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이라는 증인. 그는 왜 찍는가? by 철학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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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 프레시안에 실린 졸문.

'이상엽'이라는 증인. 그는 왜 찍는가?

1. 증언의 (불)가능성
 
“사진작가는 무엇에 대한 증인인가요?”
롤랑 바르트에게 앙젤로 쉬바르츠가 물은 질문

증언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사태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자인 증인과 함께 그 증인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사태 ‘바깥’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만약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이 ‘아우슈비츠의 바깥은 없다’-나치의 몰락은 없다는 식으로 상정하면,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거나 증언을 해야 한다는 발상은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만약 ‘바깥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살아남자, 증언하자 생각하게 되고,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 증언을 들려준다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 가능해지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바깥이 있다는 말은 괴로운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민초들이 내세를 꿈꾸는 것과 멀지 않다. 따라서 ‘바깥에 대한 상상’, 그러니까 이 밀폐된 공간의 ‘바깥’을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이 없다면, 그리고 또한 눈 앞에 있는 인간들이 아닌 인간, 말하자면 본래의 인간성을 몸에 익히고 있는 인간들이 어딘가에는 틀림 없이 있다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없다면 증언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문제는 오늘날 이 증언의 가능성이 여러 면에서 위협 받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신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포획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여전히 현실의 ‘바깥’이 있다는 믿음을 지닐 수 있을까? 또한 지금 내 눈 앞의 인간이 아닌 덕과 지를 갖춘 인간이 있다는 믿음은 무엇으로 보증할 수 있을까? 박해 받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끊임 없이 증언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고난 받는 현실의 ‘바깥’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사도들의 증언을 들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담보해 주는 성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생환자인 프리모 레비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아우슈비츠의 바깥은 바깥이 아니었다. 레비는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 내전, 포클랜드 전쟁을 목도하면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인류는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즉 그에게 아우슈비츠 바깥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호 사건처럼 보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증언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는 그저 ‘소설 같은 이야기’라거나 ‘정치적 음해’라는 식으로 무시해버린다. 그렇다면 증언 불가능성의 시대에 증언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계속 증언해야 하는가? 이것이 증언의 문제가 불러오는 어려운 아포리아다.
 
▲ <최후의 언어> 책 표지

▲ <최후의 언어> 책 표지


2. 사진의 바깥

증언의 위기는 어쩌면 사진의 위기다. ‘증언’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영향은 과연 지금도 유효한가? 사진작가들은 퇴락해 가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바깥’이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증언으로서의 ‘사진’, 존 탁의 말대로 역사의 증거가 아닌 ‘역사 그 자체’로서의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사진의 ‘바깥’은 존재하는가? 텍스트 바깥은 없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사진의 ‘바깥’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더라도 사진이 그것을 보여줄 수도 없다고 믿고 있지 않는가? 미학의 관점에서 사진의 ‘바깥’은 비평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적인 문제는 미학의 본령이 아니며, 사진은 사진으로서만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진 바깥은 없다. 또 사진은 더 이상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지는 프레임에서부터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일 뿐 아니라 조작과 변형도 얼마든지 가능해진 오늘날 사진에 대해 과거와 같은 방식의 ‘믿음’ 을 가진 이들도 없다. 그렇다면 “사진가는 왜 찍는가?”.

3. ‘병든 내 폐’라는 은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면서 포토저널리스트인 이상엽의 근작 <최후의 언어>에는 ‘나는 왜 찍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병든 내 폐’(p159)는 실제 폐렴을 앓은 이상엽이 마주하는 현실의 은유이기도 하다. 원주민을 추방하고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는 타이가 숲 뿐만 아니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라가 있는 45미터짜리 송전탑도 ‘병든 나의 폐’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구럼비 바위, 사막이 되어 버린 새만금, 대형댐에 수몰되고 만 내성천과 언밥을 먹고 일해야 할만큼 열악한 조건 속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병든 나의 폐’다. ‘병든 내 폐’는 그가 마주해야 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폐렴이자, 또 우리에게는 폐렴 같이 호흡곤란을 느끼게 하는 지독한 현실의 이미지다. 
 
그러나 이상엽은 ‘병들어 버린 현실’이 아니라 ‘병이 든 현실을 치료’하는 것에 관심이 더 많다. 발터 베냐민의 말처럼(p.275) 사진가는 외과 의사다. 그에게 사진기는 수술을 위한 매스이다. 그렇다면 이상엽이 ‘바깥이 존재하지 않으며’, ‘밖에 들어줄 사람도 없으며’, ‘사진 바깥에 대해서는 보려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사진을 찍는 이유는 ‘병든 내 폐’를 치료하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다. 사진이 항생제가 될 수 있고, 사진가는 솜씨 좋은 의사가 될 수도 있다.(p.159) 그는 왜 찍는가? <최후의 언어>에서 그가 자신이 붙인 부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답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수술하기 위해 찍는다.

