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륀지보다 오렌지. 엄명환씨의 삶을 생각하며 by 잡문가


몇 해 전 우연히 대학로 이음책방에 들렀다가 거기서 '오렌지가좋아', 엄명환씨를 만났다. 


이유를 알기 어렵지만, 꽤나 자주 오렌지가 생각난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오해로도 가득한 만남이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1년 후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이후였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한 사람의 시민적 용기의 근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까지 종합해보면, 오렌지가 보여준 용기는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교사가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렌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인권상도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제도, 엘리트, 서열주의의 표상 같은 '어륀지' 대신 자기 자신의 삶과 선호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오렌지'를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렌지인권상에서 격려 받게 되었으면 한다. 


사실은 오렌지이며, 오렌지가 좋지만, 어륀지가 되고 싶고, 어륀지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는 나를 생각하며 썼다. 지금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이런 거다. 어륀지보다는 오렌지가 좋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 그거 하나다.



오렌지가 좋아.(2017.7.25. 매일신문 에세이산책)


2014년 여름, 대학로 이음책방에 들렀다가 사진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이름 대신 ‘오렌지가 좋아’라는 별명으로 소개했다. 그냥 ‘오렌지’라 불러도 좋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을 준비하던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공청회에서 “미국에서 ‘오렌지’(orange)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다가 ‘어륀지’라고 하니 알아듣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륀지보다 오렌지가 더 좋다고 생각했던 그는 그때부터 자신을 ‘오렌지가 좋아’로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렌지는 책방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내게 건넸다. 그는 2009년부터는 반올림(삼성 반도체공장 노동자 인권지킴이) 활동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반올림 집회나 삼성에서 백혈병을 얻어 세상을 뜬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1인 시위 현장에 그는 늘 함께했고, 그의 사진들은 영화 ‘또 하나 약속’(2014)에서 엔딩 화면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대개 그렇지만 경제적 대가는 거의 없기 마련이다. 생활은 어떻게 해나가느냐는 비루한 내 물음에 오렌지는 검도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유독 두꺼운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살아갈 방편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꼰대 같은 내 물음엔 사진가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그때 나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오렌지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그날의 질문과 걱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것이었는지는 그로부터 1년 정도 지나 알게 되었다. 2015년 5월 26일, 오렌지가 심정지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알고 보니 그는 만성신부전증 환자로 1급 장애인이었다. 열두 살 때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다. 유달리 두꺼웠던 팔목은 투석을 위해 찔러댄 주삿바늘이 남긴 흔적이었다. 그 때문에 중`고등학교도 모두 검정고시로 마쳐야 했다. 장애인 인권과 의료민영화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에 뜻을 품었고, 어륀지보다 오렌지를 좋아했던 그는 결국 6월 10일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날,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름에 그를 만났던 탓일까, 두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이맘때가 되면 명랑했던 오렌지가 생각난다. 황상기 씨는 “그의 사진기는 삼성 경비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방패였다”고 했다. 그 자신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버티기 어려웠을 처지로 어떻게 다른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 무엇이 이런 시민적 용기를 갖게 만들었을까. 아픔으로 두꺼워진 팔뚝으로 그는 타인의 아픔을 안았다. 자기 아픔으로 세상 아픔을 품었다. 세상 모든 일에 무덤덤한 내가, 내 아이가 어륀지를 행여나 오렌지로 발음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사는 자신이 부끄럽다. ‘오렌지가 좋아.’ 그의 이름은 바로 엄명환이다.



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 by 잡문가

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를 ‘베둘레햄’이라 불렀다. 배가 많이 나온 나를 본 선생님이 붙여주신 별명이었다. 베둘레햄은 그래도 견딜만했는데 ‘드럼통’이란 별명은 정말로 모욕적으로 들렸다. 대학에 들어가자 선배들은 나를 보고 ‘슈렉’을 닮았다며 볼 때마다 놀려댔다. 윌리엄 스타이그가 쓴 동화에 나온 슈렉을 보면 영화 속 슈렉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생겼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이니까. 나는 내가 모든 못생긴 괴물 중에 가장 못생긴 그 괴물을 닮았다는 사실이 늘 납득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오히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외모라 생각하는 쪽이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어느 신문에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느끼는 뻘쭘함에 대해서 썼다. 엄마들이 아빠인 내게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고 나 역시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 끼어들기 어려운 탓이었다. 그래서 나처럼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하는 할머니 한 분과 함께 뻘쭘함을 이겨보고 싶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며칠 후 칼럼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사진을 보니 왜 아무도 말을 안 걸었는지 알겠네요.” “할머니가 무서웠을 것 같아요.” 웃기면서 슬펐다.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 아내는 대답했다. “못 생긴 게 매력이야.” 물론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외모패권주의와는 거리가 먼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 청와대로 들어간 분들의 면면을 보며 외모패권주의라 했다. 대통령과 신임 수석 비서관들이 하나같이 순백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커피 산책을 하고 있는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었다. 물론 새 정부가 외모로 인사를 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성공한 누군가를 향해 외모패권주의라 부르며 보잘것없는 내 처지를 못생긴 외모 탓인 양 돌리려 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외모패권주의란 말은 하나의 농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농담 속에 진실 한 자락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건, 지역이건, 사건이건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을 마치 전부인 양 대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점일 것이다. 외모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였다면, 즉 세상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외모패권주의 같은 농담이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가난 때문에, 학력 때문에, 지역 때문에, 외모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주고, 또 상처를 받는가. 그래서 외모패권주의, 영남패권주의, 친박패권주의, 강남패권주의 등 온갖 종류의 패권주의에 실체가 있는가를 따지기보다 그런 말에 담겨 있을 어떤 진실을 살피는 노력이 보다 값진 것이다. 외모패권주의는 농담이지만, 외모로 받은 상처는 농담일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17.6.13)


얼마 전 동아일보에서 박정자 선생이 '외모패권주의'에 대해서 쓴 글을 읽었다.

(http://news.donga.com/3/all/20170519/84435070/1) 

텔렘수도원 잔상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대통령 취임 첫 날 하얀와이셔츠를 입고 양복 재킷을 한 팔에 걸친 후 커피 한 잔을 들고 대통령과 선임 비서관들이 청와대 산책을 하는 것이 연출된 것인데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자유를 강요하는 일종의 전체주의라는 것이었다. 외모패권주의 하나에서 사회주의적 획일성을 끄집어내는 글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한 마디만 가져오면, 박정자 선생은 "사회주의는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배려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지만 실은 건강하고 잘생긴 좋은 집안 출신만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냉혹한 체제로 타락했다. 북한 체제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양에는 장애인이 들어올 수 없고, 모든 지배층은 당성이 좋은 집안 출신이어야 하며, 최고지도자는 백두혈통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모패권에서 이런 걸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문해력인 것인지, 관심법인 것인지 알기 어렵다. 지혜자이자, 나의 유일한 구루라고 할 수 있는 나와 같이 사는 여자가 내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고, 농담에 욱하는 사람과는 상종하는게 아니다"라고. 나도 상종하고 싶지 않았는데, 청와대 인사를 보며 외모패권주의라 생각했던 나도 한 마디 안 할 수 없어서 쓴 글이다. 그런데 쓰다보니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되었는데, 그동안 내 별명의 역사가 궁금한 분이 만의 하나라도 계시다면 읽어보신다면 꽤나 즐거우실 것 같다. 외모패권주의라는 농담에 대해 마치 농담하듯이 쓰고 싶었을 뿐이다.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는 글, 노래, 철학, 책 by 잡문가

"Viva la zarzuela"는 내가 가장 즐겨듣는 음반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음반이다.

1996년 콘서트 실황을 담았다. 2014년부터는 연주 실황이 유튜브에 공개되어 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 아이가 등교하고 오전에 모처럼 파트너와 같이 집에 있는 날이면 유튜브로 Maria Bayo, Placido Domingo 등 거장들의 노래를 들으며 온갖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아주 큰 기쁨 중 하나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Carlos Alvarez가 무대 위에서 무표정하지만 고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며 나는 "짐승의 눈빛"이라고 했다. 공허한 듯 순수하게 보였고, 그래서 "짐승처럼 노래한다"고 했다. 파트너도 덧붙였다. "짐승처럼 부르는게 아름다운 거지. 나도 노래를 하지만 그게 아름다운 것인지 나는 몰랐던 거 같아. 어쩌면 그래서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았은 것이고".



짐승처럼 부른다는 것의 의미는 가수의 목소리가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아름답다고, 최종적으로 아름답다고 승인하는 것은 자연 아니면 자연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Maria Bayo는 새처럼 노래하고, Placido Domingo의 목소리는 강이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여전히 유효한 관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회화의 오랜 이상도 자연이지 않았던가.(물론 자연의 이상이 왜 여체로 표상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하여간 벨칸토 창법이 말그대로 아름다운 까닭은 그 목소리가 듣기에는 꾸밈이 없고 순수하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은 거칠지만 자연스럽고, 우연적이지만 모든 것이 조화롭고, 위협적이지만 생명을 품고 있다.

정교하게 다듬은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Viva la zarzuela 연주에 감응된 탓인지 '자연'의 관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품들을 떠올려 보았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지닌 문학적 높이는 오르한 파묵이 말하는 것처럼 그 작품이 어떤 교훈도, 어떤 종류의 필연성도 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과 몹시도 닮았다. 자연은 교훈적이지도, 서사적이지도, 예시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으로 보일 뿐 우연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어떤 시점부터 데리다와 들뢰즈에 매혹된 이유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들뢰즈가 베이컨을 두고 자연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감각의 논리>에서 말하는 표상되지 않는 감각이라는 것도, 아플라니 윤곽이니 하는 것도 자연을 염두에 두는 것이 분명하다. 들뢰즈가 철학은 자본주의 나라에서, 도시에서 성립한다고 했던 말의 의미도 분명해진 것 같다. 그런 곳이야말로 '자연'의 결여가 크기 때문인 것이다.

















자연을 닮은 글쓰기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글일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데리다의 글이었다. 
마치 산을 올라가며 만나는 돌과 나무, 바위, 풀들이 조각 조각 흩어져 있어 그 자체로 유기성은 없지만 거기에 조화가 없지 않은 것처럼, 데리다 글을 읽는 것도 그렇게 느껴진다. 각 문장, 단어 하나하나의 유기적 연결을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책을 덮었을 때 산을 내려왔을 때 비로소 느끼고야 마는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의 의미 같은 것이 거기에 있다. 그 철학이나 문학이 정당한가를 떠나서 최소한 미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데리다나 들뢰즈의 글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자연에 대한 묘사가 가득해야 꼭 자연을 닮은 문학, 그림, 음악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을 담고 닮는 것은 자연적으로 되지 않고, 무엇이 자연인지에 대한 자연적 규정과 그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거부를 끝없이 해나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다시 플로베르를 생각해보면, 소설에 어떤 교훈도 담지 않는 것이 담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교훈조로 마치는 글이 되지 않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짐승의 눈을 하며 소리를 내는 벨칸토 창법은 마치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가능한 한 노력을 다해야만 제대로 소리가 난다.



















잘못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보건대, 하이데거가 대지와 세계의 투쟁을 담는 것이 예술작품의 본질이라고 한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대지를 자연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예술작품은 자연을, 즉 사물을 세계 내 존재로서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사물이 지닌 존재론적 깊이인 자연을 담으면서 동시에 농부가 대지를 개간하듯 대지와의 투쟁을 담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지와 세계의 길항은 예술이라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을 담고자 하는 인위적 노력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담고 있는 은유일 것이다.

<아주, 기묘한 날씨>(푸른지식, 로런 레드니스)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이제 시작인데, 이 책이 한 평자의 말대로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운 까닭은 이 책이 '자연'을 담고, '자연'을 닮은 방식의 글과 그림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북극의 빛맹 현상, 북극곰의 위협과 홍수로 파헤쳐진 공동묘지를 묘사하는 글이 이토록 아름다울지 몰랐다. '자연'이라는 말에 각자가 떠올리는 상이 다르기에 자연을 닮는다는 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하간 모든 아름다운 것이 자연의 한 조각을 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자연을 닮지 않은 글을 썼지만, 자연을 닮았다고 할만큼 아름다운 글을. 쥐를 무서워해서 가까이 있는 숲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운 내게는 요원한 일이지만 말이다.








책에 대한 존경 by 잡문가

책에 대한 존경
-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모님은 생일선물로 오직 책을 사주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책 선물이라고 해서 낱권으로 된 그림책이 아니다. 1학년 생일에 받은 책은 한국편 32권, 외국편 32권으로 구성된 금성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위인전기]였다. 나는 한국편보다는 외국편을 더 즐겨보는 편이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32명 중에 아문센이 포함된 것을 의아하게 여기곤 했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냥 옷만 따뜻하게 입고 걸어가면 되는 일 아닌가 하고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학년 생일에는 계몽사에서 나온 7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았다. 선물이라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이걸 다 언제 읽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소년소녀들이 읽는 문학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같은 고전들도 있었고, 동양 작품으로는 드물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같은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초등 2학년의 지적 수준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계몽사판 그림동화에서 봤던 책들 중 겹치는 책들에 주로 손이 갔다. <피터팬>이나 <빌헬름텔>, <피노키오> 같은 책들. 그 중에서도 <소공녀>는 결말의 속시원한 반전 때문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였다.

부모님은 이후에도 생일 때마다 전집을 집에 들이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 내지 못했다. 그 중에선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아니 읽을 수 없었던 전집 시리즈도 있었는데, 바로 4학년 때 받은 선물이었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총 28권짜리 전집이었다. 이 책과 관련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께서 내 생일 한 주 전에 전집류를 주로 취급하는 외판원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보다 몇 살 많아보였던 외판원 아저씨는 여러 상품 중에서도 유독 이 전집을 권했다. 아이가 평생 보게 될 책이라며 좀 비싸더라도 이번 기회에 장만하라 했다. 그 외에도 영국과 미국의 무슨 책들에 대해서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브리태니커백과사전]과 [아메리카나백과사전]이었던 것 같다. 일찍 학업을 중단하신 아버지께서 그게 무슨 책인지 아실 리 없었지만, 매년 거래해 오던 외판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셨고, 한 주 후 책이 배달되었다. 책은 이전에 나로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크기, 두께였고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내가 들기도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아버지는 내 방 책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디즈니 그림책을 박스에 넣으시고는, 집에 막 도착한 책을 꺼내 한 권씩 책장 한쪽에 꽂아 넣으셨다. 동화책들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의 빛깔 대신, 1권, 2권, 3권.. 한 권씩 백과사전을 꽂아 넣었다. 점점 책장은 무겁고 짙은 고동색으로 채워졌다.

책에 대한 ‘원체험’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게는 아마 바로 이 책들을 아버지와 함께 책장에 꽂아넣은 그날의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도 집에는 책이 있었고, 자주 책을 샀고, 매일 같이 책을 읽었지만 이 백과사전이 들어온 그 날부터 그 책들은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백과사전으로 알게 된 것은 기껏해야 이렇게나 두꺼운 책은 색인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이라는 것과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의 역사, 내가 살던 대구에 대한 지리 정보가 전부였지만, 책장에 꽂혀 한 달에 한 번도 손길이 가지 않던 ‘권위적인’ 책을 바라보며 “지금 나는 어려서 저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지, 저 책은 아마 어마어마한 내용일거야”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하면서 어머니는 그 전집을 중고책방에 갖다 주셨다. 거의 새 책이었지만, 중고책방에는 같은 종류의 전집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형편 없는 가격을 받았다. 얼마 가지 않아 백과사전이 시디로 만들어지는 시대가 왔다. 이제는 아마도 구립 도서관 정도에는 가야 있을만한 이런 종류의 책을 집에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아이 엄마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전집 전문 서점에 들렀다. 사장님은 이젠 그런 백과사전류는 나오지 않는다며 다른 책을 소개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만화 스타일에 주제도 다양하고, 온갖 색으로 치장된 표지의 전집이었다. 세계문학전집류와 위인전집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만 내가 읽었던 것과는 달라보였다. 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의 ‘세계’가 말만 세계일 뿐 서구 중심의 전집 편찬이었다는 비판을 충분히 의식했기 때문인지 어떤 전집에도 인도인 하인을 둔 런던 아가씨 이야기인 [소공녀]는 없었다. 위인전집에 실릴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의 기준도 예전과 많이 달랐다. 프라다를 입고 다니는 보그의 악마 ‘앤디 윈터’, 샤넬을 만든 ‘코코 샤넬’ 전기를 보면서, 어릴 때 위인전을 읽으며 느꼈던 위화감, 그러니까 나는 천재도 아니고 모험을 할 만큼 용기도 없으니 위인은 못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점을 나오면서 아이 엄마는 내게 물었다. “요즘도 전집을 사는 사람이 있나봐?”. 그동안 우리는 언제나 칼데콧이나 뉴베리와 같은 큰 상을 받은 책이나 유명 작가들의 책을 가능한한 섬세히 선별해 낱권으로 책을 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내 아버지가 내게 준 책에 대한 경험까지 내 아이에게 주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책을 사다주며, 책에 대한 경험까지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 비싼 전집을 사겠다고 생각한 것은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책에는 그 돈을 들일만큼 가치가 있다는 믿음, ‘고전’에 대한 경외와 존경도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아마도 내 아버지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은 그런 믿음을 가진 세대였을 것이다.

