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색: 레비나스 읽기] <시간과 타자> 세번째 모임 후기 by 철학본색


  레비나스는 제1강을 통해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체가 물질성을 가진다고 말하였습니다. 몸을 가진 주체가 물질적이라는 것은 곧 주체의 유지를 위하여 물질적 기반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가진 물질성을 죄악시하였다. 플라톤은 신체를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 보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은 다들 아실겁니다. 종교에서도 물질적인 삶을 타락한 삶이라 규정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레비나스는 어떻게 물질을 하찮은 것으로 볼 수 있느냐고 반론합니다.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근대 철학의 명제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물질적 구원을 요구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고 역설합니다. 유한적인 존재자가 자신의 물질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물질의 충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거죠. 민중들이 물질적 생존을 위하여 투쟁을 하는 것은 투쟁을 통하여 물질적 생존을 충족시킨 다음 그 다음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구원을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물질적 생존을 위한 투쟁을 통해 물질의 충족을 얻게 되고 물질이 충족된 주체는 홀로 설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본거죠. 유한한 존재자의 물질성은 존재자가 몸을 가진 이상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며 존재자와 존재는 죽음만이 분리시킬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 자유를 느낄까요? 대체 자유란 무엇일까요? 혼자서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일까요? 그것이 자유라면 어떤 맥락에서 자유일까요? 우리는 자유라는 단어를 막연하게 사용합니다. 과연 자유란 무엇일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부분에 이어서, 물질성을 가진 존재자가 물질적으로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레비나스의 답은 먹거리입니다. 먹거리는 주체가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단지 먹고 사는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먹거리를 예시로 들지는 않습니다. 레비나스는 먹거리를 이야기하면서 향유(jouissance)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향유는 고대 그리스의 주신 아폴론입니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며 궁술의 신이죠. 아폴론은 어떻게 확장될까요? 태양이 있기에 빛이 있고 빛이 있기에 밝음이 있고 무언가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빛의 밝음 아래 활로 무언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죠.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유추할 수 있을까요? 주체는 향유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 밖의 존재에 대하여 알 수 있으면서 그것과 거리를 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향유의 과정에서 주체와 탈존적 실체가 서로 거리를 두기 때문에 자기와 자아의 관계는 훼손되지 않고 유지됩니다. 주체의 물질성으로 인하여 향유의 방법으로 물질적 구원을 기도하여도 존재자의 고독은 극복되지 않습니다. 존재자가 고독한 것은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보편성을 가진 유아독존적 존재이다. 이성은 세계에 대하여 보편적 설명이 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이성은 혼자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타자가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그 능력으로 타자를 찾지 않는 것입니다. 이성이 가지는 유아성은 이성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철학자들의 관념론적 궤변도 아닙니다. 이성이 가지는 보편성 때문인. 원래 그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성이란 무엇일까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성을 이야기하였고 이성적 인간을 이상화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용합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성이 뭐냐고 묻는다면 딱 부러지게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다.

  다시 질문합니다. 이성이란 무엇일까요? 로고스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이성일까요? 환경을 변용할 수 있는 능력이 이성일까요? 아니면 그저 인간의 사고 능력이 이성일까요? 레비나스의 짧은 텍스트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 수많은 질문에 대하여 답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레비나스의 생각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덧글

  • 종열ㅎ) 2014/10/09 23:54 # 삭제 답글

    우선 참석지 못한점 사과 인사 드립니다.
    1. 물질적 충족(먹거리)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공감의 의사를 펼치는 것이, 얼마전 고대 학생들의 대학평가 반대의 예시가 떠오르네요.
    시훈이형이 언젠가 지방대 학생들이 대학 평가의 실재 피해자이므로 지방대 학생이 움직여야 하는게 아닌가ㅡ 라는 말흠을 하신걸로 기억합니다.
    그에 대핫 대답이 아신가 싶은데, 지방대 학생읏 졸업과 동시에 의식주의료와 같은 인간의 기초생활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고 그에 대한 불안이 그러한 움직임을 부르지 못하지 않았나 싶구요. 고대 학생드리 그러한 물질적 불안으로부터 자유로롭기 때문에 할 수 있지 않았나ㅡ 하는 생각도 듭니다.
    2. 플라톤식의 관념로는 자체로서 완벽해서 타자를 향하지 않는다는이야기가 눈에 밟히네요.
    지난 본색 모임에서도 그랫듯 제가.....ㅎㅎ

    3.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네요. 흔히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라는 말을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합리적이고 완벽한 것을 원하는데, 이성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것이 완벽한가? 이성은 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철학본색 2014/10/11 10:41 # 답글

    안녕하세요? 영민햄입니다. 영선씨의 소중한 리뷰 감사드립니다. 거의 레비나스 해설에 준하는 꼼꼼한 후기에요. 사실 저는 우리가 레비나스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각자의 존재론, 시간론, 세계론 등이 적극적으로 개진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레비나스와도 경쟁(?)해볼 수 있다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영선씨께서 정리해두신 레비나스의 자유론, 세계론, 이성론을 참고해 본소팀의 활발한 의견개진이 일어나게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소중한 후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철학본색 2014/10/12 01:16 # 답글

    영선이의 리뷰가 참 좋네요, 현진이의 리뷰가 현진이의 목소리가 느껴진다면, 영선이의 리뷰에선 영선이의 집중도나 진중함이 느껴집니다.(이시훈)
  • 굿데이 2014/10/18 23:32 # 삭제 답글

    전통형이상학에서 이성은 인간이 높은 수준으로 고양하므로 세상의 보편성을 충분하게 설명하고 규정할수있다고 자신하였고
    그렇게 이성을 발전시켜왔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알지못하는 영선씨의 리뷰를 보면 레비나스는 그러한 이성의 결과로 혼자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기에 타자의 존재가 불필요
    하고 그러한 결과로 인간은 고독한 존재자로 살아간다고 보고 있다는 말이지요?

    짧게 아는 지식이지만 하이데거는 이성을 이전의 형이상학과는 다르게 보면서 그러한 고독한 상황을 초월하려고 시도하고 있지요.
    인간이 살아오는 세계속에서의 삶에서 결국은 허무함을 짐으로서 인식하는 불안속에서 그리고 세계를 경외로 경험하면서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지는 이성으로서, 고독이 아니라 타자의 고유한 존재를 깊이 받아들이게 되는 단계로 나아가는것 같아요
    레비나스에게도 이성이란 인간의 고유한 사고능력이 아니라 감정이나 영까지도 포함하는 본래적인 인간전체가 아닐까요?
    레비나스를 잘 모르면서 그냥 댓글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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