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에의 강요-봄날은 간다, 위대한 개츠비 (유망노인) by 철학본색

영민 햄이 올린 시를 보고 허진호의 영화 <봄날은 간다>가 떠올라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쓴 영화 <봄날은 간다>에 대한 후기를 올려본다.

"라면이나 먹자".."자고 갈래"..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은수(이영애 분)의 말을 이해 못하고 정말 라면이나 먹고, 잠이나 자는 상우(유지태 분)는 어쩌면 처음부터 은수에겐 버겁게 순수한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조금은 날긋하게 닳은 여자에게 순수는 반갑지 않다.
순수가 사랑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순수를 동경한다.
사랑이 운명이나 숙명이 아닌 일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믿는 대개의 경험있는 사람에겐 (사랑의 열정을 몇번씩 반복해서 느껴 본 사람) 순수는 정돈된 일상을 방해하고 그로 인해 사랑을 좀슬게 한다.
상우의 순수가 은수의 일상을 방해하고 사랑을 버겁게 느끼게 하는 요소는 곳곳에 있다. 늦잠을 자고 싶은데 상우는 제가 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새벽녘 서울에서 강릉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포옹을 요구하며.. 맨정신으로 약속을 하고 찾아와도 안 만나줄 판에 술 취해 급작스레 찾아와 철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다. 게다가 엉엉대며 울기까지...
그 대목에 이르면 은수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도 은근슬쩍 짜증이 인다. 저만 아프고 저만 힘들지. 어린 남자는 그렇게 이기적이다. 사랑만 하기에 인생은 너무도 버겁다.



소년의 순수는 농익은 여자에게 부담스럽다. 누구나 첫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 상우처럼 맹목적이고 답답하다. 나도 그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던 상우의 명대사에 이십대의 나는 동감했지만, 서른이 넘은 나는 "사랑이 어떻게 안변하니?" 라고 반문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변하고, 잊혀질 것 같지 않던 사랑도 잊혀지고, 용서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모두 성장하지 않나. 
얼마전 내 주위의 어린 친구가 나에게 '순수한 신앙 생활' 이란 걸 강요해왔다. 그때 나는 은수가 상우에게 느낀 답답함을 느꼈다. 그가 말하는 순수한 신앙이란 교회의 청년회에 참여해 그들과 삶을 나누고 중보 기도하며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공동체로 나아가라"는 성경 말씀 때문에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단다. 그래, 그것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그의 입장에서 주일 대예배만 드리는 나는 하나님과는 너무나 멀리 있으며, 그래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타락한 나를 순수하게 개화시킬 모냥으로 청년회 참석을 강요했다. 그것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니...나는 더이상 그와 말을 이어가기가 싫어졌다.
그 모습이 불과 몇년전 나의 모습이기도 해서 그를 이해할 수도, 기다려 줄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이미 지나온 나로서는 그의 순수가 너무도 버겁고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와 영화, 소설 속에 <순수에의 강요>는 참 흔하디 흔한 소재이다. 내가 사랑하는 미드 <섹스앤더 씨티>의 캐리가 결국 첫사랑 빅에게 돌아간다거나, 어린 시절 아련한 첫사랑을 우연히 다시 만나 목을 메는 수많은 드라마를 보면 결국 순수에 허덕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유산>에서 보여주는 에스텔라를 향한 핍의 사랑,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다사를 향한 아리사의 사랑,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 또한 오염된 우리에게서 순수를 강요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20대 초반, 처음으로 피치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 나는 시니컬했다. 위대하긴! 개뿔이 위대하냐! 이런 허망한 개츠비의 사랑에 great를 붙이다니! 하지만 서른을 앞두고 그 책을 다시 손에 잡았을 때 비로소 개츠비가 위대해 보이더라.
개츠비는 무모할지언정 순정으로 데이지를 사랑했다. 적당히 때묻고 적당히 탐욕스런 보통의 여자 데이지, 순수나 고결함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그녀를 개츠비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다. 자신의 전부를 걸고 평생 동안 그 사랑을 꿈꾸었다. 자신의 몸에 총알이 박힐 때까지. 그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은 관계이고 소통인데, 개츠비의 데이지에 대한 사랑은 허상이 아닌가.

돌아보면 꽤나 몽상가였던 나도 개츠비적(Gatsbyesque) 사랑을 경험했다. 첫눈에 사랑이 시작되었고, 내 눈에 그 사람이 완벽해 보였다. 나의 망상으로 부풀려진 사랑은 어느 날 그가 지나가는 말로 뱉은 속물 같은 말 한마디에 깨져버렸다. 그의 실체를 보았던 것이다. 그도 평범한 사람이구나...당연히 평범한 사람이지!
그때 나는 내 속에 있는 개츠비의 허상을 보았다. 부두에서 바라본 초록 불빛의 환각을.

