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INTRO (-권영민) by 철학본색

 

중 세 철 학 Intro


출처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번역 : 권영민

2008년 1월 3일 토요일


 중세철학은 중세로 알려진 시기에 중동 지역과 유럽에서 이뤄진 철학을 말한다. 중세는 일반적으로 로마가 멸망한 AD 5세기경에서 16세기의 르네상스까지 이어진 시기를 말한다. 또한 중세는 고전 시기에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달한 고대 문화의 재발견의 과정이 부분적으로 나타났으며, 세속적(secular) 지식과 종교적 교의(sarcerd doctrine)를 통합하는 것과 신학적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규정된다.


 중세 철학사는 세 시기로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 시기는 12세기까지 이어진 초기 중세 시기의 라틴권에서 이뤄진 때를 말하며, 이 때의 작업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작업의 보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이어진 이슬람 시기인데, 주로 고대철학자들의 작업에 대한 번역과 주석, 이해, 해석이 주로 이뤄졌다. 라틴 서부 지역에서의 12세기, 13세기, 14세기는 ‘황금 시대’(golden age)로 불리는데 이 때 이뤄진 작업은 주로 고대 철학의 회복의 절정을 이루는 일이었으며 종교 철학, 논리학, 형이상학 분야에서 괄목한 만한 발전을 이뤄낸 시기였다.


 중세 시기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고전 시기와 고전 문화의 재탄생(rebirth) 혹은 재생(renaissance)이라고 불리우던 르네상스 시기 사이에서 이 시기를 야만적 ‘중세’ 시기로 보았던 후대의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근 천년간 지속된 중세는 유럽과 중동에서 이뤄진 철학적 발전 중 가장 긴 시기를 차지하며 또한 가장 풍부한 가능성의 시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조르게 그라시아(Jorge Gracia)는 ‘13세기의 철학적 흐름은 밀도있고, 정교하며 (중요한) 성취를 이뤄냈을 뿐 아니라 BC 4세기 그리스 철학의 황금 시대에 비견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까지 주장한 바 있다.


 이 시기에 토론되어진 철학적 문제는 이성과 신앙의 관계, 신의 실존과 단일성, 신학과 형이상학의 목적, 지식의 문제, 보편-개별 논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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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1. 중세철학의 특징

  2. 역사

     2.1 초기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

     2.2 중세의 이슬람 철학

     2.3 고급 중세 (High Middle Ages)

  3. 중세철학의 주제들

     3.1 신학

     3.2 형이상학

     3.3 자연 철학

     3.4 논리학

     3.5 마음의 철학(Philosophy of Mind)

     3.6 윤리학

  4. 더 볼 자료

  5. 노트

  6. 주석

  7. 그 밖의 링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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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철학의 특징


 중세철학은 그 특징상 신학적theological이다. 아비첸나와 아베로에스를 제외하고서는 중세 사유가는 그들 자신을 전혀 철학자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신학적이며, 그들에게 철학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의 이교도 저술가들이었다. 하지만 중세 저술가들의 신학적 작업은 어려운 신학적 질문과 교리의 요점에 대답하기 위해 고대철학자들의 과념과 논리적 테크닉을 이용한다. 피터 다미안Peter Damian에 따르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철학을 신학의 시녀handmaiden라고 주장했다 한다.(ancilla theoloiae)


 중세철학자들의 모든 작업에 정초된 세 원칙은 첫째, ‘논리학’, ‘변증법’, 이성ratio로 알려진 ‘진리 발견에 대한 분석’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며, 둘째 고대철학자들,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존경을 기초로 그들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었으며(auctoritas), 마지막은 신학적 교의와 계시를 철학적 통찰과 연결하는 일에 복무하는 것이다.(concordia)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하게 논쟁되었던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신앙 대 이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비첸나Avicenna와 아베로에스Averroes가 이성의 편에 서있다면, 어거스틴Augustine은 신의 권위를 넘어서는 그 어떤 철학적 탐구들에 대해서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셀름Anselm은 신앙과 이성 모두를 허용하려는 접근과 같은 신앙에 대한 일정한 형태의 공격으로 보였던 것에 대한 방어를 기획하기도 했다. 신앙/이성 문제에 대한 어거스틴적 해결은 (1) 믿는 것이며, 그리고 나서 (2)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2. 역 사