백과사전을 포함해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더 많지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단지 존재만으로도 내가 인간의 지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키우도록, 때로는 내게 책을 더 읽도록 해주는 압력도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계몽사상가들이 만든 [백과사전]이 있었기에 촉발되었다고는 하지만 혁명을 주도하던 사람들도 백과사전을 다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신 책, 그러니까 ‘책에 대한 존경’이 ‘왕에 대한 존경’을 이길 때 변화가 일어났다.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 책을 읽었겠지만 나는 아버지만큼 책을 존경하고 있을까? 내 아이에게는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책을 읽는 대신 책을 구입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도서관은 무한하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우주이지 않은가? 공공도서관이 드물던 내 유년기에 비하자면 이제 책에 대한 존경은 집보다 몇 배는 더 큰 무한한 우주인 도서관에서 더 배우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 책에 대한 존경은 단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구입다고 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이 우주 속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그 순간 생겨난다.
짙은 고동색 백과사전 전집이 어린 내겐 그 우주였던 것이다.


백화점이라는 무대 by 잡문가

신세계 백화점에 갔다가.


얼마전에 대구에 신세계 백화점이 생겨서 거기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의 글이 되었다. 조경란의 <백화점>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는데 내가 백화점에서 자주 느꼈던 부분과는 다른 결의 글이었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도움이 될까 해서 봤는데, 벤야민이 살던 때의 아케이드와 지금 백화점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간 이번 글은 몇 시간을 고민했지만 제대로 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백화점에서 나란 인간이 얼마나 찌질한 인간인지만 보여주는 자기고백이 된 것 같다^^. (원래 인간이란 찌질하니까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빙 고프만은 사회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자기 자아를 찾아라는 식의 결론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백화점에서 내가 나 자신을 연출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거기에는 나의 욕망도 있고, 백화점이 내가 연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무대 장치를 잘 세팅해 놓기 때문일 것 같았다. 점원도, 매장 구성도, 조명과 동선까지도 아주 영리하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새로 생긴 백화점도 그런 점에서 나를 다른 나로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백화점에 있는 시계 매장에 난생 처음 들어가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 글에서 백화점 시계매장에 처음 들어갔다고 쓴 건 진실은 아니다. 외국에 있는 매장은 아무렇지 않게나 들어가서 이것 저것 물어본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봤다.

일단 나는 백화점 매장에 들어가서 관심 있는 물건의 가격은 바로 물어보지 않는다. 택을 바로 들추기 전에 그것이 옷이든, 전자제품이든 일단 이리 저리 살펴보고 물건의 특징부터 살펴본다. 이건 내가 그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가격보다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를 더 궁금해 해서가 아니다. 일단 택을 들추기 전에 내가 그 물건이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인지 확인부터 하는 심미적 취향이 있는 손님이라는 것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는 연기를 매장에서 하는 것이다. 일단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가격부터 물어보는 솔직함이 없어서 백화점에서 물건 사기는 내게는 늘 연출의 부담이 있는 공간이다. 
아울렛이나 외국 특히 미국 쇼핑몰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런 연출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아울렛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라는 신호인데다 아울렛 매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대 자아의 부각이 잘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연출의 부담도 잘 생기지 않는다. 마음대로 택 가격을 살펴보고, 가격이 비싸면, "아울렛 물건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점원에게 투정을 부릴 수도 있다. 미국에 있는 백화점들은 매장마다 점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점원에게 응대를 받을 가능성이 없고, 명품 시계 같은 럭셔리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는 직원이 있지만 이들은 내가 살 능력이 없어도 아시안들은 헤비쇼퍼라는 인상이 있어서 가격부터 물어도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외국인이지 않은가? 자아가 좀 부각되더라도 그 때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 백화점에서 물건, 특히 명품을 사는 일은 외국에서 사는 것보다 틀림 없이 더 큰 기쁨을 느끼게 할 것 같다. 비싼 물건을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면서 카드를 척 낼 때 느끼는 기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이쪽이 더 드라마틱하고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그것이 비록 저급한 방식이라 하더라도, 고양시키는 느낌을 줄 것이다. 명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프랑스산 물이나 이태리산 음료를 주고, 고객 카드에 이름을 적으면서 백화점 명품 매장이라는 무대의 주인공 중 하나로, 아니 자신을 주인공 중 하나라 믿게 되는 것이다. 명품 매장 직원이 착용한 흰 장갑은 여러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하간 백화점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신문에 쓴 글도 결론을 내기 어려웠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무리하기 어렵구나.



백화점이라는 무대 (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산책에 쓴 글)
새로 생긴 백화점에 들렀다가 시계 매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시계는 내가 쇼핑 욕구를 느끼는 거의 유일한 물건이다. 시계는 단지 시간만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다. 크로노그래프와 GMT 기능이 있는 시계는 시계를 착용한 남자를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성공한 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내가 그런 남자라서 명품시계를 동경해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시계 하나로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명품시계 구매는커녕 시계 매장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가격도 물론 큰 이유였지만 매장 내 손님이 별로 없는 시계 매장은 뭔가 모르게 들어가기 부담스러웠다. 그 날도 발걸음을 돌리려다 문득 내가 시계매장에 들어갈 정도의 모험 정신도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져 매장에 들어가 봤다. 직원은 내게 B사의 시계를 추천해줬다. 시계를 살펴보며 직원이 눈치 채지 않게 가격표를 힐끗 보고, 가격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로 직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나는 살 마음이, 아니 살 능력이 없었지만 다른 시계들도 보여 달라 했다. 가격을 듣고, 그 가격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나는 직원에게 “가격은 좋은데, 다이얼장식이 마음 들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다른 매장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직원은 둘러보고 다시 오라고 했다. 물론 나는 다시 가지 않았다.
시계매장을 나오며 어빙 고프만이 <자아연출의 사회학>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공연된 자아는 그럴 듯하게 연출하여 남들로 하여금 그를 그가 연기한 인물로 보게 만드는 일종의 이미지다”. 나는 시계매장에서 내 연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구매능력은 없지만 구매자처럼 행동했고, 직원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직원은 내가 구매 능력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도 적당히 맞장구쳐줬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백화점, 그 중 명품매장은 무대가 되어 나 자신을 내가 ‘공연한 자아’로 점차 믿게 만드는 곳임을 깨달았다. B사의 시계가 내게 특히 잘 어울린다는 직원의 말이 오래 남았다.
명품이 즐비한 새로 생긴 백화점을 무대로 나는 ‘공연된 자아’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시계가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듯 백화점도 단지 물건을 파는 곳만은 아니다. 무대 위의 우리 배역이 오직 ‘고객님’이 되도록 모든 것을 사전에 셋팅해 두고, 우리를 구매능력이 있고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고객님으로 대우한다. 그렇게 우리는 백화점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출된 나 자신을 자기 자신의 자아로 믿으며 조금씩 쇼핑의 즐거움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연기에 너무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백화점은 영리하다.


오늘 나를 짜증나게 했던 일 by 잡문가

오늘 나를 짜증나게 했던 일


새로 생긴 동네 중고책방이 요즘 내 아지트다.나 이번이 처음이에요 라는 티를 팍팍내는 내 또래의 여자 사장님은 아메리카노 한잔을 3000원에 주고, 무한리필을 해준다고 크게 써붙여 뒀다. 살만한 책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중고책 가격은 싼 편이고, 사장님은 이 책이 얼마인지도 잘 모른다. 얼마 전에는 사겠다고 벼르고 있던 <작가의 책>을 2000원에 샀고, 2만원하는 책을 40%에서 판다길래 사겠다고 하니 4000원을 달라고 했다. 물론 계산착오지만. 아무튼 그렇게 서투르고, 또 온정있고, 소박한 그런 가게다. 오늘도 보낼 원고를 쓰고, 가게 앞에서 두 박스나 어린이책을 가게 앞에서 <free>라고 크게 사인을 붙여놓고 나눠주고 있어 선재 줄 책을 하나 얻으러 두어시간 거기 앉아 있었다. 좁은 공간이라 오래 앉아 있기는 눈치 보였지만 사장님은 눈치 같은 거 주는 사람이 아니다. 앉은 지 얼마 있지 않아 하얀 승합차 한대가 섰다. 어느 교회 승합차였고, 내린 사람은 50대 정도의 목사로 보였다. 그 분과 그 분의 아내는 아마 책방 옆의 동네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유기농 식재료를 사러 오셨던 것 같다. 아내가 식재료를 사러 들어간 사이 남자 분은 프리로 나눠주는 책을 잠깐 훑어보고 가게로 성큼성큼 들어와 사장님에게 다가가 교회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주고 싶은데,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두 박스의 책을 자신이 다 가져가도 되냐고 사장님에게 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심 나는 사장님이 거절하기를 바랬다. 그 순간 사장님 눈을 봤다. 약간 주저하는 듯 보였다. 목사로 보이는 남성분은 교회학교에 아이들 보여줄 만한 책이 없다는 이야기를 다시 강조했다. 사장님은 승락했고, 남성분은 박스에 있는 50권은 족히 되어 보이는 책을 빠짐 없이 승합차에 실었다. 오늘 내가 가져갈 책은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분에게 그동안 책 한권 없이 어떻게 교회 '학교'를 운영했냐고 묻고 싶었다. 이 중고책방에 아이들 책도 엄청 저렴하게 파는데 몇 권이라도 사주고 얻어가지..게다가 '프리'로 나눠주는 책들은 책방으로서는 여러가지 복안의 결과였을 것이다. 가게 문 연지 한달도 되지 않아 그런 방법으로 홍보도 하고 싶었을 것이고, 작은 책방이지만 책방답게 주민들과 만나고 동네 사람들의 공적인 공간이 되고 싶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들이 모두 교회로 들어가면 오직 그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지 않길 빌뿐이지만, 아마 그 교회의 한 쪽 책장을 채우는 소품으로 돌다가 말 것이다. 오늘은 그게 짜증이 났다. 교회가, 공공적인 공간이라고 하지만 거진 사유화된 공간이나 마찬가지인 교회가 동네 중고책방의 작은 온정까지도 욕심을 부려야 하는가.

그 분이 나가자마자 사장님은 20% 가격에 팔겠다고 적어둔 책장에서 책 몇 권을 골라 다시 프리사인 아래에 가져다 뒀다. 그리고 나는 괜시리 기분이 게름칙해져 오늘은 공짜로 나눠주는 책을 집에 가져오지 않았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초짜 중고 책방이 하고 있다. 그리고 책방을 나서면서 나는 책방 사장님이 꽤 잘 나갔던 전직 주식 애널리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교훈은 이런거다. 사람들은 명함 따라 다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것,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 당연한데 많은 사람들은 잘 믿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내가 오늘 본 것도 그 자체로는 다는 아니겠지. 그래도 그 남성분이 내 예상대로 목사님이라면, (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내일 새벽 기도에서 오후의 일을 진심으로 회개하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아빠의 자책 육아 - 뻘쭘함을 이기는 방법 by 잡문가

뻘쭘함을 이기는 방법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엄마들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나를 포함해 몇 안 되는 아빠들은 멀찍이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혼자서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다.

그건 그 시간 그 곳에서 스마트폰에 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스마트폰 말고 ‘뻘쭘함’을 견딜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들 그러고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런 이유로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척’했다. 다른 아이 엄마들이 ‘절대로’ 내게 말도 붙이지 못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연기를 해왔다. 물론, 아이를 데리러 온 아빠가 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아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면 뻘쭘함을 견디기 훨씬 더 쉬웠겠지만 그 아빠 역시 뭔가에 집중하고, 아니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서 다가가기 힘들었다. 분명 그 아빠도 연기 중이었겠지만 말이다.

놀이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놀이터에 들어서면 언제나 아이와 같은 반인 아이들의 엄마들이 벤치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가 미끄럼틀로 달려가면, 나는 엄마들이 모여 있는 벤치의 반대 편, 그늘 하나 없는 벤치에 앉아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요즘엔 아예 책을 들고 가서 밀린 독서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여 있는 엄마들 사이에 끼거나 다른 아빠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기 힘들다. 그건 분명 서슴없이 누군가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내 성격 때문이겠지만, 그보다 그런 자리에서 당연하게 따라오는 예상 질문들을 피하고 싶었던 탓이 더 컸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늘 아이를 데리러 오세요?” “엄마는 많이 바쁘신가 봐요?” 있는 그대로 대답하면 그 뿐이겠지만 그런 질문에 이런저런 대답까지 하면서 엄마들 모임에 끼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모르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부끄러움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부각된 현실의 자아가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와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긴다고 한다. 현실의 나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 사이에 있는 간극을 누군가가 바라보게 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느낀 뻘쭘함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현실의 나는 ‘육아하는 아빠’이지만 엄마들과 아이를 기다리며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는 ‘직장에서 일하는 아빠’였던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있는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일하러 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아빠’로 나 자신이 부각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동네 카페에 앉아 일을 하다가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내 앞 테이블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자들은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야구 유니폼 제작에 대해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사회인 야구단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아저씨들이 모두 옆 동네 유치원의 학부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 인연으로 야구단을 만들어 매주 함께 야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형 아우로 불렀고 맥주 한 병 없이 직장과 아이들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옆 동네 유치원 아빠들을 보면서,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 아빠들은 아이를 픽업하러 가서 애먼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분명 아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김금희가 쓴 소설 ‘체스의 모든 것’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소설가는 이기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이기는 사람,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상태로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이라고 썼는데, 나는 아빠 야구단을 보며 부끄러움은 ‘함께 해야’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제였다. 유치원 마치고 들르는 놀이터에서 내 옆 벤치에 할머니 한 분이 앉으셨다. 아이와 같은 반에 있는 손자를 매일 픽업하러 오시는 할머니셨다. 힐끗 보고 눈인사를 드리고, 다시 책을 보는 척하다가 처음으로 할머니가 계신 벤치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을 함께 기다렸다. 함께 부끄러움을 이겨보려고 말이다.


갈려면, 갈아주세요. by 잡문가

갈려면, "갈아주세요"


 지난해였던 것 같다. 대구 동성로와 삼덕동의 공사장 펜스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낙서를 그린 ‘범인’을 경찰이 쫓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공사장 펜스에 A4 용지로 인쇄된 그림을 붙였다고 경찰이 쫓기 시작한 것일까? 

 

 나는 실제로 이 ‘낙서’를 보지 못했지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찾았다. ‘범인’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에다 눈에는 ‘please’, 입에는 ‘grind’라는 문구를 붙여두었다. “Please grind”, 직역하면 “갈아주세요”라는 말일 텐데 ‘범인’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나는 “갈아달라”는 말을 맥락에 따라서 땅을 파서 뒤집는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고, 직책이나 위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Please grind”라는 말은 대통령 자신이 “뒤집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고, 이 ‘낙서’ 작가가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대통령을 “바꿔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범인’은 강력 접착제로 이 그림을 공공 시설물에 붙이고 뿌렸다는 이유로 재물손괴죄라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낙서’를 강력 본드로 붙인 ‘범인’은 이 작품의 완성을 경찰이나 구청 직원이 본드로 단단히 붙은 이 ‘낙서’를 벽에서 떼어 내기 위해 스크래퍼로 ‘갈아내서’ 대통령의 얼굴이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복권을 긁어내듯 “갈아주세요”라고 적힌 파피에 콜레를 열심히 ‘긁고’, ‘뒤집으면’ 과연 그 얼굴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대통령의 탄력 있는 얼굴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자, 그러면 대통령의 얼굴을 모독하고, 감히 ‘용안’을 무엄하게 훼손한 자는 누구라고 해야 할까. 이 ‘낙서’를 그리고 붙인 ‘범인’일까? 아니면 이 ‘낙서’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의 얼굴’을 갈아내고 스프레이를 뿌린 ‘공무원’일까?


