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by 잡문가

부모들은 단순하지 않다.


일단 오찬호 선생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읽지 않고 하는 이야기임을 먼저 밝힌다. 이 기사만 읽고 이야기하는 것은 좀 성급한 것은 맞는데, 언제나 믿고 보는 양선아 기자의 기사인만큼 오찬호 선생의 생각에 대강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글이라고 믿고, 생각이 다른 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해당기사 클릭하면 새창이 열림)


1) 


“엄마표 수학, 영어…이런 책이 여전히 성행합니다. 이런 것을 솔루션(해법)으로 받아들이면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죠.”


오찬호 선생의 말인데, 아빠로서 '엄마표'를 붙힌 책들을 읽어본 나로선 '엄마표' 학습이 과잉육아, 강박육아라고 일반화하는 것에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로서 나온 주장이라 그 인터뷰 내용을 모르는 한 제대로 된 비판이 어렵겠지만, 이 주장을 일반화할 수 있다면 내 주변의 경우는 특수 상황이 될 것이다. 엄마표로 뭘 해결할 수 있거나, 엄마표로 해서 애들을 경쟁에서 이기도록 만들어주고 싶었서 엄마들이 엄마표 수학이니 엄마표 영어이니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부모 자신이 못하는 한 가르쳐주기 힘든 피아노와 수영, 발레를 비롯한 여러 비교과활동 등에는 어쩔 수 없이 지출하더라도,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와 수학 정도는 부모가 가르칠 수 있다고 믿고, 그래서 돈을 좀 아끼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물론 그렇게 해서 부모가 바라는 것이 '아이가 경쟁에서 이겼으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유치한 이기심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좁은 내 주변 세계의 사람들은 그것보다 아이가 뒤처져서 자신감을 잃거나, 쉽게 포기하게 될까봐 돈이 들어 학원은 못보내지만, 부모가 직접 가르쳐서 돈이라도 좀 아껴보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의 경우라 해도, 돈이 어디서 샘 솟지 않는 이상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한 내가 가르쳐보자는 마음이 더 강하다.


물론 엄마표 이름을 붙힌 책이 세상에 있다는 것과 이런 제목을 붙힌 책들이 큰 유행을 얻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엄마표-책을 읽어본 내 경험상 이 책들 중 다수는 부모가 이기는 것에, 경쟁에 너무 중독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엄마표인 것은 초등 이하 연령의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부모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것이지 부모가 경쟁에서 이기도록 하려고 아이를 학원 대신 부모가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엄마표 책들의 유행은 부모가 과잉에, 강박에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책의 이런 철학에 공감하는 면이 있어서일 것이다.


오찬호 선생은 엄마표 영어, 수학의 유행은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고, 여성이 전투처럼 육아에 뛰어들게 만드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엄마표 영어와 수학이 유행하면,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들리는가? 선생은 곧 이어 그것의 근본적 원인으로 공고한 가부장제와 성역할 분업구조를 지적하곤 있지만, 엄마표 영어, 수학이 모성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 임금격차가 엄마가 아빠보다 직장을 놓고 육아를 강요하고 모성을 강제하는 더 큰 요인임은 제대로 부각하지 않는다.


2)

게다가 기사를 읽으며 오찬호 선생의 생각에 더 큰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강박이라는 거죠. 결국 그런 모습조차도 경쟁을 내면화해 ‘나는 특별해’, ‘내 아이는 특별해’라는 것을 과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좋은 먹거리 먹이지 말고, 대안 교육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녜요. 개인이 그런 걸 추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나치게 그런 것을 강조하면 사회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저 엄마는 저렇게 하는데 너는?’하는 식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공격할 단서를 찾아내거든요. 누군가는 또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데, 나는 게으른 엄마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이 내용은 선생이 사회가 해결해야 할 몫을 개인에게 돌렸기에 생겨나는 문제를 설명하기 전에 나오는 말이다. 선생의 표현에서 엄마들이 경쟁에서 이기길 바라는 이기적인 존재, 다른 일이 없으면 자식에게만 몰두하는 반지성적인 존재, 남편은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 뿌뜻함을 느끼는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 육아에 과잉 몰입하는 강박적인 존재, 옆집과 우리 집 값을 비교하고 집값이 떨어질까봐 안절부절하는 소심한 존재, 시민이 아니라 잔기술(테크닉)만 가진 인간을 키우는 존재, 자신의 육아와 교육에 사회적 의미를 통찰하지 못하는 비-정치적 존재로 재현된다.