2.1 초기 그리스도교 철학

 

 초기 중세 시기의 경계는 그 자체로 논쟁적인 문제이다. 대체로 엄격히 고전 시기에 속하는 인물인  어거스틴(354-430)과 함께 시작되어, 고급 중세 시기가 시작되는 11세기 후반에 지식의 소생과 더불어 끝맺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서유럽은 소위 ‘어둠의 시기’Dark Ages로 접어들었으며 이 시기에는 사소한 지적인 활동만이 있었다. 수도원들은 오로지 성 베네딕트(525년)가 제정한 규율의 결과로 수도사들에게 매일 성서를 읽게 하는 것을 요구하는 지식에만 초점이 있었으며, 각 수도사는 주어진 책(성서)을 사순절의 시작에 읽도록 강제되었다. 후기에 수도사들은 교회의 사역자들과 행정가로 훈련되기도 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사유, 특별히 교부 시기는 직관적intutional이며 신화적인 경향이 있으며 이성과 논리적 논증에 대한 의존은 적은 편이었다. 또한 종종 플라톤의 신화적 교리에 대한 강조가 이뤄진 것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적인systematic 사유는 덜 강조되었다. 특히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부분의 작업들은 이 시기 서유럽에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스콜라학자들은 보에티우스Boethius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과 논리적 저술인 ‘해석에 관하여’를 많이 읽고 의지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또한 포르피리Porphyry의 ‘입문’Isagoge,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대한 주석들도 읽을 수 있었다.


 두 명의 로마 철학자는 중세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졌다. 바로 어거스틴과 보에티우스이다. 어거스틴은 가장 위대한 교부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는 최초의 신학자이며 헌신적인 작가였으나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철학적이다. 어거스틴의 주제들은 진리, 신, 인간 영혼, 역사의 의미, 국가, 죄, 구원과 같은 것이었다. 천년이 넘는 시기동안 그의 저술과 그의 권위에 대한 논쟁에 대한 언급이 없는 신학 혹은 철학의 라틴어 작품은 거의 없다. 또한 어거스틴 작품의 일부는 데카르트Descartes와 같은 근대 초기의 철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보에티우스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480– c.525)는 로마에서 태어난 그리스도교 철학자다. 그는 510년에 오스트로고트Ostrogoths의 왕국에 집정관consul이 되었다. 중세 초기의 그의 영향력 역시 (심지어 보에티안 시기라고 부를 정도로) 주목할만하다. 그는 그리스어 원전으로 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모든 작품들은 라틴어로 옮기고자 했으며, ‘해석에 관하여’나 ‘범주론’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관련된 대부분의 저술을 번역했다. 그는 또한 이들 작품과 포르피리의 ‘입문’에 대한 주석을 썼다. 이는 중세세계에 보편논쟁을 소개하기도 했다.


 서유럽에서 첫 번째 지식의 재개는 샤를마뉴 대제가 피사의 피터Peter of Pisa와 요크의 알쿠인Alcuin of York에게 받은 조언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의 학자를 이끌고 오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로마 제국 내에 모든 수도원에 학교를 수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787년에 반포된 제국 법령도 영향을 미쳤다.

 

 팔래스 스쿨의 수장인 요크의 알쿠인의 계승자라 할 수 있는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c. 815 - 877)는 아일랜드 신학자이자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슈도-디오니소스’의 작업에 대하여 주석들을 단 것과 번역으로 유명했다. 이 시기를 주위로 신이 구원과 영벌에 대하여 미리 예정하고 있는지 어떤지하는 질문과 같은 많은 교리적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동시에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투스Paschasius Radbertus는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실재 현존에 관하여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스도의 역사적 몸과 같은 주인인가? 어떻게 수차례,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가? 라드베르투스는 신의 이해불가해성이라는 의미에서 빵과 포도주의 현현에 의해 가려진 그리스도의 실제의 몸이 현존한다고 주장했으며, 모든 시공간에서 현시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는 학문의 재생이 목격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플러리에서 올리언스의 주교인 테오둘푸스Theodulphus는 샤를마뉴에 의해 그곳으로 추천된 귀족 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9세기 중반 그 곳의 도서관은 서유럽에서 가장 포괄적인 결합이 이뤄진 장소였으며, 페리레스의 루퍼스Lupus와 같은 학자는 그의 텍스트들을 참고하여 도서관을 여행하기도 했다. 후에 개혁 수도원 학교의 수장이었던 플러리의 성 아보Abbo의 지도하에 플러리는 두 번째로 황금시기를 맞이했다.