 국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결의하는 광경을 보면서 새삼 이 ‘낙서’가 생각났다. 국회의장이 탄핵 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순간 “갈아주세요”라는 말의 이중적 의미가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갈려면 먼저 갈아내야 한다. 즉, 바꾸려면 뒤집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그 순간 ‘뒤집어주세요’와 ‘바꿔주세요’, 두 가지 의미의 “갈아주세요”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하면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말하자면 예술이야말로 끊임없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현실을 비판하여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준다. 그렇다면 이 ‘낙서’도 단지 낙서일 뿐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예술의 힘으로 동성로에 임한 작은 ‘예언’이었던 것이 아닐까? (20161213 매일신문에 쓴 글)


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는 아니다 by 잡문가

<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는 아니다>

- 폭력시위/평화시위라는 이분법에 대해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연일 보도로 나오고 있다. 이 정부가 이런 일까지 했단 말인가.. 기가 막힌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며칠 전에도 놀라운 보도를 접했다. 청와대 유력 인사가 최순실이 자주 가는 성형외과의 중동진출을 타진해달라는 요청을 한 컨설팅 업체에 했었는데, 이 업체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 요청을 반려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컨설팅 업체 사장이 운영하는 회사를 포함해 일가족,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 모두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 서른 명도 되지 않은 회사였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은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공사로 해외 근무 중이던 동생은 국내로 들어와야 했다. 이 업체 사장이 일을 반려한 이후 이 일을 관할했던 조원동 수석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청와대가 이렇게 세심하게 한 개인의 사익을 챙겨주려 노력했고, 찌질하게 권력을 이용해 시민 한 사람을 괴롭혔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나는 이 업체 사장과 일가족들이 느꼈을 분노에 대해 생각했다. 이들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한 가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온다고 느낄 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아마 국가 조직의 위세에 공포심을 느꼈겠지만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든 무게의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억울함은 분노를 낳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폐쇄가 비선에 의한 즉흥적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개성공단 사업주들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군사적 이유도, 아니 그보다 더 졸렬한 정치적 이유도 아닌 비전문가 집단이 하룻밤 사이에 두고 내린 결정 때문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은 뉴스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업을 팽개치고 삭발까지 하게 만든, 조용한 마을을 분열시킨 주범인 사드도 비선의 결정이었고 거기에 무기상까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의 기분은 또 어떨까?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당원과 당직자들의 기분은? 헌법재판소에서의 옥신각신은 ‘연극’에 불과했고, 비선에 의해 짜여진 각본에 의해 해산되었다는 것을 듣고 그들이 느꼈을 감정은 나와 같은 것이었을까? 무엇보다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 비선에 의해 국정이 마비되어 버린 탓에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유족들은 어떤 기분일까.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이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폭력시위/평화시위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시위에 나온 대중들의 분노의 질과 수준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JTBC와 한겨레에 보도된 믿을 수 없는 뉴스에 느낀 허탈감과 상실감에 기초한 분노와 세월호 유족들과 개성공단 사업주들이 느끼는 억울함에 기초한 분노는 질적으로 다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분노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의한 피해는 간접적인 경우에서부터 직접적인 경우까지 광범위한 만큼 분노의 질과 폭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가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평! 화! 시! 위!’라는 외침, ‘평화시위가 아니라면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는 믿음, ‘시위에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판단, 그런 외침, 믿음, 판단은 그저 그것이 체제 내화의 결과여서거나 폭력시위에 대한 강박증적 거부의 증상이여서가 아니라 ‘평화시위라는 미명으로’ 다양한 분노의 수준을 단선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억울한 사람들에게 그 억울함을 견디도록, 분노한 사람에게 그 분노를 억누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적’이다. 따라서 ‘비폭력’이 이데올로기화되면 비폭력은 전도된 폭력으로 그 사회의 가장 억울한 자를 억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폭력시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시위에는 여러 종류의 분노를 가진 사람의 다양한 전선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시위를 위해 광장에 모인 대중들이 그 과정에서 서로의 분노에 대해 공감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믿는다.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시위만을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각자의 분노가 자유롭게 시위에서 표출되고,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할 실마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광장에서의 논의가 진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각자의 분노, 억울함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폭력 평화 시위가 어쩌면 JTBC뉴스를 시청하고 분노한 사람들의 이해와 감정표출 방법만을 대변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비폭력도 전략이고 역사적으로 ‘맥락’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폭력도 전략일 수 있다. 단순한 치기와는 구분해야겠지만, 만약 세월호 유족과 성주군민들이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기로 한다면 나는 말릴 마음이 전혀 없거니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동참할 것이다. 꼭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도 레비나스 말을 빌리자면,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일은 목숨을 건 도약이다. 지금 폭력 시위/평화 시위를 두고 벌어지는 토론은 우리가 타자에 대해 어디까지 응답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폭력이야말로 신화적 폭력을 중지시키는 신적 폭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어느 누구도 단순한 치기로 폭력을 일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철두철미 강박적 자기 검열로 “평! 화! 시! 위!”라고만 외치지 않을 것이다. 외신과 언론으로부터 칭찬받고 스스로도 자부할만한 일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이 시위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시위란 그 자체로 이미 폭력적인 것이다. 시위는 사회를 중지시키고, 에너지가 분출되고, 단지 모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시위를 통해 공유지식이 형성되면 모인 사람들의 뇌 속에서 집단적 연대가 생겨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면 그것만으로 폭력이 된다. 하지만 뇌의 전기 신호 조차도 똑같은 강도로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느낀 분노만이 유일한 분노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었고, 꿈을 상실했고, 가족이 다쳤고, 아이가 죽었다. 국정이 농단되었다는 기막힌 사태에 대한 분노 수준으로는 결단코 치환될 수 없는 일들. 우리는 이런 일에도 비폭력을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억울함에 빗대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억울함을 겪고 있을 이들에 대한 상상력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햄릿에게 참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삼촌의 만행이 드러난 이상 햄릿만이 대문자 질문 -'To be or not to be?'-에 답할 수 있다. 아버지 유령의 명령을 상속할지, 삼촌에게 복수를 할지, 아니면 죽은 듯 없는 사람처럼 살아갈지..햄릿 외에 그 결정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폭력인가 평화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억울하게 죽고, 일자리를 뺏기고, 삶을 빼앗겨버린 이들에게 응답할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내 안의 '최순실' by 잡문가

내 안의 '최순실'

순실한 마음으로 받은 은택

 고전적인 정의 관념은 공허하긴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를 사유할 때 늘 전제가 된다.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정의(dike)가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특권이란 각자가 얻어야 할 몫 이상의 몫을 자신의 지위와 권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용해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위, 권한,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 '의식적인 경우'에만 특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부지불식 간에, 아무런 의식 없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라며 '자기 몫 이상의 몫을 자기의 몫'으로 생각하는 모든 행위와 태도가 '특권'에 해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몫 이상의 몫이 공공의 것일 경우에 '특권'은 공공에 대한 위협으로, 공화국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동향 사람이라고 박근혜를 뽑았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후배를 승진시키는 것, 친분이 있는 관계라면 비판/비평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나 병원에서 내 아이를 받아준 의사라고 좋은 자리에 임명하고, 아버지 어머니 잃고 힘들 때 함께 있어준 사람이라 국정까지 관할하게 하는 것은 양적인 차이라면 몰라도 질적인 차이는 조금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특권을 욕망하는 태도다. 과연 나라면, 만약 내가 정치인이라면, 내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자동차 할부 이자를 0.3%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 것인가? 나는 나와 친분이 있는 작가, 선생님들을 향해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가? 내게 그럴 용기가 없었다는 것은 나 역시 '부지불식' 간에 박근혜와 아는 사이였고, 차은택 혹은 정유라와 아는 사이였다면 내 몫보다 더 많은 몫을 주겠다는 제안을 내 몫으로 생각하고 수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박근혜와 아는 사이라니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학벌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친분주의처럼 무슨 '주의'라는 말을 붙이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는 사적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은 하나의 마음의 습속 같은 것이라서 우리는 모두 조금은 '최순실적'이고 '박근혜적'이다. 특히 대구 경북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불쌍한 공주에 대한 동정'으로 포장된 사이비 윤리 속에 '우리가 남이가' 식의 특권적 이해관계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내가 우리 모두가 최순실이고 특권을 욕망하는 자들이니까 최순실, 박근혜, 차은택에게 면죄부를 줘야 한다는 값싼 대속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유야무야 특권을 향유하고, 특권을 향유하길 바라는 사실상 '공화국의 적대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왕처럼 지위와 권한, 관계를 이용해 내 몫을 넘어서는 몫까지 자신의 몫으로 취하려는 태도와 의식이 공공의 것을 사유화시키고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침식시킨다.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수용소의 포로들 중 작은 특권을 누리던 자들을 '회색지대'에 있던 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죽 0.5리터를 더 얻기 위해 같은 포로들을 배신하고, 조금 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나치에 협력했다. 그것은 포로들 사이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고, 적대의 선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수용소에서까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 자명했던 수용소에서조차 특권을 쫓는 자가 있었다는 것은 작은 특권에 도취되는 것이 인간성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작은 특권에 대해서조차도 두려워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단두대는 공화국을 세우는 효과적인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로틴 떨어지는 소리가 '부지불식' 간에 내 몫을 넘어서는 몫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상기시켰을 것 아닌가.






 철학자 김영민 선생이 <동무론>에서 서늘한 관계를 우정으로 형상화했던 것이 떠오른다. 차갑지도,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기분 좋은 서늘한 관계를 만드는 데 미숙한 우리의 태도가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공동체, 공화국을 사유하는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가 없다면, 아니 의식의 변화를 불러올 대전환이 없다면 제2의 차은택, 제2의 최순실, 제2의 박근혜, 제2의 그 성형외과, 제2의 산부인과는 얼마든지 있다. '순실한 마음으로 권력자와 사귀어 은택을 입은 것'이라 우겼다고 하더라도, 그 순실한 마음, 순실하게 베풀어준 은택 속에서 조용히 사회는 침식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적 일이 하나 떠오른다. 학생회장으로 일할 때다. 성탄절을 기념해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모금을 해달라는 학생과장 선생의 요청에 따라 캠페인을 했고, IMF 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저마다 십시일반 500원, 1000원을 꺼내 놓았다. 그렇게 전교생을 통해 거둔 돈이 50만원 정도가 되었고 예년보다 많은 금액에 학생회 간부들은 성공적이라 환호했다. 그 돈을 학생과장과 2학년이던 후배 부학생회장을 데리고 교장선생님께 전달하러 갔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아버지셨고, 아버지 사업 부도로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돈을 들고 들어가자 교장은 내게 "네가 가져라"고 했다. 당황했지만 그 때 나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돈을 들고 나왔다. 절대 나는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처럼 내가 그 돈을 먹으려고 한 사업이 아니었다. 순실한 마음으로 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조금도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학생회장이고, 교장과 내가 아는 사람이기에 이 돈을 내가 받게 된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다. 나는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 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심지어 내가 받을 권리까지 있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내가 그 돈을 받았다는 것을 그 자리에 있었던 몇 사람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불우이웃돕기로 학생회가 모금한 돈은 학생회장이 가졌다는 것, 어쩌면 그 일이 내가 특권에 길들여지게 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 오래 지나 용서받을 수 있다는 교묘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인할 수 없이, 나 역시 내가 그동안 누리고 있었던 많은 것이 권한을 가진 자의 은택을 순실한 마음으로 받은 것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있고 나서야 뒤늦게 솔직하게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특권에 길들여지게 된 개인적 역사를 마음 속에 숨겨두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역, 학교, 친분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뤄지지 일들이 이뤄지지 않고, 그런 관계를 넘어서 혼자 뭔가를 이룩해내겠다는 것은 무모한 것으로만 취급되기 때문이다. 유행이던 해외 학부 유학이 인기가 없어진 이유가 해외대학의 수준이 낮아져서인가? 대학 수준보다 더 중요한 학벌 때문이지 않은가?


 부디 바라건대 이 사태가 순실한 마음으로 은택을 받는 행위, 그런 은택을 바라는 모든 태도가 공동체에 대한 부인할 수 없이 중대한 범죄이며, 더 나아가 김영란법의 경제적 손실 운운하기 전에, 특권을 욕망하고, 향유하고, 확장시키는 것에 무디고 무딘 마음을 예민하게 만드는 마음의 혁신으로 이어져 김영란 법의 내실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면 한다. 박근혜 하나 하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특권을 가진 자들의 착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줄 기회가 되어야 한다. 라거의 회색지대에 있었던 자들의 종말은 결국 '죽음'이었다. 단두대는 한번으로 충분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명예로운 혁명이 되길, 아둔한 자가 많지 않길 빌 뿐이다.


- 이 글은 본색 소사이어티 영화제 '씨네 노마드 2016' 뒷풀이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으로 이정기씨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수태고지와 방사능의 공통점은? by 잡문가

철학자의 서재 (3) 수태고지와 방사능의 공통점은?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원근법을 뜻하던 ‘코멘수라티오’(commensuratio)라는 말은 ‘측정할 수 있는’,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화에서 원근법이란 거리감을 바탕으로 대상을 조화로운 비례에 따라 표현하는 기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기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5세기에 왜 ‘코멘수라티오’라는 말이 원근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원근법은 인간이 세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등장했다. 15세기, 유럽인들은 더 이상 세계를 측정불가능할 정도로 큰 무한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측정가능한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도제작을 하면서 공간을 재고, 시계를 가지고 시간을 측정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 설계자이자 원근법 발명자인 브루넬레스키가 뛰어난 시계공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과 시계로 공간과 시간을 측정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은 서양미술사를 다룬 여러 책 중에서 내가 특히나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천재 미술사학자였던 다니엘 아라스가 프랑스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했던 강의를 녹취한 내용인데, 그림을 단 한 장도 직접 보여줄 수 없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강연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 놀라운 일도 있다. 그림 한 점 보여주지 못하는 라디오 미술 방송이 프랑스에서는 큰 인기까지 얻은 것이다.




이 책은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두 시점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는데 그 중 하나가 18세기 인상주의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원근법의 등장이다.  다니엘 아라스는 우리가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5세기에 수태고지를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원근법을 사용했던 초기 작품들은 거의 다 수태고지, 즉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성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두스가 말한 것처럼 수태고지는“신이 인간으로, 무한이 유한으로, 비척도가 척도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남자를 알지 전혀 알지 못하는 동정녀가 신의 아들을 잉태하는 신비를 표현하는데는 원근법이 적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할 수 있는 유한한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여러 점의 수태고지에서도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다. 코르토나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433년 경에 그려진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 보면, 천사 뒷 편으로 보이는 방의 커튼과 침대가 지나치게 가깝게 그려져 잘못 그려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1450년 경에 그려진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수태고지의 경우에도 뭔가 모르게 어색하다. 천사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리아가 아주 크게 그려져 있는데다 마리아 뒷 편으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어, 마리아가 이 문을 통과해 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을 사용하는데 기술적으로 미숙했던 것일까? 다니엘 아라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하는 것인데 동정녀의 몸의 신비는 이 모든 측정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프라 안젤라코가 ‘의도적으로’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신비는 원근법으로도, 시계로도 측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프라 안젤리코가 수태고지에서 원근법의 규칙을 따르는 동시에,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한 이유였다.


원근법에 대해 다니엘 아라스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흡사 셜록 홈즈가 현장의 몇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범죄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이 연상된다. 프라 안젤리코는 다니엘 아라스의 추리대로 수태고지를 표현하는데 원근법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는 정말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위반했던 것일까? 알고 지내는 한 저명한 미술사학자에게 견해를 물어보니 그는 프라 안젤리코가 단지 원근법을 표현하는데 미숙했던 것으로 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어느 쪽 의견이 맞는지 천국에 가서 프라 안젤리코에게 물어보기 전까지는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내 생각에는 다니엘 아라스의 접근 방식이 작품의 의미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에서 다니엘 아라스가 보여주는 집요할 정도의 추리 과정을 힘겹게 쫓아가면서 나는 내 나름대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작품의 구석 구석을 살펴보며 표현방식을 살펴본다. 그리고 제목이나 작품 옆의 간략한 설명을 참조하여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확인하고, 내용과 표현 방식이 어떤 논리로 결합되어 있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한다. 언제나 좋은 작품은 작품의 주제를 표현 방식이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 방식이 작품의 주제가 지니는 의미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그의 표현 방식 때문에 단지 해바라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태양과 같은 강렬한 열정까지 그린 것으로 평가 받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사진작가 정주하와 여럿이 함께 쓴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을 읽었다. 정주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으로 폐허가 된 후쿠시마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하고 후쿠시마를 포함한 일본 전역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의 사진에 재현된 후쿠시마는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장소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들도, 산도, 강과 바다도 제목을 보지 않고 사진만 봐서는 방사능에 오염되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정주하의 사진을 보면서 다니엘 아라스의 이 책이 떠올랐다. 





 이제 원근법으로 측정불가능하고 표현불가능한 것은 ‘수태고지’의 신비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신비 대신 또 다른 측정불가능한 것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인간의 삶이 80년 정도 지속된다 할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측정가능한 것일까?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수백년, 수만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넘어서 있다. 방사능의 영향은 후쿠시마라는 지역적 범위를 완전히 초과해 어디까지 피해를 주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측정불가능하고 설명불가능한 것을 ‘신비’라고 한다면 우리는 ‘수태고지의 신비’를 ‘방사능의 신비’로 대체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도 역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정주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넘어서는 방사능의 파괴력을 보여주고자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 장면을 찍는 대신 방사능 유출 이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는 후쿠시마의 모습만 찾아서 촬영했던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거나 구태의연한 예술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거장인 까닭은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신비를 보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척도 자체가 없는 방사능의 신비를 보이게 만든 정주하의 작품도 분명 예술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와 같은 신비가 도처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 아닐까? 미세먼지가 불러오는 피해는 측정 가능한 것일까? 미세먼지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매일 같이 나와도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를 열고, 아이들은 미세먼지를 힘껏 들이마시며 축구를 하고, 공사장 인부는 마스크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미세먼지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 피해는 언제 나타나게 될까? 월성과 고리 원전이 가까운 경주에 지진이 일어 났다고 하는데 방사능의 신비가 우리와 상관 없는 이웃 나라의 이야기이기만 한 것일까? 수태고지도, 방사능도, 미세먼지도 원근법적 질서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원근법적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표현불가능한 것은 이제 “구원의 신비”가 아니라 “파멸의 신비”다. 영혼의 구원 대신 안락만을 구원으로 믿었던 우리에게 방사능은 생명 대신 죽음을 고지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을 수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뤄어지도록 하소서”라고 답했다. 방사능이 우리에게 ‘죽음’을 잉태할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원근법을 넘어서는 신비’, 즉 모든 척도를 넘어서는 위험 앞에서 이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해기사 협회 잡지, 해바라기 10월호에 쓴 글


아빠의 자책육아 - 살림살이의 지루함 by bonsec

살림살이의 지루함 (2016.10.21 한국일보에 쓴 글)

아이 엄마의 출산 휴가가 끝이 났다. 이제 낮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책을 읽어 주거나, 잠시 산책을 하고, 목욕을 시킨다.