'개츠비는 그 푸른 불빛을 믿고 있었고, 해마다 우리 앞에서 뒷걸음치는 황홀한 미래를 믿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 우리를 피해 갔지만 그런것은 문제가 안된다. 내일이 되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 어느 해맑은 날 아침에...'

평론가들은 개츠비의 꿈과 사랑을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들의 아메리칸 드림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츠비가 위대했던 것은 개츠비의 순정 때문이 아닐까. 비록 허망할지라도..푸른 불빛을 향해 타협하지 않았던 숭고한 꿈, 순수한 열망 말이다.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그런 사랑을, 꿈을 가졌던가. 그 꿈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매달린 적이 있었던가. 허상이었을지언정, 그 사랑이 개츠비를 살게 했고 꿈꾸게 했다.

어차피 구질스럽고 모순투성이에 허위로 가득찬 세상에서 그나마 개츠비의 순수한 열망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몇 안되는 가치가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된 우리, 순수를 만나면 오히려 버겁고 불편해지는 우리에게 개츠비의 순수는 망상에 불과하며 Gatsbyesque라는 말은 단지 인생의 허무를 말하는 것일까. 그래서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것은 역설적인 표현일까?

우리는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오염될 것을 알면서 순수를 열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차피 죽음으로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는 허망한 인생살이에 개츠비처럼 초록불빛의 환각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하고..
그런 의미에서 개츠비는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다.

 

 




덧글

  • ... 2009/02/03 21:18 # 삭제 답글

    근데 이게 어떻게 뉴스밸리?
  • 철학본색 2009/02/03 23:11 # 답글

    <영민>
    현실성으로서의 순수와 가능성으로서의 순수는 구분해야지요. 그렇다면 개츠비는 가능성의 순수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위대한 개츠비였음이 틀림없습니다. 현실성으로서의 순수를 강요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이지, 가능성으로서 순수한 사태를 꿈꾸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가능성으로서의 순수가 없다면 운동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지요. 순수의 가능성을 순수의 현실성으로 착각하지 않는 한에서 순수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 순수의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이유가 되고, 위대한 인생의 발로가 되겠지요.

    누나의 목소리가 묻어난 좋은 글 배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순수를 꿈꿔야 하는지, 왜 순수하길 포기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 유망노인 2009/02/03 23:31 # 삭제 답글

    역시..내가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아름답게 정리하신 영민햄~~감사해요.

    가능성으로의 순수..그건 희망이겠지?
  • 철학본색 2009/02/03 23:42 #

    누나, 댓글 달때 '희망'이라는 말을 아꼈더랬습니다. '희망'을 쓸까말까.ㅋ
    '희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지만 (가능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인 듯 합니다.
  • 성신얄리 2009/02/05 00:27 # 삭제 답글

    유망노인네..야뺘리..글을 잘 쓴단 말이야..전도유망해..ㅋㅋ

    단순히 한풀이나 살풀이 같은 것이 된다고 해도, 행여 나중에 그것이 순수한 열망이 아니라고 판명난다고 해도..

    가는 길, 가려고 하는 중에는 그것이 순수하려는 열망이었으니... 그것에 대한 판단은 미래에 맡기심이 어떨지..이건 우리 둘만의 얘기?ㅋ^^
  • 차세대유망노인 2009/02/06 20:31 # 삭제

    차세대 유망노인 가능하겠나? 한풀이보다도 살풀이를 좀 하고잡은데..굿하고 올까?ㅋ

    순수하다 생각했던 열망이 실존 앞에만 서면 두렵고 불안해서 현실과 타협하려 하기에

    개츠비의 위대함이 더 빛나는 것 같아.

    나 지금 떨고 있니? ㅋㅋㅋ

  • 철학본색 2009/02/05 22:23 # 답글

    <권영주>
    좋은 글 읽었었습니다.
    제가 겪는 고민과도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격려가 되는 글이네요.

    순수.. 저는 잘 모르지만, 최근에 DIY가구에 관심이 있어서 사이트를 자주 보는데
    예상외로 닳은 듯한 느낌을 가진 가구들이 비싼 가격을 받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닳은 느낌을 만들기도 하더라구요..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상처가 아니라면,, 아니 상처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닳아짐이 우리의 인생에서 더 값진 것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좋은글에 감사드립니다.
  • 차세대유망노인 2009/02/06 20:22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영주씨~가죽 제품이나 닳은 느낌의 가구들은 닳을스록 빈티지한 느낌이 멋스럽죠.

    '빈티지'란 말이 포도의 숙성을 뜻한다 들었어요. 숙성된 포도주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고 빈티지 패션이라고 한대요.

    우리는 좀더 숙성되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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