 10세기가 시작되면서, 레미기우스Remigius of Auxerre는 도나투스Donatus, 프리시아Priscian, 보에티우스,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Capella의 고전적인 작업에 대한 추석들과 해설glosses을 생산했다. 카롤링거 왕조 시기에는 11세기에 지속된 지식의 부흥에 이를 때까지 작은 어둠의 시대가 이어졌다.


2.2 중세의 이슬람 철학


 유대주의와 기독교가 작은 집단의 종교로서 시작된 반면에 이슬람은 확장되는 제국의 종교로서 발전했다. 632년, 모하메드의 죽음 이후 수백년간 군사적 정복이 이슬람 세계에서 인도, 북아프리카, 남스페인 무렵까지 확장되었다.


 결과적으로, 다른 공동체들의 다양성이 모슬렘 법 아래로 오게되었으며, 이슬람은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의 신학 체계와 접촉하게 되었다. 이는 이슬람 신학자들을 코란 교리 해석의 원칙과 철학적 관념을 이용하도록 이끌었다.


 이 과정의 첫 국면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이집트 동부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보존되어져 오던 그리스의 철학적, 과학적 작업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번역자들은 거의 대부분은 네스토리안Nestorian과 야코비 그리스도인들Jacobite Christians이었으며, 초기 아바시드 시기(800년 경)까지 이백년 정도의 작업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번역 그룹은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이자 라틴어로 요안니티우스Joannitius로 알려졌던 이븐 이샥Hunayn Ibn Ishaq(809-873)이었다. 텍스트들은 우선 시리아로 번역된 후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 과정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대체로 정확했으며 우아함보다는 오히려 문자적 읽기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10세기에 또다른 학파 야코비파 사이에서 대두했다. 이들은 약간의 그리스어를 알았으며, 그리고 오로지 시리아어 번역을 이용했다. 작업들은 거의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과 아프로디시아스의 알렉산더, 테미스티우스와 테오프라스투스와 같은 주석가의 작품들, 대부분의 플라톤의 대화편dialogues, 신플라톤주의의 작품들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다음 국면은 무타칼리문Mutakallimun에 의한 이슬람 신학의 발전이다. 이들은 주로 무타질리티와 아샤리트the Mu'tazilities and the Ash'arities를 나누었다. 무타질리티는 어떻게 그리스 철학적 관념이 신의 유일성과 같은 어떤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지를 통하는 바스라와 바그다드에서 만나는 집단에서 기원했다. 그들은 또한 어떻게 인간 존재가 신이 전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울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신플라톤주의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계 창조를 증명하는 것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아샤리트(founded by Al-Ash'ari, 873-935)는 코란의 교리를 명시화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신을 제외한 어떠한 원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부인했으며, 그러므로 인간 의지의 자유를 부인했다.


 알킨디Al-Kindi(801-873)는 일반적으로 최초의 아리스텔레스주의 철학자로 간주된다. 그는 철학의 독립적인 연구를 옹호했으며, 그리고 또한 과학과 논리학에 관하여 쓰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알라지Al-Razi(865-c.925)는 아리스텔레스에 대하여 플라톤을 변호했는데 알라지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을 부패시키는 자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알파라비에 의해 계속되었으나, 반면에 라틴어로 아비첸나(987-1037)로 알려진 이븐 시나Ibn Sina는 아비체나주의로 알려진 그 자신 고유한 학파를 발전시켰다. 이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와 함께 이슬람신학을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아비체나주의 철학의 학파는 16세 뮬라 사드라Mulla Sadra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슬람 철학에 지속적인 파급력을 지녔으며 중세 유럽에 그리스도교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반대로, 아샤리트 신학자 알가자리Al-Ghazali(1058-1111)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슬람적 반작용을 대표한다. 가자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그 밖의 이슬람 불신자들이었던 저술가를 의심하고 지독하게 공격했으며 그들의 방법과 관념을 이슬람 신앙에 대한 파괴자로 간주했다.


