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감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현실(-문현주)


Simone-Fragile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대개 돈 때문에 불행하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결혼할 때 받은 어떤 금액의 숫자의 크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고 결혼할 수 있는 정당한 숫자는 어느정도 크기여야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정말로 불행해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물질 만큼은 '불행한' 그녀 의 절반 만큼도 가지지 못했지만 소박한 것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아는 '바로 나'임을 감사하며 행복해했다. 정말로 원했어도 공부를 더 하기 힘든 현실이지만,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단칸방이지만 방 옆에 달린 조그만 부엌에 '웃는 얼굴 수세미'를 걸어놓고 따라 웃어 보았다. 오히려 나 보다 힘든 사람도 세상에 훨씬 많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내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 마음이 풍요로와졌다.

하지만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란 철저히 상대적인 것이니까. 없는 사람보다는 더 가져서 행복하고 스스로 누릴 수 없는 사람보다는 잘 누리고 있어서 행복한 것이다.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불행해 하는 사람들과 못가진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자기만족 중 어느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부끄럽다.


어제 나의 그 찬란한 크리스마스 리스트 다음에 함께 공부하는 한 친구가 '비슷한' 노래의 동영상을 하나 포스팅 했길래, 반갑게 찾아보았더니 썸네일 이미지가 '시위현장'의 그것인것 같다. 분명, 마음깊이 따뜻함을 느끼며 들었던 크리스마스 리스트와 별 다를것이 없는 가사가 동영상 아래에 쓰여있는 것을 보았음에도 플레이 버튼에 마우스를 갖다 대고 주저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잿빛 화면을 보고나서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만든 매트릭스


세상엔 아름다운 면도 있어요, 당신도 행복할수 있어요...


하지만 간절히 죽을만큼 원해도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추악한 현실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면'을 보고싶은 바램은 나의 그것 보다 수백배는 간절했을 것이다. 거대한 현실 앞에 인간은 꽃잎 처럼 나약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소박하나마 작은 방 한칸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고, 오늘 상쾌한 초 봄의 아침 거리를 나섰을때 악기사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음악 소리들을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조금 흘리는 삶이란 정말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불합리한 현실에 한 순간 사라져버릴 허상... 세상 어딘가에 이런 작은 행복조차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음에도 '나는 아님'에 감사하고 위안 삼으며 나만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과연 '예쁘고 소박한' 삶이라 할 수 있는걸까...

게다가 내가 만들어낸 매트릭스 너머에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눈 뜨고 마주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처참하다면...나는 차라리 영화 속 어떤 사람처럼 그냥 내 매트릭스에 머물고 싶을지 모르겠다.


미스트



오빠의 취향 덕에 억지로, 마지못해 '미스트'란 영화를 본 후에 다시는 다시는 같이 영화보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 커다란 스크린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중에 나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한 시도 더 있기 싫은데 일어설 힘조차 나지 않았다. 태양이 사라진것 같았다. 세상 어디에도 희망이 없었다. 나는 어떤 대부업체의 광고 카피같은 '눈을 감고 싶은 현실'에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조금도 되어있지 않았는데... 안개 속 끔찍한 괴물이야 뭐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 속의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아무리 부정해도 분명 '있을 수 있는 현실'이었다. 해결 할 수 없다면 그냥 눈을 감은 채로 있고 싶었다.

무서운 영화, 전쟁영화, 속상한 영화, 끔찍한 장면은 결코 보고싶어 하지 않는 내 자신을 본다. 어두운 면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내 철저한 노력으로 인해 나의 행복은 비교적 잘 지켜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착한 행복'일까. 내가 예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마음이 너무 아프다.

=====================================================================================================================

제 블로그에 먼저 써놓고 옮겨 오느라 문장마침이 '반말'인것을 양해부탁드려요~ ;;
by 철학본색 | 2008/03/13 18:48 | 예술 | 트랙백(1)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spermata.egloos.com/tb/14940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Vol de Nuit at 2008/03/13 19:33

제목 : 눈만 감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현실
Simone-Fragile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대개 돈 때문에 불행하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결혼할 때 받은 어떤 금액의 숫자의 크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고 결혼할 수 있는 정당한 숫자는 어느정도 크기여야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정말로 불행...more

Commented by 철학본색 at 2008/03/14 00:09
<조금 길게 쓴 덧글>

예전에 오토 딕스의 그림을 우리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어요. 그의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지금도 사실 좀 그렇지만) 그림이 '전혀' 아름답지 않아 보이더라구요. 오히려 불편하고, 심지어 한편으로는 불쾌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전쟁통에 다리가 잘려나간 사람들, 매춘부들의 게걸스러운 표정, 성관계를 하는 듯한 퇴역군인과 매춘부의 모습.. 말그대로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기에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누군가 그 그림이 '참 예쁘다', '아름답다'고 하는 말에 놀랐더랬습니다. 정말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정말 아름답다고 하더라구요. 그러고선 참 자유로워 보이지 않느냐고 그 친구가 되물었는데, 그러고보니 그의 그림이 어떤 '자유'로움, 화가의 리비도의 이글댐이 여겨지는 작품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쁘다/행복하다/아름답다' 라는 말이 어떤(누구의) 기준에서 우리에게 '도래'한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현주씨의 솔직하고 진지한 글을 읽으면서 저는 오히려 나야말로 불편한 진실을 통해 나의 정의로움이나 관용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이제는 불편하지도 않게 바라보고, 때로는 성가시게 여기는 자신을 보면서요..

