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모임은 목요일, 명덕역에서 모여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은 7시입니다. 종욱이가 나오지 못해 부득이 명덕에서 해야겠네요.
(불참예정자는 종욱이가 집안 제사로, 재선이가 학원일로 빠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참석하신다네요. 덕수도 잠깐 얼굴 비춘답니다)
2. 이번 주는 지난 주에 못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과 예술철학을 끝내고 아티클 두 개를 읽을 것입니다. 지난 주 공지에 첨부된 파일을 확인하시고, 출력해서 오세요. (영주가 3부 정도만 예비로 뽑아와 주면 좋을 듯)
3. 11차모임, 12차 모임이 끝나면, '고대철학' 파트가 끝납니다.
'고대철학'을 마친 후 13차 모임에서 모임운영에 관한 '언약'(?) 몇 가지를 설정하는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안건은, 모임 참석과 탈퇴에 대한 규정, 모임 시간/장소에 대한 합의, 발제에 관한 합의, 공동책임/참여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학기제 운영 등이 될 것 같아요. 거창하게 들리지만 다 별 것 아닌 것들입니다. 좀 더 안정적으로, 소모적이지 않게 모임이 되려면 조금은 철본이 체계를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조직이나 제도를 만들자는 것은 아닙니다. 불편하지 않게, 마음 상하지 않게 모임을 만들려는 의도에요.
사실, 제가 제 스스로도 모르게/어쩔수 없이/하는 수 없이 철학본색 대표 비슷하게 된 상황이 저로서는 '아주' 못마땅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비-체계적인 탓인 듯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하는 '적극적'인 모임으로 만들어 가는데 방해가 된 것 같아요. 조금 체계가 있으면 모두가 함께 하는 모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저도 철학 '스터디'를 하러 왔지 철학을 '티칭'하고자 한 게 아닌데, 10번 정도 모이면서 제 코멘트가 도를 넘도록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발제자에게 각 모임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저는 자료를 꾸준히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구도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의 '책임'이 더 무거워졌지만, 모임은 더 자유로워 질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4. 이제 또 배설을 해볼까요? 어제 저는 아주 힘든 밤을 보냈습니다. 다름아니라 아래의 글 때문이지요. 제가 전에 전도사로 일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쓰신 글입니다. 목사님은 거의 매주 주보에 칼럼을 쓰시는데, 주보작성을 맡아 일하던 제가 가장 힘들고 괴롭고 짜증나던 시간이 바로 목사님의 칼럼을 컴퓨터에 옮겨 치고 교정/열을 보던 때였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목사칼럼] 그 날의 만남 때에 안심할수있던것은!(2008.4.20) 2008-04-23 14:59:34, 조회 : 15, 추천 : 1
지난 목요일 오후에 우리교회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1단지 앞에서 잠시 차를 대기하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을 한 젊은 부부가 손을 잡고 웃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에 남자는 너무나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반갑기도한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손을 붙잡을 감정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차문을 열고 달려가서 큰소리로 그 이름을 부르고 힘차게 악수를 하면서 안부를 묻고 교회건축소식을 전하고 헤어졌다. 이 작은 일을 겪으면서 마음속으로 한 가지 또 다짐하는 것이 있었다. 사람은“절대로 막말은 하지 않고 헤어져야 한다.”사실 그날 만난 그 친구는 속된말로 “싸가지없는사람”이었다. 고등학생 때에 우리교회에 출석해서 청년이 되고 결혼할 때까지 우리교회의 온갖 사랑과 관심과 기도로써 신앙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성장한 사람이었다. 그의 기적 같은 성공스토리는 좋은 간증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는 결혼을 전후해서는 의리도 은혜도 예의도 다 팽개치고 우리 교회를 휠 떠나 버린 사람이다. 그런데 많이 섭섭해 하기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하는 중에 어느 날 자기도 미안했던지 전화가 걸려왔다. “때는 이때다”싶어 말을 마구 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꾹 참고 인내하면서“은혜로운 권면”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것이 수년전의 마지막 통화이었고 지난 목요일에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것이다. 만일 그 몇 년 전의 마지막 통화에서 막말이라도 했다면 그달의 만남이 얼마나 어색하고 덕스럽지 못했을 지를 생각해본다. “다시는 이 물을 먹지 않겠다고 침 뱉고 간 그 우물에 다시 찾아와서 물을 먹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언제 어떻게 삶을 마주칠지를 모른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너는 그저 사랑만 하라“는 그 성경의 교훈대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강조는 제가 한 것입니다)
저도 교회를 고등학교에 나갔고, 교회에 출석해 청년이 되었고 결혼할 때도 지금 교회가 저를 얼마나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목사님이 쓰신 글의 청년처럼 세상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성공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제게 기적같은 성공스토리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저 역시, 지금에서야 저 청년 같이 '의리도 은혜도 예의도 다 팽개치고 교회를 훨 떠나려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어제 밤 많이 우울했던 까닭은 이 글이 미래에서 온 편지같이 제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귓전에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귓전에 얼마나 웅웅대던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물었습니다. '내가 정말 의리도, 은혜도, 예의도 몰라서 이 교회를 다 팽개치고 떠나려고 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더군요. 교회가 제게 베풀어준 사랑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문제가 많아 이제 떠나려는 그 교회에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는데, 이제와서 그 곳에 회의감이 생겨 떠나려니 참으로 자기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도 합니다.
