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을 가진 자들의 망각 by 철학본색

특권을 가진 자들의 망각.

아우슈비츠의 포로 중에서도 특권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특권을 가진 자들(프로텍치아)은 '최종처분'을 조금이라도 유예하기 위해 존더코만더스가 되기도 했고, 카포가 되었고, 하위 계급의 관리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0.5리터의 죽을 더 얻고자 특권 아닌 특권을 가진 프로텍치아가 되고자 했다고 한다. 그런 제 3의 업종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과의 교감이 필요했다. 그 권력이 자신들을 포로로 만든 자들, '주범'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법/법조인이 정의 자체에 봉사하지 않는 이유, 정치인이 공공에 헌신하지 않는 이유, 성직자가 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이유는 법, 정치, 성직이 '정의', '공공', '신'을 명분으로 자기 자신을 '특권화'하는 욕망에 쉽게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사회는 법조인, 정치인, 성직자를 정의, 공공, 신에 대한 충성, 헌신, 봉사를 담당하는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자라는 사실에서 보다는 특권을 가진 자이기에 그들을 선망한다.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진 이유는, 최소한 수용소 안에서는, 포로에게 봉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수용소에서의 모든 존재는 오직 '주범', '포로를 만들 자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 진실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주범들'은 결코 포로들이 특권만을 누리기 위해 권한을 가질 수 없도록 한 점에서만큼은 철저했다. 법이 형식적 평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법조인이 사회 내에서 특권적 존재인 한, 동시에 법조인이 지닌 권한을 철저할 정도로 제한과 감시를 하지 않는 한 허언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권력을 가지려 할 때, 성직자가 신에 대한 충성을 근거로 특권을 가지려 할 때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수용소의 프로텍치아가 동료 포로들의 눈빛이 아니라 '주범들'의 감시를 두려워했다는 점은 수용소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위 이 사회의 특권을 가진 자들이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두려워 한다면 이 국가와 사회가 누구의 것인지 역시 또한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호소하는 시장 후보부터 구의원 후보까지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는 사회, 국무총리 후보였던 안대희라는 자가 전관 예우라는 특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는 법정, 아버지 목사가 아들에게 자신이 담임하던 교회를 아무렇지도 않게 세습하는 것을 허용하는 교회라면 이 사회의 주인이 국민이고, 법의 본질이 정의이며, 교회의 머리가 신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는 순진하고 나약해 빠진 이야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권이라는 이 '예외적 입지', '비상사태', '예외 상태'. 이 특권이 나 자신의 안전만을 위한 것으로 작동하는지,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작동하는지에 따라서 우리는 어떤 조직과 사회의 주권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용소에서부터 어느 사회나 특권층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다만 그 특권이 단지 특권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 것이 되도록 끝없이 싸워야 한다. 법조인 자신 법 밖에 있지 않고 법의 지배 하에 있으며, 정치인 자신 역시 시민의 한 사람이며, 성직자 자신 신 앞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프로텍치아 그 자신 그저 포로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프리모 레비에 따르면 존더코만도스로 선발된 포로는 전임 존더코만도스의 시체를 불태우는 것으로 부대 입회 절차를 마쳤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만일 예외가 불가피하다면 그 예외는 나치, 존더코만도스가 아니라 포로, 정의, 시민, 신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특권층의 망각, 오만, 비겁을 깨워야 한다. 권한을 가진 직책은 자처하게 할 것이 아니라 부담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망각하고 남용하는 비겁하고 오만한 자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프로텍치아들은 자신이 포로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잊을 지언정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만큼은 망각하지 않는다. 법조인, 정치인, 성직자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 어디서 왔는지 망각했다면 그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0.5리터의 죽만으로도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도 있고, 같은 포로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 수용소에서 확인되었다. 우리가 권한을 부여한 자들이, 특권을 가진 자들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들이 누구를 위한 존재인지를 알도록 감시하고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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