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자책 육아 - 아이의 콘서트 by 철학본색

아이의 콘서트


오늘은 음악 교실의 1학기 마지막 날. 여기에 일주일에 한번 씩 나가면서 만 네 살의 아이는 노래와 춤을 리듬에 맞춰 따라 하기도 하고 피아노, 탬버린, 트라이앵글을 마음껏 두드리며 논다. 학기 마지막 수업이 되자 예쁜 선생님께서 “오늘은 우리들만의 마지막 콘서트를 할거에요”라고 하신다. 물론 아이들이 콘서트를 알리 만무하다. 콘서트라고 해봤자 한 사람 씩 앞에 나와  자동차 경적 소리에 맞춰 건반을 연주하는, 아니 두들기는 수준이다. 함께 수업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모두 여섯 명, 우리 아이는 그 중 세 번째 순서다.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곡을 연주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연주 수준’이 단번에 비교된다. 아무 생각 없는 아이들과는 ‘반대로’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와 아빠의 눈빛들이 빛난다. 나도 마찬가지다. 혹시 내 아이는 열 살에 모차르트 곡으로 독주회를 했다는 에프게니 키신처럼 피아노 신동이 아닐까.


아이 순서가 왔다. 앞 순서 아이들은 잘 해냈다. 아이 이름이 호명되고 아이를 무대 앞으로 내 보내려 하니 나가기는커녕 아빠 뒤로 숨어버린다. 그러고는 ‘아빠 같이 같이..’. 예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아이를 데리고 같이 나가 함께 꾸벅 인사를 했다. 엄마들 틈바구니에서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들지 않으려 했다. 일부러 태연한 척했다. 아이를 건반 앞에 앉히려 하자 아이는 그것도 싫다고 하며 의자를 밀어낸다. “아빠가 옆에 있을테니까 괜찮아”라고 다급한 마음으로 달래보려 했지만 아이는 이번에도 ‘아빠 같이 같이..’다. 아이와 함께 건반 앞에 앉았다. 아이는 긴장이 되었나 보다. 경적 소리에 맞춰 건반을 두드리는 것조차 박자를 정확히 맞추지 못했다. 연주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아이는 히죽 웃어 보인다. 스스로가 대견했을까. 아빠는 그렇지 않다. 뭔가 모르게 부끄럽다고 생각하다가 ‘저 아이들은 우리 아이보다 월령이 빠를거야’ 혹은 ‘이 수업을 우리 보다 더 많이 들었을거야’ 아니면 ‘어린이집을 일찍부터 다녔을거야’ 하며 내 아이가 결코 못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기 위한 ‘정당화’를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마지막 콘서트에서의 일을 전하고 나니 어머니는 그건 아이가 못난 게 아니라 네가 못나서 그런 것이라 말씀하셨다. 내가 못났다니? 아이는 못난 게 아닌데 아빠인 내가 아이를 못난 것으로 여겼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참 못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말씀 더 붙이신다. “부끄러움 많이 타는 것으로 치면 너는 더 했어”. 콘서트를 마치고 아이를 태워 집으로 오는 길에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내 아이에게 실망하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내 아이에 대해 속상해 한 마음을 아이에게 감추지 못했다. 


지난 주 누군가로부터 ‘철학적으로’ 어린 시절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이 신체나 감각, 자아가 ‘성장’을 겪는 것 외에 자라는 영역이 또 있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이란 ‘인식의 창’이 자라는 시기, 또 ‘환상’이 형성되는 시기다. 저마다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창’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창의 왜곡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되도록 이 창이 왜곡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아빠의 ‘왜곡된 창’, 나와 타자를 개성 있는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경쟁과 비교의 대상으로 만드는 창 너머로 세상을 보게 될까 두렵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잠’ 잘 수 있다는 것, 누울 자리로 온다는 것은 삶의 한복판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아이 일생에서 ‘어린 시절’은 아직은 아침에 가까운 ‘새벽잠’을 자는 시기다. 새벽잠의 꿈이 곧 자라게 되어 만나게 될 대낮의 뜨거움,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견디도록 도와주려면 이 꿈이 달콤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라면 누구나 잠잘 때와 같이 자기만 생각할 권리가 있다. 즐거울 권리가 있다. 아이는 예쁜 선생님과 피아노를 치는 꿈을 꾸는 중이다. 그런데 거기에 아빠가 누군가와 비교하며 실망하는 눈빛을 보내자 아이의 꿈은 이내 밤새 쫓기는 악몽이 된다. 책에도 썼고, 이런 글을 쓰고 있을 만큼 머리로는 아는데 상황에 닥치면 안 된다. 그래서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빠도 더 자라야 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요구하는 경쟁 논리, 비교 논리, 교육 논리, 승자독식논리, 전체주의 논리에 빠지지 않으려면 부모도 잠 자고, 꿈 꿔야 한다. 


내 꿈에서 아이는 무대 위에 올랐다. 아이의 콘서트에서 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이것은 절대적 즐거움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2014.2 맘앤앙팡에 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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