힌 대로 한반도 내에서 남북보다는 동서의 방언 차이가 더 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분석 대상을 서부 지역에 한정하여 살피면, 남부에서 북부로 올라갈수록 ‘허-’의 사용 비율이 낮아진다. 이익섭 외(2008)에서도 전남 방언에서 생성된 ‘허-’의 분포 영역이 북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논의와 "口碑"의 사용 빈도가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그러나 전라 방언만을 고려하면, 전북 방언이 전남 방언에 비해서 사용 빈도가 월등히 높다. 4. 맺음말 지금까지 동사 ‘하-’와 그 교체형들에 대한 연구는 형태를 제시하는 정도에만 그쳤다. 그러나 "口碑"를 살펴본 결과, 각 지역별로 교체형이 다른 쓰임새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입말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교체형들 간의 음운ㆍ형태론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학문의 위기라는 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진정한 학문적 성격(echte Wissenschaftlichkeit) 즉 학문이 자신의 과제를 세우고 이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학문의 방법론을 형성하는 방식 전체가 문제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이종훈 역, 61쪽) 나비 부인을 어제 공연했을 때 1300여명이 왔는데, 그 때 단 한순간도 떨지 않고 무사히 연주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한 50여명이 계신 것 같은데 이렇게 떨리는 것은 왠일일까요? 그것은 아마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새로운 출발이기 때문이고, 또 이 새로운 출발이 어떠한 인간 사회에 영향을 끼칠까 하는 조바심과 일종의 '위기감' 마저도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짐작해봅니다. 이탈리아가곡 흔히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음악대학을 가면요, 1,2 학년 때 이탈리아가곡 참 많이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지요. 지금 대구오페라축제기간을 지나고 있는데 거기서 많은 오페라를 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저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탈리아 노래라고 하는 것이 우리와는 굉장히 괴리가 있고 정말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서야 갈 수 있다는 거리감, 또 사백년 이상이나 거슬러가야 한다는 시간의 거리마저도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기 7분의 가수님들, 2분의 반주자분, 또 저를 포함해 열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이러한 거리감을 줄여볼까 하는 마음에 이탈리아 가곡을 공부하는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10월 27일 이탈리아성악연구회, 이하 이성연, 대구중앙교회 중앙아트홀 연주에서 지휘자 박지운의 멘트)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이하 위기)은 후설이 생전 마지막으로 출판한 주저 중 한권이다. <위기>에는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이하 이념들)로 대표되는 전기 사유를 넘어서는 중요한 사유,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발생적 현상학, 생활세계와 같은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후설의 수미일관한 문제의식은 후설 당대의 인간성의 위기, 예를 들면 나치의 등장과 두차례의 대전과 같은 것들의 원인이 다름 아닌 학문의 '위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이와 같은 위기를 초래한 바로 그 학문이란 '실증주의'에 토대를 둔 심리학주의와 역사주의였다. 실증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것이 위의 인용에서 말하고 있듯이 실증주의 자신이 가진 '토대', '방법론상의 기초', 즉 '주관적인 것'(혹은 상대적인 것)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문의 위기’이다. 그건 ‘학문’의 위기인 동시에, ‘위기’의 학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젝-데리다식 농담은 어떤가? 학문은 ‘항상-이미’ 위기였고, 따라서 ‘위기’라는 학문의 ‘불가능성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항상-이미’ 학문의 ‘가능성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농담 속에 전도된 (혹은 도착적/왜상적) 진리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문의 ‘가능성의 조건’은 ‘항상-이미’ 학문의 ‘불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학문은 ‘위기’라는 쓰레기 더미를 양분으로 해서만 피어나는 괴물 같은 꽃, 혹은 꽃 같은 괴물이다. 왜 그런가? 후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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