아이가 자는 동안은 젖병을 씻어 소독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기 전 널었던 빨래를 가져와 개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고, 쌓여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밥을 짓고 요리를 한다.

글로 쓰면 이렇게 매끄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매끄럽지 않다. 설거지하고 뒤돌아서면 조금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머그컵이 집안 곳곳에 있다. 다시 설거지한다. 뒤늦게 아이 유치원 가방에서 간식통을 발견하면 다시 설거지한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해야 겨우 설거지가 끝난다. 세탁실도 하루 평균 10번은 넘게 드나들어야 한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녀온 후 벗어둔 옷을 세탁실에 가져다 둔다. 욕실 수건에 냄새가 나서 세탁실로 다시 갔다. 백일이 지난 아이가 입은 옷은 따로 세탁하기 위해 세탁실로 다시 간다.

살림살이가 이토록 지루한 반복이었을까. 나는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 “컵 없어?” “빨아야 할 것 없어?”라고 물었던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이 엄마처럼 설거지하기 전에 먼저 각 방과 거실을 살피고 빈 그릇과 컵을 먼저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는다면 이렇게 몇 차례나 설거지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빨랫감도 미리 챙겨 둔다면 몇 번만 세탁실에 들어가도 충분할 것이다. 말하자면 내게 그런 요령이 없었던 것인데, 요령이 없기 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말일 것이다. 나는 내가 쓴 컵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만으로도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방마다 들어가 빈 컵을 챙겨올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집안 살림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나 자신만 생각할 뿐 전체를 보는 시야가 부족했던 것이다. 살림하기 전에는 살림은 그냥 되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나 많은 디테일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처럼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일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 엄마와 크게 다퉜다. 내가 외출한 사이 집에 들어온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 대뜸 화부터 냈다. 내가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은 채 나갔고, 끓여둔 국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 모두 상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고의로 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혼이 나야 하는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같이 성을 냈다. ‘신경 좀 써 달라’는 아이 엄마의 말에 화를 내다 얼마 전에 한 잡지와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기자는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 내게 “그러면 집안 살림에는 얼마나 동참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육아에 동참하는 것으로 살림에 동참하고 있고, 설거지나 청소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집안 살림은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돈을 벌어다 주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살림은 노동인 반면에 살림을 빼고 아이와 놀기만 하는 일은 내게는 하나의 취미 생활에 불과하다는 것은 최근에나 와서야 깨달은 것이다.

조지 소로우는 ‘월든’에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은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 잘하는 살림만이 아니라 죽은 것을 되살아나게 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기르고 만들고 나누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지켜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어주는 것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은 오직 지루한 살림살이뿐이라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다. 오늘은 설거지하기 전에 집안부터 둘러봐야지. 내 빨래를 넣기 전에 아이 빨랫감은 없는지도 봐야겠다. 시장에 가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아이 엄마에게 물어봐야지. “마트 갈 건데 필요한 것은 없어?”.


정보를 버리기, 책을 읽어버리기 by bonsec

철학자의 서재 (2) 정보를 버리기,  책을 읽어버리기

-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한 주에 한 번 지역 라디오 방송에 나가 책을 소개하고 있다. 책 한 권을 정해 진행자와 15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아마도 이 방송의 주청취자는 운전 중인 이들일텐데, 이들이 복잡한 교통상황을 읽어가며 도로를 누비면서 동시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책 소개에도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가는 프로그램의 작가는 항상 내게 ‘좀 더 쉬운 책’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한다. 책 소개도 쉬워야 하고, 소개하는 책도 쉬워야 한다. 물론 나 역시 쉽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 방송에 나가 소개했던 책은 서경식 선생의 <내 서재 속 고전>이라는 책이었다. 작가와 PD는 책이 어려운 편이기는 했지만 소개는 쉽게 해서 다행이라고 피드백을 해줬지만, 다음 방송부터 소개해 줬으면 하고 예로 든 책은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 받을 용기>와 같은 책이었다.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베스트셀러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에세이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라디오의 청취자들이 쉬운 책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누군가 소개까지 하며 알려주지 않더라도 이미 다 아는 유명한 책이나 예비적인 준비가 없어도 읽을 수 있는 쉬운 책들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방송에서 소개하고 싶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취자들이 항상 쉬운 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 쪽이다. 조심성이 없는 비교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기 있는 최신가요보다 바흐의 음악을 어렵게 느낀다. 하지만 바흐의 음악을 듣는 것은 최신가요를 듣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지 않는가. 쉬운 책도 당연히 좋은 책일 수 있지만, 쉬운 만큼 사실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신문에 쓰는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칼럼이 신문에 실리고 나면 '지나치게 철학적이다'라는 평을 한번은 듣게 된다. 여기서 ‘철학적’이라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 담당 기자가 ‘어렵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일 뿐이다. 얼마 전, 한 신문사에 원고를 보내자 이번에도 기자는 '너무 철학적'이라고 했다. 사실 내가 보낸 원고의 글감이었던 황현산 선생의 <우물에서 하늘보기>는 내가 쓴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결코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 시화(詩話)들은 일간지에 선생이 4000자 분량으로 두 주에 한 번씩 1년여간 연재했던 글이다. 


그러니까 소위 ‘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 이미 탄탄한 독자층이 확보되어 있는 논객이나 작가, 직업적으로 어려운 말을 해도 좋다고 암묵적인 허락을 받은 경우라 할 수 있는 교수나 변호사, 평론가들이라면 굳이 글을 쉽게 쓰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쓰는 글에 앞서 있는 그들 존재가 이미 독자들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 내가 글을 쉽게 써야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나는 그런 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현학적으로 쓰지 않는다. 단지 30대 남성, 지방 거주자이자, 독립연구자라는 내 위치에서 보이는 세계를 드러내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며 겪게 되는 어려움을 글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이다. 나는 가능한 한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문장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의 부족 탓이 크겠지만, 어렵다는 반응을 만날 때마다 나는 내 글의 주제가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 변명해왔다. 왜냐하면 읽는 사람이 가진 생각이나 관점과 일치하는 글이라면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읽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훈처럼 쉬운 표현으로 빼어난 문장을 직조해 사람들의 통념을 깨트리는 글쓰기는 나 같은 범부가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내가 독백의 방에 갇힌 이유는 어려운 글을 쓸 ‘자격’도 없는 주제에 어려운 글을 썼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 길고 어려운 글을 마음과 시간을 내어 읽으려는 독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쓴 사사키 아타루에 따르면,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을 단지 정보를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 어려운 글은 금방 손에서 놓아 버리고 만다. 그러나 사사키에 따르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기 위해서 온갖 ‘정보’를 주는 것을 버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다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관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영화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듣는 것을 그만두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만, 음악활동도 그만두었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잡지 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스포츠 관람도 그만두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담배도 끊었습니다. ...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하는 말밖에 듣지 않고, 친구가 권하는 것밖에 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정보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정보를 모으는 이유는 정보를 따라 살기 위해서다. 어느 사이트에 가면 최신 스마트폰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어느 지역에 부동산 투자를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 어느 회사의 주식을 사면 재미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정보를 알게 되면 우리는 정보의 명령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 결혼을 위해 중요한 것은 어느 새 사랑이 아니라 결혼정보가 되었고, 교육에서도 중요한 것은 배움이 아니라 입시정보가 되었다.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려면, 어떤 정보도 어려워서는 안되고, 어떤 명령도 복잡해서는 안된다. 정보로 쓰여진 글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광고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사키 아타루에 따르면 책 읽기란 정보를 끌어모으는 것을 그만두고, ‘책을 읽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냥 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와 같은 느낌으로 읽는 것이야말로 책 읽기라는 것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불러온 혁명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루터가 철저히 성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마호메트가 이슬람 세계의 문을 연 것도 책 읽기와 무관하지 않다. 마호메트가 천사로부터 받은 첫 계시는 바로 “읽어라”였다. 문맹이었던 마호메트에게 책은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책을 읽어버리면 자신이 미치던지, 세상이 미치던지 둘 중 하나가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철저히 책을 읽고 또 읽어서 책이 그려 보이는 세계상이 세계에 대한 ‘잣대’로 서면 그때 바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삶도 단순하지 않고, 폭력적인 단순화를 하지 않는 한 진실한 책이 쉬운 글로 쓰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글이 어렵고 복잡하게 된 것은 글재주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깊이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세계는 단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의 윤리는 쉬운 주제를 쉬운 글로 쓰는 것에 있지 않다. 어렵고 복잡한 글을 견뎌줄 수 있는 독자의 존재가 글쓰기를 윤리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려운 책이라 포기하지 말고, 책을 읽어버리자. 반복해서, 읽고 또 읽자. 루터는 성서를 읽었고, 번역했고, 많은 책을 썼고, 수없이 반복했다. 결국 혁명은 책을 읽어버리면서 시작되었다.  


김덕희, 낫이 짖을 때,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by bonsec

오늘은 김덕희의 '낫이 짖을 때'를 읽었다. 
김덕희 작가는 이 소설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근래 읽은 작품 장 가장 좋았다.
고백하자면, 이 작품을 손에 집어들었을 때 작품 제목을 '낫이 짖을 때'가 아니라 '낮이 짖을 때'로 잘못 읽고서, 대낮의 대지의 부르짖음을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최근에 친구의 소개로 Julien Mauve (http://www.julienmauve.com)라는 작가의 밤과 빛에 대한 사진을 보고 난 직후였던 탓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낮'이 아니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할 때의 그 낫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작품의 문제 의식은 다양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내게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에 대한 것이었다. 기역자를 낫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 대한, 그래서 글을 읽는 것과 글쓰기에 대한, 글자를 의미로부터 끝없이 분리시키는 것에 대한, 무엇보다 오독에 대한 이야기. 마치 낫을 낮으로 읽는 것처럼 말이다.


1. 소설에서 수복의 주인은 자신의 노비인 수복의 이름을 물은 후 한자로 명이 길다는 뜻으로 한번, 명이 짧다는 뜻으로 또 한번, 두번을 써서 의미를 두 개로 갈라 놓는다. 이건 데리다가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분석할 때 ‘he war’가 지닌 의미론적 풍요로움을 언급하는 대목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war'는 영어에서는 전쟁을 뜻하지만 독일어에서는 존재했다는 의미로 데리다는 의미의 복수성에 대한 예로 가져온다. 이 작품에서 ‘수복’이라는 '말'은 그저 노비인 수복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주인은 그것을 바닥에 씀으로 목숨이 짧다는 것으로도, 정반대로 목숨이 길다는 뜻으로 만든다. 수복이라고 부르는 말은 이런 의미상의 차이를 소거시키는데, 음성중심주의는 차이를 소거시킨다는 데리다의 견해, 요컨대 파롤은 발화주체의 동일성을 유지하지만 에크리튀르는 그것을 바로 찢어서 이중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든 기호는 원리적으로 항상 동시에 복수의 언어, 복수의 컨텍스트, 복수의 독해레벨에 속한다. 실제로도 수복의 목숨은 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 주인이 원한다면 목숨을 짧게도, 길게도 만들 수 있는 '노비'의 상태에 있다. 그런 점에서 주인은 수복의 이름을 잘못 쓴 것이 이렇게 한번, 저렇게 한번 정말 정확히 쓴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이 작품에서 수복의 직업은 책을 베껴 쓰는 일, 즉 '필경사'다. 바틀비처럼 ‘I would prefer not to’를 밤낮없이 하다간 수복은 목숨이 붙어 있을 수 없을 것이기에, 수복은 바틀비와는 반대로 주어진 일을 철저하고 성실하게 빈틈 없으리만큼 정확히 수행한다. 그런데, 이 필경이라는 일, 책을 모사하고, 따라쓰고, 베껴쓰는 일의 끝은 이상하리만큼 파국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만큼은 바틀비와 공통적이다. 바틀비는 무수한 반복적 작업과 모방으로 모든 것을 거부하기에 이르고, 수복은 무수한 반복적 작업과 모방으로 글을 완전히 의미로부터, 또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리는데까지 이른다. 즉 반복은 이상하게도 원심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어떤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내몬다. 이 작품에서 반복의 끝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이 반복되는 것이다.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말은 수복의 말인지, 주인의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 되풀이(불)가능성에 대한 장면처럼 읽힌다.















3. '낫이 짖을 때' 라는 제목은 수복의 말에서 온 것이다. 흙에 그린 낫으로는 지푸라기 하나 벨 수 없고, 흙에 그린 개가 도둑을 쫓아내기 위해 짖을 수는 없다는 수복의 말은 글의 무력함을 항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낮으로 그린 개, 그러니까 글자는 짖을 수는 없을 지언정 개보다 훨씬 더 강하다. 작품 곳곳에서 글의 힘을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수복의 아비는 글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라 배워서는 안된다고 몇번을 거듭해 말한다. 본래 양반 가문이었던 수복의 집안을 노비가 된 것도 글 때문이고, 붉은 도포를 입은 문하생이 매질을 당한 것도 글 때문이다. 글은 소 한 필, 쌀 열가마니 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수복은 글쓰기가 아닌 글을 그리지만, 만약 수복이 글쓰기가 시작된다면 글쓰기는 많은 것을 바꿔 놓게 될 것이다. 에크리튀르, In-scription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본은 정본을 파괴시키지만, 정본보다 이본들이 더 큰 진실을 담게 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정본은 오직 현전적인 주체, 지금 이곳에 있는 주체와 결부되어 있지만, 베껴써진 이본은 ‘자기컨텍스트와의 단절력’이 자리잡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이를 두고 ‘씌어진 문자는 이야기된 소리와 다르고, 그것을 발화한 주체의 부재, 극단적인 경우 죽은 후에도 계속 남는다’, ‘에크리튀르는 항상 주체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기에 자유롭게 인용되고 해석될 수 있다’고 한 문장도 함께 떠오른다.


4. 작품을 읽으며, 정확히 수복과 수복의 주인을 보며,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내게 그런 걸 묻고 있다. 나는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원심력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한 반복적 회전 운동이 내게 있는 것일까? 아마도 아직은, 어쩌면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낫을 들고 쓴 글쓰기를 상상하게 된다. 낫은 쓰거나 말할 수 없고, 짖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낫으로 그려진 글이야말로 붓으로 쓰여진 글보다 훨씬 더 크게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글이 될 수도 있다. 


 "양반들은 그 낫으로 도둑의 목을 베고 그 개를 앞세워 사냥을 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일 줄 아느냐. 그 낫이 짖기 시작하고 그 개가 논두렁에 뛰어들어 추수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오래전 네 증조부 때처럼 말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단서를 삼아 이 작품에 나온 수복의 주인을 수복의 다른 자아라 생각해본다면 정사에서 누락된 사사를 기록해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주인의 뜻, 수복의 증조부의 의지는 날카로운 낫이 짖을 때의 모습, 혁명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라는 문장은 'I would prefer not to'에 비견할만한 문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는 말의 조건인 힘을 가진 자가 그려내는 글의 세계를 거부하는 말, 그 말이 바로 이 말이지 않을까. ‘난 글을 읽을 줄 모른다’. 수복은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그린다’.


5. 지금 쓰는 이 글은 이 작품을 제대로 베낀 것일까? 나는 문맹인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데리다로 이 작품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이 작품에 대한 배반이 아닐까? 이 소설을 제대로 그리지 않고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 타는 사람이 쓴 시집, 시인이 쓴 철학책이 가능하다면? by bonsec

배 타는 사람이 쓴 시집, 시인이 쓴 철학책이 가능하다면?
_이광수, 최희철의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됐다. 어떤 내용이라도 좋으니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읽었거나 갖고 있는 책들 중에서 감명 깊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 담당자의 주문이다.
‘철학자’라니?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쓴 책 중에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이 있지만 나 자신을 ‘철학자’로 누군가에게 소개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내 책의 제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제목은 『인문 육아』 내지 『오이디푸스의 일기』였다. 하지만 출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출판사는 마크 롤렌즈라는 미국의 분석철학자가 늑대를 키우며 쓴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크 롤렌즈는 어린 늑대를 분양 받아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했고 그 과정을 솜씨 좋게 철학적으로 해명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책을 쓰면서 『철학자와 늑대』를 의식하고 있었다. 마침 어린 아이를 홀로 맡아 키우며 육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는 무모하게도 『철학자와 늑대』에서 마크 롤렌즈가 제시한 시간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욕망이나 자유에 대한 입장과 대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원고가 완성되자 『철학자와 늑대』를 소개한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고 결국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 책에 ‘철학자'라는 호칭이 붙은 것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철학자’로 불러주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마크 롤렌즈처럼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은 책을 쓴 적도 없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철학자’라는 호칭을 붙여둔 제목을 제안해주자 한편으로 그간 어줍잖게라도 해왔던 사유를 인정 받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목에 ‘철학자’가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철학자’라 불리울 수 있는 자격은 자신만의 독자적 사유를 해오고 있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철학자’는 철학교수를 의미한다. 만약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면 아직 ‘철학연구자’에 불과한 자가 ‘철학자’를 참칭하는 것이 된다.
‘철학자’가 철학교수와 동의어가 된 것은 사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오래된 일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철학자’와 철학교수가 동의어가 된 것은 칸트 이후에 성립한 것이다. 기껏해야 독일에서 근대 대학이 성립한 이후이기 때문에 300년도 채 되지 않은 등식인 것이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 등을 남긴 근대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이지만 철학교수는 아니었다. 『에티카』와 『신학정치론』과 같은 철학사의 빛나는 책을 남긴 스피노자는 생업은 안경공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역시 철학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연구자로 불렸을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이 이들과 같은 위대한 철학적 성취를 해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철학자가 아니면서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이 연재를 하게 된 것에 대한 변명이라 해두자.




