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서? 아니, 메타 육아서!
매거진 밀크 2014년 4월호 Critique에 쓴 글.(권영민)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 <노예 12년>에는 같은 노예라도 건강한 신체, 좋은 자아상,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노예가 높은 값에 거래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플랫은 목화 생산량이 다른 노예들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에서 값비싼 노예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노예들과 달리 오직 그만이 자유민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유를 향한 염원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마침내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사랑’은 아이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또 인간으로서 지닌 자유를 온전히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유를 실현한 삶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자유의 조건인가? 여기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캉은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한다. 부모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아이도 부모 욕망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부모가 자유롭지 않으면 아이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의 자유의 조건은 바로 부모의 자유이다. 그렇기에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함께 자라야 한다.
메타 육아서
1) 육아서를 의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의 5장 ‘완벽한 부모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마이클 샌델의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녘)의 4장 ‘자녀를 디자인하는 부모’는 오늘날 우리가 대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여러 자녀 양육법에 대한 경제학적, 철학적 해체 작업들이라 할 수 있다.
2) 부모인 내가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민음사), 드니 디드로의 <수녀>(지식을만드는지식)는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녀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들은 결코 불안을 해소하도록 만들기보다 불안을 견디는 법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3) 받아들이는 사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문예출판사), 변광배가 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살림), 한용운의 <님의 침묵>(하서)은 부모 자신의 자유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부모의 자유가 아이의 자유의 조건이다.
따라서 위의 책들은 그저 인문서라고만 할 수는 없다. 육아서를 넘어선 육아서, ‘메타 육아서’로 불러야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매거진 밀크 2014년 4월호 Critique에 쓴 글.(권영민)
나를 포함한 젊은 부모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가 자신들을 양육한 방식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아이를 키워본 경험도 없다. 그래서 찾게 되는 것이 육아서다. 결혼 전에는 책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부모라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읽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것은 육아가 보통의 부모들에게 ‘미지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불안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느끼는 불안은 불가피하다. 거기에는 자녀 양육에서의 실수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아이의 비만, 아이의 주의력 결핍, 아이의 부도덕성이 나의 무지와 부주의로 생겨서는 안된다. 반대로 아이의 두뇌 개발, 아이의 성공적 진학에는 나의 정보력과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등등. 따라서 육아서를 집어드는 부모는 초조와 불안 속에서 자신에게 되묻는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옳은 방식일까?”
전문가를 믿어 버리기 VS 스스로 생각하기
안타깝지만 불안감을 느끼는 부모들이 육아서로 구원된다는 느낌을 받는 기간은 아이 생후 1년까지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방법이나 젖을 먹이는 요령, 트림을 왜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부분 외의 자녀 양육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짜경제학>에서 스티븐 레빗이 육아법만큼이나 유행이 빨리 바뀌고 전문가들 간의 견해가 상충되는 분야는 없다며 불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아기는 항상 등이 바닥에 닿도록 똑바로 재워야 한다. 아기는 엎어 재우는 게 더 좋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아이를 때리면 감옥에 간다.
태어나서 처음 5년이 가장 중요하다. 3년이 중요하다. 1년이 중요하다.
긴밀한 유대가 양육에 있어서 핵심이다. 출생 순서가 더 중요하다. 자극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육아서가 지니는 효용과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들이 불안을 해소하는 형식으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육아서를 읽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육아서가 대안이 되려면 전문가가 염두에 두는 아이와 그 아이가 처해있는 배경이 내 아이의 상황과 상당한 정도의 높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육아서에 담긴 전문가의 견해가 신뢰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의 기질이나 배경은 저마다 다르기에 육아서에서 말하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전문가들의 견해 역시 서로 상충되기에 신뢰하기에 충분하다고도 결론 짓기 어렵다. 따라서 육아서에 담긴 많은 견해는 어쩌면 ‘백색 소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경우는 불안을 견디기 위해 ‘생각하기’보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육아서 속 전문가를 ‘믿어 버리게 된다’.
자녀에게 무엇을 하는가 VS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
만일 “고민해결!”을 외쳐주는 육아계의 무릎팍 도사를 만나게 된다면, 불안은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사고는 중지되고, 아이는 아이 자신의 고유한 결이 아닌 어떤 법칙 하에서 재단되어 자라게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언명령’은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육아에는 무릎팍 도사의 정언명령보다는 ‘상황윤리’가 필요하다. 아이의 기질, 아이가 처해진 고유한 상황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육아서가 부모의 변화보다는 아이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인문서는 아이의 변화보다는 부모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교육부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에 비해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는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를 믿어 버리기 VS 스스로 생각하기
안타깝지만 불안감을 느끼는 부모들이 육아서로 구원된다는 느낌을 받는 기간은 아이 생후 1년까지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방법이나 젖을 먹이는 요령, 트림을 왜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부분 외의 자녀 양육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짜경제학>에서 스티븐 레빗이 육아법만큼이나 유행이 빨리 바뀌고 전문가들 간의 견해가 상충되는 분야는 없다며 불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아기는 항상 등이 바닥에 닿도록 똑바로 재워야 한다. 아기는 엎어 재우는 게 더 좋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아이를 때리면 감옥에 간다.
태어나서 처음 5년이 가장 중요하다. 3년이 중요하다. 1년이 중요하다.
