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 (The Dreamers, 200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 재개봉해 상영 중이다.

1) 두 이란성 쌍둥이와 매튜
쌍둥이인 이사벨과 테오는 매튜에게 타자 그 자체다. 이사벨과 테오는 매튜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남매는 자유 분방하고, 매혹적이고, 서로에게 빠져 있다. 테오와 이세벨을 이미 쌍둥이이지만 완전히 일체가 되길 바래 샴쌍둥이로 자신들을 소개한다. 테오와 이세벨이 밖으로 나가는 일은 영화를 볼 때 뿐이다. 그들은 같은 영화를 보고, 함께 벌거벗은 채 자며, 매튜를 저녁에 초대해 놓고서도 어머니에게 "네가 이야기 해야지"라고 똑같이 말한다. 영화 말미에 시위대를 향해 화염병을 던질 때에도 둘은 함께 최전선을 향해 달려간다. 둘은 시위가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함께 화염병을 던진다. 둘은 하나되고 싶은 열망으로 충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하나이며, 서로가 서로를 열망하기에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매튜는 이사벨의 첫번째 섹스 상대였지만 여전히 테오와 이세벨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다. 매튜가 이사벨에게 "I love you"라고 할 때, 이사벨은 "We love you, too."로 대꾸한다. 매튜와 이사벨이 섹스하는 것을 테오가 보고, 테오가 다른 여자와 섹스할 때 이사벨은 오열하며 테오를 부른다. 그래서 테오와 이세벨은 샴쌍둥이라기 보다 자웅동체라 해야 한다. 어쩌면 테오와 이세벨의 관계는 68혁명을 그리는 하나의 스케치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고 매튜에게 호의를 베풀고, 매튜를 사랑하지만 매튜는 여전히 그 둘은 아니다. 테오는 매튜에게 "넌 좋은 아이지만 나와 이사벨은 샴쌍둥이 같은 사이다. 언젠가 네가 떠나야 한다는 것 기억해. 새겨들어." 쌍둥이의 동침은 금기에 대한 도전이자 나르시시즘이 두 육체에 깃든 것이다.
이사벨과 테오는 매튜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매튜에게 베풀어 주는 호의와 매튜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둘에게 매튜는 '천박한 미국문화의 세례를 받은 풋내기'일 뿐이다.
2) 영화와 몽상
이사벨, 테오, 매튜는 영화광들이다. 매튜의 말대로 이들은 영화를 너무 좋아해 어느 순간 영화와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혁명은 모든 영화를 구분 없이 상영했던 '시네마테크'의 책임자가 경질되며 프랑스에서 문화 검열이 시작되면서 촉발된다. 68의 구호가 '상상력에게 권력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지 않더라도 주인공들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영화는 '상상력'을 생산해내는 공장이다. 영화를 검열하는 것은 상상력을 검열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상상력 공장인 시네마테크가 문을 닫자 이 셋의 영화는 쌍둥이의 부모가 휴가를 떠난 집에서 상영된다. 쌍둥이의 집은 몽상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지미 핸드릭스, 채플린, 마오, 에릭 클립턴이 신으로 좌정하였으며, 와인이 물이 되고, 벌거벗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은 에덴동산이 되었다. 이사벨과 테오의 부모는 이 영화의 유일한 관람자이다. 이들의 영화는 충격적이고, 공허하다. 그것은 영화의 주인공인 셋도 모두 아는 바이다. 삼면 거울에 비치는 이사벨의 모습은 이사벨이 지금 분열적 상황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사벨은 가스 밸브를 열어 셋 모두가 자살하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의 이런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시네마테크의 영화가 정부의 검열에 의해 중지되어다면, 이들의 영화는 창유리를 깨고 들어오는 돌과 함께 끝난다.
3) 아버지와 테오
테오는 반전 서명을 하지 않는 시인 아버지를 비난하지만 아버지는 '시가 탄원서이고, 탄원서가 시'라고 한다. 테오의 아버지는 비교적 양식 있는 지식인처럼 그려지지만 테오에게는 아버지가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소위 꼰대 같은 아버지가 불편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전화가 되지 않자 집을 방문하고 보게 된 벌거벗은 아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지만 아버지는 이들을 깨우지 않는다. 서재에서 수표를 쓴 후 집을 조용히 빠져 나온 후 다시 차를 몰고 떠난다. 테오의 인식대로 아버지는 기만적인가? 위선적인가? 무책임한 것인가? 아마도 그에게 아버지는 미온적이며 불충분하고 보신적이었으리라. 자유의 조건은 돈을 주는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를 부정해야 하는 기묘한 현실.
엔딩 크레딧은 에디프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 우리말로 후회 없다 이다. 영화 초두에 매튜는 파리에서 프랑스어만 배운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배웠다'고 한다. 매튜가 배운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매튜가 이 쌍둥이 남매와의 한달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나 역시 이들을 엿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이 재개봉해 상영 중이다.

