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안녕하시어요~? ![]() 사랑받길 원하면서, 사랑하는데엔 인색한 나에게. 17번째 철본 모임, 그리고 그 후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멀리서 공부하는 누나가 내 공부를 봐준다고 공항이니, 종묘니 통역 아르바이트 할뻔 하다가 온다며 누나와 나 사이의 친밀도를 자랑아닌 자랑삼아(?ㅎ) 이야기 했는데, 내심 살짝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유쾌한 반응들은 아니었다. 누나에게 부탁할 때엔 그저 서울에서 알바하고 공부 할 수 있지만, 대구 내려와서도, 과외 알바도 해 주고, 내 공부도 봐 주고.. 누나 공부도 할 수 있다며 치과 때문에 대구왔다갔다 할 필요도 없이 잠깐만 같이 있자며 이야기 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엄마입을 통해 누나가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만약 누나가 '니공부 니가 하는거지 내가 있는다고 공부가 되냐? 난 내공부 하느라 바쁘다~' 라고 이야기 했다면 나는 누나를 야속한 누나라 원망 했을지도 모른다. 위의 말이 당연한 말인데도 말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데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버릇이 있다. 어려서 내가 원하는 대로 부모님이 다 해주시지 않았는데도, 난 내가 원하는 것만 했고, 하기 싫은건 어떤 이유를 들어서 그런 이유를 만들어서 안하기도 할 정도로 하기 싫은건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난 수학 공부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문예창작과 가길 희망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학책을 보지 않았다. 고삼때 매 주 토요일마다 서울까지 왔다갔다 하며 문예창작 학원을 한달간 다녀도 봤다. 하고싶은걸 하지 못할땐 끝까지 하려고 하기도 하지만, 대개 그것을 내가 하기 싫은것으로 바꾸는 경향도 강해 난 늘 발전없이 주변만 맴돌았고. 지금도 그렇다. 냉정하게 말해, 어제 사진찍으러 가지 않고, 그저 내 일을 하고.. 앞으로도 그러한 단편적인 욕구해소를 위한 행위를 억제하면서 할 수 없음을 하기 싫음으로 전환하고, 지금 해야 할 일이 하기 싫을때도 하고싶은 것으로 바꾸어 가면서 내 일을 한다면.. 굳이 누나의 계획을 가로막으면서 까지 부를 필요도 없다. 그러면서 누나가 온다기에 '역시 누난 날 사랑해~' 하면서 뿌듯해 하기만 하는나는 진심으로 누나를 사랑하는걸까? 하는 생각까지 갖게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신이 피해가 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걸 다 해준다고 한다. 나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줄 알았고, 친구니 세상이니 내가 내 할일을 잠시 두더라도 다른 사람 힘든것좀 돕자.. 라면서.. 막상 내 가족에겐 그렇지 못한것 같아 아프다. 오늘 오후, 누나에게 흔치 않은 경험 있는데 나때문에 내려온다면 그냥 누난 누나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문자를 보냈다. 사진동호회에도 아는 사람 많아서 물어볼 사람도 많고, 철본에도 영어과 다니는 누나도 있고, 수학 선생님 임용고시 준비하는 누나도 있고, 학원에서 사회 가르치는 누나도 있다며 난 괜찮으니, 누나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했다. '뭐꼬 !!!!!!!!!!!!!!!!!!!!!!!!!' 란 답장 이 외엔 아무런 말도 없는데.... 더 신경 쓰인다. 마치 이런 내게 벌을 주는듯.. 하루종일 되는일이 하나도 없다. 하루종일 축축 늘어지고, 학원 강사한테 꾸중받고, 영어 듣기 하려니 mp3 건전지가 없질 않나, 전자사전도 부서지고.. 집에 오는길에 넘어져 여고생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된것에서 모자라 가방끈까지 떨어지고 하필 가방안에 있던 책들도 다 ~ 나오고.. 이성이 마비되어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동내 양아치로 만들어 놓고 빅뱅이란다. 각설 하고, 대학교 3학년인 누나에게 방학중 경험들은 정말 중요한 경험이다. 지금의 나 정도 만큼이나.. 내 부탁에 약간의 고민을 하고도 와주기로 결정 한 누나가 고맙기도 하지만,, 조금더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 내가 참 한심하고 부끄럽다. 더 부끄러운건.. 내가 이랬다고 누나가 정말 안오면 그때도 과연 내 마음은 편할까? 란 생각을 한다는것도... 사랑받길 원하면서, 사랑하는데엔 인색한 것 같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아픔이 많은 이에게 따뜻한 이불같은 존재가 될거라고 다짐하고 있는게 좀 우습다. 으악으악 ㅠ 바보같으니라고 ㅠ 4. 플로티노스 플로티노스는 약204년 경에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암모니우스 사카스 밑에서 배웠다. 이 당시에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세계의 지성의 교차로였으며 여기에서 플로티노스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스토아 학파를 포함하는 고전철학을 광범위하게 접했다. 