4. 아제 아제 바라 아제, 아포리아를 건너서.

그렇다면 이상엽은 증언의 아포리아를 어떻게 해쳐나갈까. 다큐멘터리 사진이 증언의 한 형식이라면 그에게 ‘증언의 가능성’은 어떻게 담보될 수 있을까?

1) 그는 어째서 현실의 바깥이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가? <최후의 언어>, 프롤로그 ‘필름에 대한 옹호’는 단지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에 대한 애상만을 담은 글이 아니다. 이상엽은 스스로를 무신론자이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범신론자가 되어  버린다’(p.20)고 한다. 인간의 정신만으로 세상과 대항할 수 없는 무수한 인류를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21) 그렇기에 이상엽이  사진으로 ‘병든 폐’를 고치는 의사로 자처하는 것은 그가 인간 사회에 대한 순진한 낙관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가 사진가일 때 범신론자가 되는 까닭은 백령도, 구럼비 바위, 만주와 시베리아를 목적어로서가 아닌 주어로, 3인칭이 아니라 2인칭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가일 때만큼은 현실에 있지 않다. 그래서 프롤로그에 지관 스님의 다비식을 다루면 글의 끝을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하로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사진을 찍을 때 그는 ‘건너가고 건너가고, 모든 것을 건너 저 깨달음의 언덕에’(p.23) 서 있다. ‘아파서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한 없이 세상을 원망할 수 없는’ 것(p.21)의 요구가 들리는 사진가가 바깥이 있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바깥을 꿈꾸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아낼 수 없는 이들을 필름에 담는 사진가가 어찌 바깥을 꿈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2)사진의 바깥에 대해서는 보려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사진을 제대로 봐 줄 저기 바깥에 누군가가 틀림 없이 있다는 믿음을 그는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가? 이상엽은 이 믿음을 포기하는 대신 사진의 바깥을 보지 않으려는 경향과 흐름에 저항하기로 한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많은 이들은 사진을 ‘사진으로서만’ 보려 한다. 그것은 마치 소설이 ‘사실’이 아니기에 향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연출 사진이든 그렇지  않은 사진이든 사실과는 구별되는 그저 ‘사진’으로만 여기는 태도가 일반화되고 있는 흐름과도 관련 있다. <최후의 언어>를 비롯해 그가  여러 전작에서 사진 뿐만 아니라 긴 글을 덧붙인 에세이집을 내고 있는 것은 텍스트(사진) 바깥에 컨텍스트(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는 사진집이 아니라 사진 에세이를 통해 사진의 ‘바깥’이 없다는 식의 조잡한 유미주의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5. 자신의 주관성을 증언하는 ‘최후의 언어’

얼마 전 전국 곳곳에서 열렸던 라이프 전을 보면서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민중미술 15년’ 전시가 떠올랐다. 그간의 민중미술을 회고하는 의미가 강했던 이 전시는 문민정부 시대에 내려진 (동의하기 어려운) 민중미술에 대한 사망선고였다. 2014년 전국 곳곳에서 열렸던 라이프 회고전을 다녀온 후 나는 영상 매체 시대에 재현된 ‘민중미술 15년’ 전시를 다녀온 것처럼 느껴졌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민중미술을 한다는 것만큼이나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사진 이미지는 물론 영상 이미지도 넘쳐나는 시대에 2007년 폐간된 라이프지를 기념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포토 저널리즘이 당면한 위기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이런 느낌과 생각은 온당한 것도,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아마도 앞서 말한 사진과 증언이 처한 아포리아에 대한 생각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어떤 맥락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기억의 보고이며, 기억을 재생(부활)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사진을 ‘최후의 언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바르트의 이 말은 언어가 수행해낼 수 없는 과거를 현재만큼 확실하게 만들고, 세계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사진의 현존에 대한 인증적 기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의 이 현존 인증력에 대한 수많은 회의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여전히 ‘최후의 언어’일 수 있는가? 나는 이상엽의 ‘눈물 젖은 파인더’(p.243)로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다시 바르트의 말을 떠올린다.

“사진작가란 그 자신의 주관성에 대해서 자신이 대상에 직면한 주체로서  스스로를 제시하는 방식에 대한 증인이다. 다분히 현상학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사진에 대한 이런 현상학적 태도는 다른 억압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이다”.
앙젤로 쉬바르츠의 질문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대답

여기서 현상학적 태도란 대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사조와 이념을 환원해 버리고, 주관이 오직 사태 자체의 열림에만 자기 자신을 개방하여, 사태의 본질만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힘을 지닌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 기초해야 비로소 사진작가는 대상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방식, 자신이 대상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증인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가 증언하는 사진을 통해서 만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대상에 직면한 주체로서의 그를 만나, 그에게 주어진 ‘병든 폐’를 만나고, 그리고 그 폐가 소생되는 ‘희망’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상엽, 그가 찍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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