싸가지 없는 사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제가 이제 교회를 떠나게 되면 '싸가지 없다'고 할 것 같아요. 벌써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네, 제가 사람들한테서는 싸가지 없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바로 섬기는 법을 배우고 싶어 교회에서 나오려고 합니다. 교회가 '기업'으로 환원되어 버려 온통 '성공'(위의 글에도 성공이라는 말이 나왔지요. 신앙의 성공, 사회적 성공.. 위의 목사님은 설교의 주제가 늘 '성공'이시지요. 신앙의 성공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을 좇는 곳이 한국교회가 되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 저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정말 '목적'이 이끌까요? 사람이 날 때부터 목적이 있다니요...? 성경을 솔직하게 읽고자 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교회는 '목적'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은밀한 중에 이끄심이 나타나더군요.
하나님 앞에 싸가지 없지 않아야겠지요? 하나님 신경 쓰고 살기도 힘든데, 사람까지 신경쓰고 살려니 쉽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를, 이웃을, 사람을 헌금으로, 성공으로 환원하지 않는 교회로 갈까 합니다. 무슨 음악 콩쿨 1등했다고 교회 주보에 광고하고, 아내행복교실인가 뭔가를 하면서 남편 없는 아내를 기죽이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 고아와 과부가 큰 소리치고 모두가 원으로 둘러 앉아 서로의 절대적 필요를 느끼는 교회를 다니고 싶어요. 저는 그것이 인간들의 희망이 아닌 하나님의 희망이라는 것을 신앙합니다.
목사님이 청년에게 '원수' 운운하면서 쓴 마지막 문장에서 아연실색했습니다. 무슨 사정으로, 어떻게 떠났는지 모를 청년에게 '원수'를 운운하며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니요. 참..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은 목사님 대신 원수 갚아줄 만큼 한가한 분이 아니라는 것도 제 신앙입니다. 영주의 말대로, 목사님은 목사님의 사역을 하지 하나님의 사역을 하지 않으신 탓이겠지요? 영주의 지적은 이 목사님 뿐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사역자들에게 해당될만한 중요한 통찰 같아요.
(목사님은 글에서 은혜로운 권면만 했다, 막말만은 하지 않아야 한다, 원수 갚는 건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하지만 저 청년이 싸가지 없다는 것을 사실 은연중에 계속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막말은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막말을 들을 수 없는/듣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막말을 해서는 안되지요. 목사님은 이미 막말을 하셨고, 자신은 막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말로 unfair하지요. 교회 건축 후 목사님은 예전에 나오다 교회를 떠난 일체의 성도들에게 연락하셔서 건축헌금에 참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다급한 사정 이해되지만 저는 인간대인간으로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청년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한떄 80명에 다다르던 청년들이 어느시점에 일거에 떠나 현재는 20~30명만 모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렵고, 제도권 교회에서 이탈해 높은 벽 앞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할 저와 제 동료들의 미래가 두렵습니다. 정말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벽이 아니라 제 자신일텐데 말이지요. 저는 아직 제 자신이 두렵기 보다 비난과 오해가 두렵습니다. 그래서 함께 갈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생각보다 빨리 떠나오게 되어 아쉽습니다. 교회에서 좀 더 암덩어리 역할을 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공동체-이탈을 도모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조금 숨통 트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지요.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권력과 돈 맛을 알아버린, 성도가 아니라 헌금이 중요한, 하나님 보다 목사가 소중한 한국교회에서 외부의 '대안'이든, 내부의 '암세포'이든... 또 할일이 있고, 역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저를 좀 도와주시고, 힘도 좀 주세요. 그리고 혼도 내주시고, 격려도 해주세요. 목이 말라서 이 교회를 떠나게 됨을 말이지요.
결코 지금, 웃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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