이것들 가운데 그는 진리의 가장 확실한 원천으로서 플라톤 철학을 택했으며, 이 플라톤의 사상을 재해석함으로써 그 밖의 사상들을 비난했다. 그는 마흔살이 되던해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로마로 갔고 한동안 그는 플라토노폴리스라 불리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기반을 둔 도시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그는 특별한 순서 없이 54편의 논문을 썼고 그가 죽은 후 애제자인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편찬되었다. 그는 그것을 9편씩 묶어 여섯 부분을 분류하고 〈엔네아데스〉라고 불렀다. 플로티노스는 훌륭한 연설가였으며 동시에 정신적 관념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동시대인들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지적인 엄밀성과 결부된 그의 도덕과 정신력이었다. 플로티노스 철학의 독특한 점은 그가 실재의 체계에 대한 새색적인 기술을 종교적인 구원론과 결합시켜다는 데 있다. 플로티노스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할 때 계속해서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사상을 분석한 후 이들 사상을 부적당하다고 거부했다. 이들 사상은 영혼이 참된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그의 확신이 그것들을 거부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스토아 학파는 영혼을 물질적인 육체, 즉 물질적인 〈호흡pneuma〉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유물론자들인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모두 물질적인 육체로부터의 영혼의 원초적인 독립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영혼을 육체의〈조화〉라고 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육체가 조화롭지 못한 경우에 그것은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며 육체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은 플로티노스에 의해 거부된다. 플로티노스에게 육체의 일부분이 그 형태를 잃는다는 것은 영혼도 그 정도로 손상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육체를 원초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플로티노스에게는 영혼이 원초적이며 또한 영혼이 육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플로티노스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하는 데 전념했다. 4.1 일자로서의 신 참된 실재는 신이며 신은 세계 내의 모든 사물을 초월한다는 것 이외에 신에 대해서 기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이유로 신은 물질적이 아니고 유한하지도 않으며 불가분적이고 변화하는 물질이나 영혼 같은 특별한 형상도 가지지 않는다.또한 그는 지성의 어떠한 관념에도 한정되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불가능하다-감관에도 감지되지 않고 다만 어떠한 이성적이거나 감각적 경험과도 부관한 신비적인 무아의 경지 속에서만 도달 가능하다. 이것 때문에 플로티노스는 신을 일자 the One 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타내려는 것은 신에게는 어떠한 복합성도 없으며 신은 절대적인 동일체라는 점이다. 또한 일자에 의해 신은 불변하고 불가분적이며,어떠한 다양성도 없고 창조되지 않으며 모든 면에서 변형 가능하지 않음을 나타낸다.플로티노스에 의하면〈일자는 존재하는 어떤 사물일 수 없으며 모든 현존재에 선행한다〉.신은 세계를 초월한다. 신은 인간을 전혀 닯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하나며 절대적인 통일체다. 4.2 유출의 비유 신이 하나라면 그는 창조할 수 없다.왜냐하면 창조는 행위며 활동은 변화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플로티노스는 신의 유일성에 대해 일관된 견해를 유지 하면서 사물들은 창조의 자유 행위가 아닌 필연에 의해 신에게서 비롯된다고 하며 사물의 기원을 설명했다. 특히 필연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유추르이 비유를 사용했다. 빛이 태양에서 방출되듯이, 물이 그 자체 이외의 어떠한 원천도 없는 샘에서 솟아 나오듯이 사물들은 유출되며 신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태양은 결코 고갈되지 않으며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것은 본질 그 자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빛을 방출한다. 요컨대 플로티노스는 범신론자가 아니다. 그의 유출론은 위계질서적인 견해의 토대를 이루었다. 태양에 가장 가까운 빛이 가장 밝은 것처럼 최상의 존재 형태는 제일 먼저 유출되는 것이다. 플로티노스는 일자로부터의 최초의 유출물을 정신nous이라고 기술했다. 