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고리와 브로치
아이가 열쇠고리를 하나 내밀었다. 어린이집에서 발표를 잘해 받은 상품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아이가 상을 받아왔는데 기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기쁜 마음에 아이에게 무슨 발표를 해서 칭찬을 받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아이 대답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내게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상으로 받아온 열쇠고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내게 중요한 것은 다른 아이도 아닌 바로 ‘내 아이’가 꾸중이 아니라 ‘칭찬’을 받았다는 것,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다음 날에도 아이는 브로치 하나를 내밀었다. 예쁜 브로치 역시 어린이집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잘해 받은 상이라고 했다. 어린이집 복도에 진열돼 있는 각종 트로피와 메달을 부러운 눈으로 관찰하고 서 있기가 일쑤였던 아이는 브로치를 금메달이라며 좋아했다. 매일같이 아이가 칭찬을 듣고 온다니 또 다시 기쁨 마음에 아이를 끌어안고서는 잘했다고,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어서야 상으로 받았다는 열쇠고리와 브로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선생님께서 상으로 준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해 보였다. 열쇠고리에는 어떤 회사의 로고가 적혀 있었고, 브로치에는 누가 밟기라도 한 듯 흠집이 가득했다. 그제야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가져온 열쇠고리와 브로치는 모두 상으로 받은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야외 활동에서 길을 걷다가 주워온 것이리라. 아이는 아빠가 무엇을 기뻐하는지, 어떤 것에 이성을 잃어버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주는 별 포인트가 많으면 기뻐하는 아빠, 선생님이 과제를 잘했다고 칭찬하면 좋아하는 아빠, 친구들과 축구를 해서 골을 넣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빠라는 것, 그 모든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길에서 주워온 열쇠고리와 브로치가 선생님이 준 상이 돼 버린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의 인식은 어떤 진실에 열려 있는 한 다른 진실에는 은폐되기 마련이다. 아이가 받아 온 상에 기뻐하는 동안 정작 아이의 마음은 내게 은폐돼 있었던 것이다. 아빠가 자신의 생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때, 늘 일로 바쁜 아빠가 여유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는 때, 칭찬보다는 혼나는 일이 더 많은 아이가 마음껏 칭찬을 받는 때가 ‘상을 받아온 날’이라면,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종일 상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배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어도, 축구도, 그리기도 썩 잘하지 못해 속상한 아이는 아빠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별 포인트 하나도 받지 못한 날에는 길에 떨어진 ‘열쇠고리’ 하나로 아빠의 마음을 사려 했을 것이다.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바람과는 반대로 아이를 아빠의 칭찬에 길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돌이켜보면 나 역시, 지금까지도 항상 칭찬에 인색했던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지금도 손톱을 물어뜯으며 인정 투쟁을 해 오고 있다. 내 아이도 나처럼 아빠의 인정을 받기 위한 힘겨운 인정 투쟁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쁜 일에 너무 기뻐하지 않고, 슬픈 일에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당부하던 아버지의 말씀이 이제야 와 닿는다.
어젯밤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짝짓기 놀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 말에 따르면 어린이집 같은 반 모든 여자 아이가 내 아이와 짝이 되고 싶다고 적어냈단다. 아이는 이번에도 거짓말을 한 걸까? 사실이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이의 거짓말 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을 보니 ‘사실보다 더 큰 진실이 담긴 거짓’이다. 열쇠고리나 브로치가 상은 아니지만 상보다 더 큰 진실을 담고 있듯이 말이다. 거짓말이라도 부디 모른 척하고, 사실이라도 너무 기뻐하지 않는 것, 거기에 아이의 자유가 있는 듯 하다.
키자니아 1월호에 쓴 글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