물론 그런 면이 내게도, 또 다수의 엄마들에게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이기적이고 반지성적이고 열등감을 느끼고 강박적이고 소심하고 비정치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이타적이고 합리적이고, 자존을 가지고, 가능한 아이를 자유롭고 당당한 시민적 존재로 키우고 싶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엄마표-' 육아법들, 교육법들을 읽는 부모들은 그런 점에서 경쟁을 학교밖에서까지 너무 시키지 않으려는 부모들이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존재,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부담은 피하려는 노력을 하는 합리적 존재, 아이가 부모의 지지와 요구 속에서 도전적인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게 만들어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다는-조부, 조모의 사랑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 관심을 가진 존재, 테크닉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기술을 잘 배워보는 경험으로 다른 배움으로 확장을 해나갈 수 있는 '배울 수 있는 인간'으로 키우고자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강서구에서 장애인학교에 반대했던 사람은 왜 꼭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삐딱한 눈으로 고의적 오독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지만,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우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차별과 혐오에 맞서오신 오찬호 선생이 지금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에 대해, 혐오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계신 것은 아닌가, 속이 상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


3)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고, 정치적 효능감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에는 크게 동의한다. 하지만 엄마들의 정치적 효능을 키우는데 왜 엄마들을 향한 이토록 부당한 비판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기사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부분을 인용한다.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답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부모도 아이가 불평불만을 있을 때 잘 들어주고, 아이가 정교한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거 참 말 많네”라고 하거나 “그런다고 바뀌겠어?”라는 식으로 변화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을 부모가 먼저 나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떤 부모들과 인터뷰를 했는지,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대개의 부모들, 상식적인 부모라면, 아이의 불평불만에 대해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깡패처럼 말하지 않는다. "거 참 말 많네"처럼 대꾸하지 않는다. 그것도 맥락이 중요하다. 부모가 이기심을 전제하지 않은 채로, 내 아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아이가 자신이 선택한 어떤 일에 도전적으로 임하고 있을 때. 하지만 아이가 그 도전을 중도에 포기하고 쉽다고 투덜될 때라면, '그래서 어쩌라고?'는 그 도전을 끝까지 고수해보라는 부모만 해줄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학원을 보낼지 말지, 어느 학원이면 좋을지, 아이의 도전을 그만두게 할지 말지, 어떻게 말해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결정하고 고민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중적인 것을 넘어 삼중적, 사중적일 때도 많다. 너무 단선적으로, 우리 부모들을 '나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인간도 그렇지만 부모란 존재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표현, 행위 뒤에 무수한 고민이 스쳐갔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불만을 느끼고, 해보지 못했던 불평을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4)덧붙여.

사회학자인 오찬호 선생이 '엄마표-'의 부정성을 들춰내려고 한 것이 뭐가 문제냐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인 선생의 말대로 내 자식만은 나처럼 무시당하지 않을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엄마표-육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적 원인을 해명해야 할 사회학자가 왜 부모들의 정체모를 '열등감'을 원인으로 내세우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만큼이나 자기 영역, 즉 소설에 대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다 들어와서 작품을 써도 되는 허용적인 곳이 없다고 쓴 적이 있다. 소설가가 가수가 된다면 비웃는 사람이 있어도, 가수가 소설가가 된다고 해서 비웃는 사람은 없다는 예와 함께. 

나는 하루키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육아전문가들은 소설가보다 더 관대하다. 나처럼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아이 하나 키워본 경험으로 과학이 아닌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으니까. 육아전문가분들은 이상한 점이 있어도, 아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보이는 겸손한 태도 때문인지, 나같은 비전문가도 부모들인지라 부모들에 대한 존중 때문인지 누가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비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격려해주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찬호 선생이 결혼과 육아에 대한 말씀을 '사회학'에 국한해서만 한 것이라 생각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다.


나는 엄마표- 수학 관련 책을 읽고 아빠표- 수학으로 아이를 가르친다. 아이를 더 잘하도록, 학교에서 이기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가지로 느린 아이가 매일 매일의 성취감과 작은 승리감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겼으면 하는 내 이기심이 내 아이가 친구들과 만들어가는 협력을 깨지 않도록 늘상 경계해야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모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이기적이면서도,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을 해나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존재도 다른 사람을 최고로 만들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지 않듯이, 어떤 부모도 내 아이를 최고로 만들어 나를 증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이가 이겼으면 해도, 내게는 소중한 내 아이를 나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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