‘서재’라는 말에도 ‘철학자’라는 말만큼이나 거부감이 있다. 서경식은 『내 서재 속 고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서재’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부득이할 경우에도 기껏 ‘공부방’ 정도의 말로 대신한다. “서재가 좁아 책 둘 곳이 없어서 난처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날 경우, 예전의 나는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요즘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는 아차, 싶은 때가 있다. 그것은 ‘서재’라는 말 자체에 수치에 가까운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서경식이 ‘서재’라는 말에 수치심을 느낀 이유는 ‘서재’라는 말을 ‘부르주아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솟는 주거비용으로 몸을 누일 방 한 칸조차 구하는 것도 힘겨운 많은 청년들에게 따로 책을 보관하는 방인 ‘서재’를 갖는다는 것은 아마 그저 사치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대학 시절 서재는커녕 좁은 하숙방에는 가진 책을 꽂아둘 공간도 없었다. 게다가 책이 많으면 하숙방을 옮길 때 이사비용이 곱절로 들었다. 그 때문에 하숙집에서 누군가 이사 나가는 날은 책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이사비용을 아끼려 누군가 책을 버리고 가면 다른 학생들은 가만히 기다렸다 읽어보지 못했던 책을 골라 왔다. 내 좁은 하숙방에도 그렇게 모은 책과 사다 모은 책이 켜켜이 쌓였다. 만약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내 책들도 아마도 버려졌을 것이다. 그나마 방이 두 칸이라도 있는 신혼집을 지방에 구한 덕분에 그 때 하숙방에 쌓여 있던 책들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책들도 지금껏 내 서재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그럴싸한 ‘서재’를 갖췄다고 하기 힘들지만 부끄러운 기분을 누르고 이 연재를 수락한 데에는 나 나름의 읽는 방법을 통해 읽어온 책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철학자의 서재’라는 이 부담스러운 제목에 대해서는 뭐라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 정작 중요한 책 이야기를 여태 미뤄두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의 가장 가까운 오른 편 책장에는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의 책이 꽂혀 있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이를테면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라마톨로지』,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 『차이와 반복』 같은 책들이다. 보통 이 책장에는 가장 자주 보는 저자의 책이나 최근에 가장 관심이 있는 주제를 꽂아두는 편이다. 최근에는 서양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케네스 클락의 『그림을 본다는 것』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그 왼편 책장에는 철학사의 고전에 해당하는 책들이 꽂혀 있다.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같은 고대철학서에서부터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과 같은 칸트의 책까지 주로 대학과 대학원 시절 읽었던 책들이 주를 이룬다. 그 맞은 편으로는 내 전공분야인 현상학 관련 책들, 하이데거와 후설이 쓴 독일어 원서들이 꽂혀 있다. 철학 외의 분야 중 내 서재에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은 신학서적, 다음으로는 문학책이다. 근래에는 아즈마 히로키, 사사키 아타루와 같은 젊은 일본 사상가들이 쓴 책들을 많이 읽는다.

최근 내가 가장 즐겨 읽은 책을 한권 꼽자면 이광수와 최희철이 쓴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이다. 이광수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두고 이광수와 최희철이 글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광수가 인도 여행 후 찍은 본인의 사진에 대해 “내가 보는 세계 안에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나온다”고 쓰면, 최희철은 “그걸 ‘푸른 인연’이라 말하고 싶다. 삶이 끝없이 중첩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바람고 파도를 만드는 것, 그 파도가 우리 삶의 귀퉁이를 적시는 것”이라 화답한다. 두 중년의 대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사진 한 장을 두고 길러내는 두 사람의 깊은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책에서 사진으로 묻는 이광수는 본래 ‘사진가’가 아니고, 철학으로 답하는 최희철은 본래 ‘철학자’가 아니다. 이광수는 인도 역사를 전공한 대학 교수이며, 최희철은 이광수의 소개를 빌자면, 부산수산대학 어업과를 졸업하여 “배타는 일과 닭 잡아 파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몇 권의 시집을 쓴 ‘철학하는 시인’이다. 최희철은 최근에도 배를 타고 저 멀리 멕시코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도 ‘푸른 인연’이라는 말도 배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만들어낸 생각해냈을 것이다.

시인이 쓴 철학책, 역사가가 만든 사진집, 배 타고 닭 잡아 파는 사람이 쓴 시집이 가능하다면, 철학교수가 아닌 철학자가 ‘철학자의 서재’라는 제목의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태여 나는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를 운운하며 ‘탈주’나 ‘-되기’와 같은 개념들은 여기서 쓰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곧 다시 쓰게 될 것이다.

- 한국해기사협회 매거진 <해바라기> 8월호에 실었습니다.




공부의 지배 by 철학본색

공부의 지배 (2016.8.9 매일신문에 쓴 글)


직업의 영향은 매우 강한 것이라서 직업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알프레드 가드너가 쓴 <모자 철학>에는 세상과 사람들을 오직 머리의 크기로만 판단하는 모자 장수가 등장한다. 모자 장수의 직업적 경험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머리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머리가 더 크고, 그래서 더 큰 모자를 쓴다. 모자 장수는 존스가 7인치 반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하고, 스미스가 6과 4분의 3인치를 쓴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한다. 제한된 직업적 경험이 제한된 시각을 낳은 것이다.


나 역시도 제한된 시각 탓에 작은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적이 있다. 이제 막 제대한 사촌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모두 저축해서 기회가 되면 유학을 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아들이 얼른 생활 전선에 나서 자립했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지금 자립하면 더 멀리 나가기 힘드니 공부에 집중하게 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작은아버지는 내게 다그쳐 물으셨다. “네가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네가 생각하는 공부만 공부로 아느냐?” “생활 전선에서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냐?”


작은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내가 보고 겪은 경험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치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큰 모자를 쓴다고 믿었던 모자 장수처럼 말이다. 존스가 7인치 반 크기의 모자를 쓴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공부를 많이 하면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와 유학을 다녀오고, 학위를 받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서사는 좋은 일자리가 대졸자보다 많았던 1980년대라면 몰라도 박사 실업자와 이십 대 태반이 백수라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공부 외의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직업의 지배를 받고 있던 모자 장수만큼이나 철저히 공부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대학을 만들어 뷰티학과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온 사회가 ‘공부의 지배’ 속에 있지 않으면 가능한 발상이 아니다. 뷰티학과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생활 전선과 직업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가능할 수 있는 ‘배움’을 ‘공부 산업’의 선봉인 대학이 학과라는 ‘공부 제도’ 속에서 획일화하는 것이 바로 공부의 지배가 의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 바깥에 학교가 있고, 배움 바깥에 배움이 있고, 삶 바깥에 삶이 있다. 공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공부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공부 바깥에 있는 공부로 나가는 것이다.


아빠의 자책육아 - 가해자의 엄마, 가해자의 아들 by 철학본색

육아분투기, 가해자의 엄마, 가해자의 아들 (2016.8.12 한국일보에 쓴 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를 쓴 수 클리볼드는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졸업반 학생이던 딜런은 다른 친구 하나와 함께 별다른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고, 이후 이 사건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을 포함해 미국 내의 총기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수는 사건이 일어난 후 딜런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를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딜런은 언제나 수에게 “우리 햇살, 착한 아이, 늘 내가 좋은 엄마라고 느끼게 해주던 아이”였다. 실제로 그랬다. 딜런은 졸업 후 애리조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평소 행실도 발라 그런 낌새가 없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수 클리볼드도 보통의 엄마들보다 더 잘 준비된 엄마였다. 수는 타고나기를 걱정이 많은 편이라 늘 아이들의 건강을 챙겼고, 좋은 버릇을 가르치려 유난을 떠는 편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석사 학위를 취득할 때는 아동발달과 아동심리를 공부했고, 취직한 뒤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딜런은 왜 그런 비참한 사건을 일으킨 것일까. 아들을 잃고 가해자의 엄마가 된 후 17년 동안 수는 어떻게 이 비극의 어둠 속에서 살아왔을까.

이 책을 읽으며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또 다른 책이 생각났다. 이 책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는 반대로, 가해자 아빠를 둔 아들이 쓴 책이다. 저자인 잭 이브라힘은 1990년 11월 뉴욕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어난 메이르 카하네 암살 사건의 범인이자 세계무역센터 폭발 테러를 공모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엘사이드 노사이르의 아들이다. 잭은 사건이 있고 난 후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 수차례 전학을 거듭했고, 학교에서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땅딸막하고,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얻어맞고 다녔다. 아버지가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내내 차별을 당해야 했던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이브라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후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비극의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는 편견 속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증오를 세뇌받으며 살아온 삶과 단절하고 이제는 공감이 증오보다는 힘이 세다고, 공감을 퍼뜨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런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이브라힘 가족이 겪었던 일에 비해 클리볼드 가족의 사정이 나은 점이 있다면 사려 깊은 이웃들이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잭은 아버지가 체포된 이후로 살고 있던 집을 떠나야 했지만, 클리볼드의 가족은 지금도 딜런이 살던 그 집에 살고 있다. 많은 위협과 협박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심지어 몇몇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말, 특히 범죄자 살인자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하느님이 축복하시길”.

며칠 전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유치원에 자주 오세요, 아이 엄마는 무슨 일 하세요, 집은 어디세요?”. 나는 왜 이런 질문들이 두려웠던 것일까. 부족한 내 사교성 탓일 수도 있지만, 공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잭은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고, 수는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내 아들은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고 썼다. 공감은 다른 이들은 물론 심지어는 내 아이까지도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엄마들을 “맘충”으로 부르고, 장애인 교육 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사회였다면 클리볼드 가족은 동네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내 아버지도, 내 아이도 아니다.


누구를 위한 오독인가 by 철학본색

누구를 위한 오독인가


지금 보니 박유하 교수 본인이 자기 책을 오독하고 있는 것 같다. 업자만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제국의 위안부>에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박유하 교수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업자도 책임이 있다고 썼다고 한다. 자신의 책을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센다 가코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주장이라고 써놓고선 이제와 자신의 해석이었다고 한다. 센다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오독이라고 일갈해놓고선 그건 자신의 해석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오독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역시나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길윤형 기자가 쓴 글처럼 나도 누구보다 한일화해를 바라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위안부에게는 소녀상민으로 표현되지 않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모두 제국의 위안부의 논점에 대한 부분이고 공감하는 편이다. 심지어 법적 책임 묻기 곤란하다는 주장도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이해한다. 아마 박교수 책을 지지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그런 취지에 공감하는 쪽일 것이다. 이들은 박교수 비판자들이 1) 책도 읽지 않고 선입견에 근거하고 있거나 2) 읽었더라도 '동지적 관계'와 같은 오해가 많을 수 있는 말들을 오해 내지 오독했거나 3) 박교수가 재판 중인데도 비판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박교수의 책을 옹호한다. 문제는 이들이 2)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을 1)이라고 비판하고, 설령 2)에 해당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도 자기와 다르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2)라고 비판하는 것에 있다. 나는 책도 읽었고, 고진을 번역한 박유하 교수에게 오히려 호감이 있었던 편이었고, 동지적 관계도 맥락상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박교수의 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런 종류의 비판 대신 박교수의 책과 박교수의 독해를 문제삼는 부분들에 대해서 좀 더 응답해야 한다. 정영환 선생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같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불확실한 논거와 다양한 오류가 해명되지 않으면, 특히나 '동족으로서의 군인'과 같은 표현에 대해서와 같은 부분들, 어쩌면 의도적인 곡해로 읽히는, 만약 무의식적인 오독이라면 더 무서운 부분들에 대한 해명이 없다면 주장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정영환 선생이 제기하는 질문,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업자만이' 법적 책임이 있다고 썼다가 이제와서 '업자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말을 바ㅂ꾸면, 제국의 위안부가 누구를 위한 화해를 말하는 책인지 분명하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아래의 포스팅 참고) 잘못된 근거로 화해를 하면 피해자는 2차 가해를 입게 된다. 할머니들은 바로 그 점을 문제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박유하교수의 기자간담회(7월11일)에서의 반박에 대하여 (정영환 교수의 응답)

https://www.facebook.com/notes/%EC%A0%95%EC%98%81%ED%99%98/%EB%B0%95%EC%9C%A0%ED%95%98%EA%B5%90%EC%88%98%EC%9D%98-%EA%B8%B0%EC%9E%90%EA%B0%84%EB%8B%B4%ED%9A%8C7%EC%9B%9411%EC%9D%BC%EC%97%90%EC%84%9C%EC%9D%98-%EB%B0%98%EB%B0%95%EC%97%90-%EB%8C%80%ED%95%98%EC%97%AC/1731933963744595


박 타는 날은 온다 by 철학본색

박 타는 날은 온다


 “놀부는 왜 이렇게 심술이 난 걸까?”. <흥부전>을 읽으며 물었더니 아이는 “흥부가 자꾸 밥을 달라고 하잖아”라고 했다. 그리고는 “밥은 어차피 놀부꺼니까 놀부 마음대로 하면 돼”라고 했다. 일곱 살 아이의 영악한 대답이다. 잠자코 있던 아이 엄마도 맞장구를 쳤다. “맞네, 놀부가 가진 것은 놀부 마음대로 하는 게 맞지”. 그러니까 그 누구도 놀부의 재산처분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나도 질 수 없었다. “놀부가 부모님 재산을 독차지해서 부자가 된 거잖아. 그러니까 흥부도 밥을 달라고 할 권리가 있어”. 그러자 아이는 “아니야. 원래 흥부가 태어나기 전에는 놀부 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전부 다 놀부거야”라고 했다. “무슨 말이야?”. “아빠, 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아빠가 사준 장난감은 다 내꺼라고 했지? 아빠가 내 장난감은 동생한테 안줘도 된다고 했지? 놀부도 그런거야”.




 그러니까 나는 흥부의 관점에서, 아이는 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은 것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육아서에는 늦둥이가 태어나면 큰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기 쉽기 때문에 큰 아이만의 영역을 만들어 주라고 한다. 내 경우에는 동생과 나이차가 한 살 밖에 나지 않아서인지 그런 소외감을 느꼈던 적은 없었는데, 내 아이는 동생과 여섯 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시차(視差)가 생기게 된다. 즉 동생에게 형은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있어온 존재이지만, 큰 아이는 동생을 전에 없었다 나타나서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놀부 심보란 형의 초조함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놀부는 대책 없이 아이만 많이 낳은 흥부에 비해 경제적 합리성이 있었고, 흥부가 자기 주제도 모른 채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는 수고를 하는 것에 비해 놀부는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된다면 제비 다리까지도 부러뜨릴만큼 과감함도 갖춘 인물이었다. 교육부 공무원이란 자가 “민중은 개돼지라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되고, 신분 격차가 존재하는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라 했다는데, 이런 합리성과 과감함은 제 집에 찾아온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정부와 개인, 국민과 난민, 부자와 빈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 사이에 시차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 시차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사회는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놀부 심보가 보편화되게 된다. 하지만 다리 부러진 제비도 날아오를 날이 있고, 입에 박씨를 물고 돌아올 날이 있다. 좁은 자기 중심주의를 넘어 내 형제를, 가난한 자를, 심지어 동물까지도 환대하라는 <흥부전>의 정신을 망각한 개인과 사회에게 남은 것은 실렁실렁 박 타는 날 맛보게 될 호된 몽둥이 뿐일지도 모른다. 박 타는 날은 온다.