 이슬람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유럽에 아베로에스로 알려진 이븐 루쉬드Ibn Rushd와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아베로에스가 가자리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작업에 관한 히브리 번역은 유대 철학에 강고한 영향력을 가졌고 아베로에스의 사유 학파는 아베로에스주의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의 철학적 전통에서 특별히 주석 작업은 11세기에 이르러 점차 라틴 지역으로 소개되었다. 이들은 중세 스콜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3 고급 중세High Middle Ages


 11세기의 중반에서 14세기의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고급 중세’ 혹은 ‘스콜라’ 시기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의 철학자, 신학자이며 신 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증명의 고안자로서 널리 알려진 교회의 직무자인 캔터베리의 성 안셀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13세기와 14세기 초반은 스콜라주의가 융성하던 시기로 일반적으로 간주된다. 13세기 초기 그리스 철학의 회복이 절정에 이르렀다. 번역을 하던 학문적 집단은 이탈리아와 시실리 지방에서 성장하다 마침내 전 유럽에까지 확장되었다. 베쓰의 아델라르드Adelard와 같은 학자는 시실리와 아랍세계를 여행했고, 천문학과 수학, 유클리드의 집합론의 첫 완간 번역을 하기도 했다. 강력한 노르만 왕들은 그들 권위의 표시로서 자신의 궁전으로 이탈리아와 다른 지역의 학자들을 모으기도 했다. 모어베크의 윌리엄의 13세기 중반 그리스 철학 저술의 번역과 편집은 그리스 철학의 선명한 그림을 형성하도록 도왔으며, 특히 그들이 예전에 의지했던  아랍어 버전으로 주어졌던 아리스텔레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체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애매함과 왜곡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작업은 이후에 주요한 주석들의 기초를 형성했다.


 대학은 이 시기동안 유럽의 큰 도시들에서 발전했다. 이 시기에 수립된 두개의 주요한 질서들은 프란체스코파와 도미니크파이다. 프란체스코파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 의해 1229년에 설립되었다. 이 시기 중반의 지도자는 보나벤투라Bonaventure인데 그는 플라톤 철학과 어거스틴 신학을 수호하려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단지 신플라톤주의에 최소한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만을 덧붙이고자 했다. 안셀름에 이어 보나벤투라는 철학이 단지 종교적 믿음에 의해 조명받을 때에만 비로소 이성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다른 중요한 프란체스코파의 저술가는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피터 오리올Peter Autiol, 오캄의 윌리엄Willam of Ockahm이 있다.


 대조적으로 도미니크적 계보는 1215년 성 도미니크에 의해 수립되었으며 이성의 사용에 더 많은 강조를 두었으며 중동, 무리쉬 스페인으로부터 나온 새로운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천의 광점위한 이용을 주장했다. 이 시기의 도미니크학파의 가장 대표적 철학자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와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ans이다. 아퀴나스는 그리스적 합리주의와 그리스도교적 교의를 카톨릭 철학으로 정의되는 숙련된 종합으로 이끌었다. 아퀴나스는 이성과 논증에 강조를 두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학적, 인식론적 저작에 새로운 번역을 이용한 첫 번째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는 초기 스콜라주의를 지배하던 신플라톤주의와 어거스틴주의적인 사유로부터의 가장 인상적인 일탈이다. 아퀴나스는 어떻게 주석가 아베로에스의 ‘오류들’에 빠지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대부분을 통합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보여주었다.


3. 중세철학의 주제들


 오늘날 철학의 분과학문이라 불리우는 모든 것이 중세철학의 부분이기도 했다. 중세철학은 또한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이교도 철학에 의해 기본적으로 자신의 분야 대부분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이제 종교철학으로 불리는 연구는 아마도 중세시기의 독특한 발전일 것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지할만한 형태의 문제를 중세에도 주제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3.1 신학


중세철학은 특징상 신학적이다. 이 시기에 발전되고 토론된 주제들은 아래의 내용들과 같다.


