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카푸어인가요? by 철학본색

나도 카푸어인가요?

영화 <족구왕>에서 강민은 고시원에 살며 벤츠를 타고 다닌다. 주거지는 열악하지만 고급차를 탄다는 점에서 강민은 ‘카푸어’(car poor)다. 검색창에 ‘카푸어’를 입력하면 “제 월급은 000만원인데 차에 절반을 쓰면 카푸어인가요?”, “원룸 사는데 BMW 사면 카푸어 소리 들을까요?”라는 질문이 검색결과 상단에 나타난다. 할부만 감당할 수 있으면 자기가 타고 싶은 차를 살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할까? 뉴스에 ‘카푸어족’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곧장 악플이 달린다. “생각이 없다”, “허세남, 겉 멋만 들었다”. “나도 카푸어인가요?”라는 질문에는 자신이 고급차를 타는 것이 ‘허세’가 아님을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다.

감당하지도 못할 차를 뽑아 빚에 시달린다면 분명 비합리적인 구석이 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카푸어가 구매하고자 한 것은 ‘차’가 아니라 ‘인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원룸 거주자, 저학력자는 ‘사람 대접’ 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고급차를 60개월 할부로 사는 것은 ‘사람’으로 대우 받을 수 있는 저렴한 방법 중의 하나다. 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 정규직이 되고, 안정적 수입을 얻고, 경쟁에서 이기고, 집을 사는 것이야말로 고급 차를 할부로 사는 것보다 훨씬 비싸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카푸어’는 자신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들을 사람 대접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강민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그는 한때 국가대표 축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축구를 할 수 없게 됐다. 자신의 자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강민을 “이제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며 떠들어 댔다. 축구선수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인정 받지 못하게 된 강민에게 벤츠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연료게이지에 불이 들어오고, 할부 독촉장에 시달려도 강민은 벤츠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랬던 강민이 결국 벤츠를 포기할 수 있게 된 것에는 그가 경제적 소비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서도 아니고, 다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어서도 아니다.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던 강민이 한낱 족구 시합을 위해 팀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람들은 강민처럼 인정 받기 위해서, 사회로부터 환대 받기 위해서, 내 자리를 찾기 위해서 모든 힘을 기울여 인정투쟁을 한다.

경제도 어렵고 취업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도로에 고급차가 늘어나기만 하는 건 모두가 다 부자가 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타고 다니는 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자기 증명을 위한 힘겨운 노력이 세상에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모욕 당하지 않겠다는 몸부림이 말이다.


매일신문 2016.4.19에 나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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