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냄새, 자유의 맛, 자율성의 윤리 by 잡문가

"매번 결정과 결단을 내려야 했다.이런 성숙하고 책임있는 행동은 파시즘이 우리에게 훈련시키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담백하고 깨끗한 좋은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중에서

지난 일요일 대구의 팀본색에서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반비)의 출간과 관련해 서경식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많은 화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에 오래 남았던 질문이 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혁명부터 반-프랑스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치즘이 대두하기 전까지 보편적 가치가 승리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패전 이후 20년 간의 전후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 서경식 선생은 자신이 전후 민주주의의 유산이 없다면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은 "그런데 이런 시기는, 인간의 단편화에 저항하며 인간성의 위대한 가치가 승리하던 시기는 인류 역사에서 어쩌면 예외적이었던 것일까" 하고 청중에게 물으셨다.




답하기 역시 어려운 물음이지만, 우리가 결정과 결단을 내리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면, 우리의 결정과 결단보다 더 나은 결정과 결단을 해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우리가 늘-언제나 굴복하고 있다면 이 시기는 예외적이었던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의 대리가 아니라 '결정'의 대리가 된 민주주의는 이런 예외적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주범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주기율표'에서 나 개인적으로는 잘 와닿지 않았던 장이 '수소' 였다. 물의 전기분해와 그것으로 분리된 수소와 산소, 수소의 작은 폭발, 엔리코, 프리모 레비의 첫번째 실험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몇 년 전에 읽었다가 해결되지 않았던 궁금함을 다시 생각해보려 책을 읽었다가 약간의 실마리를 찾았고, 그렇게 '철'까지 다시 읽어나가다 발견해낸 것이 위의 문구다. 결정의 향기. 결정에서 나는 향기는 자유의 향취라는 말... 파시즘은 우리에게 자유를 훈련시키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무엇보다 내 아이와 학생들에 대해서도 결정을 미루거나 결정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 더 편하다면 우리는 조금씩은 파시즘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결정엔 담백하고 깨끗한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런 결정이, 결단이 예외를 예외가 아닌 것으로 만든다. 결정에는 좋은 냄새가 난다.


차로 다시 선생님을 모시고 부산으로 가는 길에 선생님께서 내게 조용히 물으셨다. 이념과 종교의 규제 없이, 소위 배운 것이 많지 않아도, 누군가의 일체의 강요 없이도 올바른 것을, 목숨을 걸고서라도 덕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갖는 '자율적인 윤리'는 어떻게 가능할 것일까? 장애를 가진 유태인 아이를 돌보던 이탈리아인 여성이 그 아이와 함께 아우슈비츠행 열차를 함께 탄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일까? 말 수가 적고, 주변과 관계 맺기 어려워했던 로렌초가 목숨을 걸고 수용소의 유대인들에게 배푼 호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피델리티'(fidelity), 인간이 인간에 대한 충실성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조심을 다해, 선생님께 그것이 철학자들이 설명하기 어려워 하는 '잔여'고, 현대철학이 잔여의 철학, 반-철학이 되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도대체 이런 '잔여'로부터 어떻게 자율적인 윤리가 가능한 것인지는 조금도 설명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레비나스에게도, 데리다에게도 그건 '도약'으로밖에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오늘 프리모 레비를 읽으며, 어쩌면 이 문제도 향기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의 향기, 결단의 냄새, 그것을 맡아본 사람만이 목숨을 건 결정을 한다. 파시즘은, 관료주의는 결코 우리가 자율적으로 옳음을 결정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다. 결정은 힘들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결단은 고되지만 좋은 냄새가 난다. 좋은 냄새가..


그 고기 맛이란 강인함과 자유의 맛, 실수도 할 수 있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자유의 맛이다".


다시 프리모 레비의 말이다.

인간의 자율성은 냄새도, 맛도 오직 자기 자신만이 느낄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냄새도, 맛도, 기쁨도, 그리고 고통까지도 말이다.








사진은 모두 젊은 포토그램퍼 김도균(moolrin) 작가의 허락을 받아 사용한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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