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감옥에서 - 일본의 죄와 책임 문제에 대한 서경식의 대답 (김영선씨 정리) by 철학본색

- 서경식 -

1. 네 번째 호기
- ‘쇼와’의 끝과 조선

  36년간 조선을 식민 지배를 하였던 일본은 조선1)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시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던 사건이 1989년에 있었다. 1989년은 일본의 쇼와 천황 히로히토가 사망한 해이다. 쇼와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헤이세이2) 의 시대가 막을 올리는 시점에 이르러 일본에서는 쇼와의 시대를 조망하는 사설 등이 인구에 오르내렸다. 

  서경식은 쇼와의 시대를 뒤돌아보는 일본의 시각을 관찰한 후 일본은 조선을 ‘묵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은 수많은 논리를 들고 와서 쇼와의 시대를 통틀어 가장 어두운 시기인 태평양 전쟁에 대한 쇼와 천황의 책임을 덮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오히려 전쟁의 책임을 은근히 ‘귀축미영(鬼畜米英)3) ’에게 떠넘기려 하였다. 심지어 전후 도쿄에서 진행되었던 전범 재판에 대해서도 ‘전쟁의 책임은 연합국에게 있는데 왜 일본에게 덮어 씌우냐는’ 식의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본인의 인식 속에서 쇼와 천황이란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전쟁 속에서도 세계 평화를 위하여 걱정하고 일본 제국의 신민을 위하여 고뇌하였던 자애로운 인물’이었다. 그러
한 허상은 자료를 통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음에도 망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천황에 대한 감싸기는 비단 전쟁 당시의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항복으로 마무리된 후 미국은 일본을 이용하기 위해서 천황제를 존치시켰다4) . 일본에서는 미국 ‘덕분에’ 국체가 보존되었기 때문에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손쉽게 수습하고 지금의 강대국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인식의 왜곡 속에서는 일본과 피해국 사이의 진정한 화해란 있을 수 없다. 일본의 천황이 사과 발언을 한들, 총리대신이 사과 발언을 한들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과 조선의 관계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려야 할까? 화해는 진실에 대하여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일본은 수많은 논리와 비논리를 동원하여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보, 식민 지배, 타국 침략을 옹호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일본은 과거의 범죄에 대하여 축소하고 과거의 일본이 걸어온 ‘영광’을 회상할 수 있는 것들-기미가요, 일장기-을 옹호하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과 조선의 진정한 화해를 기도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잘못과 책임에 대하여 강력하게 지적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서경식은 주장한다. 

  일본에게는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 일본이 앞서 제국주의 열강 앞에서 무릎을 꿇은 후 자신들이 제국주의를 받아들여 조선을 식민지화시켰을 때,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가 피지배 민족과 피침략 국가들의 저항 앞에 패망하였을 때, 이어서 일본과 대한민
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맺었을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최고 책임자였던 쇼와 천황이 죽었다. 이 때마저 일본은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일본은 자신의 과오를 기반으로 풍요를 누렸던 한 시대를 마감하는 시점 앞에서 천황의 이름 아래 조선인은 물론 자신들마저 강요당했던 피해마저 ‘잊어버리고’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 발로 걷어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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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은 남한 혹은 북한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혹은 한민족을 총칭하는 것이다.
2) 현재 일본의 천황인 아키히토의 연호
3)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서 연합국을 낮추어 부르던 말
4) 맥아더를 비롯한 미국의 수뇌부는 당시 예상되던 소련과의 패권 다툼에서 일본이 미국의 편에 서도록 하기 위해서 천황제를 존치시키는 대신 이전과 달리 천황의 역할과 권력을 축소시켰다.


