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K-Pop과 식민주의 by 철학본색

1.

  1990년대 이전 한국의 대중문화는 왜곡되어 있었다. 식민 지배와 해방, 그리고 뒤 이은 기나긴 독재는 대중문화의 생존공간을 끊임없이 위협하였다. 대중문화는 대중을 타락시키는 퇴폐 문화의 온상으로 인식되었고 대중문화의 산물이 가지는 영향력은 대중들에 대한 정치적 선전선동의 수단이어야 했다. 정치적 선전선동의 범위는 정권 찬양, 반공주의와 같은 정치적 주제부터 시작해서 일부 기성층에 의하여 강제된 ‘모범적 인간상’의 주입까지 다양했다. 그에 대한 거부란 있을 수 없었다. 거부하는 자들은 정치 권력이 휘두르는 철퇴 앞에서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문화가 잠들었던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이라든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유입된 해외의 대중문화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큰 자극이 되었다. 미국의 락 문화에 영향을 받은 ‘히키 신’ 신중현이라든지 포크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전시킨 송창식, 김민기 등이 그러한 과정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기 어려웠다. 식물은 주변에 덤불이 지고 그늘이 지게 되면 양지를 찾아서 이리 휘고 저리 휘게 된다. 가시덤불 속에서 한줄기 빛이라도 받고 싶어 어떻게든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태양을 향하고자 했던 나무 한 그루. 그것이 1980년대 이전의 대중문화였다.

 

2.

  1980년대 이전까지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팝송을 들었고 그것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느냐가 자랑거리였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촌스러운’ 것들이었다. 해외의 팝송을 많이 듣고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트렌드세터들이었다. 사전검열과 건전가요라는 이중의 장벽 속에서도 대중문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것을 유통하는 사람들은 대중들의 욕구에 반응하였다. 당시에 내노라 하는 라디오 DJ들은 방송을 통해 해외의 음반을 송출하였다. 그리고 해외의 대중문화 트렌드에 영향을 받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마저 정권의 칼끝은 늘 도사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송출되는 해외의 음반들도 대부분 검열에 의하여 칼질된 음반이었다. 해외의 트렌드를 따라가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은 국내의 열악한 기반, 대중들의 외면 속에서 실패를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의 대중문화가 ‘촌스러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이 축적되게 되었다.

 

3.

  한국의 대중문화 한켠에서 해외의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다른 한켠에서는 다른 노력이 존재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민중 문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대중문화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에 대하여 고민한 사람들이었다. 여태껏 대중문화의 주제는 통속적인 것들 뿐이었다. 이들은 당시의 정치적,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노랫말에는 엄혹했던 당시의 정치적 현실, 갈라진 민족 분단의 고통,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이 담겼다. 때로는 노랫말로만 아니라 당시 정치 권력이 휘두르던 검열의 칼날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체로 광주 민중항쟁의 영향으로 기존의 대중문화를 제국주의적이라고 인식하였고 그에 대한 안티테제 존재하였을 뿐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진테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해외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한국 대중문화의 형식미에 큰 진전을 가져다 주었다면 민중 문화를 발전시킨 사람들은 대중문화를 억압하는 정치 사회적 장치에 대한 저항을 통해 그것을 분쇄하고 대중 문화의 내용이 좀 더 다양해지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1990년대를 일컬어 흔히 한국 대중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린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축적된 한국의 경제적 토대는 1990년대에 이르러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가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음반 판매량을 집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중문화 관련 회사들이 굉장히 영세한 업체들이었고 주먹구구식으로 산업이 유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제대로 음반 판매량이 집계가 되었고 밀리언셀러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중문화의 양적 성장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고 대중문화를 기꺼이 소비할 수 있는 대중들이 증가하게 되면서 대중들의 입장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지게 된다. 대중들은 이제 해외와 비교하였을 때 한국 대중문화가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을 서서히 요구하게 된다. 이는 곧 대중문화의 질적 성장에 대한 시대적 요구였다. 시대적 요구는 서태지와 아이들, 넥스트, 김건모 등 다양한 장르와 실력있는 작가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5.

  1990년대의 잠깐 동안 지속된 풍요는 1998년 본격화된 경제 위기로 급속하게 붕괴되었다. 대중문화를 소비할 대중들의 경제적 기반이 국가 경제의 침체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몰락하게 되었고 그에 더불어 기술의 발달은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뒤흔들게 되었다. 대격변 속에서 1990년대까지 유지되었던 메이저 음반사들은 대부분 폐업하였고 그 속에서도 SM 같은 회사들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이러한 회사들은 혼란 속에서도 자본을 유치하여 자신들의 컨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판매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그들이 판매할 컨텐츠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몇몇 기획사들이 만든 아이돌 그룹들은 한국 시장의 몰락 속에서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당시 막 대중문화의 거대한 시장으로 떠오르던 중국에 진출하였고 그에 뒤이어 일본 시장에도 진출하였다. 이들은 한국 시장에서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이윤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컨텐츠를 유지 및 재생산하고 있다.

 

6.

  잠깐 돌아 보자. 1980년대 이전의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무엇이었을까? ‘촌스러움’이고 ‘쪽팔림’이다. 왜 촌스럽게 느껴지고 쪽팔리게 느껴지는가? 그건 해외의 그것과 견주어 보았을 때 부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골뜨기가 처음으로 도시의 번화가에 들어섰을 때 끝없이 늘어선 고층건물과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에 깜짝 놀라고 자신의 몰골과 고향을 뒤돌아 봤을 때 느끼는 열등감과 같은 것이다. 1990년대의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다시 보자. 1990년대의 대중들은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하여 해외의 그것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는 도시에서 돌아온 시골뜨기가 자신의 고향을 돌아보고 자신이 본 도시와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과 같다. 이제 2000년대 이후의 대중들이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태도로 가보자.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를 설명하는 단어는 수 만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한류’이다. 한류란 무엇인가? 해외에 나간 한국 대중문화가 잘나간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촌스러움과 쪽팔림의 대상이었던 천덕꾸러기가 자랐더니 세상에 잘 난 사람이 됐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이면을 들여다 보자. 현재 한류의 중심에는 아이돌 그룹이 있다. 아이돌 그룹은 본질적으로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다. 다수의 인원을 기대 수준까지 올리는 데 많은 자본과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컨텐츠로 세상에 등장시켰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도 않으며 높은 유지비 때문에 순이익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획사들은 줄기차게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 해외로 내보낸다. 거칠게 말해서 비교우위를 가지는 컨텐츠가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사정을 알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럼에도 왜 ‘한류’라는 증후군이 한국 사회를 관통하였을까? 한국 대중문화의 주변부를 도사리는 내셔널리즘 때문이다. 해외의 대중문화에 비교당하며 천덕꾸러기 취급 당하던 시기의 한국 대중문화는 문화적 식민지 상태였다.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는 문화적 식민지 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는 해외에 유행하는 자신들의 컨텐츠를 보며 이제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자국의 식민지를 가지게 되었다며 으스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질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그러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내셔널리즘적 열등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문화적 제국주의로 귀결된 것이다.

 

7.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에 유통되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해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 시장을 ‘정복’한 것인가?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른 지역을 식민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이다. 한국은 대중문화를 통해 해외에 문화적, 경제적 식민지를 만들려고 작정한 듯 몸부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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