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주제에, 공부중독 by 철학본색

몇 번 쓴 적이 있는데 지난 명절에 사촌동생의 진로를 두고 작은 아버지와 의견이 충돌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스물 셋인 동생에게 계속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지금 동생에게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모두 모으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모은 돈으로 계속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작은 아버지는 의견이 달랐다. 직접 생활 전선에서 부닥치며 배우는 것도 많고,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용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니 작은 아버지가 느끼시기에 다소 예의 없는 태도로, 하지만 동생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담아, 답답한 마음으로 지금 자립시키면 더 멀리 못나간다고, 용돈 주시고 돈을 모으고 공부를 시켜라고 권했다. 작은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며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내 노후를 책임을 질 것이냐?", "우리 가족이 합의한 이야기를 네가 무슨 권리로 흔드냐?", "네가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네가 생각하는 공부만 공부로 아느냐? 이렇게 배우는 건 공부가 아니냐?".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은 아버지 생각은 틀렸고,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왔다. 공부를 더 많이 하면 확실히 더 멀리까지 가는 것이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내 경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하지현 선생은 노후 자금 털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꼬집는다. 엄기호 선생님은 배움에는 정말 여러 종류가 있다고 강조하신다. 두 선생님이 만약 나와 작은 아버지의 대화를 들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을 것이다. '당신이야말로 공부중독에 빠져 있다고, 당신의 경험치를 일반화하고 있다고, 개인의 다양한 삶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공부에 대한 물신화된 믿음으로 사촌동생에게까지 공부라는 마약을 권하고 있었던 것이었던지도 모른다. 내 작은 아버지는 거기에 비하자면 공부라는 마약, 이 책의 표현으로 하자면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존재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스스로의 삶은 선택하고 계신 것이니까.

이 책은 나 자신이 공부중독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진단할 수 있는 킷처럼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아이에게도 공부중독을 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공부만 답이라는 도그마적 해결방식에 집착하며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이었던지도 모른다. 책의 조언대로, 또 내 작은 아버지가 하시듯이 아이에게 많은 돈을 쓰는 것 대신 내 노후자금이나 마련해두는 것이 훨씬 더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약을 계속 사들일 수 있을만큼 판돈이 많지 않고, 지금은 건강도 좋지 않아 이대로가면 아이에게 얼마가지 않아 짐만 될 것 같다. 비싼 교육 대신 싼 교육, 노후대비를 위한 현실적 대책이 내 계급 수준에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보며 나는 내 계급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착각 속에서 나와 내 아이와 심지어 사촌동생까지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한가지 더, 하지현 선생님은 내 책을 상당히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하셨지만, 이미 다 아는 이야기만 하는 좀 지루한 책이라는 취지의 평을 트위터에서 하셨던 적이 있다. 나는 하지현 선생님의 독자로서 하지현 선생님의 책은 상당히 재미있고, 아주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라 평하고 싶다. 그리고, 내 책에 대해서는 변명할 말이 별로 없다. 아마도 하지현 선생님과 같은 높은 안목을 가지신 분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실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책에는 두 분의 대화가 아주 경쾌하게 이뤄져 있고, 정보도 풍부해 배울 점이 많다. 두분이 제시하는 해결책, 여러 사람이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면 결국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낙관적인 면도 있지만 어쩌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 책의 제목인 <공부중독>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소위 '교육 자체'를 문제시 삼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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