2.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둘러싸고
-반半난민의 위치에서

   자이니치(在日)5) 은 난민이면서 난민이 아니다. 자이니치는 왜 난민이 아닌가? 일본의 패망 이후 자이니치들에 대한 국적 선택 과정, 그리고 그들이 일본 사회에서 무시당하면서도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처음에 선택했던 ‘조선적’6) 을 버리고 ‘한국적’을 선택하거나 ‘일본인’으로 귀화하였다. 이러한 자이니치들은 ‘법적’으로는 난민이 아닌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이니치들은 난민들이다. 자이니치들은 일본에 대해서도 한국에 대해서도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일본 사회 속의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다. 그럼에도 자이니치들은 ‘코레안’7) 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리고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맥락이 존재한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식민 전쟁에서 한국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명분 없는 전쟁에 ‘용병’으로 참전하였고 이를 통해 ‘실리’를 챙겼다. 우리는 남베트남과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병하였으며 그곳에서 공산당 무리들에 맞서 남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싸웠다고 배운다. 하지만 그 행간사이에는 수많은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파월 부대들의 잔인한 전투 방식, 파월 부대원들이 남긴 혼혈인들, 파월 부대와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해 베트남인이 가졌던 공포와 경멸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거나’ 오히려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한 맥락에 대하여 긍정하든 부정하든 베트남인 혹은 베트남 출신 난민이라는 타자가 ‘코레안’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하여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베트남인의 타자가 ‘코레안’이라면 일본인에게 타자는 누구인가?

  서경식은 우에노 지즈코(上野 千鶴子)8) 등 일련의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제시하며 그들의 주장을 비판한다.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은 여러 논리를 통하여 일본과 조선의 식민 지배와 그 결과물에 대한 내셔널리즘적 접근법을 비판하고, 좀 더 일반화되고 보편적인 잣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에노 지즈코 교수가 정신대/위안부 문제를 식민 지배 대 피지배라는 ‘내셔널리즘적’ 구도를 거부하고 남성 대 여성이라는 페미니즘적 구도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일본의 시민주의자들의 의도라는 것이 일본의 범죄를 은폐하고 조선에게 일방적으로 화해를 수용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
의 엉성하기 짝이 없는 논리들로 인하여 일본 내 보수들에게 좋은 논리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들의 논리는 피해자들에게 지극히 폭력적이며, 식민 지배와 피지배의주체들을 파편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죄와 책임의 문제를 희석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가지는 폭력성은, 내셔널리즘은 죄악이라는 순환 논법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보편성 논리를 피해자들에게 강제하려는 데 있다.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고통을 관통하는 맥락에 대하여 검토하고 그것이 가지는 보편성을 발견하여 이를 기반으로 가해자와 화해하고 연대하는 권한은 온전히 피해자에게 있다.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
은 가해자의 신분으로 피해자가 가진 권한을 가로채서는 피해자의 기억과 고통이 가진 보편성을 자의로 재단하고 이를 피해자에게 멋대로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과 일본 정부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수많은 국가와 개인이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하여 신속하게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일본 사회 내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일본 내에서는 타자에 대하여 책임을 자각하고 이를 짊어지려는 사람들과 타자를 묵살하고 자기애로 일관하려는 사람들과의 대립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전자에 비하여 후자가 압도적으로 주류이며 사회적으로도 권력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은 후자에 굴복했던 수많은 인격들을 옹호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내셔널리즘이며 내셔널리즘
은 나쁜 것이라는 순환 논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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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재일(在日)의 일본어 발음
6) ‘조선적’은 어떠한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선 민족 출신이라는 의미이다.
7) ‘코레안’은 국적으로서의 한국인과 민족적으로서의 조선인을 포괄한다.
8)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스트, 현 리츠메이칸 대학교(立命館大学校) 교수