▶ 신 속성의 양립가능성 문제 : 전통적으로 전능, 전지, 무한, 무소부재, 비물질성 등과 같은 속성들이 최고존재에게 귀속될 수 있는가? 하나는 다른 하나와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가?


▶ 악의 문제. 고대 철학자들은 악의 본성에 관하여 사색해왔으나 어떻게 전능하고 전지하며 자비로운 신이 사물의 체계 내에 악을 존재하게 했는지의 문제는 중세 시기에 최초로 제기되었다.


▶ 자유의지의 문제. 같은 문제가 ‘신적 예지’로 설명하는 것이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신의 지식은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과 양립할 수 있다.


3.2 형이상학


 12세기 중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재발견된 후에 많은 학자들이 이 저술에 관한 주석을 썼다(특히 아퀴나스와 스코투스) 보편 논쟁은 이 시기 동안 핵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였다.


▶ 질료형상론Hylomorphism-개별적 사물들이 물질과 형상으로 구성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교의의 발전.

 

▶ 존재 - 존재로서의 존재 being qua being


▶ 인과관계. 인과성에 관한 토론은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 주석들을 구성하는데, ‘물리학’, ‘하늘에 관하여’, ‘발생과 사멸에 관하여’에서 주로 다뤄진다. 이 주제에 대한 접근 중세에 독특한 것인데, 보편적 존재의 이성적 탐구는 신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서 간주되었다. 둔스 스코투스의 신 존재 증명은 인과성의 관념에 기초하는 것이다.


▶ 개별화. 개별화의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우리에게 소여된 어떤 종류의 집합을 개체화시키고 양적으로 구별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같은 종류의 개별적인 천사들이 다른 것가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요구될 때 제기된다. 천사는 비물체적이고 그들의 양적 특성은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질적 차이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이 토론의 중요한 공헌자는 아퀴나스와 스코투스이다.


3.3 자연철학


 자연철학과 과학철학에서 중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14세기부터 계속하여 자연 철학에서 수학적 합리성의 늘어나는 사용은 근대 초기 시기의 과학의 대두를 준비했다. 중요한 인물은 윌리엄 헤이테스베리와 오캄의 윌리엄이다. 자연철학에 대한 다른 공헌자들은 색소니의 알베르트, 존 부리단, 오트르쿠트의 니콜라스이다. ‘Contuity Theses'에 과한 논문을 보면, 중세 시기의 지적 발전과, 르네상스, 근대 초기의 발전에 어떠한 급진적인 단절도 없다는 전제를 확인할 수 있다.


3.4 논리학


 위대한 논리학 사가인 보첸스키M.Bochenski는 중세를 논리학의 역사상 세시기로 구분한다. 아벨라르드의 시기부터 14세기 중반까지 스콜라주의적인 작가들은 현저한 수준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발전시키고 세련되게 만들었다. 더 이른 시기에 아벨라르드와 같은 작가는 ‘구Old 논리학’-해석에 관하여, 범주론이 포함된-에 관한 주석을 썼다. 후에 새로운 논리적 탐구의 일부분이 제기되었고 새로운 논리학과 의미론적 개념들이 발전되었다. 중세에 논리학 발전에 관하여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Insolubilia, Medieval theories of modality, Obligations, Properties of terms, Medieval theories of singular terms, Syllogism, and Sophismata.) 다른 중요한 중세 논리학의 공헌자로는 Albert of Saxony, John Buridan, John Wyclif, Paul of Venice, Peter of Spain, Richard Kilvington, Walter Burley, William Heytesbury and William of Ockham 등이다.


3.5 마음의 철학

 

중세 시기 마음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De Anima'에 기초를 두고 있다. 또 다른 작업은 12세기 라틴 서부에서 발견되었다. 이 저술은 자연의 철학의 일부로서 간주되었다.


