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색: 레비나스 읽기] <시간과 타자>첫번째~두번째 모임 후기 by 철학본색



* <시간과 타자> 첫번째, 두번째 모임 리뷰! *

본색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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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서 폭풍먹방을 하고 있는 그림쟁이가 썼습니다ㅎㅎ

 

  본색 소사이어티의 '레비나스 읽기' 첫 스타트로 <시간과 타자>를 읽는 중입니다. 9월 23일과 9월 30일 두 번에 걸쳐서 서문과 1강을 읽고 토론했는데요, 특히 본격적인 독해에 들어간 두번째 모임은 회원들의 열띤 토론 덕분에 더 뜻 깊었습니다. 똑소리 나는 권영민 선생님의 해설도 물론 빠뜨릴 수 없지용^^










   제일 처음 짚고 넘어갔던 것은 바로 '시간'에 관한 개념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시간을 직선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잘게 쪼갠 단면 - 시, 분, 초 단위로 인식하죠. 바로 좀 전에 지나간 1분 1초 전의 상황은 과거, 아직 오지 않은 1분 1초 후의 상황은 미래라고 여기며 하나의 긴 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직선적 흐름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야만 레비나스 읽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고유한 진동과 폭을 가지고 있어 마치 음악의 대위, 멜로디 흐름과 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현재' 인식하고 있는 이 상황(근원인상)은 조금 전에 지나간 상황을 인식(파지)함으로써 영향을 받고, 또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며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예지). 따라서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은 다르고, 각자 고유한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인식 등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독자적 영역에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 개념을 염두에 두고 들어간 1장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치의 시대를 살면서 직접 경험했던 것들이 레비나스의 존재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첫번째 질문 - '있다', '참되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실재한다고 인식할 수 있다면 있는 것, 내가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도 어딘가에 있는 것, 경험을 통한 인식 속에 있는 것, 신이 있게 하라 하였기에 있는 것 등 각자의 생각이 나왔습니다. 특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게로 와서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사진을 찍게 만드는 무엇이 다가온다'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각자 존재자에게 현현하거나 존재자가 포착한 '존재'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 것인데요, 레비나스는 이에 대해 '막연하게 있는 것'이라는 말로 한 방 먹여버렸습니다!
   그에게 존재란 막연하게 세계 어딘가에 있기에 - 익명적으로 존재하는 것(il y a)이기에 우리가 토론했던 내용처럼 규정할 수 있고, 나타낼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 없는 - 나치 철학에 반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레비나스는 존재자는 중요하지 않고 존재에 대한 강조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언뜻 이 부분만 보자면 오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번째 질문 - '주체'란 무엇인가? 고독과 홀로서기에 대한 글을 읽기 전 또 한 번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생각/행동하는 가운데 주체성이 드러난다, 라는 경험론적인 생각도 있었고, 나 자신을 스스로 온전히 알 수 없고 외부와의 끊임없는 관계와 시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노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 죽음을 마주하여 고독함을 느끼고 살아있다는 실존적인 느낌을 가지는 것 또한 주체라는 생각도 나왔지요. 회원들 각자의 시각과 세계관이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레비나스의 대답은 어땠을까요?
   그는 '고독'은 '몸'을 가지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는 순간, 자아가 홀로서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 자아는 자기(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홀로서기의 출발이자 종착역은 바로 몸입니다. 자아는 몸이라는 물질성과 관계를 하지요. 자신의 몸을 제거하고 자아를 살핀다는 것은 그에게는 자신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오만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도 저버리는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막연한 익명적 존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 익명적 존재를 의식하고 관계를 맺어 홀로서기 하는 존재자 자체에 대한 고민 또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자는 주체이다 - 레비나스는 나치의 수용소 곳곳에 짐덩어리처럼 쌓여있는 무수한 시신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숨쉬던 저들이 왜 싸늘한 시신으로 쌓여있어야 하는가? 레비나스의 존재론은 하등한 존재와 우월한 존재로 등급을 나누어 버리는 나치의 세계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몸(물질성)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상 외라는 반응도 있었구요, 특히 영화 <트렌센더스>나 <루시>, <Her>와 같은 작품을 언급하면서 주체, 자아, 자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계속 남기고 있네요. 물질성이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Her>에 나오는 OS 사만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루시>에서 물질성을 버리는 것을 택한 루시의 선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2강에서 키워드로 언뜻 보이는 고독, 물질성, 실존, 구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토론을 한다면 다양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회원님들의 열정적인 의견 개진 부탁드려요ㅎㅎ


** <시간과 타자> 그렇게 어렵지 않.....아.........ㄴ.....(철썩) 그리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한 책이에요^^ 친절한 권영민 쌤의 직강과 열띤 토론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본색 소사이어티 '레비나스 읽기'에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본색 소사이어티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 하고 싶은 분 누구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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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철학본색 2014/10/01 22:59 # 답글

    영민햄입니다. 좋은 정리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 정리라면 모임에 오지 않은 분도 모임에 거의 참석한 것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책의 전반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레비나스 존재론에 대해 정리해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조금 수정해두겠습니다.
    막연하게 있다는 것은 하이데거가 존재자에 대한 존재의 우위를 비판하는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레비나스는 여기에 대해 존재에서 존재자로 가려는게 목표이기 때문에 존재자가 존재를 고독하게, 남성적 힘으로, 정복하고 지배한다고 하지요.
    이 존재론은 하이데거 존재론에 대한 비판이자 나치 자체에 대한 비판이기 보다 하이데거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결국 나치식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존재의 생기는 마치 피히테가 독일 정신 운운하던 것, 그걸 히틀러가 민족 정신 운운하던 것과 구조적으로 닿아있지요. 존재-존재자 연결을 통해서 독일정신의 현현으로 존재자, Dasein(현-존재)을 연결하려는 것에 대해 레비나스는 역으로 현존재인 인간이 존재를 정복하고 지배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보충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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