내일 자 매일신문에 쓴 글이다. 아이에게 동생이 생긴지 이제 3주가 되었다. 나와 내 여동생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아이는 동생과 여섯 살 차이가 난다. 나이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와 <흥부전>을 읽으며 놀부와 흥부의 갈등은 나이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동생이 내 의식에서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동생 없이 일 년을 먼저 살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내 의식 속에서 동생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그러니 동생을 배제하고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결혼 전까지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어머니, 아버지 뿐 아니라 장난감, 책, 방까지도 모두 동생과 나눠 써야 한다는 당위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놀부가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는 이미 소유 관념을 가지고 있다. 내 아이는 자기만의 장난감, 엄마, 아빠, 방, 악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동생은 자기 세계의 침범자가 되는 것이다. 나와 내 동생 사이에는 없었던 시차가 아이와 동생 사이에는 발생하게 된다. 내 아이는 흥부전을 읽으며 흥부는 놀부에 비해 나이가 많이 어릴 것이라 예상했다. 아이 관점에서는 그러니 흥부가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나는 흥부전을 읽으며 흥부와 놀부는 나이차가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식의 읽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아이를 보면서 든 생각이 발단이 되었지만, 놀부와 흥부는 강자와 약자의 은유일 것이다. 부자들, 엘리트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서민들이 자기 세계의 침범자로 여겨 자신들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들에게 서민들은 내 세계를 끝없이 위협하고, 밥을 달라고 하고, 울고 떼쓰는 존재, 개돼지 같은 존재로 보일 것이다. 요컨대 놀부의 관점에서 흥부는 아이만 무식하게 낳는 동물적인 삶을 사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흥부전은 아주 정치적인 이야기가 된다. 제비가 물고온 박씨는 놀부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민초들이 꿈꾸는 희망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비가 물고 온 박씨는 놀부의 질서와 놀부 세계의 구조 밖의 어떤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구조 바깥을 구조 내부로 기입하는 것이 데리다에게는 '글쓰기'(in-scription)라면 흥부전에서의 기입 방식은 명주실로 부러진 제비의 다리를 묶어주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흥부전에서 제비의 다리가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도 하는데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여하간 제비, 인간 아닌 것, 동물의 세계, 질서와 구조 밖의 것이 박으로 표상되는 어떤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 그리고 (흥부와 가난한 자의 표상으로서의) 제비는 제 다리를 부러뜨린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흥부전>은 그런 점에서 종말론적인 이야기고, 혁명에 대한 고대가 있는 이야기고, 동물이든 동생이든 가난한 자든 타자를 환대하라는 무거운 요구를 담은 이야기이지, 단지 착한 사람 복 받는다는 소위 '착한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과 자연은 모두 평등하다는 존재론적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둘째를 낳은 후 큰 아이가 겪을 심리적 상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아 육아서들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 큰 아이만의 독자적인 공간, 소유물을 제공해주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걸 읽으며 아마 놀부 부모가 흥부에게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재산은 모두 놀부 네 것이야. 흥부는 침범할 수 없어'. 지혜로운 대처 방식인 줄 몰라도 그 때문에 놀부는 그 때문에 동생을 짐으로 여기고, 제비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만 삼았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여하간, 박 타는 날은 온다. 실렁실렁 박을 타며 잭팟을 기대하는 이들도 예기치 못한 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장정일, 박유하, 정영환. 모든 읽기는 어느 정도 오독이다. by 철학본색

장정일, 박유하, 정영환. 모든 읽기는 어느 정도 오독이다.



정영환 선생의 입국 불허를 반대한다. 모든 조선적이 한국에 입국하게 해달라.

박유하 선생이 아래의 글을 써서 올렸다고 하는데, 놀라운 내용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심지어 이 글을 쓴 후에는 자신은 정영환을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를 비판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 글에서 정영환에 대한 비판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박유하 선생은 이번에도 오독했다고 할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자들을 모두 오독했다고 비판하는 것과 다를 바 전혀 없다. 오독이야 했을 것이다. 누구나 오독을 하고 모든 읽기는 어느 정도는 오독이니까. 하지만 이토록 오독한 사람을 많이 생산해내는 글을 쓰기란 섬세한 오독 발생의 계기와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 없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독은 그 계기와 장치에 무심하게 걸려넘어진 결과일까, 그 계기와 장치를 모조리 드러내는 방식일까? 정영환 선생이 이 글에서 말하는 바, 나로서는 아래의 가져온 부분이 정부 비판보다는 정영환 비판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린 글로 읽힌다. 어떤가? 이번에도 오독인가? 이렇게 오독이 되도록 글을 쓴 의도가 뭔가? 이 글에서 정영환에 대한 비판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독에 걸려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나? 


박유하 선생의 글 중에서1.

"정영환씨는 한국과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입국이 불허된 사람이다. 국가가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관리하는 일에 나는 비판적이지만, 이들의 담론이 한일화해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내비치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영환의 두려움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빼고(그의 표현에 따르면 망각하고) 화해할까 봐 두려워하기보다는, 재일교포사회와 일본과의, 혹은 북한과 일본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누구를 위한 불화인가」 2016년 6월 28일)"


박유하 선생의 글 중에서2.

"나는 국적을 갖지 않는 것을 택한 조선적 분들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정점에 작가 김석범 선생이 있고, 내가 ‘조선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도 그 분을 통해서였다.

내가 언급한 건 오로지 ‘한국정부의 판단’이다. 쓰여 있지 않는 비난을 굳이 읽어내 비난하는 이들의 행위는, 위안부는 원래 일본인이 대상이었고 국가에 의해 이동당한 가난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조선인 위안부는 가라유키상의 후예’라고 썼더니 ‘그건 매춘부라는 뜻!’이라면서 판금[삭제 요구를 가리킬 것이다]을 요구한 지원단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2016년 6월 29일)"

한국일보에 쓴 장정일 선생의 글도 사실 확인을 중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는 자신의 논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http://www.hankookilbo.com/v/a4d05cd008d94fa6adf0edfb23e92c46) 아마 장정일 선생의 칼럼에서 산케이 신문 보도 관련 부분은 2016년 1월 18일자 기사에 나온 "慰安婦は強制連行された「性奴隷」であるとして、異論を唱えにくい韓国言論界にあって、同書は多様な境遇にあった慰安婦の実態を踏まえた冷静な議論を求め、日韓の相互理解を深めるために書かれたものだ。" 부분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 기사의 원문 (http://www.sankei.com/world/news/160118/wor1601180005-n1.html)을 보면 산케이가 이 책을 강제동원설을 전제로 한 '한국 정부의 반민주적 작태 vs 언론 표현 자유의 표상으로서의 박유하'라는 구도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케이 기사 검색을 해보면 이런 구도는 산케이가 계속적으로 <제국의 위안부>를 다루는 전형적인 논지이며, 한국 정부가 이런 식의 공정한 목소리를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탄압하고 있다는 보도로 박유하 선생을 그리고 있다. 소녀상이 다양한 위안부를 표상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박유하 선생을 한국 민주화의 투사로 그리는 산케이신문에 되돌려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산케이가 노골적인 격찬을 한 것은 아닌지 몰라도 이런 대비 구도를 끊임 없이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박유하 선생에 대한 우회적 격찬 아닌가. (어디선가 굳이 이런 점을 읽어내 비판하는 나는 지원단체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장정일 선생은 산케이의 이런 보도 방식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산케이가 한 말이라고는 '한일 상호 이해 지향' 정도로 언급하는 것을 보니 왜 이를 모른 척하는지 의문스럽다. 한겨레를 비판하는 섬세함이 어째서 산케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그 뿐 아니라 장정일 선생의 칼럼에서 30만명 위안부 총수를 추산하는 한겨레의 한 기사에 대한 선생의 비판도 유사 실증주의다. 위안부 총수는 공식 문서가 없어 어떤 견해든 잠정적일 수밖에 없고 40만까지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실증적이지 않은 책은 괜찮고, 실증적이지 않은 신문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건가.


박유하 선생이 내일 정영환 선생의 책에 대해 반론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한다고 한다. 부디 정영환 선생의 정치적 활동 내지 재일 지식인들의 책동 운운 음모론 내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을 읽으면 풀릴 오해 내지 책을 읽었다면 의도적, 비의도적 오독 내지 왜곡 내지 재판 중에 있는 자신에 대한 비판은 자신을 불리하게 할 뿐이라는 궤변 내지 학술적 논의는 재판 전에 했었어야 하고 자기는 재판 준비 중이라 여기에 모두 대응할 수 없다는 식의 되풀이되는 주술 같은 그간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기자회견이 아닌 차분한 실증적 논박이 제시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후 박유하 선생의 분석과 논지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마 나와 의견이 가장 다른 부분은 '법적 책임'과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박유하 선생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내가 동의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지인데 이런 부분은 전망의 차이니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책에 제기된 여러 실증적 오류에 대해서는 적절한 응답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주제에, 공부중독 by 철학본색

몇 번 쓴 적이 있는데 지난 명절에 사촌동생의 진로를 두고 작은 아버지와 의견이 충돌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스물 셋인 동생에게 계속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지금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모두 모으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모은 돈으로 계속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작은 아버지는 의견이 달랐다. 직접 생활 전선에서 부닥치며 배우는 것도 많고,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용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니 작은 아버지가 느끼시기에 다소 예의 없는 태도로, 하지만 동생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담아, 답답한 마음으로 지금 자립시키면 더 멀리 못나간다고, 용돈 주시고 돈을 모으고 공부를 시켜라고 권했다. 작은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며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내 노후를 책임을 질 것이냐?", "우리 가족이 합의한 이야기를 네가 무슨 권리로 흔드냐?", "네가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네가 생각하는 공부만 공부로 아느냐? 이렇게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냐?".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은 아버지 생각은 틀렸고,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왔다.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확실히 더 멀리까지 가는 것이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내 경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하지현 선생은 노후 자금 털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꼬집는다. 엄기호 선생님은 배움에는 정말 여러 종류가 있다고 강조하신다. 두 선생님이 만약 나와 작은 아버지의 대화를 들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을 것이다. '당신이야말로 공부중독에 빠져 있다고, 당신의 경험치를 일반화하고 있다고, 개인의 다양한 삶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공부에 대한 물신화된 믿음으로 사촌동생에게까지 공부라는 마약을 권하고 있었던 것이었던지도 모른다. 내 작은 아버지는 거기에 비하자면 공부라는 마약, 이 책의 표현으로 하자면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존재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스스로의 삶은 선택하고 계신 것이니까.

이 책은 나 자신이 공부중독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진단할 수 있는 킷처럼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아이에게도 공부중독을 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공부만 답이라는 도그마적 해결방식에 집착하며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이었던지도 모른다. 책의 조언대로, 또 내 작은 아버지가 하시듯이 아이에게 많은 돈을 쓰는 것 대신 내 노후자금이나 마련해두는 것이 훨씬 더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약을 계속 사들일 수 있을만큼 판돈이 많지 않고, 지금은 건강도 좋지 않아 이대로가면 아이에게 얼마가지 않아 짐만 될 것 같다. 비싼 교육 대신 싼 교육, 노후대비를 위한 현실적 대책이 내 계급 수준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보며 나는 내 계급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착각 속에서 나와 내 아이와 심지어 사촌동생까지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한가지 더, 하지현 선생님은 내 책을 상당히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하셨지만, 이미 다 아는 이야기만 하는 좀 지루한 책이라는 취지의 평을 트위터에서 하셨던 적이 있다. 나는 하지현 선생님의 독자로서 하지현 선생님의 책은 상당히 재미있고, 아주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라 평하고 싶다. 그리고, 내 책에 대해서는 변명할 말이 별로 없다. 아마도 하지현 선생님과 같은 높은 안목을 가지신 분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실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책에는 두 분의 대화가 아주 경쾌하게 이뤄져 있고, 정보도 풍부해 배울 점이 많다. 두분이 제시하는 해결책, 여러 사람이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면 결국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낙관적인 면도 있지만 어쩌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 책의 제목인 <공부중독>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소위 '교육 자체'를 문제시 삼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빠의 자책육아 - 왜 전부 다 멸종으로 끝나 by 철학본색

왜 전부 다 멸종으로 끝나?


얼마 전 아이와 읽던 책의 한 부분이다. “지금은 늑대가 너무 많이 죽어서 늑대를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몇몇 사람들은 늑대가 멸종될까 봐 걱정했어요”. 아이에게 이 부분을 읽어주자 아이는 “또 멸종이야?”라며 고개를 들었다. “또 멸종이라니?”, 내가 되묻자 아이는 “말리 코끼리도 원래 1000마리나 됐는데 지금은 400마리도 안 남았대. 지구가 더워져서. 지난 번에 읽었던 책에는 바다 거북도 바다에 기름이 퍼져서 많이 죽었대. 왜 전부 다 멸종으로 끝나?”.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이와 함께 읽었던 동식물 관련 책은 언제나 멸종으로 끝난다. 동물은 위기에 처해있고, 자연은 더러워졌고, 지구는 병이 들었다.

"아빠, 왜 전부 멸종으로 끝나?"


영국에 사는 데이비드 본드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자연’에 대한 이런 이미지들을 바꿔보고 싶어했다. 자신의 두 아이가 스마트 기기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아이들이 자연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가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아이들에게 자연은 따분하고, 지저분하고, 썩어가는 공간이다. 그는 자신의 두 아이 뿐 아니라 영국의 대다수 아이들이 가진 이런 생각을 바꿔보기 위해 ‘Wild Thing Project’를 시작했다. 우선 그는 폭스바겐과 같은 대기업의 브랜드를 구축해온 마이클 울프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브랜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사람들이 어떤 디젤 자동차에 대해 ‘클린 디젤’, ‘친환경’, ‘경제성’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연비를 속였음’, ‘배출가스 측정을 조작함’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자연’이란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과학자와 환경보호활동가, 작가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연은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 자연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야생(wild)은 의지(will)의 원천이다. 데이비드가 ‘자연’을 새로운 이미지로 브랜드화하고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나가기 시작하자 ‘자연’이라는 말에서 따분함, 지루함, 불결함을 떠올렸던 아이들도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졌다.


영국 아이들에게도 ‘자연’은 인기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단지 쥐와 뱀과 거미가 있는 무서운 곳이고, 너무 춥고 더워 불편하고, 해야 할 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지루하고, 신발에 진흙이 묻기도 하고 동물이 썩어가는 것도 보이는 더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데이비드 본드처럼 사람들이 ‘자연’이라는 브랜드를 잘 구축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이와 다르다. 우리 아이들이 가진 자연에 대해 갖는 무서움, 불편함, 지루함, 더러움을 마이크 울프와 같은 브랜드 대가가 와서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꿔준다고 해도 아이는 자연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 자연으로 나가도록 허락할 수가 없다. 며칠 전 아이가 쓴 그림일기를 살펴보니 날씨란에 맑음, 흐림, 비, 눈, 안개가 적힌 날은 며칠되지 않았다. 대신 ‘미세먼지’가 적힌 날은 절반이 넘는다. 날씨란에 미세먼지라고 적은 날, 아이는 심심하고, 답답하고, 짜증났고, 집에서 낮잠을 잤다고 썼다. ‘야생’은 고사하고 마음껏 달리지도 못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어떤 ‘의지’를 품고 이 사회에서 자라날 수 있을까.



배출가스 측정을 조작한 자동차 회사는 조작 사실이 드러난 직후 대규모 할인을 실시해 조작이 알려지기 전보다 판매량이 더 늘었다고 한다. 배출가스 측정을 조작했다는 것이 드러나자 소비자들이 ‘미세먼지’, ‘부도덕’, ‘범죄’ 등 부정적 이미지를 대신해 ‘합리적 가격’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도록 재빠르고 영리하게 브랜드를 관리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상아를 얻으려 코끼리를 죽이고, 가죽을 얻으려 늑대를 밀렵하는 것과 몇 푼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런 회사의 자동차를 사는 것은 얼마나 다른 일일까? 동물들에게만 닥친 일이 아니다. 지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온갖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일보 오늘자에 쓴 글이다. 분량이 너무 많았는지, 글의 마지막 문단은 잘린 채로 기사가 나갔다. 아쉽다. 

여기에 원글을 옮겨둔다. 관심있는 분들 두 글 모두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043033ac2dcd4ce6b6eba657842a8570



아빠의 자책육아 - 8분음표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by 철학본색

8분음표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얼마 전 아이에게 ‘음표의 길이’를 가르치면서 있었던 일이다. 먼저 아이에게 4/4 박자라면 한 마디에 4분음표(♩)가 네 개가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러니까 4분음표 하나는 곧 한 박을 의미한다. 만약 4/4 박자에서 8분음표(♪)를 사용하고 싶다면 한 박은 8분음표 두 개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줬다. 4/4박자에서 8분음표는 반 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6/8 박자에서는 한마디에 8분음표가 6개 들어가기 때문에 한 박은 8분음표로 표시한다는 것을 알려주자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아이는 왜 똑같이 생긴 8분음표(♪)가 어떤 경우에는 ‘반 박’이 되고, 다른 경우에는 ‘한 박’이 되냐고 물어 왔다. “아빠, 숫자 1은 언제나 1이고 알파벳 A는 언제나 A인데, 왜 8분음표는 한 박도 되고 반 박도 되는거야?”. 4/4 박자에서는 분모에 4가 있으니까 4분음표가 한 박이 되고, 6/8 박자에서는 분모에 8이 있으니까 8분음표가 한 박이 된다고도 설명해 보았고, 박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8분음표의 길이도 달라진다고 해보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다시 되물어왔다. “아빠, 나는 할아버지와 있어도 나고, 엄마하고 있어도 나잖아. 그런데 왜 8분음표는 바뀌는거야?”.