긴밀한 유대가 양육에 있어서 핵심이다. 출생 순서가 더 중요하다. 자극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육아서가 지니는 효용과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들이 불안을 해소하는 형식으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육아서를 읽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육아서가 대안이 되려면 전문가가 염두에 두는 아이와 그 아이가 처해있는 배경이 내 아이의 상황과 상당한 정도의 높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육아서에 담긴 전문가의 견해가 신뢰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의 기질이나 배경은 저마다 다르기에 육아서에서 말하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전문가들의 견해 역시 서로 상충되기에 신뢰하기에 충분하다고도 결론 짓기 어렵다. 따라서 육아서에 담긴 많은 견해는 어쩌면 ‘백색 소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경우는 불안을 견디기 위해 ‘생각하기’보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육아서 속 전문가를 ‘믿어 버리게 된다’.
자녀에게 무엇을 하는가 VS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
만일 “고민해결!”을 외쳐주는 육아계의 무릎팍 도사를 만나게 된다면, 불안은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사고는 중지되고, 아이는 아이 자신의 고유한 결이 아닌 어떤 법칙 하에서 재단되어 자라게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언명령’은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육아에는 무릎팍 도사의 정언명령보다는 ‘상황윤리’가 필요하다. 아이의 기질, 아이가 처해진 고유한 상황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육아서가 부모의 변화보다는 아이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인문서는 아이의 변화보다는 부모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교육부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에 비해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는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좋은 부모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불안에서 벗어나 확신을 가지고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하기 보다는 불안을 견디는 부모가 더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불안이 부모를 계속해서 자녀에 대해 염려하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불안에서 쉽게 벗어나 버리기 위해 육아서를 그저 믿어 버리지 말자. 오히려 불안 속에서 육아서를 선별하고, 육아서를 활용하고, 육아서를 의심하는 것이 육아서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다.
변화시키는 사랑 VS 받아들이는 사랑
마이클 샌델은 <생명 윤리를 말하다>에서 부모는 자녀의 존재를 그대로 긍정하는 ‘받아들이는 사랑’과 자녀의 복지를 추구하는 ‘변화시키는 사랑’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부모들이 너무 ‘변화시키는 사랑’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우생학과도 닮았다고 지적한다. 아마도 샌델의 이러한 생각에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주된 관심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지능적으로 영리하게 자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는 문제 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부모라면 아이가 되도록 건강하고, 좋은 자아상을 가지고, 높은 지적 능력을 갖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샌델이 문제시하는 것은 이러한 관심에 비해 ‘받아들이는 사랑’, 즉 한 인간으로서의 아이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자 하는 인식이 매우 희귀한 것이 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육아서 부문 베스트셀러 10위 내에는 부모 힐링도서에 해당되는 책 두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동심리학, 영어 수학 교육, 아동의 지적, 신체적 발달과 관련된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변화시키는 사랑 VS 받아들이는 사랑
마이클 샌델은 <생명 윤리를 말하다>에서 부모는 자녀의 존재를 그대로 긍정하는 ‘받아들이는 사랑’과 자녀의 복지를 추구하는 ‘변화시키는 사랑’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부모들이 너무 ‘변화시키는 사랑’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우생학과도 닮았다고 지적한다. 아마도 샌델의 이러한 생각에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주된 관심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지능적으로 영리하게 자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는 문제 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부모라면 아이가 되도록 건강하고, 좋은 자아상을 가지고, 높은 지적 능력을 갖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샌델이 문제시하는 것은 이러한 관심에 비해 ‘받아들이는 사랑’, 즉 한 인간으로서의 아이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자 하는 인식이 매우 희귀한 것이 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육아서 부문 베스트셀러 10위 내에는 부모 힐링도서에 해당되는 책 두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동심리학, 영어 수학 교육, 아동의 지적, 신체적 발달과 관련된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 <노예 12년>에는 같은 노예라도 건강한 신체, 좋은 자아상,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진 노예가 높은 값에 거래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인 플랫은 목화 생산량이 다른 노예들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에서 값비싼 노예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노예들과 달리 오직 그만이 자유민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유를 향한 염원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마침내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사랑’은 아이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또 인간으로서 지닌 자유를 온전히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유를 실현한 삶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자유의 조건인가? 여기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캉은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한다. 부모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아이도 부모 욕망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 부모가 자유롭지 않으면 아이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의 자유의 조건은 바로 부모의 자유이다. 그렇기에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함께 자라야 한다.
메타 육아서
1) 육아서를 의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의 5장 ‘완벽한 부모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마이클 샌델의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녘)의 4장 ‘자녀를 디자인하는 부모’는 오늘날 우리가 대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여러 자녀 양육법에 대한 경제학적, 철학적 해체 작업들이라 할 수 있다.
2) 부모인 내가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민음사), 드니 디드로의 <수녀>(지식을만드는지식)는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녀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들은 결코 불안을 해소하도록 만들기보다 불안을 견디는 법을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3) 받아들이는 사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문예출판사), 변광배가 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살림), 한용운의 <님의 침묵>(하서)은 부모 자신의 자유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부모의 자유가 아이의 자유의 조건이다.
따라서 위의 책들은 그저 인문서라고만 할 수는 없다. 육아서를 넘어선 육아서, ‘메타 육아서’로 불러야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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