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을 만나다 by 철학본색

ⓒ구덕구

본색 소사이어티에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서경식 선생님의 존함은 몇 번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서경식 선생님은 재일 2세로 1951년 교토에서 태어나셨으며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졸업하셨습니다. 한국에서는 서경식 선생님의 서승, 서중식 선생님의 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경식 선생님은 두 형님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시면서 인권과 예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시고 그 생각을 글들로 세상에 보여 오셨습니다.

서경식 선생님은 재일동포라는, 일본에서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 경험한 자신의 일생을 바탕으로 역사와 인간, 예술에 대하여 날카로운 시각을 여러 책들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서경식 선생님의 날카로움은 일본과 한국 모두에게 불편한 것이었으며 오독하기 쉬운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반일 민족주의자라는 비난을, 한국에서는 낭만적인 문필가 정도로 인식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대구에서 진행되었던 서경식 선생님의 강연회에 대한 간략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강연에서 다루어졌던 구체적인 이야기는 서경식 선생님과 완전하게 합의가 되어 있지 못한 관계로 자세하게 다루지 못하는 점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 아래부터는 경어체를 생략하겠습니다.

재일 철학자이자 문필가 서경식 선생님을 모시고 대구에서 강연회를 진행하였다. 강연회를 진행한 장소는 협소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강연회의 자리를 빛내 주셨다. 이 글을 통해서 함종호 선생님, 4.9 인혁재단, 대구 평통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서경식 선생님은 현재의 일본에 대하여 '잃어버린 25년'이라고 진단한다. 25년 전의 일본과 세계는 어떠하였나. 쇼와 천황이 세상을 떠나고 헤이세이 천황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동서의 대립이 종결되었다. 90년대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지식인들은 장미꽃 같은 전망을 제시하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통하여 이데올로기의 종말이자 자유의 승리를 자축하였다. 와다 하루키는 세계대전의 시대가 종식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이제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여 인류의 진보가 한층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기대로 들떠있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할까.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의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전세계는 오히려 우경화와 내셔널리즘의 강화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특히 일본의 그런 모습이 더욱 눈에 띈다. 일본의 우경화와 내셔널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전후사 즉 2차대전 이후의 일본 현대사에 대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미국은 전범들을 제거하고 천황을 상징천황제로 남겨 두어 '껍데기만 남은' 천황제를 중심으로 일본을 간접지배하려 하였다. 비록 천황제가 존속되기는 하였지만 일본의 진보들은 환호하였다. 일본의 좌파 대중정당이었던 공산당과 사회당은 일본 정치에서 자민당의 뒤를 이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반전 평화의 미래, 그리고 국민주권의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단꿈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태생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천황제를 없애지 못한 것, 그리고 자기중심주의였다. 그들은 천황의 존재가 민주주의 국가의 건설을 미완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지식인들의 시각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은 전쟁의 패배가 중심이었지 반식민 반제국주의가 아니었다. 이들의 나이브한 현실 인식과는 다르게 일본은 점점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구도가 고착화되었고 일본의 진보 진영은 점점 헤게모니를 상실하였다. 그 결과 일본의 진보 진영은 결국 자신마저 배반하고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신들도 우경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서구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시절의 과오에 대하여 철저하게 인정하는 행보를 보이지 않았으며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였다. 제국주의 대 반식민 반제국주의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피부로 크게 와닿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을 위시한 세계적인 우경화 현상과 반식민 반제국주의 투쟁의 양면은 한국 사회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일본 사회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역행 일변도에 대하여 제동을 걸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인민들이 이러한 역행에 대하여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안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정치 투쟁이라든지 노동 투쟁 등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경식 선생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서경식 선생님은 교양의 복원과 교양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서경식 선생님은 상술하였듯이 인권과 예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다. 혹자들은 그 두 가지가 서로 유리된 것이 아닌가 할지도 모른다. 서경식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인간은 로고스와 언어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지만 그 이외의 것으로도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하여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하여 예술을 보는 것이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인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서경식 선생님은 인민의 자발적인 교양 복원과 교양 교육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도하고 이를 기반으로 현실에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뒤돌아 가는 방법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서경식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인간을 바라볼 것인가, 우리 생활로 돌아가면 어떤 문제가 생활 속으로 침투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번에 서경식 선생님이 <나의 조선 미술 순례기>라는 책을 출판하셨다.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조선 미술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한다.

덧글

  • 이종찬 2014/12/07 18:27 # 삭제 답글

    현장 스케치 감사합니다. 직접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덕분에 달랠 수 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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