<음의 길이를 측정하려면 자가 필요하지 않나요?>

아이의 느린 이해가 답답했지만 ‘음표의 길이’라는 개념은 나도 아이 또래일 때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긴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음표의 길이’를 묻는 문제가 왜 음악 시간에 나오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길이’를 재는 문제라면 응당 수학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이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기억 나는 문제가 있다. 음표를 길이에 따라 나열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온음표 < 2분음표 < 8분음표(♪) < 잇단음표(♬)’ 순으로 적었다. 자로 길이를 쟀을 때 잇단음표가 가장 길었기 때문이다. 온음표가 네 박을 표시하기 때문에 이 중 가장 길다는 것은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러니 초등학생 때 나는 8분음표가 한 박인지 반 박인지 몰랐던 것은 물론, 어떤 물체가 아닌 소리인 ‘음’에도 길이라는 것이 있다는 관념 자체가 없었다.

내가 ‘길이’의 의미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 한 것이나, 아이가 ‘8분음표’의 의미가 박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 한 것이나 어찌보면 같은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말, 같은 사람, 같은 존재라도 다른 위치에 놓이면 전혀 다른 의미,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비슷한 문제는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도 나타난다. 이 대화편에는 ‘파르마콘’이라는 말이 잠깐 언급되는데 이 말은 약국 문 앞에 가면 볼 수 있는 ‘pharmacy’의 어원이다. 그런데 파르마콘은 ‘치료’를 의미하는 동시에 ‘독약’이라는 상반되는 뜻을 갖는다. 그래서 번역자들은 문맥에 따라 이 말을 때로는 ‘치료’로, 때로는 ‘독약’으로 번역하는데 언뜻 생각해보면 하나의 말에 이렇게 상반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약을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8분음표가 한 박도 되고, 반 박도 될 수 있다는 것은 파르마콘이 약도 되고, 독도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아이의 질문대로 아이는 할아버지와 있을 때와 엄마와 있을 때, 혹은 유치원에 있을 때와 집에 있을 때 항상 똑같은 아이일까? 8분음표의 의미도, 길이의 의미도, 파르마콘의 의미도 상황과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면 아이의 존재도 누구와 있는지에 따라, 어디에 갔는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중인격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는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일관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다중적인 인격을 갖는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더 유리하다고 한다. 나 역시 아이 엄마와 있을 때, 아버지와 있을 때, 혹은 동료나 모르는 사람과 있을 때 대화 내용은 물론 행동하는 방식, 말투까지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하나의 나’인 동시에 ‘여러 종류의 나’이기도 하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는 할아버지에게는 응석을 부리지만, 아빠에게는 잘 그러지 않는다. 8분음표가 반 박이기도 한 박이기도 한 것이 모순이 아닌 것처럼, 할아버지와 아빠의 다른 육아 원칙도 아이에게는 전혀 모순적이지 않을 수 있다. 아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할아버지와 있을 때와 아빠와 있을 때 너는 모두 같은 하나의 너야.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밥도 먹여 달라고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러지 않지?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게 되지? 8분음표도 똑같아. 8분음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박자에 따라서 한 박도 되고 반 박도 되는거야”.

파르마콘에서 독을 빼내고 약만 남기려는 시도, 즉 세상과 사람을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보려고 하는 것은 플라톤 철학만큼이나 오래된 인간의 습관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정답을 주입시키고, 외우게 하고, 꿈도 하나만 꾸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다 가치 있는 교육은 그런 사고의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변하지 않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가르쳐주자. 장난감 자동차는 실제의 자동차가 아니기에 ‘가짜’라고 믿는 아이에게 실제로 눈 앞에 존재하는 이 장난감이 왜 가짜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여전히 ‘같은 나’라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키도 크고 생각도 달라졌는데 어째서 ‘같은 나’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바로 그 때 “여러 종류의 나”가 서로 섞이면서 아이는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존재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리라. 단번에 파악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존재로 말이다.


키자니아 7월호에 쓴 글이다.
얼마 전에 파트너가 시킨대로 아이와 음악 이론 책을 공부하다가 생겼던 일을 <키자니아> 7월호에 썼다. 음의 길이를 이해 못하는 것까지 닮은 아이를 보며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생긴다. 음에도 길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그 떄는 왜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웠을까? 나는 8분 음표의 길이가 박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 존재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썼지만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소타자든 대타자든 아무 것도 잃고 싶지 않고, 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 바램을 가지고 있다.




유럽식 보편주의라는 낡은 배 by 철학본색

<유럽식 보편주의라는 낡은 배>

테세우스는 하반신은 소이며 상반신은 인간의 몸을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기 위해 크레타섬으로 모험을 떠났다. 미노타우로스를 제압한 후 그는 이제 고향으로 귀환해야 한다. 편의상 테세우스가 탄 배는 부품(P) 10개로만 만들어진 것이라 하자. 배가 부서지면 파손된 부품을 미리 준비해 둔 새 것으로 교체한다. 테세우스는 T0 시점에 출발했고, T1 시점에서 파손된 P1 부품을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했다. T2, T3를 지나 T10 시점에 이르면서 P10 부품까지 완전히 교체했다. 그렇다면, T0에 테세우스가 탄 배와 T10에 테세우스가 탄 배는 같은 배라고 해야 할까, 다른 배라고 해야 할까? 이것이 ‘테세우스의 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패러독스다.

먼저 T0의 배와 T10의 배는 ‘다른 배’라고 대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 시점의 배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배의 부품이 교체되는 T1부터 이미 다른 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지금도 나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가 새로 만들어지는 등 구성요소가 계속 바뀌고 있으니 나 역시 계속 다른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인가?”하고 반박하면 이들은 놀랍게도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사실 이 문제에서 두 시점의 배가 ‘다른 배’라고 주장하는 것이 ‘같은 배’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같은 부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같은 배라고 말할 수 없다고 끝까지 우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품 하나가 달라진다고 해서 그 배가 전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T0와 T10의 배를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어떤 이들은 이 배의 부품이 달라지긴 했지만 두 시점에서 테세우스의 귀환이라는 ‘동일한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같은 배로 볼 수 있는 근거로 든다. 하지만 만약 돌아오는 길에 테세우스가 죽거나 테세우스가 만약 귀환하지 않고 다시 크레타섬으로 갔다면? 이들은 목표가 달라지는 경우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또 어떤 이는 테세우스의 배를 구성하는 부품은 매 시점마다 바뀌고 있지만 ‘테세우스가 탄 배의 이데아’가 모든 시점의 배가 같은 배라는 것을 보증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선원 중 한 사람이 아테네로 도착 후 자기 집 앞마당에서 교체된 낡은 부품을 조립해 배를 건조했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와 선원이 만든 배 중 어느 것이 ‘테세우스가 탄 배의 이데아’에 더 가까운 배인지 이들은 설명하지 못한다.



‘T0와 T10 시점의 테세우스의 배는 같은 배다’라는 생각이 우리의 직관에 부합하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왜일까? 현대철학자들은 우리가 이 문제에서 ‘운동’을 무시했기 때문에 패러독스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테세우스의 배는 T1, T2 각각에서 정지된 채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T1에서 T2로 이동하는 과정 혹은 T1에서부터 T10으로 운동하는 과정에 존재한다. 즉, 배는 운동하고 변화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가 운동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T1에서 T2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그 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테세우스의 배’의 자리에 ‘인권’, ‘자유’를 넣어보자.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시기의 인권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인권이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인권’과 ‘중동-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권’은 정말 같은 인권일까? 지금 ‘영국의 기득권층이 지지하는 자유’와 ‘난민들이 찾아나선 자유’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이 모든 질문에 대해 같은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에서 봤듯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데아도, 동일한 목표도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동안 유럽 세계는 자신들을 인권,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의 대변자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난민 문제에 대해 유럽 세계가 보여준 태도는 그들의 인권이 단지 자신들의 권력과 정책을 정당화하는 레토릭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영국은 그동안 의회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해왔지만 이번 브렉시트 결정은 그들의 민주주의가 단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처럼 유럽인들이 인권,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워 추구한 목표는 제3세계인들이 추구해온 목표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는 낡아버린 부품이 되어 버린걸까?

테세우스의 배가 운동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인권, 민주주의 역시 정지해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도 끊임 없이 운동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낡아버린 부품은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이러한 가치들을 지배해온 ‘유럽 중심주의’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테세우스의 배의 낡은 부품을 교체하듯 낡아빠진 유럽식 보편주의를 변화시켜야 하는 역사적 책임이 주어져 있다. 즉 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유럽식 보편주의’를 중동-아시아-아프리카-난민을 모두 포함하는 ‘새로운 보편주의’로 대체해야 할 책임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점에 와 있는 것인가? 브렉시트는 낡은 부품이 교체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유럽식 보편주의’라는 낡은 부품을 ‘새로운 보편주의’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민주주의’로 교체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세계화를 ‘새로운 국제주의’로, 이익 추구의 자유를 ‘새로운 자유’로, 난민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인권’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말이다.

대구신문에 쓴 글이다.(2016.6.30)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를 단서로 삼아 브렉시트 이후 인권,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소위 '보편적 가치'의 존립에 대해서 써본 글이다. 정교한 글은 못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브렉시트 이후 보편주의를 회의하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무엇보다 유럽식 보편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주의, 요컨대 월러스틴이 말한 바 보편적 보편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이를 이뤄가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세상은 지금 사이비 보편주의로 가득하지 않은가!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는 보통은 '자아의 아이덴티티' 문제와 관련해 자주 논의된다. 나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베르그송의 관점, 즉 운동성 자체가 동일성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지한다. 운동 자체가 존재라면, 그 존재는 뭔가 '흐린 존재', 운동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자아'에 대해서도, '자유'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모두 '투명한 개념'이 아니라 '흐린 개념'일 수밖에 없다. 오직 흐린 개념을 불투명하게나마 유지시키려는 운동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쓰고 싶었다. 새로운 보편주의라는 흐린 개념을 쓴 것도 그런 이유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글로 옮겨 쓰는 것에는 성공한 것 같지가 않다. 성긴 생각을 거친 글로 표현했지만 섬세하고 눈 밝은 독자들에게는 작은 의미라도 있는 글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오늘자, 한겨레 정의길 기자가 쓴 <브렉시트 긍정적으로 보기>는 내 논지와 연결된다. 물론 훨씬 더 실증적이라 참고할 점이 많다. 일독을 권하며 링크한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0304.html

2016.7.1 추가
정의길 기자의 글을 추천한다고 쓰자, 한 선생님께서 이런 글을 남겨주셨다. 이 기사를 읽으실 분을 위해 옮겨 놓는다.
"정의길씨의 글은 미국 프레임을 강조하다보니 오류(영국에 중동난민이 적다니요. 지금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프랑스 칼레로 모여드는 난민들, 도버해협을 건너는 이들의 에피소드가 영국노동자 심정적 공포의 워천인데)가 있어 아쉽습니다.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주문하며 왜 시라아 내전의 수백만 자국민 학살의 책임을 뭍는 일은 거론하지않는지. 진정 제삼세계인의 인권이나 난민을 고려하는 제안이라면 이 어려운 문제를 먼저 직시하는 것이 옳다고봅니다. 미국과 미국의 하수 영국, 서유럽의 제국주의자 독일이라는 프레임을 관철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 잘 모르겠어요. 이 기자분 유럽 관련 글 읽을 때 자주 드는 생각."

대구신문 링크
http://www.idaegu.co.kr/news.php?code=op03&mode=view&num=201397



책의 서문은 나중에 쓰여진다 by 철학본색

책의 서문은 나중에 쓰여진다


책의 서문은 언제나 책의 다른 모든 부분이 완성된 후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다. 독자는 서문을 가장 먼저 읽게 되지만, 반대로 저자는 서문을 가장 마지막에 쓴다. 그러면 왜 책의 서문은 가장 마지막에 쓰여지는 것일까? 아마도 저자 역시 책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책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서문은 마치 저자가 책이 담고 있는 전체적 내용을 책을 쓰기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사실 그것은 책을 쓴 후 사후적으로 서문을 쓰기에 생겨나는 ‘서문효과’에 불과하다. 자신의 생각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한 미셸 푸코의 말도, 글은 앎과 무지의 경계에서 쓰여진다는 들뢰즈의 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쓰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란 매끄럽고 완벽한 계획 속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는 우연이 연속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쓰기 전 저자 자신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생각이 글쓰기로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모든 글쓰기는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이라는 점에서는 여행과 같다. 그렇다면 서문은 글쓰기라는 여행을 마친 저자가 남긴 여행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이 하나의 위험이 된 사회에서 ‘우연의 여행’을 감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검증이 이뤄진 식당에만 가는 것도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최적화된 경로가 아닌 길로 진입해 헤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여행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 우연히 동행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뭘 먹고, 뭘 타고, 뭘 보고, 어디가서 자야할지는 여행 전에 준비된 매뉴얼에 따라 매끄럽게 이뤄진다. ‘위험’은 피하게 되었지만 ‘모험’은 사라져 버렸다. 이청준은 “소설이란 기껏해야 한 사람이 끝없이 감당해내는 '헤맴'을 적는 일”이라고 썼는데, 매뉴얼을 따라 다녀 아무런 헤맴도 없었던 여행에서 글이 쓰여지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연성은 낭비를 가져오고, 위험을 가져온다고 믿는 사회에서 누군가를 배척하는 문화가 생기는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우연적이고 이질적인 것을 견뎌낼 힘이 미약해진 사회는 엄마들을 ‘맘충’으로 부르고, 성 정체성이 다른 이들을 혐오하고, 난민을 위험하다며 추방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게 된다. ‘위험’은 피하게 되었지만 ‘타자’는 사라져 버렸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우연적인 모든 것에 자신을 개방하는 사회가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문은 한 권의 책이 매끄럽게 보이도록 해주지만, 글로 쓰여질 만한 삶은 계획된 삶이 아니다. 오직 우연에 내맡겨진 삶이다.


<책의 서문은 나중에 쓰여진다>라는 제목으로 매일신문에 쓴 글(2016.6.28)이다. 책의 서문이 나중에 쓰여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데리다도, 사사키 아타루도 쓴 바 있다. 특히 데리다의 경우는 책의 서문이 나중에 쓰여지는 것을 예로 전미래시제와 관련해 그의 시간관을 개진하기도 한다. (물론 해석학자들에게는 익숙한 문제이기도 하다) 매일신문에 쓰는 글은 분량이 1300자 내로 써야 해 그런 이야기는 거의 다루지 못했다. 대신 이번에는 '서문 효과'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원래 한 편의 글은 글쓴이가 글을 쓰면서 만나는 온갖 우연적인/우발적인 생각들을 조직하는 과정인데, 서문은 그런 우연성을 마치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책의 내용 전체가 매끄럽게 쓰여진 것처럼, 책을 쓰기 전부터 저자가 책의 내용을 모두 장악하듯 파악하고 있었고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쓴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그건 단지 서문이 만들어 내는 환상 내지 효과라 할 수밖에 없다. 말에 도취되면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말을 하듯이, 글쓰기 역시 그런 도취의 과정이자 어떤 세계에 사로잡히는 경험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는 글쓰기를 하나의 여행에 비유했지만, 동시에 내 생각을 넘어선 생각을 받아쓴다는 점에서 '계시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문은 계시에 대한 저자의 응답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데리다가 글쓰기를 In-scription이라고 할 때, 텍스트 '안'으로 기입'되는 것은 텍스트 밖의 것, 어떤 미지의 것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현대 철학이 정치신학으로 돌입하는 동기가 여기에서 비롯한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또 같은 이유로 성서가 계시에 의한 받아쓰기의 결과물이라는 신학적 주장의 의미도 재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아빠의 자책 육아 - 아이의 시간, 두 시 by 철학본색

아이의 시간, 두 시


 아이가 세 살 때였던 것 같다. 세 살 아이는 “언제?”라고 물음에 항상 “두 시”라고 답했다. “할아버지는 언제 왔어?”, “밥은 언제 먹었니?”, “아빠 언제 올까?”, 어떤 질문을 해도 언제나 대답은 “두 시”였다. 아이 대답이 웃기기도 했지만 그걸 알고도 매번 묻는 내가 우습기도 했다. 아이가 두 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답했을리 없다. 아마 아빠나 할머니에게 들어서 ‘두 시’라는 것이 ‘언제?’라는 질문에 호응되는 말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겠지만, 세 살 아이에게는 시간 관념, 아니 숫자 관념이 없었다. 하나, 둘도 모르는 아이가 한 시, 두 시를 알 리 없을테니까. 그런데 왜 하필 ‘두 시’였을까? 한 시, 세 시, 네 시, 열두 시 등 다른 시간도 얼마든지 있는데 두 시만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추측건대 아이의 엄마가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이 두 시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보채거나 엄마를 찾곤 하면 나는 습관적으로 “엄마 두 시 되면 온다”고 달래곤 했다. 아이가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했던 말이 아니다. 보채고 우는 아이 앞에서 당황한 내가 스스로를 격려하려고 한 말이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두 시’로 답하는 다른 이유는 찾지 못하겠다. 