3.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다시 생각한다

  1980년대를 거쳐 냉전이 종식되면서 반공주의 아래 짓눌려 있던 민주주의가 되살아 나고 인권 문제에 대하여 증언하고 직시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그에 반비례하여 그에 대한 반동도 가시화되고 있다. 증언에 대한 반동은 범죄에 대한 책임 문제를 회피하거나 범죄를 부정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정부 단위가 인정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90년대 초반이다. 이 시기는 민주화 등등과 더불어 종군 위안부 등 범죄 피해자들의 증언이 등장한 것과 비슷한 시기이다. 일본의 내각에서 범죄 책임 문제가 언급되자 일본 내 우익들이 일제히 반격을 시작했다. 일본의 우익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자학적’이라고 비난하고 일본의 범죄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시도는 더욱 강력하다.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은 천황제와 결합한 우익의 영향으로 연기되어 왔던 일본 내 시민사회의 형성이라는 단꿈과 제국주의에 대한 일본의 책임 인정과 사과라는 쓴맛 사이에서 헤매다가 일본 우익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면에는 일본이 전후 과거와의 맥락 없는 단절을 거치면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가 어떻게 나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 더 나아가서 내가 왜 다 같은 일본인이냐는 회피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반내셔널리즘과 결합해서 책임 문제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서경식이 주장하는 ‘일본인으로서의 책임 통감과 그에 대한 사죄’는 일본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귀속 의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 대 조선인의 제국주의적 권력 관계 속에서 일어난 범죄 사실에 대하여 자각하고 그것에 대하여 방기하고 회피하였던 책임을 다하며 그에 대하여 보상을 하여야 함을 정치적으로 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 요지이다. 서경식의 주장은 일본 내 자유주의자, 그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 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듯 내셔널리즘으로의 회귀라든지 일본과 조선 사이의 갈등 구조를 격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서경식은 탈식민주의, 탈내셔널리즘으로 가기에 앞서서 내셔널리즘의 구조 속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매듭지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서경식은 일본의 책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증언의 시대’의 10년이 지난 지금, “몰랐다”, “알아채지 못했다”라는 변명은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이든, 아니면 생각이 모자랐던 것이든 간에 ‘의도적 태만’이라는 고발은 대다수 일본인들에게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당신은 어디로 앉아 있는가?
-하나자키 고헤이에 대한 항변

  본 항목에서는 굳이 하나자키 고헤이(花崎こうへい, 일본의 철학자)의 논문 내용과 그에 대한 서경식의 비판론을 일일이 요약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서경식의 책임론에 대해서 정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서경식의 책임론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로부터 시작한다. 서경식은 제국주의를 비롯하여 국가나 민족의 단위 간에 벌어진 범죄에 대하여 죄와 책임을 구분한다. 죄와 책임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 등 학살) 문제이다. 유대인을 비롯하여 비인간(Untermensch)으로 규정된 집단에 대한 학살을 결정한 것은 나치 수뇌부들이다. 홀로코스트를 결정한 자들은 죄를 가지고 있다. 홀로코스트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독일 시민들은 죄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독일 시민들은 홀로코스트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그에 대하여 외면하고 회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를 일본과 조선의 식민 지배에 대입해 보자. 조선의 식민 지배를 결정하고 조선에 대한 광범위한 착취를 실행한 것은 일본의 천황을 비롯한 지배층이다. 이들은 식민 지배와 착취에 대한 죄인들이다. 일본의 신민들은 식민 지배와 착취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식민 지배와 착취 과정에서 유입된 여러 가지 이득을 취하였으며 식민 지배와 착취로 인한 조선 인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몰랐거나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죄와 책임 문제는 사실 단편적으로 가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치 독일과 일본을 예시로 들었지만 독일의 시민이나 일본의 신민들은 온전하게 이익을 본 집단이 아니다. 이들도 독일의 나치당, 일본의 제국주의자나 군국주의자들의 탄압을 받은 집단인 측면이 존재한다. 이 점이 문제이다.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은 이 점을 근거로 조선의 인민과 일본의 신민 모두 일본 지배층의 탄압을 받은 약자들이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조선의 인민과 일본의 신민은 약자로서의 보편성을 공유하며 이를 중심으로 화해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보편성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내셔널리즘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경식은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의 논리가 일본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이 되며 진정한 화해로 나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경식은 위안부 문제의 경제적 보상 방법으로 제시되는 ‘평화기금’ 조성도 반대한다. 기금의 조성은 설사 기금 금액의 상당 부분을 일본 정부가 출자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일본이란 국가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진 범죄에 대한 책임 문제를 분산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수학으로 비유하건대. 어떠한 계산의 결과가 무한대가 나온다는 것은 답이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경식은 내셔널리즘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경식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탈내셔널리즘을 지향한다. 내셔널리즘의 이름 아래 행해진 범죄에 대하여 반내셔널리즘적으로 해석하고 해결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내셔널리즘의 이름으로 행해진 만큼 내셔널리즘의 맥락에서 그에 대한 해소가 분명히 선행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여야만 탈내셔널리즘으로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5.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여기서 가해자들의 내셔널리즘과 자기방어기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기억의 격화’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내셔널리즘 즉 국민주의는 잠정적 개념으로서 자국인 중심 내셔널리즘이다. 내셔널리즘의 기반에는 근대 시민의 형성이 있다. 근대 시민의 형성에는 천부인권을 기반으로 한다. 만인에게는 보편적인 인권이 있으며 그것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주의 속에서 보편적 인권은 자국인 중심의 특권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 시민들은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특권이 어떻게 뿌리내렸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못하며 그에 대하여 지적받았을 때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국민국가에서는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성은 점점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소위 자학 사관에 대한 비판과 수정주의 사관이 득세하는 것에는 시민 사회 전반에 기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특히 국민주의적 맥락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존재한다. 바로 태평양 전쟁의 패배와 일본의 패망이다. 일본에게 자신들의 패망이란 피지배 민족의 저항이 아닌 자신들보다 더 강했던 구미 열강에 대한 패배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과거를 조망할 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문책은 어디까지나 전쟁에 패배한 과정에 국한된다. 식민 지배, 타국 침략에 대해서는 피장파장의 오류로 일관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도 매우 말초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그 인과 관계가 명확하게 설명-어디까지나 그들의 입장에서-되지 않으면 그에 대하여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국민주의적 자기방어기제가 아닌 죄와 책임 문제에 대해서 직시하고 주장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소수일 뿐이다.