그래서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 시선을 바로 향한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눈 감지도, 눈 돌리지도 말아야 할텐데, 어쩌면 그럴 때 누군가의 말처럼 그것이 정말 아름답게 보일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금 맥락이 다른데 몇가지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위에 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봅니다. 양해해주세용.

1.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프리모 레비라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증언문학가의 삶이 자주 나옵니다. 프리모 레비는 증언을 할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수용소의 경험을 '상기'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식상하게, 무덤덤하게 증언한다면 듣는 사람들 역시 아우슈비츠를 생생하게 경험하지 못하게 될테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누구도 아우슈비츠를, 자신의 경험을 이해할수 없다는 증언의 불가능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을 점점 더 꺼리껴 하게 되지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레비는 결국 투신자살을 선택합니다. 아우슈비츠 경험을 정면으로, 그 기억을 현재의 시간 속에 늘 재생하며 마주한 사람은 결국 자살하고 말지요. 그의 자살이 부정적이거나 옳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만큼 '진실'을 마주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에 있겠지요. 많은 증언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불사르는 투사들이 보여주는 것은 '증언' 자체이자 역설적이게도 증언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듯합니다.

2. 레비나스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 역시 레비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인데 그는 '타자의 얼굴'이라는 현상학적 용어로 유명합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현상해보면) 그 얼굴 너머로 타자의 고통이 자신에게 들어오게 된다고 합니다. 그 타자는 죽음을 향해 있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며,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기도 하는 얼굴입니다. 시간과 역사가 그 얼굴에 다 녹아든채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 타자는 나를 젖히고 들어와 제게 마치 신처럼 자신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레비나스에게 윤리는 내 이웃(바로 고아와 과부로 표상되는)의 요구에, 이웃의 얼굴에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비명에 응답하고 책임지는 것이 그에게 윤리입니다. 타자의 얼굴이 나 자신의 삶을 균열시키고 나를 귀찮게 하고, 타자가 신처럼 저를 지배하게 되어버릴 때 나는 거기에 응답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수천년 인류 역사의 비극은 타자가 주체를 지배하는 삶이 아닌, 주체(내)가 타자를 지배해온 삶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합니다. 주체가 타자를 복종시키려고 하고, 함부러 침범하고 괴롭힌 것의 전형이 바로 아우슈비츠라는 '표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레비나스의 통찰은 참으로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남'을 더 위에 두기 때문입니다. '남'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편합니다. 남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필요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고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랍비였던 레비나스는 바로 '신'이 우리에게 그런 타자라고 합니다. 신은 우리의 삶에 들어와 우리를 귀찮게 하고 자신의 필요를 채우라고 명령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신은 거꾸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귀찮게 함을 당하고 필요를 채운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레비나스에게 고아와 과부(모든 고통을 받는 이들의 표상)는 신과 같습니다.

레비나스 철학의 가장 큰 교훈은 타자 없는 주체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타자는 '주체'를 귀찮게 하지만 주체는 타자의 침범, 타자의 호소 때문에 주체의 견고한 벽을 허물고 자신을 넘어(초월해)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레비나스에게 '출산'이야말로 가장 큰 자기 초월이 되지요. 그런데 그 초월(출산)은 나 자신보다 타인(내 배우자)의 몸을 애무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애무해서는 출산할 수 없지요. 레비나스는 초월은 '남'에 대한 정성스러운 '애무'에 기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나의 매트릭스, 현주님이 매트릭스 이야기를 하시니 레비나스 생각이 납니다. 나의 매트릭스, 우리의 매트릭스는 레비나스의 통찰대로 어쩌면 '타자'로 말미암아 균열되는 것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본능적인 욕구, 욕망, 필요, 불편함을 들어주고 응답하고 애무하려는 시도에서 매트릭스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불편한 진실인 '타자의 얼굴'을 들여다볼때 자신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미 현주님의 글에 레비나스와 동일한 메타포가 담겨 있음에 그 통찰이 놀랍기도 하고, 뛰어난 현상학적 통찰, 감수성이 부럽기도 합니다. 주제넘게 긴 덧글을 달았는데 생각할 것이 그만큼 많은 좋은 글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Commented by 문현주 at 2008/03/14 15:28
학교 다닐 때, 담당 교수님께 개인레슨 받으러 들어가면 주로~ 과제곡 쓴 것을 봐주시고 그러는데,
나 도 뭔지 모르고 쓴 화성이나 리듬에 대해서 이것은 어떤 시대의 누구의 것과 비슷한것 같다, 이 부분은 꼭 이런 분위기가 생각이 난다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셨어요... 몇 마디 못써가는 날도 선생님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시는지요...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알게 된 것들을 나열한 것에 불과한 악보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맨날 할아버지 같이 이야기만 한다고 싫어하기도 했는데, 저는 그런 수업이 진심으로 재미있더군요~ ^-^

우리 영민 대표님의 긴 덧글을 읽으며 그 때가 생각나서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블로그의 포스트들을 거의 다 읽었지만, 솔직히 오토 딕스 그림 포스트는 아직 진지하게 마주하지 못했던것이 사실이에요... ㅠ.ㅠ 아 찔려,,
또, '성가신 타자' 이야기랑 레비나스 철학 이야기 해주신것도 생각을 정리해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혼자였다면, 한 때 저러고 말 유치한 감상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요~ ^-^

거기다 과분한 칭찬으로 동기부여까지~

정말 좋은 선생님이십니당~ ^-^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