그것은 일자에 가장 가깝지만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특정한 속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누스는 사유나 보편적인 지성이며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이성 능력이다.어떠한 공간적, 시간적인 경계를 갖지 않은 것이 바로 누스의 본질이다. 4.2.1세계의 영혼 세계의 영혼은 두가지 양상을 가지고 있다. 위로 올려다볼때, 즉 누스나 순수 이성 능력을 향할 때 영혼은 만물이 관념을 바라보려고 한다. 아래쪽을 내려다 볼 때 , 그것은 한번에 한 사물을 추론하며, 모든 본질에서 삶의 원리를 부여해 주고, 사물들의 관념과 자연적 질서의 현실적 영역과 간격을 이어줌으로써 유출한다. 영혼의 활동은 시간 현상을 의미한다. 분명히일자, 누스, 세계의 영혼 모두는 영원히 공조하며 세계의 영혼 밑에는 자연, 즉 변화하면서 시간 속에서 영원한 관념들을 반영하는 개별적인 사물들의 영역이 있다. 4.2.2 인간의 영혼 인간의 영혼은 세계의 영혼에서 유출된다. 세계의 영혼과 같이 그것도 두가지의 양상을 가지낟. 위를 바라볼 때, 인간의 영혼은 누스나 보편적 이성을 공유하며 아래를 내려다볼 때 , 그 영혼은 육체와 연관되지만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은〈타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육체에 있을 동안에 영혼은 이성능력, 감수성, 생명력을 제공해 준다. 4.2.3물질의 세계 존재의 위계질서에서 최하위의 단계, 즉 일자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물질이다. 물질세계도 더 높은 양상과 더 낮은 양상을 보여 준다. 더 높은 것은 운동 법칙에 대한 감수성이며 더 낮은 것, 즉 최하위의 물질적 본질은 충돌과 소멸을 향하여 목적도 없이 움직이는, 조잡한 물질의 어두운 세계다. 플로티노스에게 물질은 일자로부터 유출되는 필연적이고 최종적인 종착지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유출의 본질은 더 높은 단계에서 항상 더 낮은 단계로 이동하며 일자는 누스를 생성하고 개별적인 영혼은 육체, 즉 물질을 낳는다는 것이다. 물질이 위로 향할 때 그것은 영혼이나 이성능력의 원리와 마주친다. 자연에 있는 대상들의 이 같은 사실은 그것들의 운동의 질서 정연함을 설명해 준다. 반면에 개인의 경우 그 사실은 육체가 이성 능력, 감수성, 욕구, 생명력의 단계에서의 영혼의 활동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물질이 아래로 향할때 -유출의 하향 운동량 때문에 이것이 자연적인 성향이다-그것은 어둠 자체와 마주치게 되며 여기에서 물질은 이성 능력과 분리된다. 물질이나 육체의 유출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악의 원리다. 그 가장자리는 이성능력이 없으므로 형상의 부재이며 완전성의 정도가 최소에 이른다.그러나 만물이 일자로부터 유출된다는 의미에서 물질은 신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에 신은 악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악은 단순히 무언가의 부재요, 완전성의 결핍이며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악이 아닌 물질적인 육체에 있어서 형상의 결핍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도덕적인 갈등은 어떤 외적인 힘에 반대하는 갈등이 아니라 내부에서 타락하고 변형되려는, 그리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성향에 대항하는 갈등이다. 4.3구원 플로티노스는 유출론의 철학적인 분석에서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구원의 계획으로 관심을 돌렸다. 플로티노스는 신과 합일을 이루려는 영혼의 상승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뵤사했다.이러한 상승을 이룩하려면 인간은 도덕적이고 지적인 덕을 성취해야 한다 육체와 불질세계는 본래 악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가 없다. 세계의 물질적인 사물들 때문에 영혼이 더욱 높은 곳을 향 할 수 없어서는 안되다는 사실이 그의 핵심적인 통찰이다. 사람들은 엄격하고 올바른 사유를 할 수있도록 수양해야 한다. 그러한 사유활동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개체성에서 멋어나며 사물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통해 자아를 세계의 전 배열에 관여시키려 한다. 그러나 지식의 사다리를 보두 밟고 얼라가면 자아와 일자, 즉 신과 합일에 도달하며 그 상태는 무아의 경지다.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이 합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각 영혼의 많은 화신이 필요하다. 플라톤이『향연』에서 밝혔듯이 영혼은 그것의 사랑 속에서 정제되고 정화되며 가장 충만한 자아 몰입에 이를 수 있다.
사진에 관하여.
여러분들은 사진을 뭐라고 생각 하세요? 현재 제 위치가 사진은 무어다 이렇다 저렇다 할 위치 만큼의 잘 찍는 찍사는 아니요, 그저 사진활동을 사랑하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지극히 제 주관적이고 독아적인 의견을 남겨봅니다.