1) 두 이란성 쌍둥이와 매튜
쌍둥이인 이사벨과 테오는 매튜에게 타자 그 자체다. 이사벨과 테오는 매튜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남매는 자유 분방하고, 매혹적이고, 서로에게 빠져 있다. 테오와 이세벨을 이미 쌍둥이이지만 완전히 일체가 되길 바래 샴쌍둥이로 자신들을 소개한다. 테오와 이세벨이 밖으로 나가는 일은 영화를 볼 때 뿐이다. 그들은 같은 영화를 보고, 함께 벌거벗은 채 자며, 매튜를 저녁에 초대해 놓고서도 어머니에게 "네가 이야기 해야지"라고 똑같이 말한다. 영화 말미에 시위대를 향해 화염병을 던질 때에도 둘은 함께 최전선을 향해 달려간다. 둘은 시위가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함께 화염병을 던진다. 둘은 하나되고 싶은 열망으로 충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하나이며, 서로가 서로를 열망하기에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매튜는 이사벨의 첫번째 섹스 상대였지만 여전히 테오와 이세벨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다. 매튜가 이사벨에게 "I love you"라고 할 때, 이사벨은 "We love you, too."로 대꾸한다. 매튜와 이사벨이 섹스하는 것을 테오가 보고, 테오가 다른 여자와 섹스할 때 이사벨은 오열하며 테오를 부른다. 그래서 테오와 이세벨은 샴쌍둥이라기 보다 자웅동체라 해야 한다. 어쩌면 테오와 이세벨의 관계는 68혁명을 그리는 하나의 스케치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고 매튜에게 호의를 베풀고, 매튜를 사랑하지만 매튜는 여전히 그 둘은 아니다. 테오는 매튜에게 "넌 좋은 아이지만 나와 이사벨은 샴쌍둥이 같은 사이다. 언젠가 네가 떠나야 한다는 것 기억해. 새겨들어." 쌍둥이의 동침은 금기에 대한 도전이자 나르시시즘이 두 육체에 깃든 것이다.
이사벨과 테오는 매튜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매튜에게 베풀어 주는 호의와 매튜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둘에게 매튜는 '천박한 미국문화의 세례를 받은 풋내기'일 뿐이다.
2) 영화와 몽상
이사벨, 테오, 매튜는 영화광들이다. 매튜의 말대로 이들은 영화를 너무 좋아해 어느 순간 영화와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혁명은 모든 영화를 구분 없이 상영했던 '시네마테크'의 책임자가 경질되며 프랑스에서 문화 검열이 시작되면서 촉발된다. 68의 구호가 '상상력에게 권력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지 않더라도 주인공들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영화는 '상상력'을 생산해내는 공장이다. 영화를 검열하는 것은 상상력을 검열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상상력 공장인 시네마테크가 문을 닫자 이 셋의 영화는 쌍둥이의 부모가 휴가를 떠난 집에서 상영된다. 쌍둥이의 집은 몽상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지미 핸드릭스, 채플린, 마오, 에릭 클립턴이 신으로 좌정하였으며, 와인이 물이 되고, 벌거벗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은 에덴동산이 되었다. 이사벨과 테오의 부모는 이 영화의 유일한 관람자이다. 이들의 영화는 충격적이고, 공허하다. 그것은 영화의 주인공인 셋도 모두 아는 바이다. 삼면 거울에 비치는 이사벨의 모습은 이사벨이 지금 분열적 상황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사벨은 가스 밸브를 열어 셋 모두가 자살하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의 이런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시네마테크의 영화가 정부의 검열에 의해 중지되어다면, 이들의 영화는 창유리를 깨고 들어오는 돌과 함께 끝난다.
3) 아버지와 테오
테오는 반전 서명을 하지 않는 시인 아버지를 비난하지만 아버지는 '시가 탄원서이고, 탄원서가 시'라고 한다. 테오의 아버지는 비교적 양식 있는 지식인처럼 그려지지만 테오에게는 아버지가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소위 꼰대 같은 아버지가 불편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전화가 되지 않자 집을 방문하고 보게 된 벌거벗은 아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지만 아버지는 이들을 깨우지 않는다. 서재에서 수표를 쓴 후 집을 조용히 빠져 나온 후 다시 차를 몰고 떠난다. 테오의 인식대로 아버지는 기만적인가? 위선적인가? 무책임한 것인가? 아마도 그에게 아버지는 미온적이며 불충분하고 보신적이었으리라. 자유의 조건은 돈을 주는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를 부정해야 하는 기묘한 현실.
엔딩 크레딧은 에디프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 우리말로 후회 없다 이다. 영화 초두에 매튜는 파리에서 프랑스어만 배운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배웠다'고 한다. 매튜가 배운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매튜가 이 쌍둥이 남매와의 한달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나 역시 이들을 엿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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