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자책 육아 - 키티를 사랑한 남자 by 철학본색

아빠의 자책 육아 - 키티를 사랑한 남자

         

아이는 키티 매니아다. 아이가 지내는 방에는 평범한 키티 인형부터 기모노를 입은 키티, 키티 조명, 키티 가방 등 눈길 닿는 곳마다 분홍색 키티로 가득하다. 가끔 분홍색 키티 양말에 키티 티셔츠까지 입고 어린이집으로 갈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어김 없이 여자 아이들이 “남자들은 키티하는 것 아니야”라며 놀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 때만 해도 그런 놀림에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키티로 무장한 채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까?”라고 물었더니, “남자도 키티해도 돼. 여자들만 키티 좋아할 수 있는 건 아냐”라며 뛰쳐 나갔다.

 

아이의 헬로 키티 사랑은 아이가 태어나고 50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잠투정이 심해서 고생하던 중 떠오른 묘안이 아이를 키티 쿠션 위에 엎어 재우는 것이었다. 아이가 고개를 가누기 시작하던 때부터 키티는 엄마 품의 대체제였다. 매트 위에 바른 자세로 누워서는 1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아이가 키티를 엄마 품 삼아 2시간을 내리 잤고, 밤에는 무려 6시간동안이나 깨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지금도 그 날을 ‘키티의 기적’이 일어난 날로 부른다. 사실 아이가 안고 자는 큰 키티 쿠션은 연애 시절 내가 파트너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랑의 징표를 우리 사랑의 결과물이 끌어안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키티는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이는 지금까지도 그 키티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밤새 아이의 땀으로 젖은 키티 쿠션을 빨고 있노라면 아이는 세탁기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는 키티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러니 아이에게 “키티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도 대답은 언제나 “키티”다. 어젯밤에도 같은 질문을 또 했다. “키티지. 당연한 것 묻지 좀 마!”.

 

얼마 전 아이가 심한 감기에 걸려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다고 집안에 있는 모든 침구를 바꾸라고 하셨다. 물론 베개를 바꾸라는 말씀도 있었다. 다시 보니 몇 년 사이 키티도 아이를 돌보느라 늙어 버렸다. 큰 키티 쿠션 없이는 쉽게 잠들 수 없는 아이 탓에 키티는 미국, 제주도처럼 먼 곳 뿐만 아니라 고향집에 갈 때도 항상 함께 동행해야 했다. 더 이상 예전의 뽀얗고 부드러운 얼굴이 아니다. 늘어지고 뭔가 모르게 노래진 모습만 봐도 한 눈에 키티가 알레르기 비염과 무관하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이제 키티와 작별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아이와 <조각이불>이라는 동화를 읽었다. 동화 속에서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 입다 작아진 옷과 해진 이불을 조각천으로 만들고 조각 조각을 이어 붙여 이불을 만들었다. 동화 속 아이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 샐리의 흔적을 이불 속에서 찾다가 잠이 들고 꿈 속에서 밤새 샐리를 찾는다.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도 키티를 가지고 이불을 만들면 어떨까?”. 아이는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왜? 키티도 좋아할 것 같은데”라고 하자, “샐리도 못찾았는데, 나도 키티 못 찾으면 어떡해”. 파트너가 거들었다. “이제 키티도 나이가 많으니까 키티로 액자를 만들면 어때?”. 그 말을 듣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안돼, 싫어. 키티를 왜 액자로 만들어? 그러면 같이 못 있잖아”.

 

타고 다니던 차를 중고차로 팔려고 마음 먹어도 섭섭한 마음에 몇 번은 주저하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하물며 엄마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키티는 언제나 변함 없이 자신과 있어줬고, 아빠가 자기를 재워두고 몰래 침실을 빠져 나가도 그 자리에 늘 있어준 키티를 한낱 조각 이불로 만들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이에게는 알레르기성 비염보다 ‘키티 없는 세계’가 더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밤새 키티를 찾아 꿈 속을 해매는 것이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오기 전에 얼른 키티 할머니 일광욕이나 시켜 드려야겠다.

   

맘앤앙팡 2015.7에 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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