이 글이 우리 동호회의 게시글에 대한 반응및 타 동호회 게시글에 대한 반응 등과 전혀 연관이 없으며 어떠한 원인에 의해 이곳에 하소연을 하는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우선 제가 정의하는 사진이 무엇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기 전에 제가 사진 찍은 목적을 잠깐 언급 하겠습니다. 저는 사진을 뷰 파인더를 통해 비쳐지는 피사체로부터 타자화된 제 모습을 즐기기 위해 사진을 찍습니다. 다시말해 제게 있어 사진은 단순히 결과물을 현상/스캔/인화 (이하 현상으로 통일) 하는것 및 셔터를 누르는 것 외에도 그저 뷰파인더를 통해 렌즈로 촛점을 맞추는 행위 하나하나에도 목적을 두고 있으며, 렌즈를 이렇게도 돌려보고 저렇게도 돌려보면서 촛점이 맞고 안맞고에 따라 달라보이는 사물들의 모습에도 쾌감이 느껴집니다. 그 속에서 타자화된 제 모습을 발견해 나가지요. 실제로 필름 없이 카메라만 갖고 근처 공원에 나홀로 출사를 나가본 적도 있습니다. ( 그러고 보니 동호회 번개및 출사엔 그런적이 없네요.) 뷰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시각이 본인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과는 다르다는 느낌 ,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신적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그냥 뷰 파인더만 보지 왜 사진을 찍느냐는 의문도 남기실거라 보고, 조금 더 설명할게요. 제가 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행위는 뷰 파인더에 비친 타자화된 자아를 향해 다가가고(셔터를 누르고.) 그 자아를 향해 손을 잡는 행위와 같습니다.(현상) 물론 모든 상황에 이런 의도를 반영하진 않습니다. 저또한 많은 사람들 처럼 소유하고 싶으나 소유할 수 없는 존재를 기록으로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거든요. ![]() 제가 사진을 찍는 목적에 대한 설명은 여기에서 그치고, 사진에 대한 견해를 밝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진은 찍사의 가장 주관적인 것을 가장 객관화 시켜 표현한 것' 으로 정의하고 싶네요. 이에 동의 하시는 분도 좀 계실거라 봅니다. 하지만, '주관적인것을 주관적으로 표현한것' 에는 쉽게 동의를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가장 대표적으로 사진에 가하는 '조작' 에 있어서 말입니다. 필름사진 동호회의 성격상 사진에 조작을 행하는 것을 싫어 하시는 분들이 많을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실주의 예술' 만큼이나 '형이상학적 예술'또한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미 미술, 음악 무용 등지에서는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예술들이 나오고 있고, 그것을 즐기는 관객 또한 적지 않습니다만, 유달리 사진에 있어서는 형이상학적인 사진 즉 다시말해 조작이 가미된 사진을 하나의 사진 예술로서 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포토샵을 이용해 명도, 대비 등을 조절하며 사진에 '약간의' 보정을 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은 거의 없으나 그것을 이용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작 하는 것에는 논란이 많더군요. 대표적으로 합성이 되겠네요. 이 합성에 있어서도 Jerry N. Uelsmann 과 같이 필름을 자르고 붙여 사진을 합성하는 것과 일반적으로 디지털화된 사진을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어떠한 효과를 준다던가, 자르고 붙이는 것들과는 다르다. 라고 말씀 하시는 분들도 꽤나 많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사진 또한 카메라를 이용한 예술이며, 그것이 굳이 카메라로서만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면 그만큼 사진으로의 표현 범위가 제한된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예술이 과연 에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 (개인적으론 사진을 찍는 행위 조차 행위 예술로 보기도 합니다. 다들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것 같지만 한사람 한사람 사진을 찍는 모습은 다양하거든요ㅋㅋㅋ.^^) ![]() 다음으로, 괜찮은 사진기를 쓰는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휴대전화기 카메라, 펜 카메라, 토이 카메라 는 카메라로 취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디지털 카메라 또한 카메라로 안보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우리 동호회의 경우 폰 카메라를 서브 카메라로 쓰는 사람도 많고, 똑딱이로도 멋진 사진을 하는 분들도 많지만 말입니다.) 제가 그러한 사람들을 하나, 하나, 만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진 못했지만 글쌔요. 카메라 보급을 통해 자신을 비롯한 소수가 즐길 수 있었던 사진이란 존재를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즐기는 것에 대한 '질투' 로 보이기도 하네요. 