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The End of Summer, 2013) by 철학본색

여름의 끝 (The End of Summer, 2013)
쿠마키리 가즈요시 감독



1. 토마코는 신의 정부이다. 토마코는 한 남자와 몇 년전 결혼하여 딸까지 낳아 살고 있다 료타를 알게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이혼하여 도쿄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료타가 아니라 우연히 술을 따르는 일을 하다 만나게 된 신과 함께 지내게 된다. 신과 함께 행복하다가 여겨온 그녀의 삶에 다시 료타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2. 그러니까, 료타가 아이자와 토마코의 집에 처음 들어오게 된 계기는 토마코가 그저 '심심했기' 때문이다. 본가로 돌아간 신 없이 감기를 앓던 토마코는 그저 심심했기 때문에 료타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어쩌면 그 심심함은 토마코가 느낀 외로움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에 토마코는 뭔가를 끊임 없이 먹는다. 고로케를 먹고, 다른 장면에서는 귤을 먹는다. 맛있어 보였던 고로케는 너무 뜨거웠고, 달아 보였던 귤은 역시 셨다. 그것은 토마코가 보지 않으려고 하는, 토마코 그녀가 끝없이 유폐시키려는 그녀 자신의 '실재'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삶은 행복하다고 여겨졌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너무 뜨겁던가, 너무 신 맛이다. 료타의 등장은 그녀가 믿고 있었던 일상을 그렇게 흔들어 놓는다. 료타는 집요하게 토마코를 향해 정말로 신을 사랑하는지, 언제까지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정말로 행복한 것인지를 되묻는다. 그 때마다 토마코는 사랑이 아닌 습관이었다고 하다가, 다시 자신이 한 말을 지우고 함께 해온 그 세월이 바로 어쩌면 사랑이라고 한다. 로타와의 관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가 다시 그 말을 지워 버린 채 자기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심심함 때문에 그녀는 이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끊임 없이 썼다가 지워해야 하는 회로 속에 갇히게 되어버렸다. 행복이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이 문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불행은 찾아오지 않는다. 심심함이 불행을 불러 들였다.

3. 회로에서의 출구, 토마코는 이 출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 신과의 불완전한 관계, 료타와의 애매모호한 관계에서 놓여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료타와의 관계를 절연하려고 했다가, 또 신의 아내 코즈기 유코를 만나기 위해 신의 본가로 찾아가기도 한다. 유코를 만나지 못했고, 료타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다. 여기서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료타는 술에 취했고, 신은 에로 검객 소설을 써야 하는 상황에 절망했고, 토마코는 두 사람 사이에서 출구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 사람의 유일한 안식은 어쩌면 담배이다. 끊임 없이 세 사람이 펴대는 담배는 세 사람 각각이 반복하고 있는 싸움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4. 지나친 격의일 것이 분명하나 카프카의 장편들을 자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어느 날 아침의 짜증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K처럼, 토마코의 조용하지 않으면서도 조용한 일상 역시 심심함 때문에 다른 지점으로 옮겨간다. 노력하고 노력해도 법으로 갈 수 없었던 것처럼, 토마코 역시 노력하고 노력해도 신을 완전히 가질 수는 없고, 몇 시간을 돌아도 신의 아내인 유코 역시 만날 수 없다. 법이 정의가 아니듯, 함께 지내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K가 여자의 손에 눈길이 머문 까닭은 그녀에게 끌렸기 때문일까,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서일까. 토마코가 신과 같이 죽을 수 있다고 한 것은 그에게 끌렸기 때문일까, 자신의 삶을 위해 그를 이용하려 했기 때문일까. 료타 역시 마찬가지다. 토마코는 료타의 손과 눈빛에 끌린 것일까, 단지 그녀의 심심함을 달래주기 위한 상대로만 그를 여겼던 것일 뿐일까. 감기에 걸려 누운 토마코를 두고 본가로 떠나며 '하루 쉬면 괜찮다'고 말하는 신은 토마코를 정말 사랑한 것일까? 

5. 이들의 관계는 도구적 관계일까, 미메시스적 관계일까. 이 회로에서의 출구는 벤야민식으로 말하자면 동화적인 것 속에서만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료타의 손을 붙잡고 떠났을 때 토마코는 출구를 찾게 되었을지도. 숲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이 숲을 벗어나 마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생각하기 보다 그저 사랑해야 한다. 도구로 쓰기 보다 진정으로 만나야 한다.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도대체 여름은 끝이란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덧글

  • 0909 2015/08/22 15:00 # 삭제 답글

    얼마전 여름의 끝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의 내용을 정확히 직시하지 못해 네이버에서 찾아보고 있는 와중에 님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단지 아야노 고 라는 배우를 좋아해서 보게된 영화였지만 영화가 점점 진행될수록 주인공들의 내면이 이해가 되지않았습니다.
    하지만 님의 글을 보고 나서는 영화에 대해서 다시한번 깨닫게 된것같습니다.
    어쩌면 님의 말대로 영화에서 쓰인 제목 '여름의 끝'의 의미는 영화안에 내재되 있는것일까요?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요? 정말 있긴있는걸까요? 다시한번 영화를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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