  과거 피지배 민족이나 국가들에 대한 강대국들의 책임에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도의적 책임’이다. 과연 그 도의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도의적 책임이란 자기 방어적 수사일 뿐이다. 강대국이 가진 죄와 책임에 대하여 도의적 책임이라는 나이브한 수사와 생색내기로 법적 책임과 그에 대한 보상이라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하여 회피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 대한 사죄 요구가 나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본의 사과 문구에서 잘 드러난다.

  제국주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68 혁명 등을 거치면서 구미 열강 사회 안에서는 자신들의 과오에 대하여 들추고 자신들이 가진 ‘역사적 부채’를 갚아 나가는 과정을 잘 거치고 있다고 자평해 왔다. 실제로도 그러할까? 제국주의의 시대에 대하여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구미열강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완전하게 직시할 수 없다. 제국주의의 시대와 시대적 문제에 대하여 직시하고 죄와 책임의 문제를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피해자들이다. 그럼에도 제국주의 시대의 수혜자들은 그러한 시도를 거부하여 왔으며 자신들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폭력으로 되돌아 왔다며 죄와 책임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서경식의 비판은 박유하 교수(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향한다. 박유하 교수는 <화해를 위하여>라는 책을 일본에 출판하여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반내셔널리즘을 지향하던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에게 박유하의 존재란 자신들의 노력을 공유하고 화해로 함께 나아갈 동지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박유하 교수의 저술 내용은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박유하 교수의 저술이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로부터 환영받은 것은 저술 내용 자체보다도 일본의 피지배 대상이었던 한국 사람이 자신들과 동조하였다는 것이 더 컸다. 박유하 교수의 책 출판에 우에노 지즈코 같은 인물들이 노력하고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을 대변한다는 아사히신문에 대대적으로 실렸다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박유하 교수는 ‘내셔널리즘에 경도된 전근대적인’ 한국 대 ‘성숙한 시민 사회를 기반으로 자유주의가 뿌리내린’ 일본의 구도를 설정하고 ‘좀 더 앞서 있는’ 일본이 늘 화해하려 하지만 ‘내셔널리즘에 도취된’ 한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에 대하여 그들의 정체성을 여러 개의 맥락으로 파편화시킴으로써 범죄의 피의자 대 피해자 구도를 희석시키고 있다. 서경식은 박유하의 저술에 대하여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거칠게 요약했지만 일본 내 자유주의자들의 논리, 박유하의 논리, 서경식의 논리를 삼자대면해서 숙고해 보자. 다만 서경식의 생각은 한 줄로 정리된다. 

"일본의 극우에게 오경화가 있다면 일본의 리버럴에게는 박유하가 있다."

덧글

  • ㅇㅇ 2020/10/22 21:13 # 삭제 답글

    오경화가 아니라 오선화. 오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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