▶ 신적 조명. 신적 조명의 교리는 자연주의를 대하여 중요한 대체이며 오래된 것이다. 이는 인간이 그의 일상적인 사유에서 신으로부터의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이 교리는 대부분 어거스틴과 관련된 것이며 또 그의 후계자들에 의한 것이다. 이는 근대 초기 시기에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 증명의 이론들


▶ 정신적인 재현. 정신적 상태가 ‘지향성’을 가진다는 관념. 마음의 상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음 밖의 사물을 표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근대의 마음 철학의 본질이다. 그

것의 기원은 중세 철학에 있다. ‘지향성’이라는 말은 프란츠 브렌타노가 중세적 용법을 반영하여 사용하였다. 오캄은 언어가 일차적으로 관습에 의해, 이차적으로 실재적 사물에 의해 정신의 상태를 의미화한다는 이론을 유명하다. 반면에 대응하는 정신적 상태는 실재적 사물을 자신을 의미화한다.


3.6 윤리학

세부적으로 중세 윤리학의 중요한 발전은 ‘양심에 관한 중세의 이론들’, ‘실제적 이성’, ‘자연법에 관한 중세의 이론들’과 같은 논문을 참고하라.


See also


Christian philosophy

Early Muslim philosophy

Jewish philosophy

Scholastic philosophy

Renaissance of the 12th century

Supposition Theory



Notes


1. ^ Gracia, p. 1)

2. ^ Gracia & Noone p1

3. ^ Gracia & Noone p 1)

4. ^ Gracia & Noone p.35

5. ^ Gracia & Noone pp.3-5

6. ^ Kretzmann & Stump p 27

7. ^ Gallatin

8. ^ Gracia & Noone p 1

9. ^ Gracia & Noone p.45

10. ^ Russell, Book II, Part i, c. 6

11. ^ Russell p.353

12. ^ Hyman & Walsh p. 15

13. ^ McGavin p. 53

14. ^ Hyman & Walsh pp.114-117

15. ^ Gracia & Noone pp.397-406

16. ^ Schulman, p.1

17. ^ Hyman & Walsh p. 203

18. ^ Hyman & Walsh p. 204

19. ^ Hyman & Walsh p. 205

20. ^ Clagett (1982), p. 356.

21. ^ Lindberg (1978), p. 70-72.

22. ^ Fryde

23. ^ Hyman & Walsh, 'Bonaventura', p.454

24. ^ Bochenski 1961, pp. 10-18

25. ^ Brentano, tr. Chisholm p.50

^ I.e. our idea of a rabbit necessarily represents a rabbit. A mental state 'is a true similitude of the external thing, on account of which it represents (repraesentat) the external thing itself, and stands for it from its nature, just as an utterance denotes things by institution'.


References

The London Philosophy Study Guide offers many suggestions on what to read, depending on the student's familiarity with the subject: Medieval Philosophy

Brentano, "The Distinction between Mental and Physical Phenomena", translated by D.B. Terrell, in Psychology from an Empirical Standpoint, 1874.

Gallatin, H.K., Medieval Intellectual Life and Christianity

Gracia, J.G. and Noone, T.B., A Companion to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London 2003

Hyman, J. and Walsh, J.J.,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Indianapolis 1973

Kretzmann, N. and Stump, E., The Cambridge Companion to Augustine , Cambridge 2000.

McGavin, J., Chaucer and Dissimilarity: Literary Comparisons in Chaucer.

Maurer, Armand A. [1982]. Medieval Philosophy. 2nd ed. Toronto: Pontifical Institute of Mediaeval Studies.

Russell, B.,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Routledge 1996 (originally published 1946)

Schoedinger, Andrew B., ed. [1996]. Readings in Medieval Philosoph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Jana K. Schulman The Rise of the Medieval World, 500-1300, Greenwood Publishing Group, 2002



External links

Medieval Philosophy section at EpistemeLinksMedieval Philosophy Electronic Resources

Article Philosophy at The Catholic Encyclopedia

Some medieval Jewish philosophers

Medieval Natural Philosophy and the Church by James Hannam

The Fathers, the Scholastics, and Ourselves by von Balthasar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Literary forms of Medieval Philosophy


Medieval Philosophy and Theology journal


덧글

  • 정지윤 2009/01/13 23:10 # 삭제 답글

    영민쌤~ 번역준비하느라 첫날부터 넘넘 수고많았어요^^
    보답하는 맘으로 더욱 열심히 할 작정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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