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2014
김태윤 감독. 박철민, 윤유선.
1. 짐작하겠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2000년대 초반부터 삼성전자가 진행했던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을 변주한 것이다. 삼성이 소비자들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며 반도체 생산 노동자들에게 착취를 일삼고 있을 때, 영화에서 윤미 아버지 상구는 죽음을 목전에 둔 딸에게 '또 하나의 약속'을 한다.
2. 상구가 윤미에게 한 '또 하나의 약속'은 무엇일까. 언뜻 보면 쉬운 질문이지만 이것은 상구가 무엇 때문에 진성전자와 그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기도 하다. 상구는 500만원부터 시작되어, 3억 5천만원, 10억에 이르는 사측의 합의금 제안을 모두 거절한다. 이쯤 되면 그 약속이 돈과 무관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상구가 돈을 바라지 않았다면, 누구나 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 싸움, 질 수밖에 없는 이 싸움을 왜 시작한 것일까. 상구의 약속은 '거짓'을 밝혀 내겠다는 약속이다. '진실'을 위해 싸우겠다는 약속이다. 이 병의 책임이 희생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겠다는 약속이다.
3. 상구가 윤미에게 한 가장 중요한 약속은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장치인 '멍게'로 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상구는 노무사 난주에게 "멍게는요 태어날 때는 뇌가 있었는데, 바다 속에서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뇌를 소화시켜 버린대요"라고 한다. 상구는 아마 10억 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제안받았다 하더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상구는 편하게 자리 잡고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뇌를 집어 삼킨 인간으로는 살지 않겠다는 것이리라. 멍게에 대한 상구의 넋두리를 듣자 난주는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냐며 흥분한다. 그녀 역시 쉽게 돈 몇 푼에 진실에 눈감지 않겠다는 것이리라. 따라서 상구와 난주는 멍게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한 멍게는 진성과 진성의 기획실에서 일하는 이실장이다. 이실장 역시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지만 진성에서 '편하게 자리 잡고 살기 시작'한 탓일까. '뇌를 소화시켜' 버린 듯 반성이 없다.
그래서 상구와 노무사는 물 좋은 향긋한 멍게를 맛볼 수 있었지만 이실장은 그럴 수 없었다. 영화 말미에 10억을 제안하는 이실장에게 상구가 술한잔을 제안하자 이실장은 마시지 못한다/않는다. 그것은 이실장이 스스로가 멍게였기에 멍게를 안주 삼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이 영화는 가해자 - 피해자 - 피해자를 대신해 싸우는 사람(상구) - 피해자로 인해 간접적인 피해를 당하는 사람(윤미의 동생 윤석) - 피해자를 대신해 싸우는 사람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사람(윤미 엄마 정임, 노무사, 기자 등) - 가해자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사람(국가, 진성, 법무법인) - 또 다른 피해자 - 피해에 대한 증언자 - 피해에 대한 위증자 - 피해를 입었지만 가해에 대해 저항할 수 없는 사람 - 무관심한 방관자 로 이뤄져 있다. 캐릭터는 다소 평면적이지만 문제의 본질과 '적대'를 명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5. 아마 이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이 '변호인'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두 영화 모두 긴 법정 신이 나온다. 도움을 간곡하게 바라는 타자의 요청과 울부짖음이 있다. 두 영화를 둘러싼 많은 비교가 가능하겠지만 '변호인'에 비해 '또 하나의 약속'은 주인공 상구가 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의 주체로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영화에서 '변호인'의 송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노무사 난주의 역할은 송변호사만큼 절대적이지 않으며, 윤미와 피해자들의 변호사 역시 송변호사만큼 결정적이지 않다. '변호인'에서 아들 진우를 빼앗긴 국밥장사 순애의 역할은 그 절절함에 비해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위치지만, '또 하나의 약속'에서 택시 기사 상구의 역할은 투쟁을 주도하고, 법정에서 발언하고, 그의 존재가 싸움의 조건 그 자체가 된다. 예컨대 진성의 또 다른 피해자들이 싸움을 지속하는 조건이 바로 상구의 존재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국밥 장사와 택시 기사의 차이인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차이인지, 여성과 남성의 차이인지, 8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의 차이인지, 부산사람과 강원도 사람의 차이인지, 대리인이 송변호사와 같은 남자인지 난주와 같은 여자인지는 더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 앞에 주어진 이 싸움을 더 이상 누군가가 대신해서 싸워줄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6. 영화에서 이 실장은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이죠' 라며 상구를 조롱한다. '변호인'과 '또 하나의 약속'이 각각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개인 간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면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정치도, 경제도 본질이 아니며 그 정치와 경제를 향유하고 있는 인간이, 그리고 그 인간이 추구하는 '정의'와 '진실'만이 본질임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보다 더 중요한 증거는, 더 중요한 본질은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엔딩 크레딧이다.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성금을 낸 '또 하나의 가족' 수천명의 명단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돌아이' 같은 사람이 아직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에 대해 가슴 먹먹해진다. 또 다른 한편 '멍게로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희망을 품게 된다. 이 영화에서 미학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삶은, 싸움은, 그리고 사랑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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