폰 카메라는 왜 카메라가 아닌가요? 토이 카메라는 왜 그저 장난감 뿐인가요? 그것을 통해 찍사가 사진을 찍는 행위에 집중하고, 즐길 수 있고 거기에 따른 예술 행위를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존중 해 주어야 하지 않나요? 그저 기념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 사진에 대해 이래 저래 토를 다는것이 싫으신가요? (작가 보다 그저 즐기기 위한 동호회 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 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네요.) 그사람들은 그냥 그사람들의 '생각'일 뿐, 그걸 그대로 받아 들일 순 없을까요? 그사람들이 말하는 사진은 그런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이런것이고. '그사람은 그런 이유로 사진을 찍는다.' 란 식의 상대적 견해로 봐 주시는건 어떤가요? 솔직히 말해, 저 또한 그런 상대적인 견해를 완벽하게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지 카메라를 패션 코드로 이용하면서 사진 찍는 척 하며 폼 재는 젊은 사람들을 그리 좋게 보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카메라를 접하더라도 충분히 멋진 사진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 둡니다. 저랑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일 지라도,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단순히 패션 코드로 카메라를 접한 찍사들의 멋진 사진을 감상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한쪽은 폰카-
ps - '난 사진 찍는데 딱히 특정한 의미 부여를 안하는데? 그냥 느낌과 상황을 담고 싶을 뿐이야.' 라고 생각 하시는 분도 계실것 같아 덧붙입니다. 서양 철학자 '흄'은 자연의 단순한 모방을 포함하여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예술작품 그리고 활동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 , 우리자신의 생명을 객관화한것 모두 사실주의 예술이라 밝혔습니다. 정리하자면 그저 있는대로 아름다움. 기록으로서의 사진또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서경식 선생님의 선물
1. 난민과 국민사이 2. 만남 3. 시대를 건너는 법 4. 교양, 모든것의 시작 5. 소년의 눈물 6.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7. 나의 서양 미술 순례 8. 청춘의 사신 9. 디아스포라 기행 10.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배종열 군의 선물 11. 경상도 우리 탯말 문현주 선물 12. 동물의 역습 총 12권입니다. 동물의 역습은 문현주에게 아직 대여중이구요~ ㅋ 나머지는 모두 대여 가능합니다~^-^
먼저 구체적이야기 없이 잠수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단순해서 하나는 알면 둘도 알아야하는데 둘을 몰랐어요~ 무엇보다 아름다운 햄 맛있는 영민햄 형 미안해~ 그리고 은희누나야~ 지속적인 문자에 답장하지못한 중죄 작두대령해서 갈께요~ 오랜만에 접속해서 너무 밝은 척하며 글 남기는 점도 반성하겠습니다. 그래도 우울한 모습보단 잠수해서 밝아져 오는게 더.. 하나부터 열까지 진심을 담아 죄송해요~ 월요일에 ABCD까지만 아는 저에게 석.박사 아저씨들 모인자리에서 관심분야 논문 공부하고 생각정리해서 경상도 사투리에 영어단어만 탑제해서라도 발표하라는 연구실 교수대마왕님에 분부때문에 그래도 철학본색에서 작두를 맞고자 긴밤 외롭게 보내는 중입니다. 어린나이는 아니지만 생각수준은 꼬맹이라서 그러니 잘 이해해주시구요~ 즐거운 금요일보내시고 주말에 뵐께요~ 그리고 오랜만에 접속에 현주누나에 화려한 소식과 맛나는 음료 미란양에 화려한 대뷔소식 너무 좋네요~ 종렬아 문자감사~ 제가 안가서 더 아름다운 엠티사진도 왕 부러웠어요~
(다윗이 구시의 말을 듣고 식가욘으로 부른 노래)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나를 뒤쫓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건져 주십시오. 그들이 사자처럼 나를 찢어 발기어도, 나의 목숨 건져 줄 사람이 없을까 두렵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만일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벌을 내려 주십시오. 내가 손으로 폭력을 행했거나 친구의 우정을 악으로 갚았거나, 나의 대적이라고 하여 까닭 없이 그를 약탈했다면, 원수들이 나를 뒤쫓아와서, 내 목숨을 덮쳐서 땅에 짓밟고, 내 명예를 짓밟아도, 나는 좋습니다. (셀라) 주님, 진노하며 일어나시고, 내 대적들의 기세를 꺾어 주십시오. 하나님, 깨어나셔서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뭇 민족들을 주님 앞으로 모으시고, 주님께서는 그 높은 법정으로 돌아오십시오. 주님께서는 뭇 백성들을 판단하시는 분이시니, 내 의와 내 성실함을 따라 나를 변호해 주십시오. 주님은 의로우신 하나님,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낱낱이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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