 아이 엄마가 미국으로 유학길을 올랐을 때 아이를 미국에 데려 간 적이 있다. 열흘 간의 달콤한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날,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내내 아이도 말이 없었고 아이 엄마도 말이 없었다. 아이도 큰 짐들을 보고 눈치를 채 버린 것일까. 공항에서도 수속을 밟는 내내 엄마에게 안겨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나더러 “아빠 가. 아빠 싫어. 엄마 좋아”라며 응석을 부렸다. 공항 검색대에 길게 늘어진 줄 앞에서 아이에게 “이제 아빠한테 안기자”라고 했다. 뭔가 이해하고 있는 듯 엄마 품에서 내게로 오는 아이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먼저 울고 말았다. 아이 엄마도 곧장 따라 흐느끼기 시작하자 아이가 “엄마… 엄마…”라고 하면서 평소와 다르게 입을 꼭 다물고 울기 시작했다. 아! 지금도 아이의 그때 울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이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수십 번을 되물은 것 같다. 울면서, 달래면서, 파트너에게 손을 흔들면서, 공항 검색대를 빠져나왔다. 얼마 남지 않은 탑승 시간 때문에 탑승구를 향해 아이를 안고 달려가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 만나러 다시 오자. 언제 또 올까?” 이번에도 아이 대답은 “두 시에”였다. 아, 두 시! “응, 우리 두 시에 엄마 보러 다시 오자”. 


 아이에게 두 시는 엄마의 시간이었다. 기다리던 엄마를 만나는 시간, 엄마가 오기로 한 약속의 시간이 ‘두 시’였다. 실제로 엄마가 집에 오는 시간이 정확히 두 시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었다. 다시 엄마를 만나러 미국에 가는 시간도 꼭 두 시일 필요가 없었다. 엄마가 두 시에 오든 세 시에 오든, 아이에게는 엄마가 오는 시간이 바로 ‘두 시’였다. 마치 아침은 여섯 시나 일곱 시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뜰 때 시작되는 것처럼, 아이의 시간도 엄마의 시간에 따라 흘렀고 해가 반드시 뜨는 것처럼 아이와 엄마는 항상 ‘두 시’에 재회했다.


 “댁의 아이가 반에서 좀 처진대요”.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 나갔다가 들은 말이다. 순간 어질했다. 집에 돌아와 일곱 살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야 할까, 이제는 축구 교실에라도 보내고, 노는 것도 ‘뒤처지지 않도록’ 놀이교실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동안 영어도, 수학도 안 가르쳤으니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축구교실 대신 친구들과 축구하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한글 맞춤법도 알게 될테고, 사칙연산 정도는 스스로 해내는 성취감 정도는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뒤처진다고 하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초조한 마음으로 학원을 알아보는 내게 아이 엄마가 말했다. “여보, 지금 좀 뒤처져도 돼. 금방 따라갈거야”. 나는 아이 엄마를 답답하다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자신감을 잃지 않을까? 언제 따라갈 수 있을까?”, 아이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두 시에”,


 아이가 엄마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믿었던 것처럼, 그래서 엄마의 시간, 약속의 시간, ‘두 시’를 기다린 것처럼 나도 아이의 시간을 그렇게 기다려야 한다. 서쪽보다 동쪽에 아침이 먼저 온다고 해서 서쪽에 아침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가 뒤처진다고 해서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서둘러도 아이는 아이의 시간이 되어서야 무서워 오르지 못하던 미끄럼틀 꼭대기에 올라가고, 밀어주지 않으면 타지 못하던 그네를 혼자서 타기 시작하고, 말을 하고, 글을 깨치고, 숫자를 알게 되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의 ‘시간’에 해냈을 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감은 남들보다 빨리 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스스로 해낼 때 생긴다. 어쩌면 나는 ‘뒤처진다’는 말에 그만 불안해져서 조금 빨리 영어를 말하고 셈을 하는 것과 아이의 자부심을 맞바꾸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네 발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떼어 버리고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탄 날, 아이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아빠가 밀어주던 세 발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어느 새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니 아이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베르트 에코는 “신은 달팽이 같다”고 했다. 인간의 타락 이후에 메시아가 오기까지 왜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단 말인가. 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 더딤을 인내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아이의 더딤을 답답해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고, 그러면서도 그 더딤을 기다리려는 초조한 몸부림을 거듭하고... 밤이 아침을 기다리듯,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듯, 나도 그렇게 아이의 때를 기다리리라. ‘두 시’ 아니 ‘세 시’까지라도 말이다.



원근법으로 그려낼 수 없는 신비 by 철학본색

오늘 아이와 근교에서 물놀이를 했다. 날씨는 좋았고, 적당히 무더워 차가운 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즐겁게 멱을 감고 한참을 놀다 제법 추워져 근처 카페로 가서 컵라면을 먹었다. 내일 날씨는 어떤가 찾아보다 오늘 내가 있는 지역의 미세먼지가 상당히 위험한 수준만큼 높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나 맑고, 이렇게 푸르렀는데, 우리는 미세먼지 속에서 실컷 논 셈이 되었다.

다니엘 아라스의 통찰에 빗대어 말해보면,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려고 했다. 프라 안젤리코가 살던 당시에는 신이 그런 존재였겠지만, 지금은 방사능이, 가습기 살충제가, 미세먼지가 바로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리는 전도가 나타나 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써 본 글인데, 내일자 대구신문에 나가게 된다.


원근법으로 그려낼 수 없는 신비

원근법을 뜻하던 ‘코멘수라티오’ (commensuratio)라는 말은 ‘측정할 수 있는’,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화에서 원근법이란 거리감을 바탕으로 대상을 조화로운 비례에 따라 표현하는 기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기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5세기에 왜 ‘코멘수라티오’라는 말이 원근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는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원근법은 인간이 세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등장했다. 15세기, 유럽인들은 더 이상 세계를 측정불가능할 정도로 큰 무한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측정가능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도제작을 하면서 공간을 재고, 시계를 가지고 시간을 측정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 설계자이자 원근법 발명자인 브루넬레스키가 뛰어난 시계공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과 시계로 공간과 시간을 측정하고자 한 것이다.

다니엘 아라스는 우리가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5세기에 수태고지를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원근법을 사용했던 초기 작품들은 거의 다 수태고지, 즉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성서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두스가 말한 것처럼 수태고지는 “무한(신)이 유한(인간)으로, 비척도가 척도로 나타나는 순간”이다. 남자를 알지 전혀 알지 못하는 동정녀가 신의 아들을 잉태하는 신비를 표현하는데는 원근법이 적합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할 수 있는 유한한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코르토나의 수태고지>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여러 점의 수태고지에서도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다. 코르토나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준다. 1433년 경에 그려진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천사 뒷 편으로 보이는 방의 커튼과 침대의 위치가 지나치게 가깝게 그려졌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1450년 경에 그려진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수태고지의 경우에도 천사보다 멀리 있는 마리아가 아주 크게 그려져 있는데다 마리아 뒷 편으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어, 마리아가 이 문을 통과해 방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을 사용하는데 기술적으로 미숙했던 것일까? 다니엘 아라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원근법은 세계를 측정하는 것인데 동정녀의 몸의 신비는 이 모든 측정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프라 안젤라코가 의도적으로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신비는 원근법으로도, 시계로 측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프라 안젤리코가 수태고지에서 원근법의 규칙을 따르는 동시에, 원근법의 규칙을 위반한 이유였다.

이제 원근법으로 측정불가능하고 표현불가능한 것은 ‘수태고지’의 신비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신비 대신 또 다른 측정불가능한 것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인간의 삶이 80년 정도 지속된다 할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측정가능한 것일까?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수백년, 수만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척도를 완전히 넘어서 있다. 방사능의 영향은 후쿠시마라는 지역적 범위를 완전히 초과해 어디까지 피해를 주고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측정불가능하고 설명불가능한 것을 ‘신비’라고 한다면 우리는 ‘수태고지의 신비’를 ‘방사능의 신비’로 대체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옆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원근법으로 그려낼 수 없는 신비는 우리에게도 가득하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200명이 넘고 피해자도 15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전부일리 없다. 자주가는 식당, 병원, 마트, 아이들이 매일 가는 어린이집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면 집계되지 않은 피해가 훨씬 더 클 것이다. 미세먼지가 불러오는 피해는 측정 가능한 것일까? 미세먼지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매일 같이 나와도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를 열고, 아이들은 미세먼지를 힘껏 들이마시며 축구를 하고, 공사장 인부는 마스크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미세먼지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 피해는 언제 나타나게 될까? 방사능도, 가습기 살균제도, 미세먼지도 원근법적 질서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원근법적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표현불가능한 것은 이제 “구원의 신비”가 아니라 “파멸의 신비”다. 영혼의 구원 대신 안락만을 구원으로 믿었던 우리에게 방사능은 생명 대신 죽음을 고지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을 수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뤄어지도록 하소서”라고 답했다. 방사능이 우리에게 ‘죽음’을 잉태할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원근법을 넘어서는 신비’, 즉 모든 척도를 넘어서는 위험 앞에서 이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2016. 6.1 대구신문에 쓴 글


아빠의 자책육아 - 다시 살충제를 뿌리며 by 철학본색

내일 자 한국일보에 실리는 글. <다시 살충제를 뿌리며>.

며칠 전에 에프킬러를 뿌리면서 문득 든 생각을 글로 썼다. 일상은 평온한 듯 보일 뿐 사실은 조금씩은 불안하다. 

이런 호들갑과 유난스러움이 "연대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 육아하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로.


다시 살충제를 뿌리며


 아이 엄마가 유난을 떠는게 싫었다. 몇 달 전에는 샴푸 성분이 체내로 흡수된다는 신문 기사를 읽더니 아직 반이나 남아 있던 샴푸를 버리고 친환경 샴푸로 바꿨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샴푸보다 족히 세 배나 되는 가격이었다. 며칠 전에는 작은 다툼도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니 날벌레가 많아져 집안 곳곳에 살충제를 뿌려 뒀더니 모기보다 더 위험한 것이 살충제라며 구박을 하기에 그만 참지 못하고 “유난 좀 그만 떨어”라고 했던 것이 빌미였다. 별 해가 없으니까 이렇게 팔고 있는 것일텐데, 전문가들이 검증했다고 해도 믿지 않는 아내가 솔직히 가끔은 피곤했다.


 아내의 호들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연말에는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선량계까지 구해왔다. 그리고는 일본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 집안 살림 하나 하나에 선량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가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통관이 된 것이라고 해도 아내의 호들갑을 돌려 세울 수는 없었다. 일본산 피아노부터 측정을 시작해 일본에서 가져온 내 책까지 모두 검사대상이었다. 물론 기준치 이상은커녕 조금의 방사선도 검출해낼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는 식탁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어묵 볶음도 사라졌다. 어묵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전분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어묵 한봉지를 그대로 버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아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 엄마가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전분생산 공장이 그렇게 비위생적이라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의심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지 않을까?   


 위험한 물질을 생산하고 판매해도 공장과 마트는 문닫지 않는다는 것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200명이 훨씬 넘고, 피해자도 1500명이 넘는다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마 집계가 되지 않은 피해 규모도 상당할 것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자주 가는 식당은 물론, 아이와 자주 가는 소아과,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지금 다니는 유치원, 아파트 실내 놀이터와 트렘폴린이 있어 아이가 좋아했던 키즈 카페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지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도가 한창이던 어느 날에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전화를 해볼까 하다 말았다. “그동안 유치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쓴 적 있나요?”. 유난스럽다고, 호들갑 떤다고 비웃을까봐 그만 두기로 했다.


 서경식과 정주하 외 여러 사람이 참여한 대담을 엮은 책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을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 그 누구도 책임 지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후쿠시마는 정부의 주도 하에 완벽하게 컨트롤되고 있다’는 정부의 공공연한 거짓말에 보통의 시민들까지 호응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이 중대사고가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작동하고 있다. 나라와 전문가와 기업은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기는커녕 사실상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게 일상은 계속되고, 아무 일 없는 듯, 유난스럽지 않게, 호들갑 떨지 않고 사람들은 살아가지만 태연한 표정 뒤에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다시 살충제를 뿌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와 샤워를 하고, 로션을 발라 주고, 함께 사과를 먹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살충제를 뿌렸지만 예전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설거지를 하는 중에 뒤편의 성분표시를 꼼꼼하게 읽어봤고 아이 입으로 들어가는 사과를 보며 미처 씻겨 내려가지 않은 농약에 대해 생각했다. 늘 하던대로 아이 몸에 로션을 바르며 TV에서는 내일 미세먼지농도가 높다는 뉴스를 듣는다. 울리히 벡이 현대사회를 “위험 사회”로 부른 것도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유난스러워진 것일까.

아내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간호하며 정부도, 의사도, 회사도 우리를 지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국가와 사회계약을 맺는다는 말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가족의 인터뷰를 보며 아내는 몸을 떨며 울었다. 때로는 유난과 호들갑도 피해자들의 고통과 연대하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 않을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by 철학본색

매일신문에 내일 자로 나가는 글이다. 지면에 담을 수 있는 글보다 길었는지 글 후반부에 마지막 몇 문장이 잘려 버렸다. 아쉽다. 신문사에 보낸 글과 신문사 링크를 같이 붙여둔다.


<오 맙소사,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책 읽기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진정한 책읽기란 정보를 끌어 모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사키 아타루는 정보를 얻기 위한 책읽기를 그만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든 정보와 멀어지기로 결심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다양한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잡지 보는 것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하는 말밖에 듣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가 정보와 멀어지겠다고 결심한 까닭은 정보의 명령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어떤 유용한 정보를 알게 된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 정보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점에서 정보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공부를 하거나, 집을 선택할 때도, 결혼 상대를 찾을 때조차 정보를 모으는 이유는 정보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다. 배움 대신 입시정보가, 내가 살고 싶은 집 대신 부동산 정보가, 사랑 대신 결혼정보가 ‘명령’하는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유용한 정보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지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변화는 정보를 끌어모으는 ‘책읽기’가 아닌 ‘책을 읽어버리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책을 읽어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 권력의 타락이 극에 이르렀을 때 루터가 종교개혁이라는 대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단지 많은 정보를 끌어모았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때 루터의 책읽기는 단지 책을 이해하는 수준의 읽기가 아니다. ‘오 맙소사, 내가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의 느낌에 더 가까운 것이다. 성서를 제대로 읽어버렸을 때 그는 책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이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책을 제대로 읽어버린다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처럼 잘라야 할 것은 세상의 변화를 빌기만 하는 기도하는 연약한 손만이 아니다. 책과 인터넷과 텔레비전, 유명 강사들의 강의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정보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수동적인 자세까지도 잘라야 한다.



얼마 전부터 대구미술관에서 <예술읽기>라는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여느 강의들처럼 어떤 인물이나 이론에 대해 ‘넓고 얕게’ 요약하지 않는다. 단지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토론한다. 어느 한 참가자는 “먹고 사는 문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책을 읽으며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익이 아니라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변화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책을 읽자, 읽어버리자. 목숨을 걸고 읽자. 책이 곧 혁명이다.


직업과 생업 사이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by 철학본색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는 내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내 아이가 세 살 때 아내가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을 때 쓴 것이다. 나는 철학자들이 쓴 어려운 책을 읽을 때보다 아이를 직접 기를 때 철학적 주제인 시간, 언어, 존재, 자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깨닫고 느낀 점을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내고 난 후 독자들이 쓴 리뷰를 보니 ‘이 책이 정말 육아서냐’, ‘우리 어머니들이 이런 철학을 알아서 육아를 잘했던 건 아니다’는 식의 반응이 꽤 많이 있었다. 심지어 ‘육아서를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썼고, 인문학이 유행하는 시류에 편승한 것 같다’는 평도 있었다. 억울한 점도 있었지만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나는 육아서를 쓰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를 키우는 일’을 ‘나’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싶었다.


지금 이 책은 서점의 ‘육아 코너’에서 판매된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될 때는 철학 분야로 뽑혔다. 출판사도 출간 전 책을 분류하기 위한 고유 번호를 신청하려 할 때 이 책이 철학서인지 육아서인지를 두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철학책도, 육아책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도 ‘분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밥벌이로 다른 일을 하면서 철학연구자, 육아책 작가, 간혹 미술사를 강의하는 사람 중 어느 것으로 잘 분류되지 않은 채 분열되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뉴욕에서 탄 택시 좌석 앞에 어떤 배우의 프로필이 붙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뭐냐고 기사에게 물었더니, 택시기사는 자신이라고 답했다. 택시기사는 ‘리어왕’을 연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택시기사이면서 동시에 연극배우였다. 그는 직종 분류에 따른 어떤 하나의 직업으로 결코 분류되거나 표상되지 않는다. 


세상에 말끔하게 분류되지 않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면, 분류되지 않는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온갖 분류체계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이것과 저것을 분류하려는 이유는 분류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만약 어떤 것이 자기 기준과 틀에 따라 분류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괴물이나 유령, 마녀로 규정하고 추방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직업, 피부색, 성별, 계급, 학력으로 간단히 분류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 조금과 저것 조금이 섞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는 힘센 자들의 이분법적인 분류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저항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리어왕처럼 힘센 자들에게 묻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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