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멀리.

오세철 선생을 만난 이후로 중요한 것은 '발본성'이었다. 어떤 사태가 현실적인가는 관심 밖의 문제였고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헤겔은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라고 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발본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발본적인 것'이라는 것이었다.

 

Radical. 그게 중요했다. 진정 발본적이라면 현실의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또, (규정이 불분명하다 할 수 있는) 참된 현실은 발본적 태도에서만 획득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내게 '발본성'은 중요했다. 나는 발본성을 내 탐구의 중요한 가치로 여겼고, 나의 자세로 여겼다.

 

현상학 공부를 시작한 것 역시 후설의 발본주의 Radicalismus에 고무된 것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식이 이뤄지는 가장 근본적인 사태, 지각의 수동적 차원에 까지 육박해 들어가는 그의 태도가 사뭇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각의 발본적인 구성을 다룰 수 있어야 인식의 본질을 밝혀내고 그 기초 위에 새로운 철학을 정초해낼 수 있다는 후설의 기획은 내게 매혹적인 것이었다.

 

오세철 선생은 늘 맑스의 변형을 거부한다. 오세철에 따르면 혁명투사인 가타리에 비해 들뢰즈는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실천을 강조한 맑스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나 그람시도 비판의 표적이다. 그들은 전도된 이데올로기 관념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수정론자들은 배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맑스를 오해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세철 선생은 나의 현상학 스승만큼 교조적 dogmatic으로 오로지 맑스만을 주장-강조했고 자본주의를 발본적 차원에서 전복하고자 하는 놀라운 기획을 제시했다.

 

이를 발본주의라 이름할 수 있다면, 나는 신앙에까지 발본적 태도를 견지하고자 했다. 가장 발본적인 신앙이라 믿었던 교리, 곧 개혁주의는 이제 전복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반대편의 극단이라 할만한 신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발본성을 핵심 가치로 여긴 내가 오래동안 몸과 마음을 담아두던 교회에서 떠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발본적이라면 그 신학의 본질에 이미 오물이 기입되어 있음을 알고도 거기에 머물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발본성은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되어야 했다. 자명은 발본의 허울 좋은 이름인데, 자명하지 않다면 발본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명하지 않은 것을 거부하려고 했고, 자명하지 않게 보이는 사고를 비판하고 거부했다. 그리고 막말을 하자는 주장을 여러 번했는데 그것은 발본주의의 한 행동강령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제외하고 발본의 이름 하에 모든 것을 재편하려고 했다. Radicalism은 급진주의는 아니다. 이 말은 어떤 사태나 사고든 저 끝까지 파고들어 궁구하다는 의미이지 뭔가를 빨리, 신속하게 진행하자는 부정적 어조의 의미와는 다른다. 발본적인 철학, 발본적인 신학, 발본적인 사회, 발본적인 태도, 발본적인 사람. 그것이 오세철을 만난 후 지속된 나의 태도이며 지속된 나의 입장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발본적이라도 근본적인 것은 아니라고 늘 자평해왔다. 근본적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존재론적 태도라고 생각했다. 실체적이며 타자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세라고 치부했다. 따라서 근본주의는 배격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근본적이라는 말은 분명 한 사고에 경도되고 고착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오세철 선생의 발본성을 높게 평가하더라도, 그의 근본주의적 태도를 늘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신교단과 같은 교회도 그 발본성(고신은 이를 자신들의 순수성이라 표현할 것이다)을 높게 평가했으나, 고신의 근본적인 태도에는 늘 문제임을 지적하고자 했다. 나는 정말 고신이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전통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의 고수는 강하게 반대한다. 한편 후설은 발본적, 곧 지각의 근본사태를 탐구하려 했으나, 근본주의적으로 경도되지 않음을 늘 높게 평가했다. 알다시피 후설의 전 후기 사유의 광범위함은 어떤 체계로 환원되지 않을 만큼 광범위하다. 후설은 의식의 내재성을 늘 강조하면서도 항상 초재성을 견지하는 듯 하지 않은가.

 

데리다를 읽은 이후 근본주의적인 것은 존재론에 갇힌 것이라고 나는 더욱 강도 높게 비판하게 되었다. 존재론에 갇혀서 오로지 '있는 것'만이 '있다'는 주장은 근본적인 태도이며 이제 유령론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믿게된 것이다. 하나의 입장에 경도될 것이 아니라 발본성이 이끄는 바에 따라 전방위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발본성의 근본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당혹스럽게도, 모든 근본주의자가 그렇듯이 나는 이제 내가 고립되었음을 느낀다. 내 주위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발본성을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들의 태도와 같이 나는 다 푸닥거리했지 않은가! 이제 발본성을 전혀 실현 못한 나 자신만 남아있는 느낌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이 떠나갈수록(쫓아낼수록), 사람들을 향한 욕심이 더욱 커져 갔다. 사람들을 욕망하게 되고 나의 왕국에 가둬두려고 한 것은 아닌가. 떠날수록 사무치는 배신감에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떠난 것은 내가 그들이 발본적이지 않다고 푸닥거리했기에, 축출해버렸기 때문이지 않은가. 나는 내가 기획한 '발본적인' 비전으로 이제 오로지 홀로 남게 된 결과만을 초래한 듯 하다.

 

발본의 이름으로 나는 교회를 떠났고,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러면서 마침내 '현실'을 쫓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고백이 나의 정치적 전회나 신앙적 전회를 의미하거나 공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발본의 근본주의'에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근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발본의 기획'은 다시 근본주의에 발목이 잡히는 것도 이중역설이라 할 수 있을지.

 

발본의 이름으로 깊이 팠더니 그곳이 나 혼자 눕기 좋은 내 묘자리가 되었다.

'멀리' 가고자 해서 멀리 왔더니 나 혼자만 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더 갈 수 없음을 느낀다. 왜냐하면 더 가려면 외로움을 이겨야 하기 때문인데 나는 아마도 결코 외로움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가고, 파고 하는 것에 어느 누군가로부터도 이해를 받지 못한다면 내게 무의미할 것 같이 느껴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을 순간이 도래할 듯 하여 두렵다.

 

발본에 기입된 현전성을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발본의 이름으로 수행한 푸닥거리도 푸닥거리 가능하다면 그리할 수 있길. 오세철 선생을 만난 것에 후회는 없다. 그렇지만 너무 일찍 만난 것은, 혹은 너무 늦게 만난 것은 아닌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분명하다.

by 철학본색 | 2008/07/04 01:33 | 똥통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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